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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사현정(破邪顯正)
그릇된 생각을 버리고 올바른 도리를 행한다.
破 : 깨뜨릴 파(石/5)
邪 : 간사할 사(阝/4)
現 : 나타날 현(頁/14)
正 : 바를 정(止/1)
사악하고 그릇된 것을 깨뜨리고(破邪) 바른 것을 드러낸다(顯正)는 깊은 뜻을 지닌 성어다. 원래 불교 교리에서 나왔다. 부처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악한 생각을 버리고 올바른 도리를 따른다는 의미다.
부처님의 가르침에는 타파하고 배척할 생명체는 없이 모두 존귀한 존재이지만 자비가 널리 번지는 것을 막는 사악한 마귀는 타파해야 하는 존재가 된다.
줄여서 파현(破顯)이라고도 쓰고 유가에서 말하는 정의를 지키고 사악한 것을 배척한다는 척사위정(斥邪衛正)이나 벽사위정(僻邪衛正)과도 상통한다.
인도 대승불교에서 시작된 삼론종(三論宗)은 중국에서 크게 번창했고 고구려(高句麗)에 불교를 처음 전한 순도(順道)도 이 종파였다고 한다.
그래서 삼국시대 각국에서도 발전하여 신라의 원효(元曉)나 백제의 혜현(慧顯)이 삼론을 강설했다고 하고 일본으로 전한 불교도 이 종파였다.
중국 삼론종의 중흥조로 추앙받는 수(隋)나라의 길장(吉藏)의 저서에 삼론현의(三論玄義)가 있다. 여기에 이 성어가 나오는 부분을 보자.
但論雖有三(단론수유삼)
義唯二轍(의유이철)
다만 論(논)에 비록 세 가지가 있지만,
義(의)는 오직 두 가지 길 뿐이다.
一曰顯正(일왈현정)
二曰破邪(이왈파사)
첫째는 바른 것을 드러내는 것이요,
둘째는 그릇된 것을 깨뜨리는 것이다.
破邪則下拯沈淪(파사즉하증침륜)
顯正則上弘大法(현정즉상홍대법)
사악한 것을 깨뜨리면
아래로 가라앉은 것을 건져내고,
바른 것을 드러내면
위로 큰 법이 넓혀진다.
거짓된 것을 깨뜨리면 밝음이 오지만 이것이 뒤섞여 구분이 안 되니 세상이 어지러운 것이다.
2012년 교수선정 성어로 이 말이 등장했는데 거짓과 탐욕, 불의와 부정이 판치는 세상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의미에서였다. 사악한 것을 버리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 시시비비를 가리는 지혜가 필요하다.
하지만 촛불혁명 이후로도 눈앞의 욕심으로 온갖 이합집산과 불의는 여전하여 매년 선정해도 해당하는 성어가 아닐 수 없다. 다가오는 지방선거에선 특히 정치꾼을 배척하고 올바른 정치를 펼칠 일꾼을 뽑아야겠다.
破(파)는 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돌석(石; 돌)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皮(피,파)로 이루어졌다. 破(파)는 '돌이 부서지다', 나중에 돌 뿐이 아니라, '사물이 깨지다, 찢어지다, 찢다'의 뜻으로 쓰였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부술 쇄(碎)이다. 용례로는 파괴(破壞), 파국(破局), 파혼(破婚), 깨어진 거울을 파경(破鏡), 깨어진 그릇 조각을 서로 맞춘다는 파기상접(破器相接), 수치를 수치로 알지 아니하는 파렴치(破廉恥), 솥을 깨뜨리고 배를 가라앉힌다는 파부침선(破釜沈船) 등에 쓰인다.
邪(사)는 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우부방(阝=邑; 마을)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牙(아,사)로 이루어졌다. 邪(사)가 본래는 낭야(琅邪)라는 지명을 위하여 고안된 것이었으니 고을 읍(邑)이 의미요소로 쓰였고, 牙(어금니 아)는 발음요소였다. '바르지 못하다'는 뜻도 이것으로 나타내는데 이 경우에는 음을 '사'로 읽는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간사할 간(奸),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충성 충(忠), 바를 정(正)이 있다. 용례로는 바르지 않고 사악한 마음을 사심(邪心), 도리에 어긋나고 악독함을 사악(邪惡), 간사스럽고 바르지 못한 욕망을 사욕(邪慾), 좋지 못한 여러 가지 그릇된 생각을 사사망념(私思妄念), 그릇되고 온당하지 못한 여러 가지 정욕을 사욕편정(邪慾偏情), 바르지 못한 것은 바른 것을 감히 범하지 못한다는 뜻으로, 정의는 반드시 이긴다는 사불범정(邪不犯正) 등에 쓰인다.
顯(현)은 형성문자로 顕(현)의 본자(本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머리 혈(頁; 머리)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에 감다의 뜻을 나타내는 글자 㬎(현)으로 이루어졌다. 머리에 감은 아름다운 장식물, 전(轉)하여 '매우 밝다'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로 나타날 현(現), 볼 시(視), 나타날 저(著), 바라볼 조(眺) 볼 견(見), 볼 관(觀)이 있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빽빽할 밀(密), 숨을 은(隱)이 있다. 용례로는 현재(顯在), 나타내 보인다는 현시(顯示), 이름이 세상에 드러남을 현명(顯名), 높은 벼슬을 현사(顯仕), 두드러지게 드러나거나 드러낸다는 현출(顯出) 등에 쓰인다. 그리고 신주(神主)나 축문(祝文)에서 돌아간 아버지를 현고(顯考), 어머니를 현비(顯妣), 증조 할아버지를 현증조고(顯曾祖考), 고조 할아버지를 현고조고(顯高祖考)라고 쓴다.
正(정)은 회의문자로 하나(一)밖에 없는 길에서 잠시 멈추어서(止) 살핀다는 뜻을 합(合)하여 '바르다'를 뜻한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바를 광(匡), 감독할 동(董), 곧을 직(直), 바탕 질(質)이 있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거짓 위(僞), 버금 부(副), 돌이킬 반(反), 간사할 간(奸) 간사할 사(邪), 그르칠 오(誤)가 있다. 용례로는 정가(正價)는 정당한 가격, 정신(正信)은 참되고 바른 신심, 정인(正人)은 마음이 올바른 사람, 정각(正刻)은 틀림없는 그 시각을 말하고, 옷매무시를 바로 하고 단정하게 앉음을 정금단좌(正襟端坐), 정대하고도 높고 밝다는 정대고명(正大高明), 태도나 처지가 바르고 떳떳하다는 정정당당(正正堂堂) 등에 쓰인다.
파사현정(破邪顯正)은 인도의 용수보살이 이야기한 불교 실천수행의 요체입니다. 불교는 새로운 가르침이 아니라 원래 있는 바른 것을 드러내는 수행입니다. 세상은 원래 바른 것이지만 삿된 행위에 의해 오염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삿된 것을 없애면(破邪), 바른 진리는 본래 모습으로 드러나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대승불교에서 석가모니 다음 자리에 놓이는 분이 용수보살(본명 나가르주나)입니다. 공(空)이론을 체계화함으로써 대승불교의 기초를 닦은 그는 석가모니 열반 6~7세기 뒤 인도 남부의 브라만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젊은 시절 뛰어난 재능을 방탕한 놀이에 탕진하던 그는 왕궁에 잠입, 궁녀들을 범했다가 군사들의 추격에 간신히 살아남았다. 비로소 욕망과 쾌락이 괴로움의 근본임을 깨닫고 출가, 오랜 공부 끝에 깨우침을 얻고는 죽을 때까지 부처의 참뜻을 가르쳤습니다. 관세음보살 등 관념적 대상이 아닌 실재인물로선 드물게 보살로 추앙됐습니다.
이 파사현정이 바로 용수보살의 중관(中觀)사상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중관은 말 그대로 바르게, 아무런 걸림 없이 공정하게 본다는 뜻이죠. 물론 불교사상이란 워낙 어렵고 오묘해서 함부로 논할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저마다 주장하는 그 모든 것이 다 틀렸다는 것이 바로 중관사상의 출발점이죠. 파사의 깨부숴야 할 사(邪)는 사악한 것이 아니라 저만 옳고 저만 잘났다는 극단의 생각이나 태도입니다.
그러므로 용수의 중관사상은 정확하게 중도(中道)의 사상이며, 파사현정은 중도를 실천하는 방법입니다. 드러내야 할 어떤 바른 것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극단이란 잘못을 깨는 것, 그 자체가 정(正)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양 극단에 치우침이 없는 포용을 실현하는 것이 파사현정이죠. 국내외적으로 거대한 변화의 시대에 돌입한 지금 강퍅한 대립과 대결, 증오와 배제로는 어떤 긍정적 변화도 이루기 어렵습니다.
파사현정(破邪顯正)은 그릇된 것을 깨뜨리고 올바르게 바로잡음입니다. 사견(邪見)과 사도(邪道)를 깨고 정법(正法)을 드러내는 일입니다. 파사현정이란 "잘못된 것을 고쳐 바른 것이 드러나도록 한다"라는 의미입니다. 잘못된 어리석음의 무명을 벗김으로써 진실이 바르게 드러날 수 있다는 불교적 사고방식의 한 예입니다.
파사현정은 그릇된 것을 깨뜨려 없애고 바른 것을 드러낸다는 뜻으로, 불교에서만 쓰인 것은 아니고 유학에서도 척사위정(斥邪衛正)이나 벽사위정(闢邪衛正)을 말합니다. 이 시점 나라와 사회, 직장과 가정 그리고 학교와 군대 등 대한민국 전체에서 파사현정의 정신이 요구됩니다.
파사현정에는 거짓과 탐욕, 불의와 부정이 판치는 세상을 바로잡겠다는 강한 실천이 담겨 있습니다. 정의로움이 없는 정치는 국민에게 신뢰받을 수 없음을 정치꾼들이 알아야 합니다. 우리들은 총선과 대선 그리고 지선(地選)을 통해 정치꾼은 없애고 진정한 정치가만 남기를 기대합니다.
1. 파사현정(破邪顯正)의 사회적 의미
마르크스주의적 입장에서 볼 때 현재의 모든 제도와 종교들이 다 하나같이 억압의, 그리고 피억압자들의 자기기만의 이중적 도구라고 생각한다. 불교도 예외일 수 없으며, 이와 같은 차원에서 조계종 등 불교 종파에 소속되거나 사찰에 가서 신앙행위를 하는 것은 백해무익이라고 생각된다.
원시불교는 지금 우리가 불교라고 (잘못)아는 종교에 비해서 질적으로 달랐다는 것은 확실한 일이지만, 불교를 창시한 석가모니불과 그 직접 제자의 다수가 지배계급 출신의 남성이었던 만큼 원시불교 역시 가부장적인 억압을 인정했으며, 극도로 불평등하고 부정의한 현세에 대한 거리두기를 선언했을 뿐 현실을 바꿀 수 있는 이념이 되지 못했었다.
그러나 이와 함께 원시불교의 연기론(緣起論)이나 인과론(因果論) 등은 세계철학사에서 최초로 총체성이라는, 마르크스주의 철학 차원에서도 매우 중요한 부분을 변증법적으로 해명하는 등 인류의 뛰어난 역사적 유산임에 틀림없다. 또한 공(空)의 개념은 현상과 본질의 차이를 최초로 제대로 파악케 했으며 인간, 인류의 어떤 본원적인 한계를 잘 지적했다.
특히 자본주의가 자연계를 파괴하는 순간 같으면 만물의 유기적 유관성을 철학적으로 입증하는 연기론 등은 분명히 인류의 생존을 위한 반자본 투쟁의 이념을 철학적으로 뒷받침하는 하나의 배경이 될 수 있다. 또한 불교의 자비론은, 자본주의적 상황에서 인간으로서 달성하기가 극히 어려운 진정한 인간의 이상을 제기함으로써 이 체제의 본질적 한계를 잘 반증한다.
한 마디로 불교를 굳이 종교적으로 신앙하지 않더라도 불교적 사고의 틀을 원용하면서 자본주의 극복을 위한 사상적 작업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죄도 없는 江들이 죽임을 당할 일도, 미쳐간 반북 정책들이 새로운 연평도 포격 사건과 같은 비극을 자극, 도발시킬 일도 더 이상 없기를 희망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사(邪)에 잔뼈가 굵어진 한 패의 정치사기꾼들을 내쫓아, 외양은 달라도 본질은 똑같은 또 하나의 무리를 고위 선거직에 들여보낸다고 해서 현정(顯正)이 별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파사현정의 뜻을 단순한 부정한 정권에 대한 심판으로만 국한시키면 안 될 것이다. 굳이 파사현정의 본래적, 불교적 뜻으로 본다면, 그 의미는 삼라만상과 불법(佛法)에 대한 그릇된 생각들을 버리고 올바른 법관(法觀), 공관(空觀)을 세운다는 것이다.
모든 법들이 다 본질상 공(空)해도 오온(五蘊)의 가합(假合)으로, 연기법의 원칙에 따라 동시에 존재하기도 하고, 법의 진상(眞像)을 직시하자면 공(空)에 대한 집착도 존재의 실재성에 대한 집착도 두루 다 버려야 한다는 이야기는 파사현정의 주된 내용에 포함된다.
사회적 의미의 파사현정이라면, 무엇보다 사회의 각종 통념에 대한 반성적 고찰을 의미한다. 이 고찰이 만약 2017년에 역동적으로 전개될 정치, 사회적 현실 변화에 제대로 적용된다면, 우리가 어쩌면 불법(佛法)의 현실적 목적, 즉 뭇 중생들의 이고득락(離苦得樂)에 한 발짝이라도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2. 출세와 파사현정
우리 머리 속에 가장 강하게 박혀 있는 관념은 아무래도 세계는 출세를 위한 전투의 전장 정도일 것이다. 불가(佛家)에서 원래 입산해서 세상을 버린다는 뜻으로 써온 출세란 말로 명치(明治) 시대의 일본에서 영어 success의 번역어로 만들어, 그 말은 현대 한국어에서 중심적이다 싶은 개념어의 위치를 차지해 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출세의 본래적인 불교적 의미는 지금의 의미와 천양지차의 차이를 보여도, 실은 전통시대의 불교도 처음부터 세속에서 출세한 사람들과의 거리두기에 많이 실패하기도 했다. 온건한 성향의 종교개혁가였던 석가모니 자신부터 시작해서, 재산가나 국왕 등에 대해서 숙생(宿生)의 공덕으로 이 위치에 올랐다고 판단해 그들에게 법(法)보시를 주는 한편 그들로부터의 재(財)보시를 받곤 했고,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는 등 온갖 패악을 저지른 아사세왕(阿闍世王)과 같은 악덕 정복군주와의 관계마저도 마다하지 않았다.
(물론 불경에서는 이를 아사세왕의 참회로 그리지만, 역사적으로 봤을 때에 아사세왕을 포함한 당대의 모든 마갈타(摩揭陀) 왕국의 군주들이 보편적 종교로서의 석가모니의 가르침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종족 구성이 다양한 마갈타국의 내부결속에 이와 같은 보편적 종교가 도움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석가모니의 태도를 대체로 이어 보다 친(親)재산가 쪽으로 발전시킨 그 후의 전통불교에서는 세속적인 성공을 긍정한 바탕 위에서 재산이 많은 승가의 단월(檀越)에게 보시와 불교 윤리의 근본강령의 형식적인 긍정 정도 기대해온 것이었다.
문제는, 석가모니가 발견한 연기법과 공(空)의 원리를 믿고, 이 원리로 세상을 해방적으로 해석해보려는 우리는, 과연 출세에 대한 이와 같은 태도를 그대로 따를 수 있는가 라는 부분이다. 석가모니 시대만 해도 출세는 살인을 업(業)으로 삼는 국왕이나 장수 되는 것을 포함하는 개념이었는데, 우리에게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우리는 대중들과 그다지 관계없는 현학적인 공부로 미국에서 학위를 받고 국내에 와서 영어논문 생산능력과 인맥 내지 뇌물 등으로 대학에서 정규직 교수의 벼슬을 얻어 한 달에 150만원을 받을까 말까 하는 시간강사들을 간접적으로 착취하는 덕에 8천 이상의 연봉을 받는 출세의 길을 진정으로 선한 것으로 봐야 하는 것인가?
이 길을 걸으면서 선진국의 학풍을 무조건 베끼고 본토 논문의 문장까지 그대로 따르는 모방능력과 각종 학계 권력자, 권위자와의 관계관리를 잘하는 아부능력 등을 다 키울 수 있어도 과연 집착으로부터의 자유나 요익중생(饒益衆生)의 능력을 키울 수 있겠는가?
우리 아이가 공부 잘해서 서울대에 가서 이런 길로 가라고 대입 기도하는 것은, 과연 불교의 모든 본원적인 진리들에 대한 완전한 부정에 해당되지 않겠는가? 전임교수를 정점으로 하는 출세의 길도 그렇지만, 대한민국을 실질적으로 소유하는 대기업에 몸을 팔아 사원(社員)이 되는 것도, 얼마든지 기본적 인간성까지 파멸시키는 길일 수가 있다는 것이다.
전과범이 그 세계에서 신화를 만들 정도로 출세한 것은 과연 우연인가? 성공한 사원의 인간상은, 불제자의 이상적 인간상의 정반대에 가깝다. 아부능력과 고참들을 잘 따르는 모방능력은 물론, 관리대상자 (노동자 등)들에게 무자비하게 속도전을 시켜 그들의 피땀, 그리고 산재를 대가로 해서 성과를 올릴 줄 아는 잔혹성과 남을 자신의 출세를 위해 잘 이용하는 전략적 사고 등까지 요구되는데 말이다.
대기업 사원들에게 고전들 중에서 <손자병법>은 가장 잘 읽힌다는 건 우연인 줄 아시는가? 그러나 그렇다고 예컨대 인술(仁術)을 비싼 돈에 팔아야 하고, 제약회사 등과의 각종의 관계를 부득불 가지게 되는 의사는 우리가 생각하는 보살상을 따르기가 쉽겠는가?
사회의 어느 직종을 봐도, 철저하게 불평등하고 착취적인 사회인 대한민국에서 서민 이상으로 더 높은 위계에 도전한다는 것은 결국 불법(佛法)의 원리와 정반대되는 인간적 파멸의 길에 들어서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석가모니는 아무리 당대의 출세자들과 법보시-재보시 교환 관계를 가졌다 해도, 오늘날 대한민국에서의 출세는 석가모니의 근본적 가치인 자비를 저버리는 길이 되기가 가장 쉽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과연 파사현정은 무엇을 의미해야 하겠는가? 교수도 사원도 의사도 돈 계산과 계량 가능한 성과, 그리고 아부에 능해야 하는 이유는, 이 사회는 시장적 교환과 자본의 이윤추구를 기반으로 하는 위계질서적 피라미드이기 때문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사회적 파사현정의 길이란, 이런 사회가 출세 등의 이름으로 그 속에서 어떤 상승 이동을 도모하려는 인간을 철저하게 파멸시킨다는 점을 충분히 인식하고, 나아가서는 덜 시장적이고 더 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길일 것이다.
파사현정과 함께 중생의 이고득락도 요익중생의 선업(善業)도, 바로 이와 같은 길에서 찾아질 것이다. 우리가 한국 사회를 덜 시장적으로 덜 위계적으로 만들 수 있다면 이는 사회적 의미의 정진 (精進)일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 없다면, 전과범이 비워줄 자리를 누가 차지해도 아무 차이도 없을 것이다.
힘이 없는, 출세의 피라미드 가까이도 못 갈 사람들이 대추리나 용산에서처럼 맞아터지고 짓밟히고 억울하게 죽을 뿐일 것이다. 이와 같은 일이 다반사가 된 이 사회는, 불경에서 이야기하는 무간지옥(無間地獄)이 아니면 또 무엇인가?
3. 파사현정의 정도(正道)
파사현정은 원래 불교에서 나온 말로서 옳지 못한 견해를 타파하고 정도만을 드러낸다는 뜻이다. 갈라진 여러 종파에서 주장하는 잘못된 견해를 깨뜨려서 참된 진리의 길로 나아가야 함을 일컫는다. 다른 종교, 예컨대 기독교에서도 성경을 다르게 해석하는 교파를 이단(異端)이라 하여 배척하고 오직 한 길만을 주장하는 것도 이와 같다.
일반 사회에서도 옳지 못한 일이나 사악한 사람이 있으면 사회 질서를 교란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게 됨으로 이를 제거하여 밝고 곧은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욕구와 노력이 있기 마련이다.
사악함이 득세하고 정도가 무너지는 것은 바로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의롭지 못한 불의가 싹트는 소지를 없앰으로써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고자 함이 인류 모두의 공통된 염원이라고 할 수 있다.
오랜 인류의 역사에 있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악함이 풍미하면 그 사회는 타락하고 급기야는 나라가 망하는 지경에 이르고, 반대로 정도가 바로 서면 그 사회는 건전하고 국가는 융성하는 길로 나가게 됨은 만고의 불변한 진리가 되었던 것이다.
평범한 한 사람이 사특(邪慝)하면 그 자신과 가족 및 가까운 몇 사람에게 피해가 가지만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사악하면 그가 소속한 조직과 사회 및 국가에게까지 그 피해가 미치게 됨으로 참으로 위험하다고 할 수 있다.
정도와 사악함, 곧 바름과 바르지 못함이 대립할 때에는 정도가 승리하는 것이 인간의 정상적 소망이지만 현실 세계는 반드시 그렇게 되지 않으며 여기에 인간 사회의 비극이 있고 이해 못할 불합리가 있는 것이다.
가장 저질스럽고 혐오할 일은 정도를 빙자하고 정의를 표방하면서 뒤로는 사악함을 자행하는 처신이다. 가면을 쓴 사람, 두 개의 얼굴을 가진 사람, 속과 겉이 다른 사람, 이중인격자, 이런 사람들이 여기에 해당하며, 결코 같은 시대에 같은 장소에서 함께 살아가기 어려운 인간들이다.
가능하면 다른 먼 곳으로 떠나가거나, 더 좋은 것은 아예 지구를 떠났으면 한다. 공직자는 사악함을 억제하고 올바름을 드러낼 책임과 의무를 지고 있다. 행정 내부의 기강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의 풍토에서도 그러해야 한다.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는 말이 있는데, 모든 일은 반드시 바른 곳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므로 공직자는 모름지기 그렇게 되는 여건을 만들어 가야 한다. 사악함이 정도를 이길 수 없다는 원리가 현실적으로 증명되는 사회를 조성해야 하며, 이는 자기 자신과 자기 조직의 실천으로부터 시작해야 할 과제이다.
정의가 살아있고 정의가 우선하며 정의가 지배하는 사회와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국민 모두가 미덕을 숭상하고 공동의 선(善)을 추구하는 풍토와 전통을 확립해야 하며, 이는 지도자급과 공직자의 솔선적이고 적극적인 노력에 힘입는 바가 지대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궁극적으로는 깨뜨리고 없애야 할 사(邪)는 아예 존재하지 않고 오로지 정(正)만이 그 사회를 확실히 지배하는 이상적 낙원을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선현께서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딛고 일어나라고 하셨으니 탐욕과 미망을 떨치지 않고 보리(菩提)를 구할 수 있겠으며, 자비를 행하지 않고 어찌 정토(淨土)를 구할 수 있겠는가. 또한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실현해야 할 주권자로서의 책임이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살을 에는 한 겨울 추위를 견디며 촛불을 든 1,700만 시민의 촛불은 마침내 온 국토를 뒤덮는 들불이 되어 대통령 파면으로 민심이 곧 천심임을 확인하였다. 이제 우리들은 지난날의 적폐청산을 통해 국가 운영의 기틀을 새롭고 든든하게 개혁해 전날의 우를 되풀이 하지 않도록 다시 한 번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적폐청산은 새 정부의 힘으로만 이뤄질 수 없다. 과거 적폐세력은 우리 사회 곳곳에 기득권을 갖고 있으며 개혁에 발목을 잡고 저항하며 권토중래를 도모할 것이 분명하다. 우리 시민이 각자의 영역에서 적폐세력과 부단히 싸우지 않고서 적폐청산과 개혁은 성공할 수 없다.
4. 알곡과 껍질의 길
‘…모두 껍질인 거라 살다보면 껍질에 둘러싸여 알맹이 하나 찾는데 껍질이 태산 같구나’유종인의 ‘껍질의 길’중에서. 알맹이를 찾는 일이란 그토록 힘겨운 도정.
◇ 파사현정(破邪顯正)의 키질
‘껍데기는 가라’고 바람에 날린다. 하염없이 반복되는, 휘휘 까부르는 몸짓. 제가 지닌 무게에 따라 운명이 갈린다. 가벼운 쭉정이는 날아가거나 키 앞에 남고 무거운 알곡은 키 뒤에 남는다.
이것이 키질이다. 키는 쭉정이를 날리고 알곡을 가리는 일을 한다. 날리려면 바람의 존재가 필수. 키 안의 곡식을 공중으로 띄운 다음 날렵한 손짓으로 바람을 일으키는 게 키질의 요령이다. 공중에 잠시 떴다가 떨어지는 곡식은 키의 경사면을 타고 흘러내리면서 제대로 여물지 않은 쭉정이나 가벼운 티끌은 바깥쪽, 무거운 알곡은 안쪽으로 모인다. 서투른 키질로는 아무리 까불어도 쭉정이와 알맹이와 뒤섞이기 일쑤다. 나불나불 잘 까불어야 쭉정이나 검불 등이 잘 나간다.
키를 한자로 쓰면 箕(키 기)이다. 키를 형상화한 其(그 기)에 두 팔 같은 八자를 붙여, 키를 두 팔로 잡고 까부는 행위를 표현했다. 其 위에 얹은 竹(대 죽)은 키를 만드는 재료를 의미한다. 키 위에 올려 까부를 때 날아가버리는 가벼운 것에는 또 뭐가 있을까. 其가 들어간 欺(속일 기)자를 본다. 거짓이나 허위를 뜻하는, 속일 欺(기)자가 其+欠의 구성이라는 게 흥미롭다. 欠(흠)자는 ‘하품하다’ ‘모자라다’ ‘부족하다’의 뜻을 지녔다. 속이는 말은 그토록 가벼운 것이다.
이 세상에 떠다니는 온갖 말들을 키에 까불면 무엇이 남고 무엇이 날아갈까.
“시방당장 악인이 잘 되고 선인들이 못 산 것 같애도 악인으로 잘 살문 멋헌다요 내 자신이 떳떳해야제. 높은 자리에 앙근 사람들이 자기 욕심만 챙기는 것 보씨요. 부럽습디여, 추접스럽제. 넘들은 다 안디 자기들만 몰라.”
이를테면 나주 남평장 어물전 이씨 할매의 말씀은 키에 남을 알곡이리라. 겉은 그럴 듯하고 휘황하지만 속은 비어 있는 공약(空約) 따위는 저 멀리 팽개쳐지리라.
◇ 만약 체의 구멍이 들쭉날쭉하다면
키와 비슷한 일을 하는 살림살이로는 챙이(체)가 있다. 체에 곡물을 넣고 툭툭 치면 쓸모없는 것들은 밑으로 빠져나가고 알곡만 위에 남는다. 체는 곡물 등을 크기에 따라 선별하기도 하고 거친 것과 고운 것을 가르는 역할도 한다. 만약 체의 구멍이 들쭉날쭉하면 그 체는 아무 쓸모없는 물건이 되고 만다. 법의 잣대가 들쭉날쭉하면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을 낳는 것처럼.
민간에서는 정월대보름 눈이 밝다는 야광귀를 쫓기 위해 체를 걸어두던 풍습도 있었다. 야광귀라는 귀신이 밤에 내려와 어떤 집에 들어가 그 집 사람의 신발이 맞으면 그대로 신고 가는 경우가 있는데, 이럴 때 야광귀가 신고 간 신발의 주인은 1년 동안 운수가 나쁘다고 전해졌다. 하여 대문 앞에 체를 걸어 두었다. 귀신이 밤새 체의 구멍을 세어 보다가 신도 신어보지 못하고 그냥 되돌아가도록. 이 얼마나 점잖게 귀신을 물리치는 방법인가.
오만 것 못쓸 것 내보내는 체와 남길 것과 버릴 것 명쾌하게 가르는 키. 세상사도 키 위에 올려놓고 저 어매들처럼 곡진하게 까불기를 그치지 않는다면 파사현정(破邪顯正), 그릇된 것들 깨뜨려 없애고 바른 것 드러나는 세상이 올 것이니.
◇ 명나라 구양덕(歐陽德)의 검신(檢身)
自謂寬裕溫柔(자위관유온유)
焉知非優游怠忽(언지비우유태홀).
스스로 관대하고 온유하다 말해도, 느긋하고 나태한 것이 아닌 줄 어찌 알겠는가?
自謂發剛強毅(자위발강강의)
焉知非躁妄激作(언지비조망격작).
제 입으로 굳세고 과감하다 하지만, 조급하고 망령되며 과격한 것이 아닌 줄 어찌 알겠는가?
忿戾近齊莊(분려근제장)
瑣細近密察(쇄세근밀찰).
성내며 사납게 구는 것은 무게 있는 것에 가깝고, 잗다란 것은 꼼꼼히 살피는 것과 비슷해 보인다.
矯似正 流似和(교사정 유사화)
毫釐不辨 離眞愈遠(호리불변 이진유원).
속임수는 바른 것과 헷갈리고, 한통속이 되는 것은 화합하는 것처럼 보인다.
사소한 차이를 분별하지 않으면 참됨에서 점점 멀어진다.
관대한 것과 물러터진 것은 다르다. 굳셈과 과격함은 자주 헷갈린다. 성질부리는 것과 원칙 지키는 것, 잗다란 것과 꼼꼼한 것을 혼동하면 아랫사람이 피곤하다. 사기꾼처럼 진실해 보이는 사람이 없다. 그래야 상대가 속아 넘어간다. 자리를 못 가리는 것을 남과 잘 어울리는 것으로 착각해도 안 된다. 사람은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른 것을 잘 분간해야 한다. 사람을 가리는 것은 알곡을 가리는 것과는 달라 파사현정은 사람을 가리되 성품과 행적으로 가려낼 수밖에 없다.
◇ 수나라 왕통(王通)의 지학(止學)
인간의 승패와 영욕에서 평범과 비범의 엇갈림이 지(止)란 한 글자에 달려 있다. 무엇을 멈추고, 어디서 그칠까가 늘 문제다. 멈춰야 할 때 내닫고, 그쳐야 할 때 뻗대면 삶은 그 순간 나락으로 떨어진다.
才高非智(재고비지)
智者弗顯也(지자불현야).
재주가 높은 것은 지혜가 아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드러나지 않는다.
位尊實危(위존실위)
智者不就也(지자불취야).
지위가 높으면 실로 위험하다.
지혜로운 사람은 그리로 나아가지 않는다.
大智知止(대지지지)
小智惟謀.(소지유모).
큰 지혜는 멈춤을 알지만,
작은 지혜는 꾀하기만 한다.
큰 지혜는 난관에 처했을 때 멈출 줄 알아 파멸로 내닫는 법이 없다. 스스로 똑똑하다 믿는 소지(小智)는 문제 앞에서 끊임없이 잔머리를 굴리고 일을 꾸미다 제풀에 엎어진다. 멈춤을 모르고 기세를 돋워 벼랑 끝을 향해 돌진한다.
智不及而謀大者毁(지불급이모대자훼)
지혜가 미치지 못하면서 큰일을 도모하는 자는 무너진다.
智無歇而謀遠者逆(지무헐이모원자역)
지혜를 멈춤 없이 아득한 것만 꾀하는 자는 엎어진다.
勢無常也 仁者勿恃(세무상야 인자물시)
권세는 무상한지라 어진 이는 믿지 않는다.
얼마 못 갈 권세를 믿고 멋대로 굴면 파멸이 코앞에 있다. 충북지역 물난리 속, 외유성 유럽연수를 비난한 국민을 설치류 레밍에 빗댄 김학철 도의원 행태가 바로 그렇다.
6. 정치가 정청래와 철학자 탁석산 적폐청산 방법 설전
◇ 일부터 제대로 해야 적폐청산 기회도 VS 일과 적폐청산 동시 진행돼야
색깔 있는 통찰로 한국 사회의 맹점을 진단해 온 철학자 탁석산이, 문재인 정부에게 주어진 주요 과제인 적폐청산의 방법론을 두고 더불어민주당 전 의원 정청래와 대립각을 세웠다.
탁석산은 지난 20일 밤 방송된 MBN 판도라에 특별 출연해 (불교 용어에) 파사현정이라는 말이 있다. 잘못된 것을 없애면(파사), 올바른 것이 드러난다(현정)는 뜻이라고 운을 뗐다.
우리는 파사현정에서 순서, 패턴을 잘 봐야 한다. 보통, 사람들은 뭔가 올바른 것, 그러니까 개혁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면 옛날에 잘못된 것을 다 없애려한다. 적폐청산을 다 하면 올바른 것이 드러날 것이라고 여기고 열심히 한다. 이런 현상은 이번 정권뿐 아니라 모든 정권이 해 왔다. 예전에 (5·16군사)쿠데타가 일어났을 때에는 정치깡패들 (검거), 전두환 대통령 시절에는 삼청교육대, (노태우 전 대통령의) 범죄와의 전쟁, 이런 식으로 해서 잘못된 것을 없애면 나라가 바로 선다고 주장하는데, 저는 그것이 잘못됐다고 본다. 순서가 바뀐 것이다.
그는 적폐청산을 하다가 (정부가) 기운을 다 뺀다. 그러면 어떤 부작용이 생기냐 하면, 권력의 속성상 (개혁은) 1년 안에 해치우지 않으면 못한다고들 말한다며 그러다 보면 무리한 수를 두게 된다. 에너지를 소진하면서 1년이 지나면 정권의 힘이 떨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제가 권하는 방법은 (파사보다) 현정을, 그러니까 처음부터 일을 제대로 하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집에 바퀴벌레가 있다. 바퀴벌레를 다 때려잡으면 집이 깨끗해지겠다고 생각하는데, 때려잡는다고 바퀴벌레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처음에는 없어 보이지만, 또 스멀스멀 기어나온다. 근본 대책은 바퀴벌레가 서식할 수 없도록 환경을 깨끗하게 해야 한다. 햇볕을 들게 하고 구석진 곳을 없애고 약을 뿌리면, 바퀴벌레들이 이 동네는 우리가 살 곳이 아니라며 간다.
탁석산은 현정, 그러니까 일을 제대로 하면 그 다음에 적폐청산할 기회가 얼마든지 있다며 설명을 이어갔다.
적폐는 자연적으로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예를 들어 국정원 문제가 생겼을 때 국내 정치에 개입하지 않겠다, 사찰 안하겠다고 얘기해 봐야 소용없다. 아무 말도 안하는데 2년 정도 지나고 보니까 이 정부는 사찰 안한다, 정말 국내 정치에 개입 안한다고 소문이 다 난다. 이 정부는 제대로 일을 하는구나 라고 여기게 되면 사람들이 이 정부 지지한다는 분위기가 만들어져 집권 4년차에도 지지율이 상당히 높을 것이다. 그럴 때 바퀴벌레를 잡아야 한다. 여태까지 잘해 왔다는 정당성이 있기 때문에 과감하게 (적폐청산을) 할 수 있다.
이어 그런데 지금은 적폐청산한다고 애를 쓰니까 저쪽에서 반격을 한다. 너희는 적폐 아니냐, 너희도 해당된다는 식이라며 그러면 (적폐 대상에게) 명분을 주는 것이다. 나중에 가면 (국민들 생각은) 여나 야나 다른 게 없다고 되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 바퀴벌레 돌아다니면 일단 에프킬라는 뿌려야 할 것 아닌가
이에 정청래는 저렇게 주장할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하나의 확정적인 시각일 수 있다고 선을 그으며, 파사현정 또는 현정파사는 분리 될 수 없다. 동시에 진행되는 것이 맞다고 지적했다.
적폐를 청산해야 지지율이 올라가고 그 지지율로 생긴 힘을 바탕으로 일도 할 수 있는 것이다. 바퀴벌레가 살지 못하는 환경을 조성하자고 하면, 문재인 대통령 5년 임기 동안 못한다. 그 환경을 어떻게 다 만드나. 대한민국 금수강산을 다 만들어야 되는데. 그러면 20, 30년 걸린다.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얘기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할 수 있는 적폐청산을 일단 시작해야 하는데, 바퀴벌레가 돌아다니면 일단 에프킬라는 뿌려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그 방에는 못 들어오게 해야 공부를 하든, 국정을 논하든 할 수 있지 않나.
그는 지난 촛불시민혁명 과정에서 가장 많이 나온 얘기가 박근혜 퇴진, 적폐청산이었다. 이것은 국민적 요구이고 시대의 흐름이라며 이러한 상황에서 일부터 하고 4년차에 적폐청산을 하겠다? 그러면 국민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탁석산은 이번 정부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머릿속에 떠올려 보면 적폐청산 밖에는 없다. 적폐청산을 넘어서서 이 정부가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 떠오르는 것이 없다고 맞받아쳤다.
그러니까 항상 일을 먼저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을 먼저 제대로 하고, 그 다음에 그 지지율을 등에 업고 마지막 4, 5년차에 적폐를 청산하면, 대통령에게 힘이 생기기 때문에 후계자를 지명할 힘도 생긴다. 그래야만 정권의 연속성도 생긴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게 돼 있냐를 보면 4년차 가면 이미 다 대통령의 힘이 없잖나. 레임덕이 시작되잖나. 그 다음에는 다시 권력의 공백 상태로 중구난방인 것이다. 그 다음에 대세론 대통령이 탄생하면 또 1년 동안 적폐청산에 매진한다. 그러다가 힘 다 빠지는 일이 반복된다.
◇ 대통령께서 반대할 줄 아는 참모 두셔야 한다
반면 정청래는 문재인 대통령이 적폐청산만 하는 것처럼 보이신다고 했는데, 저는 왜 (문 대통령의) 일하는 모습이 안 보이시는지 모르겠다며 말을 이었다.
초창기 내 밥값은 내가 내겠다고 했다. 이것은 적폐청산이 아니라, 대통령의 일하는 모습을 통해 공무원들에게 모범을 보이는 것이다. 초등학교 가서 아이가 사인 받겠다고 하니 쪼그려 앉아서 기다리고 있고, (국민 정책제안공간인) 광화문 1번가를 설치해 정책을 수십 만 건을 받지 않았나. 법률적인 논쟁이나 여야 대립없이 대통령 업무지시로 할 수 있는 국정교과서 폐지 등도 일하는 모습이다.
그는 적폐청산 부분은 오히려 필요한 기관들에서 알아서 자기들 프로그램대로 하는 것이라며 대통령은 집무실에 일자리 창출 현황판 놓고 어떻게 하면 국민들이 좋은 일자리를 갖게 할까, 어떻게 하면 소득 주도 성장을 일으킬까 (고민하는) 이런 것이 다 일이지 않나. 그게 적폐청산은 아니잖나 라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탁석산은 일리 있는 말씀이다. 대통령의 겸손한 얼굴과 낮은 자세 좋다. 저도 박수를 보낸다면서도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 대통령의 일이라는 것은 크게 두 가지로, 경제와 안보다. 대통령이 다룰 문제는 굵직한 것들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다운 일, 대통령이 꼭 해야 할 일을 해줘야 한다는 것인데, 그러한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정청래는 그것은 극히 주관적인 생각이다. 5000만 국민의 생각이 다 다르다고 지적하며 토론을 이어갔다.
그렇기 때문에 헌법이 필요한 것이다. 헌법이 정해놓은 대로 하자는 것이다. (헌법 제69조 대통령 취임 선서문에)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 창달에 노력하여 라는 것이 모두 대통령의 업무다. 국정교과서를 없애는 것, 블랙리스트를 없애는 것은 모두 헌법의 가치를 지키는 것이다. 이것은 추론이 아니라, 확정적인 헌법적 가치를 얘기하는 것이다.
그는 대통령이 지금 (취임) 두 달 밖에 안 됐다. 상식선에서 막 새 정부가 들어섰는데 일하게는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 라며 그리고 6개월이 지났든, 1년이 지났든 그때 가서 비판해도 늦지 않다는 것이다. 지금 출범한지 두 달 밖에 안 됐다. 그러면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는 줘야 할 것 아닌가 라고 비판했다.
탁석산은 끝으로 한 가지 충언을 드리자면 대통령께서 반대할 줄 아는 참모를 두셔야 한다. 그렇게 되면 조금 더 원활하게 돌아가지 않을까 라고 전했다. 정청래는 마지막 짦은 정리 멘트를 통해 탁석산의 전반적인 의견에 대해 현실에 초연한 철학자의 생각은 그럴 수 있겠다 라고 맞대응했다.
맺는 말
대한민국의 헌정사를 뒤집어보면 역대 대통령들이 한결같이 불운한 일들을 겪었다. 이승만과 이기붕 자결, 박정희와 김재규 저격, 전두환과 노태우 구속, 김영삼과 김현철 비리, 김대중과 세 아들 비리, 노무현 자살, 이명박과 이상덕 구속, 박근혜와 최순실 국정개입 등 권력비리가 반복되고 있다.
이승만과 노태우 시기까지를 힘이 지배하던 사회였고, 민주화를 이룩한 이후 김영삼 정권부터 현재까지는 법치사회로 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권력은 힘이 지배하는 사회를 동경하듯 되돌아 가려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것 같다. 권력 뒤안에는 부정부패가 싹트기 십상이다.
이런 부정과 부패를 척결하려고 조선시대 때는 분경금지법이 생겨났다. 이는 조선 태종 때 실시되었다. 집안 일로 만나는 4촌 이내 친족 외 권세 높은 친척을 개인이 만나는 것을 금지하는 법이었다. 이즈음 말하는 청탁금지법 같은 것이다.
분경금지법은 조선 제2대 정종 임금(1933년)때 신하들에게 모든 관리는 3·4촌 내 가까운 친척을 제외한 자신보다 높은 벼슬에 있는 친척을 사사로이 만나지 말라고 했다. 이 법은 정종의 뒤를 이은 태종이 실시했다. 분경(奔競)이란 말은 분추경리(奔趨競利), 분주히 쫓아다니며 이익을 추구한다는 뜻이다.
다만 집안 일로 상의할 일이 있어 4촌 이내 친족은 만날 수 있게 했다. 또한 군사기밀을 논의하는 장수들은 예외로 했다. 성종 때에 와서는 이 법이 8촌까지 만날 수 있도록 완화됐다. 그러나 이 법을 어겼을 때에는 곤장을 쳐서 멀리 낙도로 유배를 보낼 만큼 엄격하게 형벌을 내렸다.
또한 관리들의 부정부패를 막기 위해서 상피제(相避制)를 실시했다. 상피제는 친척 사이인 관리들이 같은 관서에서 함께 있거나 친밀한 관계에 있는 관서에 근무하지 못하게 하는 제도였다. 이는 고려 선종 때 처음 실시되었으나 조선시대에 와서 전격적으로 시행됐다.
조선시대 나라를 다스리는 법을 정리한 경국대전에는 원악향리(元惡鄕吏)란 법도 있었다. 조선 7대 세조 임금은 경국대전 편찬을 시작해 예종을 거쳐 성종이 1485년에 완료하고 이 법전을 따르도록 했다. 원악향리란 고을 수령을 부추겨 마음대로 권세를 부린 자, 몰래 뇌물을 받고 부역을 면해준 자 등을 규정하는 말이었다. 사악한 시골 향리를 처벌하는 항복이 경국대전에 명시돼 있었다.
또한 장오죄(贓汚罪)란 죄목도 있었다.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경제적인 이익을 취하는 자에게 장오죄를 적용했다. 이 죄를 범한 관리의 명단을 별도로 작성해 본인과 아들, 손자에 이르기까지 벼슬을 얻지 못하게 했다.
조선 중기 이후, 후기에 와서는 외척, 세도정치가 만연하여 매관매직이 성행했으며 백성들에게는 가혹하게 세금을 거두어서 민란이 잦았다. 급기야 조선조 고종에 이르러 참다 못한 군인들이 임오군란을 일으켜서 국정이 매우 혼란스러웠다. 예나 지금이나 백성의 원성이 하늘에 닿으면 왕은 왕권을 상실할 위기에 처한다.
철학자 탁석산 박사가 한 방송에서 이 사자성어를 현 정부의 적폐청산 드라이브에 대입해 논쟁을 일으켰다. 그는 적폐청산은 이번 정권뿐 아니라 모든 정권이 해왔다고 전제하고, 5.16 이후의 정치깡패 검거, 삼청교육대, 범죄와의 전쟁 사례를 들며 허점을 비판했다.
탁석산의 주장은 파사(破邪)에 치중하기보다는 현정(顯正)에 먼저 주력해야 한다는 관점으로 요약된다. 그는 자기 집에 바퀴벌레가 있다고 그것만 다 때려잡으면 집이 깨끗해지리라는 생각은 오류라고 설명했다. 집권초기 1년 동안 적폐청산에 진을 다 빼다가는 결국 현정에 실패하게 되고 만다는 논리다. 탁 박사의 지적은 문재인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경계심을 잘 대변하고 있다.
적폐청산은 해야 한다. 그래야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현재 권력이 죽은 권력을 야비하게 짓밟는 것처럼 비쳐지는 것은 안 된다. 상대편은 깡그리 부수고, 내 편을 내세우는 것을 파사현정(破邪顯正)이라고 욱대길 것인가. 그 저열한 패거리의식부터 청산하는 것이 순서다. 파사(破邪)보다도 현정(顯正)이 먼저라는 탁석산 박사의 충언은 백번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