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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孔子)가 제자와 같이 길을 가다가 나무 뒤에서 몰래 똥누는 사람을 발견했다.
공자는 그 사람을 크게 꾸짖었다. 그는 잘못을 인정하고 다시는 "이런 짓을 하지 않겠다"며 용서를 빌었다.
다시 길을 가다가 이번에는 길 한가운데에서 똥을 누는 남자를 보았다. 그러자 공자는 그냥 지나쳐 버렸다.
의아하게 생각한 제자들이 물었다. "선생님, 길 한가운데에서 똥을 누는 자가 더 나쁜데 왜 그냥 지나치십니까?"
이에 공자가 말하기를, "숨어서 똥을 누는 사람은 그래도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이다. 그래서 훈계를 하면 개선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길 한가운데에서 똥을 누는 자는 미친 인간이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는 훈계가 아무런 소용이 없다."
대한민국은 지금 길 한가운데에서 똥을 누고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들이 날뛰고 있다.
즉 수치심이 없는 자들이 큰소리를 치고 있는 것이다. 공자 말대로 훈계가 안 되는 미친 인간들이다.
이 미친 인간들은 말끝마다 '국민'과 민주주의를 들먹인다. 그러면서 교묘한 말장난으로 사람들을 미혹시키고 있다.
이들의 말장난이 어느 정도냐 하면, 사람을 칼로 찌르고는 '죽이려고 한 적은 없다'는 식이다.
미국의 로버트 G. 잉거솔 변호사는 '양심 없는 용기는 야수와 같다.'고 했다.
국민을 대표한다는 국회가 온통 야수들로 가득하다. 죄 지은 놈이 오히려 큰 소리 친다.
공자가 말대로 길 한 가운데에서 똥을 누고도 전혀 수치심이 없는 인간들이 수두룩하다.
그런데 더 미친 인간들이 있다. 길 한 가운데에서 똥을 누는 자나 다름없는 인간들을 좋다고 따라다니는 자들이다.
- 죽재(竹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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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쏘아라!
(여상환)
2024년은 6.25발발 74주년이다. 6.25때 우린 아무 준비가 없었다. 학교는 전부 휴교하고, 학생들은 농사를 지으라고 농촌으로 보내졌다. 그래서 개전 초기에 속수무책으로 밀리기 시작하여 낙동강까지 후퇴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낙동강 전투의 회복과 맥아더의 인천상륙으로 이 나라를 구했다고 알고 있는데, 실상은 조금 다르다. 낙동강 전선의 전투는 곧 영천, 포항, 다부동 전투이다.
경북 칠곡군 왜관 읍에서 동북으로 좀 들어가면 학이 머무르는 산이라고 하는 해발 654m의 유학산(留鶴山)이 있다. 이 산정 근처에 마이클 레스 미 중령과 김재명 소령이 이끄는 대대병력이 주둔하고 있었는데, 이곳이 뚫리면 대구까지 뚫리는 개활지로서 부산까지 밀릴 수 있기 때문에 이 곳을 뺏기면 유엔군이 상륙한다 하더라도 용병을 할 수 없게 되어 나라의 생사가 걸린 전투 지역이었다.
이 전장에 투입된 1사단 병력 8천5백 명 중 4천명이 전사하고 4천1백명이 부상당하고, 무사한 사람은 4백 명 밖에 안 되었던 격전이 벌어졌던 곳이다. 또 이 곳에서 인민군 3개 사단과 우리 1개 사단이 궤멸되었다고 전사는 기록하고 있다.
치고 빠지기를 일곱 번이나 거듭했으며, 유학산 정상이 점령당하면 완전히 뚫려 버리는 6.25전 사상 최대의 격전지였다.
이때 미8군사령관이 다급하게 1사단장 백선엽을 찾아 이렇게 힐난했다.
“당신들은 당신 나라를 포기할 것이냐? 유학산이 뚫려 포위되면 우리 마이클 레스 중령 전차부대 다 죽인다. 우리는 이 상황에서 우리 부대를 뺄 수밖에 없다. 그리하면 당신 나라는 끝장이다. 우리도 버티고 있는데 당신들이 뚫릴 수 있는가?”
이 말을 들은 백선엽 장군은 잠시 시간을 달라고 말하고 현장으로 달려갔다. 현장에 가보니 김재명 소령이 맨몸으로 낙오병을 이끌고 내려오고 있었다. 내려와서는 백 장군에게 무릎 끓고 앉아서 ‘즉결처분 받겠다.’라고 말하며, 여기 지키느라 몇 번씩 탈환하고 밀리기를 반복해왔는데, 이틀간 물 한 모금 밥 한 끼 먹지 못했고 탄약도 없으니 이젠 별도리가 없다고 하는 것이었다.
백 장군은 ‘너희를 처벌하자는 것이 아니다. 물러서라’ 라고 말하며 학도병과 내려오는 군대 모두 합하여 6천명쯤 되는 이들에게 주먹밥을 나눠주며 이들 앞에서 마이크를 잡고 연단에 올라서서 외쳤다.
“장하다. 그간 고생이 많았다. 그러나 이곳이 뚫리면 그간의 우리의 전공도 모두 수포로 돌아가고, 우리나라는 끝장이다. 대한민국이 사라지는데 살아서 뭐하나. 난 여기서 죽겠다. 집안의 독자나 또는 돌볼 노부모가 계신 사람들은 돌아가라. 공격구호는 간단하다. ‘돌격 앞으로!’ 내가 제일 앞장서겠다. 만일 한 발짝이라도 뒤로 물러서면 나를 쏘아라! 그리고 내 시체를 밟고 넘어서 이곳만은 꼭 탈환해라. 구호는 ‘나를 쏘아라!’ 이다.”
백장군의 이 말에 순간 분위기가 바뀌면서 김재명 소령도 자신이 제일 먼저 죽겠다며 앞장섰다.
이를 두고 마이클 레스 중령은 세계 전사 상 후퇴하던 군대가 다시 ‘돌격 앞으로’ 하는 경우는 없었을 것이라며 대한민국 군대를 신병(神兵) 즉, 하늘이 낸 병사(god's soldier)라는 표현을 썼다. 백선엽 장군이 배수진을 치고 유학산을 점령했다. 그러면서 유엔군이 인천상륙하고 반격한 것이다.
견리사의(見利思義) 견위수명(見危授命). ‘이로운 것을 보거든 옳은 것인지 생각하고, 나라가 위태로우면 내 생명을 던져라.’고 했다. 지도자들은 사생관을 분명히 해서 결정적인 순간에 자기 생명을 내던질 각오를 해야 한다. 이것을 이어가고 지켜가는 것은 여러분의 소임이 아니겠는가? 그러자면 자기의 소임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작은 여인의 몸이지만 한 역사를 일구었던 위대한 족적이 있어 소개한다. 내용은 ‘하늘이 내린 목소리’라고 하는 세계적인 성악가 조수미 이야기이다. 지난 2006년 4월 4일에 파리 샤틀레극장에서 프리마돈나로 성황리에 공연을 마치니까 모두 기립박수를 하면서 앙코르를 요청하자 조수미가 얘기한다.
“여러분 앵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만 한 가지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지금 이 시간에 서울에서는 내 아버지의 장례가 진행됩니다. 어머니로부터 ‘너는 세계적인 공인,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프리마돈나이다. 네 직분을 다하는 것이 아버지의 영을 위로하는 것이 될 것이다. 그것을 포기하고 집으로 오는 것은 작은 효도는 될지 모르지만 세계 공인의 자세는 아니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노래만은 아버지를 위해 바치고 싶습니다.”
그 말에 관객 모두가 감동해서 8분 40초를 일어서서 앙코르하고 격려했다. 그때 조수미가 불렀던 노래가 ‘아베마리아’와 ‘그리운 금강산’이었다. 그 절절했던 조수미의 가슴을 헤아리면서 돌아간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파리의 샤틀레극장에서 부르던 조수미의 모습을 함께 느끼기 바란다.
결국 역사의 변곡점에서는 항시 ‘여울목’을 지키는 위대한 인격체가 있었고 그의 사상의 핵심은 항시 「노블레스 오블리주」였었고, ‘나를 쏘아라’였고, 항시 의로움을 먼저 생각하는 견리사의(見利思義) 견위수명(見危授命)이 있었다.
각 분야에서 나라를 이끌어가고 있는 지도자 여러분, 결국 한나라의 명운이 갈리게 되는 전환점은 그때 역할 담당자의 사즉생 생즉사 하는 결단이 그 핵심이 된다.
그대는 과연 ‘나를 쏘아라’라는 각오가 되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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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을 누가 썼는지? 누가 보내주어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촌부도 농부도 상인도 대통령도 읽어야 할, 명쾌할 수 있는 글이다.
★ 이 정도는 알아야 좋은 생각일 것이다.
A
[우크라이나 와 러시아는 왜? 원수지간이 되었고! 한국은 어떠하게 될까 ??]
1● 같은 뿌리를 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왜 이렇게 적대적인 관계가 되었을까?
2● 한민족이 고구려, 백제, 신라로 나누어졌듯이 러시아, 우크라이나, 밸라루스는 키예프 공화국이란 같은 뿌리에서 갈라진 나라이다.
3● 키예프 공화국의 수도 키예프는 현재 우크라이나의 수도이다. 같은 뿌리의 국가라서 이 3개 나라의 언어는 이는 따로 공부하지 않아도 서로 소통될 정도로 유사하다고 한다.
4● 그런데 어쩌다가 이렇게 적대적인 관계가 되었을까?
5● 그 이유는 스탈린 시절의 홀로도모르 (Holodomor) 라고 불리는 대기근 사건이 주 원인이다.
6● 우크라이나는 세계 3대 곡창지대 중에 하나이다. 우크라이나 땅은 흑토이며 뭘 심어도 잘 자라는 풍요의 땅이다.
7● 그런데, 공산혁명 후 스탈린이 부농 (쿨라크kulak)들 을 처형하였다. 그들의 가죽을 벗겨서 비누로 만들었다.
8● 쿨라크가 가진 농지를 다 몰수하고 집단농장 체제로 만들어 운영하였다. 집단농장마다 생산량을 할당하였다.
9● 그러자 당연한 결과로 농산물 생산량은 확연히 줄어들었다.
10● 농사짓는 기술을 가진 부농을 다 처형했으니 그런 것이다. 그리고 열심히 해도 자기 것이 안 되는데 누가 열심히 농사짓겠는가?
11● 소련은 농산물이 줄어들어도 과도한 목표량을 수탈하고 또 수탈을 하였다. 그래서 그 세계 3대 곡창지대에서 굶어 죽는 사람이 생겨났다.
12● 1933년 어느 날, 단 하루만에 28,000명이 굶어 죽었다고 한다. 굶어죽는 사람 때문에 집단농장의 인구가 1/3로 쪼그라 들었다.
13● 배고픔을 참지 못한 우크라이나 인들은 쥐, 개, 고양이, 벌레... 등을 닥치는 대로 잡아먹었다.
14● 나중에는 사람까지 잡아먹었다. 부모들은 자식을 서로 바꾸어서 잡아먹었다고 한다. 인육을 파는 상점까지 생겼다고 한다.
15●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은 당시에 소련은 연 천만 명의 인구가 먹을 수 있는 여분의 식량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16● 소련은 식량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인들을 굶겨 죽었다.
17● 당시에 약 500만~ 1000만 명이 굶어 죽었다고 한다.
18● 우크라이나인들은 이 대기근을 홀로도모르 라고 부르며, 매년 기념일엔 곡식 낱알을 흩뿌리며 원혼을 달랜다고 한다.
19● 상황이 이렇다보니 우크라이나인들의 공산당에 대한 반감은 엄청 커졌다.
20● 독일이 우크라이나 지역으로 쳐들어오자 해방군이라고 오히려 환영했다고 한다.
21● 아시다시피, 독일이 홀로코스트를 자행했는데, 유대인만 죽인 게 아니고 슬라브인도 엄청 많이 죽였다.
22● 당시에 홀로코스트를 집행하는데 조력을 한 이들이 바로 우크라이나인들 이라고 러시아인들은 주장한다.
23● 어제도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친 나치 세력이라고 비난한 이유이기도 하다.
24● 아무튼 이렇게 두 나라는 뿌리가 같은 나라이지만 이러한 연유로 적이 되었다.
25● 최근에 우크라이나의 돈바스 지역은 왜 화약고가 되었나?
26● 우크라이나의 우측 돈바스지역은 도네츠크와 루한스크 두 지역을 합쳐서 부르는 이름이다.
27● 이 두 지역은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친 러시아인들이 많이 산다.
28● 그런데 우크라이나에 친서방정권이 들어서면서 러시아어를 금지시켜 버리고, 우크라이나어만 사용하게 하고 나토 가입을 결정하자 친 러시아인은 반발하였고, 돈바스 지역을 중심으로
독립을 선포하였다.
29● 그래서 우크라이나에서는 정부군과 독립 선포한 돈바스지역과 내전이 발생한 것이다.
30● 이들 분쟁지역은 민스크 협정으로 휴전을 했다.
31● 민스크 협정 은 2014년 9월 5일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도네츠크 인민 공화국(DPR), 루간스크 인민 공화국(LPR) 사이에 서명한 돈바스 전쟁의 정전 협정 이다. 이 협정 은 돈바스 전쟁을 완전히 멈추는 데에는 실패했다.
32● 중요한 협정내용은 중화기를 사용하지 못한다. 돈바스 지역은 자체 주민 선거를 실시한다.
돈바스 지역은 우크라이나에 속하지만 연방제 방식으로 자치권을 확대한다... 등등이었다.
33● 그런데 푸틴이 돈바스의 2자치구 (도네츠크와 루한크) 를 독립국으로 인정하였다.
34● 이에 대해서 독일 총리는, 러시아가 돈바스를 독립국가로 인정하여 민스크 협정을 위반하였다고 비난하였다.
35● 한편 푸틴은 우크라이나가 민스크 협정을 지키지 않았다고 비난했다. 그 이유는 자체 주민투표를 허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36● 자체 주민투표를 하면 주민들이 크림반도처럼 러시아와 합병을 결의할 가능성이 100%였다.
37● 암튼 푸틴은 돈바스 지역을 독립국으로 인정함으로서 우크라이나로부터 크림반도에 이어서 돈바스 지역까지 빼앗았다.
38● 따라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갈등의 주요 원인을 제공한 것은 공산주의 이념이였다. 공산주의 이념은 파라다이스를 약속하지만 실제는 원한과 분노 그리고 질투심을 부추겨 지옥을 만들었을 뿐이다.
39● 지옥으로 가는 길은 언제나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 선전선동으로 무지 한 이를 앞세운다.
B
[《동맹 없는 우크라이나 사태를 바라보면서》 ] 한국은??
평화타령 불러대면 평화가 온다고 믿는 멍청이들이 아직도 꽤나 많은가 보다.
41● 이번 우크라이나를 보라! 우크라이나에 힘이 없으니 우크라이나에 평화도 없다!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우리는 평화를 원한다. 우리는 전쟁을 원치 않는다!“ 아무리 소리쳐도 아무 소용이 없다.
42● 우크라이나 단독으로는 러시아에 대항할 힘이 없으니 NATO에 가입하려고 몸부림치는 저 모습을 보라! 동맹을 간절히 구하고 또 구하구 있다! 그러나 러시아와 충돌을 원치 않는 NATO에서는 완곡하게 거절했다!
43● 자~ 그런데 우리 대한민국은 어떠한가? 대한민국은 세계 최강대국 미국과 1953년 <한미상호방위조약> 동맹을 맺은 후 69년이 지나 거의 70년, 그 동안 한국은 평화와 번영을 누려왔다.
44● 오늘은 동맹의 중요성에 대해 짧은 글을 써 본다.
글의 내용은 <한미상호방위조약> 이전 조선조 70년과 <한미상호방위조약> 이후 70년 대한민국을 비교해본다. 읽고 나면 뭔가 명확하게 감이 잡힐 것이다.
45● <한미상호방위조약> 이전 70년 이전 조선조 70여 년 동안 이 땅 안팎에 무슨 일이 터졌는지 큰 사건들 중심으로 15 개만 정리해본다.
46● 1. 임오군란과 대원군 납치
1882년 임오군란이 터지자 이를 기회로 청나라 군대 3,000명과 일본 군대 400명이 조선으로 들어왔다. 청나라 군대는 숭례문(남대문) 밖에 주둔했었는데 이 부대를 외교 차원에서 방문한 흥선 대원군을 강제로 납치, 청나라 톈진(天津) 으로 압송, 당시 청나라의 실권자였던 리홍장이 멋대로 대원군을 심문하고 톈진 서쪽 바오딩(保定)에 구금시켰다. 3년이 흘러 1885년이 되어서야 대원군을 풀어주어 겨우 귀국했다.
47● 2. 동학란과 청일전쟁
1894년 학정에 못 견딘 전라도 고부(정읍) 지방 농민들이 전봉준과 동학교도들을 중심으로 난을 일으켰다. 그러자 이를 기화로 일본이 조선에 대규모 군대를 보내었고 조선에서의 지배권을 놓고 청나라와 일본 양국 간에 청일전쟁 (1894~1895)이 터졌다.
48● 이 때 일본군이 한양으로 들어와 한양 경복궁을 지키는 조선군과 전투가 벌어졌다. 접전 끝에 일본군이 승리하고 고종은 사로잡혔다! 일본군 소좌가 칼을 빼들고 고종을 협박했다!
49● 엉터리 대한민국 국사교과서에서 침묵하는 내용들이 있다.
50● 일본군은 이어 평양으로 진격 평양성을 지키던 조선과 청나라 연합군을 격파했고 청나라 군대는 을밀대에서 항복했다. 연이어 벌어지는 여러 전투에서 일본은 모두 승리했고 조선에 대한 지배권을 차지했다.
51● 조선 안에서 벌어진 청일전쟁, 전쟁터는 조선땅! 전쟁 피해는 고스란히 조선인들의 몫이었다.
52● 3. 1895년 을미사변
청일전쟁이 1895년 4월 일본의 승리로 종결되자 조선 내에서 일본의 위세는 더욱 더 대단해졌고 동년 1895년 10월 8일 일본 낭인(사무라이보다 낮은 계층)들이 경복궁에 난입, 옥호루에 숨어 있던 민비 나는 (명성황후라고 부르지 않는다. 이 여자가 이 나라 역사에 저지른 죄가 결코 가볍지 않다) 를 죽였다.
53● 고종은 선교사의 도움을 받아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했다. 이 사건을 후세 역사책에서는 '아관파천'이라 부른다.
54● 당시 경복궁을 지키던 내금위 병사들은 무엇을 했을까? 일본 낭인들과 싸움에 밀려 도망갔었다. 자신들이 지키던 왕과 왕비를 버리고 도망간 조선 최고의 무사들...!!!
55● 이런 내용들도 민족주의 역사관에 입각, 자랑스러운 역사만을 중심으로 기록하는 순 엉터리
한국 국사 교과서에서는 철저히 침묵하고 있다.
56● 4. 1905년 을사조약, -외교권을 상실
57● 5. 1910년 –한일합방.
58● 조선이 망했다!
59● 하지만 조선 왕족은 일본으로부터 상당히 높은 대우를 받았다. 태평양전쟁에서 일본이 패망할 때까지 조선 왕가에 대한 일본의 대우는 변치 않았다. 이런 내용도 국사 책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60● 6. 1919년 3.1 운동
61● 7. 1920년 청산리 전투
독립군 토벌을 위해 간도에 출병한 일본군을 청산리 일대에서 10여 회의 전투 끝에 대파한 전투
62● 8. 1921년 자유시 사변.
1921년 러시아령 자유시 (알렉세예프스크)에서 한국독립군 부대와 러시아 적군이 교전한 사건. | 흑하(黑河)사변 이라고도 한다
63● 9. 1941년 12월 7일 진주만 공습과 태평양 전쟁 발발
64● 10.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 원폭 투하, 8월 9일 나가사키 원폭 투하!
65● 11. 1945년 8월 15일 일본 무조건 항복!
66● 12. 1945~ 1948년 -미군정 시기.
67● 13.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
68● 14. 1950년 6월 25일 -북한군 침략전쟁!
69● 15.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
70● 16. 1950년 10월 19일 -중공군 개입...!!!
71● 17. 1953년 7월 27일 -휴전
72● 18. 이 6.25 전쟁으로 300만 명 이상이 죽고 전국이 잿더미!!
C. [<한미상호방위조약> 1953년 10월 1일 체결. 이후 70년 대한민국 이야기]
이 <한미상호방위조약> 의 핵심은 한반도와 그 주변에 미군을 배치한다는 내용이다.
73● 주한미군!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의 군대가 주둔한 이후 70년 대한민국...!!!
74● <한미상호방위조약> 이후 69년... 그 기간 동안 무슨 큰 난리 있었나? 없었다.
75● 한반도에 큰 난리 없이 70년을 지내왔다...
포항제철 삼성전자 현대조선 경부고속도로 한강의 기적 .... 세계 10대 강국....
76● 그 기간 동안 북한군 병사들은 의무복무기간 10년, 북한 경제는 발전할 수가 없었다.
77● 초근목피와 보리밥과 국수와 라면과 쌀밥을 위해서 지금의 90세 80세 70세 60세 의 사람들은 자기의 위치에서 조국과 사회와 가족과 그리고 자기가 몸단고 있는 단체를 위해서 머나먼 이국 월남에서 독일에서 수고를 했었다. 그리고 특히 건설 산업 역군으로 전 세계에서 더위와 추위의 환경속에서 4시간만 잠을 자면서 고생하면서 선진문물을 가져온 세대들의 노고 덕도 있다.
78● 대한민국의 군대 복무기간 36개월 에서 18개월. 젊은 사람들과 노인들이 함께 일도 하니 경제 발전은 자연적 현상이다! 온고지신 이 답이다.
79● (C)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이전 70년과 이후 70년 비교
80● 미군 주둔 이전 70년과 미군 주둔 이후 70년을 비교해보라!
81● <한미상호방위조약> 이전 70년 동안 우리나라에 난리가 나면 청나라 군대가 들어와서 왕의 아버지를 납치해가고 (임오군란)
82● 우리나라에 난리 (동학란)가 나면 일본 군대가 쳐들어와서 경복궁 지키는 군대와 싸워서 경복궁을 점령하고 왕은 사로잡히고 (청일전쟁) 왕비는 칼 맞아 죽고 (을미사변) 나라는 망하고 (한일합방) 태극기 들고 독립을 외치면 총에 맞고 감옥가고 (3.1 운동)
83● 독립군 광복군만의 힘이 아닌, 이승만 정치학 법학 박사의 외교 의 힘으로 간신히 독립 (1945년 8.15 해방) 했으나 이를 간과 하는사람들도 있다. 즉 한국말로 아무리 뉴욕 한복판에서 외쳐도 미국말 로 하는것과 비교함이 아닌 것을 말함이다.
84● 소련 중공 군대를 등에 업고 6.25 전쟁을 일으킨 북한 김일성.... (1950년 6.25)... 이 6.25전쟁으로로 300만 명 이상이 죽었다...!!! 부상자는 더 많앗다,
85● 그리고 1953년 <한미상호방위조약>이 맺어진 후 69년이 흘렀다. 그동안 무슨 난리가 있었나? 전쟁이 있었나? 아니다!
86● 북한은 1990년대 고난의 행군을 겪으면서 수백만 명이 굶어죽은 아시아 최빈국이 되었는데 한국은 세계 10대 강국!
87● 동맹이란 이렇게도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88● 이재명 후보가 중국에서 제일 큰 방송국인 관영 CCTV 인터뷰에 나와서 자신이 대통령되면 한반도에 배치된 미국 사드를 철수시키겠다고 선언했다.
89● 그러면 한미동맹이 무사할 것 같은가? 한미동맹이 무너지면 그동안 누려왔던 평화와 번영이 어찌될 것인가?
90● 나라 자존심 만 운운하면서 전시작전권 회수하고 사드 철수시키고 한미동맹 무너지면 어찌 될까? 힘없는 놈은 아무리 몸부림쳐도 힘 있는 자들과 친구해야 함이 맞는 말인데. 선전선동으로 공산주의 주사파 의 운동정신으로의 길 만 이야기 한단다
91● 대한민국이 중국을 이길 힘이 있나? 러시아를 이길 힘이 있는가?
경상도 김천 성주 지역을 지나다 보니 "사드 가고 평화 오라!" 이렇게 적힌 플래카드 들이 눈에 띄더군.
92● 중국 러시아 이길 힘은 없어도 북한 핵무기에 대항할 힘은 없어도 평화타령 불러대면 평화가 오는가? 북한 그들이 평화 외치면서 악수하면서 핵무기 개발 하는 것을 보고도 평화를 외친다.
93● 평화가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는 뉘 집 강아지 이름인가? 과거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자마자 미국에 특사를 보낸 적이 있다. 그들이 주한미군 철수 운운했었다. 우리는 자주국 방하겠다면서!
94● 그 때 미국 국방장관이 럼스펠드였다. 한국 특사들 주장을 다 듣고 럼스펠드가 유명한 말 한 마디 했다.
95● "자주국방! 그것 좋은 말이다. 하지만 우리 미국도 자주국방을 다 하지 못해서 여러 나라들과 동맹을 맺는다! 힘이 부족하면 동맹을 맺고 그 관계를 지켜야 한다. 그게 살 길이다!“
100● 감사 합니다 읽어 주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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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즐겁고 행복한 하루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