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음이 건네는 위로
오솔길로 고개를 돌리면 금방이라도 하늘에 닿을 것만 같이 솟아오른 나무가 뿌리를 깊게 자리 잡고 있다. 그 길을 따라가다 조그마한 초록 벌레가 흰색 셔츠에 내려앉는다. 매일같이 내리쬐는 햇빛에 지쳤다는 듯이 힘겹게 옷깃을 잡고 있다. 잠시 쉬어가려나 보다. 그 아래 푸릇한 빛을 내비추며 우뚝 서 있는 나무, 한결같다. 그 자리 그곳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있다. 잔잔한 구슬비가 내리는 날에도 갖은 태풍과 소나기가 몰아치는 날에도 항상 제 자리를 지킨다. 때로는 매서운 바람에 휘청이고 쏟아지는 소나기에 힘없이 축 쳐지기도 한다. 그러다 나뭇잎이 떨어져나가 바닥에 놓여있을 때도 있다. 그치만 며칠 지나지않아 나무는 곧장 언제그랬냐는 듯이 멀쩡히 서있다. 햇빛쪽으로 몸을 돌리고 새로운 잎을 피운 것이다. 그렇게 원래대로 다시 돌아간다.
축 처진 어깨, 폭풍이 몰아친 듯 금방이라도 무너질것만 같고 매몰차게 부는 바람에 나뭇잎처럼 힘없이 떨어져 나갈 것만 같은 때가 있다. 속수무책으로 눈물이 쏟아지는 날에도 우리는 항상 제 자리에서 맡은 바를 해나간다. 삶이란 그런 것 아닐까?
다신 못 일어날 것처럼 주저앉더라도 두 발을 내딛고 고개를 다시금 정면으로 향하는 것. 그 모습이 나무를 닮아서 힘없이 떨어져 나간 나뭇잎을 보고 생각한다.
“나도 저랬을 때가 있었지.”
길을 걷다 평소처럼 자연스럽게 보이는 나무, 바닥에 떨어진 나뭇잎. 지극히 평범하기 짝이 없는 것들이다. 바닥에 떨어진 무수한 나뭇잎들은 심지어 치워야 하는 쓰레기 따위로 보이기도 한다. 이런 것들을 낯설게 바라보면 어떨까. 길가다보이는 흔한 사물 속 우리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면? 힘없이 휘청거리는 나무, 주저앉은 나뭇잎들. 너무나 일상적인 것들을 낯설게 보았을 때 우리는 꽤 큰 위로를 얻을 수도 있고 다시금 의지를 북돋을 수도 있겠다. 익숙한 것들을 낯설게 바라보는 건 우리가 살아가는데 어쩌면 큰 보탬이 될지도 모른다.
첫댓글 우리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경관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것들이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를 하나 하나에 눈맞추고 보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경관을 보기 때문입니다. 물론, 가끔은 그것 가운데 무엇인가가 변화하면 우리는 경관을 낯설게 여기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면 이내 전체적인 경관으로 인식하고 아무런 의미도 두지 못하게 됩니다. 아주 가끔은 나의 심경 변화로 경관이 달라보일 때도 있습니다. 예기 악기편에도 나오는 이야기이지만, 내 마음에 따라서 사물과 사건은 다르게 인식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물과 사건의 변화를 보면서, 오히려 자신의 변화를 찾아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철학은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보는 데서 출발하는 학문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평소처럼 자연스럽게 보이는 나무, 바닥에 떨어진 나뭇잎은 기극히 평범하기 짝이 없지만, 지극히 평범한 것이 존재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인연과 과정이 있어야 하는지를 문득 생각할 때, 우리는 그것의 소중함과 함께 동시적으로 나의 소중함을 깨닫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