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오래 전에 대학에 먼저 들어간 친구가 실연을 당하여 밤새 넋두리하며 우는 것을 지켜본 적이 있습니다. 잘 이해는 가지 않았지만 아프려니 생각하며 곁을 지켜주었습니다. 몸에 상처 입은 것은 겉으로 보이지만 마음의 상처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니 짐작하기가 어렵습니다. 어디가 얼마나 아픈 것인지 경험이 없다면 감이 잘 잡히지 않습니다. 혹 연애소설이라도 읽었다면 비슷하게 짐작이라도 할 것입니다. 그런데 입시생을 지내면서 연애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할 일입니다. 아무튼 그 친구는 그 밤을 울고 보낸 후에도 한참을 아파했습니다. 그 때 연애의 아픔을 간접 경험해보았습니다. 그 후 내 자신이 퇴짜 받은 경험은 있어도 그리 아파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초장에 끝장이 났으니 상처 입을 시간이 부족하였겠지요.
사회생활을 하면서 이러저런 여러 사람들을 만납니다. 무슨 사고를 당하거나 실수를 하여 몸에 외상을 입는 경우가 있습니다. 고통이 심할 수도 있고 또 오래 갈 수도 있습니다. 웬만하면 시간이 지나 일단 아픔은 가라앉습니다. 그렇게 사고 난 것도 추억의 창고로 이동합니다. 그런데 사람으로 인한 마음의 상처는 그렇게 쉽게 아무는 것도 잊히는 것도 아닙니다. 서양 속담에 총에 맞은 상처는 치료하기 쉬우나 말에 맞은 상처는 치유가 어렵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경험하는바 그대로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말보다 더 깊은 상처를 주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영상입니다. 영상이 무서운 것은 많은 사람이 공유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한 번의 실수가 열 번의 업적을 물거품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요즘 흔히 나타나는 성추행 사건에 한 번이라도 연루가 되면 여태 받아온 존경과 사랑을 한꺼번에 쏟아버릴 수 있습니다. 5년 이상을 쌓아온 사랑의 탑조차 무너뜨릴 수 있을 것입니다. 두 사람 사이의 신뢰를 깨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넓은 아량으로 받아들이고 용서하면 그 후 더욱 돈독한 관계로 발전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일단 진심어린 사과와 용서를 구하는 태도가 먼저 있어야 합니다. 그런 마음과 태도가 보여야 가능할 것입니다. 그렇다 할지라도 상대방이 워낙 심하게 상처를 받아 도무지 용서할 마음이 없다면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포기하든지 기다려야 하겠지요.
살다보면 ‘하필 그 때’라는 탄식이 나오는 때가 있습니다. 바로 그 때 누구는 세상을 달리하는 경우도 있고 누구는 행운의 날개를 달 수도 있습니다. 이 때는 사실 우리 사람이 주관하지 못합니다. 운명이라 할 수도 있고 섭리라 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의 생각과 의식의 차이요 신앙의 차이이기도 합니다. 아무튼 그 때를 잘못 만나 인생의 나락으로 빠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흔히 시대를 잘못 타고 나온 사람, 또는 때를 잘 만난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말하자면 하필 그 때 왜 그곳에 가야만 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일은 벌어졌고 사태는 심각하게 돌변합니다. 그리고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만들고 결국 이별의 고통을 짊어져야 합니다. 열심히 뒷수습을 해도 이미 때는 지나갔습니다. 긴 아픔의 시간을 지나야 합니다.
그러고 나서 시간이 한참 흘러갔습니다. 우연히 지나다가 익숙한 길거리 공연을 보게 됩니다. 익숙한 목소리, 그렇지 ‘태인’이다. 어쩌지? 그런데 눈이 마주쳤습니다. ‘도하’의 몸이 그냥 굳어진 듯합니다. 노래가 끝난 태인이 다가옵니다. 그리고 도하를 안아줍니다. 그렇게 화해가 이루어집니다. 사실 당시에는 그 영상 사건으로 인하여 아픈 것보다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입니다. 어쩌면 태인이에게 도하가 가장 필요했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하필 그 때 도하가 약속도 지키지 않고 기다려도 오지 않았습니다. 곁을 지켜주지 않은 그 서운함이 너무나 컸기에 그 무엇으로도 대체하기 어려웠습니다. 감정이 폭발한 대로 끝장을 내버렸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니 후회스럽지요.
사람을 만나 교제한다는 것이 그리 쉽지 않습니다. 사무실에서나 일터에서 동료직원을 만나는 것은 같은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있기에 어쩌면 마음이 편하고 부담이 없습니다. 그러나 친구가 된다든지 연인이 되는 일은 본인의 장래와도 밀접한 관계가 발생하기에 쉽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함께 하는 시간을 가지며 친분을 쌓고 마음을 나누는 과정이 따라야 합니다. 바로 마음을 나누는 과정이 있기에 상처받을 가능성을 품게 되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마음 깊이 들어오게 되면 신뢰가 쌓이고 마음의 안식처가 되어주기도 합니다.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각자의 인생을 다져갑니다. 그것이 기쁨이 되고 보람이 되며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줍니다.
간단히 말하면 도하와 태인이의 연애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그 대부분의 과정이 오늘날의 스마트폰과 노트북으로 이루어지고 나타나고 기록됩니다. 그러니 커다란 스크린이 그것으로 꾸며집니다. 젊은이들에게는 익숙하겠지만 도무지 성에 차지 않습니다. 영화를 본 것인지 핸드폰을 본 것인지 구분이 안 됩니다. 그만큼 개인적으로는 재미도 없습니다. 그냥 이렇게도 표현을 하는구나, 경험한 것으로 영화관을 나왔습니다. 영화 ‘롱디’(Long D)를 보았습니다. 뜻을 찾아보니 ‘장거리 연애’라는군요. 우리 식으로 하면 ‘주말부부’ 정도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