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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나무아미타불 원문보기 글쓴이: 여래향.
경옥근 거사님 극락왕생기 (정혜사 2551년 겨울 제36호)
서현-사집반
염불을 하면 여러 가지 많은 이로움이 있다. 염불을 하면 호법신장이 염불하는 이를 보호하기 때문인데 실로 기이한 현상들이 많이 나타난다. 해서인지 중국에서는 염불을 중심으로 하는 정토종의 활동이 활발하다.
이 글은 대만의 ‘정토도황’이란 사이트(http://www.jt8421.com/)에 실려있는 왕생록 중 하나로써 소설이 아니라 실제로 있었던 일을 기록하여 놓은 것인데 우리 강원 학인스님이 직접 번역하여 기재하였다.
나의 모친이신 경옥근거사님(중국에서는 남녀구분없이 거사님이라 칭함)은 1938년 9월 6일에 태어났으며 2002년 음력 8월 28일, 세수 64세로 왕생하셨다. 모친은 평생 온갖 어려움을 겪으셨으며 여섯 명의 자녀를 두셨다. 모친은 마음씨가 착하고 도량이 넓었으며 동네 사람들과 화목하게 지내면서 이제까지 남의 잘못을 따진 적이 없었다.
모친이 불법을 만나게 된 인연은 비교적 늦은 편인데 내가 출가한 뒤였다(나는 1990년 출가했다). 1997년 나는 속가 집에 부모님을 만나 뵈러 갔다. 모친에게 삼귀의를 전수한 후 염불할 것을 권장했다. 그 뒤로 모친은 틈만 나면 염불하였으며 이미 보리도의 씨앗을 서방극락세계에 뿌려놓았다. 모친은 염불을 진지하게 하였으며, 불보살님을 대할 때 그 마음이 한없이 공경스러웠다.
얼마 뒤 모친은 병을 앓게 되었다. 그 때가 2001년 4월. 내가 싱가포르에서 공부하던 중이었는데 모친이 병을 앓고 있다는 전화로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때는 다만 당뇨병이라고만 말씀하셨다. 나중에 싱가포르에서 중국 도량으로 돌아온 후 곧 속가로 가서 모친을 뵈었다. 그리고 모친을 외진 시골에서 파언현 흥륭진에 위치한 염불당으로 모셔왔다.
염불당이 도시와 가까워 비교적 선진적인 의료설비가 있었기 때문이다. 적당히 정리하고 나서 곧 모친을 모시고 후란현 요양원에 가서 종합검진을 받았다. 검사결과 후두암이었다. 나는 의사에게 아직 치료를 받을 수 있는지 여부를 물었다. 의사는 이미 말기여서 더 이상 손을 쓸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길어봐야 3개월의 수명이 남았다고 했다.
나는 곧 모친을 염불당으로 돌아왔다. 나는 암이라는 말을 하지 않고 다만 기관지에 염증이 생겼다고만 말씀드렸다. 염불당에 돌아온 후 나는 모친과 함께 일심으로 염불하면서 인간세상에서 고통을 받지 말고 서방극락세계로 왕생할 것을 권하였다.
출가한 딸로서 나는 오직 모친이 서방극락세계로 왕생하여 삼계육도를 벗어나 다시 윤회를 하지 않는 것이 모친에 대한 지극한 효이고, 깊은 은혜를 최대한 갚는 길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극락세계의 장엄한 모습들에 대한 설명과, 아미타불의 48대원, 그리고 널리 모든 중생들을 구제하시겠다는 아미타불의 대비심과 대원을 말씀드렸으며,
또 많은 왕생사례에 관한 동영상 자료들을 보여드렸다. 모친께서는 매우 기뻐하셨으며 극락세계에 왕생하기를 발원했다. 그 뒤, 나는 또 모친을 위해 경전을 인쇄하였으며 방생하고, 염불, 독경, 몽산시식(아귀들을 위한 시식)등을 하였고 모친께 복을 지어 정토에 태어날 수 있도록 회향하였다.
모친은 본래 호흡이 어려웠는데 어느 날 밤 병이 발작하여 우리들은 모친을 위해 두 시간을 助念하였다. 밤 10시부터 12시까지 조념을 한 뒤 각자 방에 들어가 휴식을 취하였다. 이튿날 아침 모친은 어젯밤에 대웅전에서 밤새도록 염불하는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염불소리는 은은하면서 아주 듣기가 좋았고 멀리서 들리다가 가까이에서 들리다가 하였는데 이제가지 들어본 적이 없는 염불소리라 했다.
두 번째 병이 악화되었을 때는 왕생하시는 줄 알았다. 잘 아는 거사남들과 연락하여 조념을 부탁했다. 하룻밤 조념을 하고나니 이튿날 모친의 정신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온 가족이 염불당에 모여 모친과의 영구적인 기념을 남기려고 비디오 촬영을 하였으며 사진을 찍어 두었다. 모친은 대단히 기뻐하셨다. 마치 병이 나은 것 같았다. 친척들이 왔을 때도 모두 모친을 위해 염불을 해주었다. 염불은 7일간 밤낮으로 지속되었다.
8일 째 되는 날 아침 나는 모친께 꿈에 혹시 무얼 보지 못했냐고 여쭤봤다. 왜냐면 원친채주(怨親債主:전생에 원한 관계를 맺은 중생들) 귀신들이 찾아올까 두려워 매일 모친에게 여쭤봤던 것이었다. 모친은 줄곧 아무것도 못보았다고 했지만 어제는 꿈속에서 온 방안이 전부 ‘아미타부처님’이었다고 말씀하셨다.
“부처님께서 무엇을 하고 있던가요?”
“옷을 벗고 있었다.”
나는 얼른 모친에게 말씀드렸다.
“그것은 부처님께서 우리의 몸은 옷과 같아 가짜 껍데기를 벗어 버려야 아미타부처님과 같은 금강불괴신, 장엄한 상호 안팎이 투명한 몸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모친께 알려드리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모친은 연신 머리를 끄덕이셨다.
이날 이후부터 모친은 정신이 점점 더 좋아지셨고 안색도 점점 좋아보였다. 호흡도 순조로워졌고 병으로 인한 고통은 조금도 없이 완전히 사라졌다. 빠졌던 눈썹이 다시 자라나기 시작했다. 짙으면서 가늘고 굽었다. 조금 후에 오신 거사님들은 아픈 사람이 누구인지 조차 찾지 못하였다. 모친은 매일 매일 밖에서 산책까지 하셨다. 조념을 하러온 거사님들은 이러한 상황을 보고는 모두 병이 나았다면서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9일째 되던 날 아침, 모친은 기뻐하시면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어제 밤도 밤새도록 잠을 못잤다.”
“왜요?”
내가 물었다. 그날 밤 모친은 우리가 휴식하러 간 후 눈을 감으니 주변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친을 에워싸고 염불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모친은 그 분들을 따라 밤새도록 염불을 하였다고 했다. 이튿날 밤에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분명히 알고 있었다. 이것은 저희들이 마음을 내어 한 달에 두 차례 ‘대몽산’ 불사를 하여 배고픈 귀신들에게 시식하여 결연을 하였기 때문에 귀신들이 모친을 위해 염불을 해주었던 것이다. 시식해준 은혜를 보답하려는 것이었다. 이로부터 육도중생인 귀신들도 은혜를 알고 은혜를 갚을 줄 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느 거사님께서는 모친이 항암제를 복용하면 혹여라도 병이 완쾌하실 희망이 되지 않겠느냐 해서 나는 하얼빈시에서 항암약을 사서 모친에게 복용하도록 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씀드렸다.
“서방극락세계 왕생을 발원해야 합니다. 만약에 수명이 다했다면 아미타부처님께서 오셔서 극락세계로 인도할 것이고 만약에 수명이 아직 남았다면 병이 저절로 나아질 것입니다.”
모친은 나의 말을 듣고 매우 기뻐하셨다. 바로 아미타불 불상 앞에서 극락왕생하기를 발원하셨다.
그때가 약을 복용한지 4일째 되던 날이었다. 그날 밤 10시쯤 되었을 때 모친의 병이 또 악화되기 시작했다. 어느 거사님 한 분은 내가 의사를 모시지 않은 것을 알고 현에 있는 의사 한 분을 모셔왔다. 그리고 나에게 모친을 현 병원에 보내서 치료를 받아야 하지 않겠냐고 물었다. 나는 그 분의 호의를 사절했다. 그 순간 오로지 모친을 서방 극락세계로 왕생하게 해야겠다는 생각 뿐 다른 생각이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모친은 의사가 오신 것을 보고는 물었다.
“의사 선생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더냐?”
“의사 선생님은 어머님의 병을 더 이상 치료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어머님은 오로지 극락왕생을 구하십시오. 이 세상은 너무나 고통스럽습니다. 사람은 태어남이 있으면 반드시 죽음이 있기 마련입니다. 지금은 내생에 어디로 갈 것인가를 결정할 시간입니다. 천당, 지옥 아니면 극락정토를 가실건지 모두 어머님의 결정에 달려 있습니다. 만약 염불하여 극락왕생을 구하지 않는다면 또 다시 육도윤회를 해야 합니다. 지옥, 아귀, 축생의 고통을 어찌 말로써 다할 수 있겟습니까. 지금은 오직 아미타불만이 어머님을 구원할 수 있습니다. 이 한마디 부처님 명호를 꽉 잡고 절대 놓쳐서는 안됩니다.”
모친은 나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시며 아무 말씀도 하시지 않으셨다. 12시쯤 되었을 때 방 안에는 한 줄기 향기가 가득 풍기었다. 모친이 연기를 싫어했기 때문에 방 안에서는 향을 사르지 않았다. 당시 왕서민 거사님이 계셨는데, 마음속으로 ‘만약에 이 노인이 극락세계에 왕생할 수 있다면 아미타불께서는 이런 향기가 세 번 나타나게 해주십시오’라고 부처님께 빌었다.
그 뒤로 과연 향기가 세 번 나타났다. 그 자리에 있던 나와 많은 거사님들도 전부 향기를 맡았다. 나의 부친은 본래 불교를 믿지 않으셨지만, 당신께서도 향기를 맡고 나서 불법에 대한 믿음을 일으키게 되었다. 채식하시면서 염불하여 극락왕생하기를 발원하셨다.
2001년 10월 14일(음력 8월 28일) 아침 8시쯤 모친이 극락세계 연못에 심은 연꽃이 무르익었다. 몸을 일으켜 앉더니 부처님께 절을 올리면서 입으로는 “아미타불께서 나를 영접하여 극락세계로 왕생하신다!”고 말씀하셨다. 그 때 모친의 목에 걸고 있던 대비주와 불상이 갑자기 떨어졌다.
모친은 두 손으로 주워서 불상을 들고 바라보시고는 옆에다 내려놓았다. 그리고 양손을 들어 합장하면서 염불을 하셨다. 문득 보니 입이 몇 번 움직이더니 곧 왕생하셨다. 26시간 후 모친의 옷을 갈아 입혔다. 얼굴은 마치 살아있는 사람 같았고 주무시는 것처럼 편안해 보였다.
당시 기상청에서는 3일 연속 비가 올 것이라고 보도했다. 오후에 한바탕 비가 내려 쌓인 먼지와 때를 깨끗이 씻고 나니 천지가 맑고 새롭게 보였다. 나는 마음 속으로 아미타부처님께 가피력으로 비가 오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그후 비록 날씨가 흐리고 어두웠으나 다시 비가 오지 않았다.
조념이 15일 밤 12시쯤 이르렀을 때 하늘은 점점 개이기 시작했다. 16일 아침 9시(출관하는 당일) 바람은 부드럽고 날씨는 따뜻했다. 하늘은 온통 짙은 남색이었으며, 한 점의 구름도 없었다. 화장터에 이르러서는 繞佛하는 방식으로 영결식을 진행했다.
화장을 할 때 화장로에서 아름다운 염불소리가 들려왔다. 뿐만 아니라 <아미타경>을 독송하는 소리와 법기의 소리가 귓가에서 끊이질 않았다. 나는 환청이 아닌가 싶었다. 그래서 옆 사람에게 혹시 염불소리를 듣지 못했냐고 물었더니 모두 들었다고 대답했다. 그 자리에 있던 백여명의 대중들도 전부 들었다는 것이었다.
얼마 후 유골이 나왔다. 유골의 색은 산뜻하고 아름다웠다. 우리가 유골을 수습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법사님 한 분이 빨리 밖으로 나오라고 우리를 불렀다. 이 때 하늘에는 일곱 빛깔 채색구름이 나타났다. 구름은 안에서부터 밖으로 넘실넘실 번지고 있었다. 색깔은 찰나찰나 변화하였고 눈부시게 빛났다.
나중에는 세 송이의 연꽃으로 변하였는데 연잎마저 뚜렷하게 보였다. 그 밑은 연화좌였고, 둘레에는 연잎이 보였다. 조금 지나니 西方三聖의 모습으로 변화하였는데 그 모습은 보였다가 사라졌다가 하였다.당시 미용학원 선생님이었던 거사님 한 분이 계셨는데 18명의 제자들을 거느리고 영결식에 참석했다.
학생들은 전부 청소년들이었는데 이러한 瑞相을 보고는 너무 감격한 나머지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었고 무릎을 꿇고 예배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본래 불법에 대해 반신반의했는데 오늘 이러한 서상을 두 눈으로 직접 보았으므로 불법의 불가사의함을 느꼈고 불법에 대한 믿음을 굳건히 다질 수 있었다.
화장터를 떠나 집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화장터에서 들었던 낭랑한 염불소리가 계속 나의 귓전에서 맴돌고 있었다. 그래서 옆에 있던 거사님에게 이 상황을 얘기 했더니 이렇게 말했다.
“저에게는 스님이 평생 기뻐할만한 일이 있습니다.”
그는 화장할 때 염불소리를 듣고는 화장을 하는 사람마다 염불소리가 나는지 확인하기 위해 모친의 유골이 화장로에서 나온 후 그 다음으로 화장하는 시신을 관찰했다. 다음 시신이 화장로에 들어간 후 염불소리가 곧 그쳤다. 이로서 염불소리가 모친을 화장할 때만 나타난 것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가족들은 비록 슬펐으나 한 사람도 울지 않았다. 도리어 모친을 위해 기뻐했다. 왜냐면 모친이 이미 서방극락세계로 왕생하였음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수화(지명)에서 온 거사님들은 오전에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들은 모친께서 이처럼 좋게 왕생하였는데 비디오테이프에 반드시 다른 서상이 남아있을 것이라며 테이프를 보고 나서 가겠다고 했다. 그때 나는 마음속으로, 영결식을 진행하던 홀에는 주변 창문들이 검은 커튼으로 가려져 있어 광선이 매우 어두웠으므로 찍은 비디오가 매우 흐릴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예상 밖으로 비디오의 화면은 매우 깨끗하고 뚜렷했다. 벽 쪽에는 한 폭의 이강 산수화가 있었는데 화면에는 한 존의 희고 빛이 나는 관세음보살님이 보였다. 정면 양쪽에는 挽聯(죽은 사람을 애도하는 대련)이 있었고 가운데는 奠자가 있었다. 만련과 ‘전’자는 본래 흰색이었는데 모두 황금빛으로 변했고, 마지막 남은 한 글자만이 본래의 흰색이여서 특별히 눈에 띄었다.
마치 사람들을 일깨워 주는 것 같았다. 더욱 불가사의한 것은 창문을 가리고 있던 검은 색 커튼들이 전부 붉은 색으로 변한 것이다. 매 창문마다 한 분의 아미타불이 나타났는데 반짝이면서 빛을 발하고 있었다.동쪽의 창문에는 모친이 임종 시 찍은 사진 한 장이 나타났는데 입고 있던 옷의 색까지 분명하게 보였다. 당시 비디오를 보던 사람들은 경탄의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하늘의 채색 구름을 비디오로 보니 아래는 일곱 빛 연꽃이었고 거사님들이 요불할 때 몸이 전부 허공과 동화되었다. 그 속에서는 무수한 백련화가 나타났으며 또 흰 구름이 있었고, 모퉁이를 돌 때 창문에서는 한 송이 분홍색의 연꽃이 나타났다. 그 빛은 사방을 환하게 비추었으며,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그리고 하늘은 온통 붉은 색으로 물들여졌으며 마치 아름다운 노을 같았다.
당시 조념단의 단장이신 추려위거사님은 왕생을 보내는데 경험이 아주 많으신 분이었다. 나는 그에게 모친이 만약 극락왕생하였다면 반드시 나에게 소식을 전하겠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고 했다. 추거사님은 만약 진실로 극락왕생하였다면 7일내로 반드시 소식이 있을 거라고 했다. 그는 이 방면에 많은 경험이 있다고 했다.
3일 째 되던 날 새벽 5시에 전화벨이 울렸다. 나는 이렇게 이른 시간에 누가 전화하였을까 생각했다. 내가 전화기를 들으니 추거사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매우 흥분해 있었다. 내가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그는 모친이 그에게 극락왕생하였다고 말씀하셨다고 했고 다만 품위가 높지 못하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꿈에서 모친께서 왕생하실 때의 상황을 보았다고 했다(모친이 왕생하실 당시 그는 자리에 없었다).
그는, 모친이 침대에 앉아있었고 호흡이 점점 어려워지자 힘껏 염불을 했다고 했다. 바로 이때 아미타불께서 창문에 모습을 나투셨다. 모친께서는 아미타부처님이 오신 것을 보고 한없이 기뻐하시면서 혼신의 힘을 다해 아미타불을 불렀다. 그러자 神識이 정수리에서 빠져나와 아미타불을 따라가셨다고 했다.
추거사님은 꿈에서 깨어나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단지 꿈만으로 어찌 한 사람이 왕생을 하였는지 못하였는지를 증명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또 생각했다. “만약에 경옥근 노거사님께서 저에게 왕생의 소식을 전해주려 오셨다면 제가 정에 들게(入靜) 해주십시오. 그리고 저에게 말 한마디 해주십시오! 그래야만 당신이 왕생했다는 것을 믿을 수 있겠습니다.”
생각을 마친 후 3분도 안되어 그는 입정 상태에 이르렀다. 이때 모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다. “이 세상의 모든 만물은 서로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 다만 범부들이 모를 뿐이다.” 그리고는 입정에서 완전히 깨어났다. 너무 기쁜 나머지 그 뒤로는 잠이 오지 않았다 한다. 본래 두 시쯤에 전화를 하려했으나 결국 참았다고 했다. 그래서 아침 5시가 되어서야 나에게 전화를 건 것이었다.
이상은 모친께서 서방극락세계를 왕생한 전부의 경과이다. 지금 이것을 글로 써서 여러분들에게 공양 올리니 바라건대 부처님을 배우는 모든 법우님들이 서방극락세계에 대한 충분한 믿음을 내어 아미타불의 48대원을 굳게 믿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부처님 명호를 부르기만 하면 만인이 닦아 만인이 극락왕생할 수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기를 바란다.
나의 모친의 왕생이 바로 아주 좋은 시례이다. 아미타불의 십념필생원이 진실하며 허망하지 않음을 증명하였다.오로지 노실하게 염불하면 반드시 부처님의 접인을 받고 한번 왕생하면 절대 물러나지 않고 반드시 부처를 이룰 수 있다.
여기서 특히 모친을 위해 조념해주신 여러 법사님들과 여러 법우님들께 감사드리고 또한 모친께서 왕생품위가 높아지기를 축원드리고 하루 빨리 원력을 타고 다시 이 사바세계에 오셔서 널리 중생들을 구제하시기를 바란다.
나무아미타불
※참고 / 대만의 ‘정토도황’ 사이트 http://www.jt8421.com/
첫댓글 _()_
나무아미타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