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은 ‘사람들 눈 속에 악마를 보는 일’을 하는 사람이랍니다. 사람마다 시각이 다르지만 특히 경찰이 사람을 바라보는 눈이 일반사람들보다 무섭게 느껴지는 이유일 것입니다. 왜 하필 악마를 볼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하지만 하는 일의 특성상 그럴 수밖에 없으리라 짐작은 합니다. 소위 직업의식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똑같은 사물을 보아도 그 하는 일에 따라 관점이 다르다는 말입니다. 정치인이 보는 사람은 좀 과격하게 말해서 ‘표’로 보일지도 모릅니다. 경제인은 돈으로 보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의사는 환자로, 상점을 운영하는 주인은 고객으로 보일지 모르겠습니다. 예술가는 어떨까요? 작품의 대상으로? 물론 예술가도 각각 다르겠지요. 글 쓰는 사람과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다르리라 생각합니다.
요즘이야 일반사람들 중에 노인세대에서나 경찰에 대한 경계심(?)을 가지고 있을까, 젊은이들의 시각은 좀 다를 것이라 봅니다. 20세기를 한창 나이로 지나온 세대는 경찰과 대치한 적이 많습니다. 그 때는 범죄자를 잡는 일보다 어쩌면 시위 참가자를 잡는데 시간을 많이 소요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그런 적이 없어도 괜스레 경찰만 보면 경계하곤 했지요. 불심검문이란 것도 있었습니다. 죄 진 것 없어도 길거리에서 걸리면 그냥 짜증나고 겁도 났습니다. 뭐라 빌미를 잡힐지 알 수 없는 일이니 말입니다. 범죄 예방이나 범죄사건 해결보다는 다른 색깔의 업무에 치중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하기야 요즘도 시위대와 대치하느라 고생하는 경찰도 있기는 합니다.
아무튼 경찰이라고 하면 제일 먼저 범죄사건과 관계를 가진다고 생각합니다. 범죄를 예방하고 범죄자를 수사하여 잡아야 하는 업무를 수행해야 합니다. 사건의 현장에 가장 먼저 달려가서 조사하고 수사해야 합니다. 이제는 ᅟᅳᆨ것도 여러 가지로 분업화되어 있는 줄 압니다. 과학수사대라는 기관까지 생겼으니 보다 정밀하게 그리고 확실하게 수사합니다. 따라서 윽박질러서 받아내는 진술만으로 사건을 처리하지 않습니다. 아니, 그렇게는 못합니다. 어떻게 하든 확실한 증거를 찾아내야 합니다. 변명의 여지가 없도록 범죄임을 드러내서 그에 따른 형벌을 가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또 있습니다. 피해자 입장에서 그 형벌이 너무 미약하다는 것이지요.
범죄자(피의자)도 인권이 보장됩니다. 그래서 정당하게 재판을 받아야 하고 그곳에서 죄의 여부와 경중을 따져야 하고 그에 상응하는 형벌을 결정합니다. 피해자 쪽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아픔을 평생 견디며 살아야 하는데 피의자는 몇 년 옥살이하고 나오면 여전히 세상을 즐기며 살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자기 재력이나 권력을 이용하여 어렵지 않게 풀려나기도 합니다. 이게 법이 실현하는 정의인가? 하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없는 사람만 더러운 세상을 탓하며 서글프게 살아가는 현실을 마주합니다. 아무튼 범죄사건의 해결의 시발은 경찰일 것입니다. 현장으로 달려가서 범죄자와 대치해야 하고 붙잡아야 합니다. 자신의 목숨을 걸 수도 있습니다.
또 하나 문제가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지구 어느 한 쪽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닌 모양입니다. 경찰과 박봉이지요. 글쎄 세기가 바뀌고 나서 얼마나 달라졌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오래도록 문제가 되어 왔습니다. 여전히 경찰로 인하여 문제를 많이 일으키고 있는 미국도 마찬가지입니다. 목숨을 걸면서 밤낮을 구분하지 못하고 일하는 그 업무량에 비한다면 보수가 너무 적다는 것입니다. 업무 성격상 가족과 함께 지내는 시간을 만들기도 쉽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 모든 어려움을 감내하며 일하는데 대가가 고작 가족을 먹여 살리기에도 급급하다 하면 속된 말로 일할 맛이 나겠습니까? 그러니 일을 하면서 딴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관할 내 경찰관들의 이혼율이 80%라니 사실인지 과장된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 가정들을 그 위험에서 지켜주는 것도 경찰서장의 임무입니다. 부하직원들이 가정사로 휘둘린다면 업무가 제대로 수행되겠습니까? 틀리지 않는 말입니다. 그렇다고 경찰이 나서서 범죄행각을 한다는 것은 더욱 말이 안 되지요. 많건 적건 일단 국가로부터 녹을 받습니다. 왜 주겠습니까? 그 일을 하라고 주는 것 아닙니까? 그것이 국민이 세금을 내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권력을 이용해서 개인 또는 몇 사람의 이익을 위하여 딴 짓을 한다면 어느 누가 용납하겠습니까? 현실의 어려움을 이해한다 해도 자신의 임무를 망각한 범죄는 더 큰 비난을 살 것입니다.
‘데이비스’는 범죄사건을 다루다가 무참하게 살해된 아버지를 뒤이어 경찰이 되었습니다. 유능하지만 오명을 지니고 있습니다. 범인을 잡는 것보다 현장 살해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지요. 내사까지 받습니다. 인권을 무시한 경찰이란 말입니다. 그런 와중에 다시 큰 사건이 발생합니다. 경찰관이 무려 8명이나 실해된 것입니다. 서장은 즉각 데이비스를 출동시킵니다. 그런데 이 ‘살인경관’을 투입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 따집니다. 그런 물의가 사회적으로 발생하여 시장의 정치적 입장을 곤란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얻은 시간이 다음 날 업무 개시 시간 전까지입니다. 그 하룻밤에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긴박한 이야기입니다. 길지도 않지만 후딱 지나가도록 전개됩니다. 영화 ‘21 브릿지: 테러 셧다운’(21 Bridges)를 보았습니다. 2019년 작입니다. 뉴욕 맨해튼을 오가는 다리 21개를 모두 봉쇄했다는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