| 1 | 曾子曰 以能問於不能 以多問於寡 有若無 實若虛 犯而不校 昔者吾友嘗從事於斯矣 증자가 말하기를, “능하면서 능하지 못한 이에게 물으며, 많이 알면서 적게 아는 이에게 물으며, 있어도 없는 것처럼 하고, 가득해도 빈 것처럼 하며, 남이 잘못을 범해도 따지지 않는 것을, 옛날에 나의 벗 안연(顔淵)이 일찍이 이런 일을 실천했었다.”라고 하였다.
校計校也 友馬氏以爲顔淵 是也 顔子之心 惟知義理之無窮 不見物我之有間 故能如此. 校는 따지는 것이다. 친구는 마씨가 안연이라고 말했는데, 옳다. 안자의 마음은 오직 의리의 무궁함만을 알 뿐, 남과 나의 차이가 있음을 보지 않았기에, 이와 같이 할 수 있었다.
厚齋馮氏曰 曾子之亡友 多矣 獨以爲顔淵者 非顔子不能以與此 然顔子與曾晳爲輩行 父之執友也 曾子亦可謂之吾友乎 曰同師門 卽皆友也 후재풍씨가 말하길, “증자의 죽은 친구는 많았지만, 유독 안연이라고 생각한 것은 안자가 아니라면 이것에 관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자는 증석과 더불어 같은 항렬이었으니, 아버지의 뜻을 같이 하는 친구였던 것이다. 증자가 또한 그를 일컬어 내 친구라고 말할 수 있는가? 같은 스승의 문하라고 말한다면, 모두 친구인 것이다.”라고 하였다.
知義理之無窮: 該以能至若虛 以能부터 若虛에 이르기까지에 해당한다.
不見物我之有間: 此謂犯而不校 이것은 나에게 잘못을 범해도 따지지 않음을 일컫는 말이다.
王氏曰 二句包盡 上句知之事 下句仁之事 왕씨가 말하길, “두 구절은 다 포괄하고 있으니, 윗 구절은 앎의 일이고, 아랫 구절은 仁의 일이다.”라고 하였다.
問以能問於不能 朱子曰 想是顔子自覺得有未能處 但不比常人十事曉得九事 那一事便不肯問人 顔子深知義理之無窮 惟恐一善之不盡 故雖能而肯問於不能 雖多而肯問於寡 以求盡乎義理之無窮者而已 누군가 능한 것으로써 능하지 못한 사람에게 묻는다는 것에 관하여 물었다. 주자가 말하길, “생각하건대, 안자가 아직도 잘 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자각할 경우다. 그러나 보통 사람이 열 가지 일 중에서 아홉 가지 일을 깨우치게 되면, 저 나머지 한 가지 일은 곧 남에게 물으려 하지 않는 것에 비견할 수는 없다. 안자는 의리의 무궁함을 깊이 알았기 때문에, 오직 하나의 선이라도 다하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하였다. 이 때문에 비록 잘 할지라도 잘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물으려 하고, 비록 많이 알고 있음에도 적게 아는 사람에게 물으려 해서, 이로써 의리의 무궁함을 끝까지 다 구하고자 하였을 따름이다.”라고 하였다.
犯而不校 蓋是他分量大 有犯者如蚊蟲過前 自不覺得 何暇與之校也 자기에게 잘못을 범해도 따지지 않는다는 것은 대체로 그의 분수와 도량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범하는 사람이 있을지라도, 마치 모기나 벌레가 앞을 지나가는 것과 같아서,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것이니, 어느 겨를에 그것과 더불어 따지겠는가?
問從事於斯 是著力否 曰 若是著力 却是知自已能自已多 須要去問 不幾於詐乎 曾子是見得顔子如此 非謂其著力也 누군가 묻기를, “여기에 종사하는 것은 일부러 힘을 쓴다는 것입니까?”라고 하였다. 말하길, “만약 일부러 힘을 쓰는 것이라면, 도리어 자신이 이미 능한 것을 알고 자기가 이미 많이 아는 것을 알지라도, 반드시 가서 물어야 한다는 것이니, 이는 속이는 것에 가깝지 아니한가? 증자는 안자가 이렇게 하는 것만 알아보았을 뿐이지, 그가 일부러 힘을 썼다고 말한 것은 아니었다.”라고 하였다. |
| 2 | ○ 謝氏曰 不知有餘在己不足在人 不必得爲在己失爲在人 非幾於無我者 不能也. 사씨가 말하길, “넉넉함이 나에게 있고 부족함이 남에 있다는 것은 모르고, 잘하는 것은 나에게 있고 잘못하는 것은 남에게 있다는 것을 단정하지 않는 것은 거의 무아에 가까운 자가 아니면 할 수 없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慶源輔氏曰 以理言也 釋上四句 경원보씨가 말하길, “이치로써 말한 것이로서, 위의 네 구절을 풀이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慶源輔氏曰 以事言也 釋下一句 경원보씨가 말하길, “일로써 말한 것이니, 아래 한 구절을 풀이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問幾字 朱子曰 聖人全是無我 顔子是不以我去壓人 却尙有箇人與我相對 在聖人便和人 我都無了 누군가 幾자에 관하여 물었다. 주자가 말하길, “성인께서는 온전히 내가 없었지만, 안자는 나를 가지고 가서 남을 억압하지는 않았으니, 오히려 아직도 어떤 사람이 있어서 나와 더불어 상대하는 것이다. 성인에게 있어서는 곧 남과 화합해버리니, 나마저도 모두 사라지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問以能問於不能 以多問於寡 有若無 實若虛 犯而不校 此聖人之事也 非與天同量者不能 顔子所以未達一間者 正在此 故第曰 嘗從事於斯 非謂已能爾也 曰 此正是顔子事 若聖人則無如此之迹 有如此說處 便有合內外之意 如舜善與人同 舍己從人 好察邇言 用中於民 必兼言之 惟顔子行而未成 故其事止於如此爾 누군가 묻기를, “능함에도 불능한 사람에게 묻고, 많이 앎에도 적게 아는 사람에게 물으며, 있어도 없는 것처럼 하고, 가득 찼어도 빈 것처럼 하며, 남이 잘못을 범해도 따지지 않는 것, 이것은 성인의 일이니, 하늘과 더불어 같은 도량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해낼 수 없습니다. 안자가 마지막 한 칸을 미처 이르지 못한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단지 말하길, 일찍이 여기에 종사하였다고 하였을 뿐, 이미 능하였다고 말한 것이 아닙니다.”라고 하였다. 말하길, “이것은 바로 안자의 일이다. 만약 성인이라면 이와 같은 자취가 없었을 것이다. 이와 같이 말한 부분이 있다면, 곧바로 내외를 합하려는 뜻이 있는 것이니, 마치 순임금께서 ‘善은 남과 함께 하되, 자기 것을 버리고 남을 따르며, 가까운 곳의 말을 잘 살펴서, 백성에게 그 가운데를 사용하신 것’과 같이, 반드시 내외를 겸해서 말해야 하는 것이다. 그저 안자는 행하였지만 미처 이루지 못하였으니, 이 때문에 그 일이 이와 같음에 그치고 말았을 따름이다.”라고 하였다.
或問顔子深知義理之無窮 惟恐一善之不盡 非挾其能而故問之也 雙峯饒氏曰 仁者之心 視人猶己 故人雖有犯不忍與之校曲直 纔校則直在己曲在人 而物我相形矣 便非包含徧覆之意 又曰 分言之 則如上文所云 合言之 則能問不能犯而不校 皆是無我 故又引謝說而包之 혹자가 묻기를, “안자는 義理의 무궁함을 깊이 알았고, 오직 하나의 善이라도 다하지 못할까 걱정하였기에, 자신의 유능함을 끼고서 일부러 물어본 것은 아닙니다.”라고 하였다. 쌍봉요씨가 말하길, “어진 사람의 마음은 남을 자기 자신처럼 보기 때문에, 남이 비록 자기에게 범함이 있더라도, 차마 그와 더불어 曲直을 따지지 못하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따진다면, 곧음은 자기에게 있고 굽음은 남에게 있게 되어서 남과 내가 서로 모습이 드러나는 것이니, 그 즉시 널리 두루 덮어서 포함한다는 뜻이 아니게 된다.”라고 하였다. 또 말하길, “나누어서 말하자면, 윗글에서 말한 바와 같고, 합하여 말하자면, 능함에도 불능한 사람에게 묻고 범해도 따지지 않는 것은 모두 無我이기 때문에, 다시 謝씨의 말을 인용하여 포괄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吳氏曰 子貢多聞 故於顔子見其聞一知十 曾子力行 故又見其如此 오씨가 말하길, “자공은 들은 바가 많았기에, 고로 안자에 대하여 그가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아는 것을 알아보았고, 증자는 힘써 행하였기에, 고로 다시 그가 이와 같음을 알아보았던 것이다.”라고 하였다.
雲峯胡氏曰 聖賢無我之心 常如太虛然 能容天下之理 而不見己之有餘 能容天下之人 而不見人之不足 운봉호씨가 말하길, “성현의 無我之心은 항상 太虛의 그러함과 같아서, 천하의 모든 이치를 능히 용납할 수 있지만 자기의 넉넉함을 알아보지 못하고, 천하의 모든 사람을 능히 포용할 수 있지만, 남의 부족함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