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坒悟)의 팡세(瞑想)
저녁노을의 뒤안길에서 지난날의 삶을 더듬어본다. 어떤 이는 과거의 삶을 회상하며 “어떻게 살았냐고 묻지를 마라/이리저리 살았을 거라 착각도 마라/그래 한때 삶의 무게 견디지 못해/긴 긴 세월 방황 속에 청춘을 묻었다.”라며 ‘내 인생에 태클을 걸지 마’한다.
나의 삶을 돌아보니 지천명에 이르러 삶의 궤도가 바뀐 것 같다. 그때까지 ‘내 뜻대로’ 능동의 삶으로 살았는데 ‘삶의 벽’에 부딪히며 능력의 한계를 느꼈다. 그래서 다른 길을 찾은 것이 신앙이다. 그 길에 들어서니 든든한 후원자가 생긴 것처럼, 후광을 입어 제2의 인생(수동의 삶)을 살게 되었다.
그때가 2,000년으로 새 천 년을 맞이하며 국민소득 만 불 시대가 왔다. 어느 나라 없이 만 불 시대에 접하면 여러 가지 변화가 따르지만, 확연히 드러나는 거시적인 모습은 ‘마라톤 붐’이 일어난다고 한다. 때를 같이하여 나도 막무가내로 도로를 뛰었다. 점점 거리를 늘여가며 뛰었다. 6개월이 지나니 체중이 10kg 줄었으며, 전국을 누비며 달리는 마라톤의 마니아가 되었다.
마라톤은 인생역정 희로애락의 길이다. 그 길에서 고통과 기쁨을 체험하며 보고 느끼고 생각한 조각들을 모아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쓴 수기를 ‘길! 나는 끝없이 달린다’를 펴내기도 했다. 그 뒤 수필 창작대학에 입문하여 체계적으로 배워 문단에 이름을 올렸다. 수필집으로 질주, 어레미논, 노란 은행나무를 펴냈으며 묵상집으로 피안의 그곳, 나그넷길, 맏배, 사랑의 중력, 신앙의 나이테, 다림줄 등을 세상에 내놓았다.
2016년에 고 이문희 대주교(2021년 선종)의 부르심을 받고 그분이 창립한 사단법인 ‘한국 여기회’의 소식지 ‘如己愛人’ 편집 일을 맡아 봉사하고 있다. 코로나 시대에도 그 일을 하면서 제때 출간이 될지 조마조마한 적이 여러 번이었다. 그런 어려움이 있어도, 한 번도 결간(缺刊) 없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하니 내 뜻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으로 이루어짐이다.
나는 하루의 일과 중에서 책상에 앉아 글을 쓸 때가 가장 즐거운 시간이다. 글쓰기는 화가가 추상화를 그리고 작곡가가 곡을 짓듯 창작활동이다. 삶의 길에서 여행이나 사물을 통해서 보고 느끼고 생각하며 체험한 것을 쓰는 작업으로 자기를 성찰하고 반성하며 고백하기에 진솔함이다.
인생길에서 순탄한 길만 있으랴. 어려움과 시련, 고통도 있으며 쨍하게 밝은 날도 있다. 각자 주어진 길에 의미를 담고 성실히 사는 것이 잘 사는 길이리라. 어제는 지난 날이며 내일은 오지 않은 날이다. 오늘에 마중하며 기쁨과 행복으로 보람되게 살아야 한다.
참고: 17세기 프랑스의 파스칼은 ‘사람은 생각하는 길대’ 라고 했으며 ‘팡세’를 남겼다. 팡세는 그의 유고집으로 여러 생각을 모은 명상록이라 할 수 있다. 18세기 니체를 비롯하여 사상가에게 많은 영향을 준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