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ESPN을 통해 클리블랜드와 덴버에 경기를 오랜만에 시청하게 됐는데요. 경기를 지켜보면서 한가지 희안한 광경을 찾게 되었습니다. 양팀 주전으로 나온 선수들 거의 대부분이 너나 할것 없이 해드밴드를 착용하고 경기를 하고 있더라구요~^^
예전에 중계를 볼때 같으면 기껏해야 양팀중 한선수가 쓸까 말까 해서 헤드밴드의 착용여부로 어떤 선수인지 쉽게 구분을 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죄다 착용하고 있는 데다 팀별로 아예 색깔까지 통일해서 빠른 흐름에 경기가 진행되고 선수들이 한데 뒤엉켜 있을때는 지금 볼을 드리블하고 있는 선수가 누구인지 구분이 안가는 상황도 발생할 정도 였습니다~^^
이처럼 헤드밴드는 현재 NBA리그에서 빼놓을수 없는 중요 아이템으로 발전 했는데요.
과거의 핫팬츠와 쫄티같던 유니폼을 조던이 헐렁하게 변화시킨것과 맞먹을 정도의 혁신을 가져 온 것 같습니다.
헤드밴드에 효과를 몇가지만 들어보자면 우선 경기중에 머리에서 비수같이 쏟아지는 땀들을 고스란히 흡수해 주면서 땀에대한 지장을 덜받고 경기를 보다 수월하게 플레이 할 수 있는 도움을 주었고 팀 고유의 색깔로 유니폼과 통일하여 맞춰서 씀으로써 팀에 대한 일체감과 단결력을 배가 시킬수 있는 매개체 되었습니다. 또한 유전적으로 심한 곱슬머리여서 길면 관리가 귀찮은 통에 죄다 박박 미는 바람에 흑인선수=스킨헤드 라는 일반적인 생각들을 무색하게 하는 레게머리를 늘어뜨린 선수들이 속속 등장하게 하여 선수들에 경기중 모발관리를 용이하게 하기위한 레게머리 고정밴드에 역활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의 트랜드로 자리잡은 헤드밴드를 맨처음으로 착용한 선구자같은 선수는 누굴까요?
바로 클리포드 로빈슨입니다.
미니스커트도 처음에 우리나라에 도입될 당시에 엄청난 논란이 있었고 모든선수들이 쫄쫄이에 타이즈를 고수할때 헐렁한 유니폼에 발목양말을 처음 착용하고 나온 마이클조던의 뻘쭘함을 이겨낸 용기에 못지않게 클리포드 로빈슨 또한 이전에는 머리에 아대같은 것을 착용한다는것이 무슨 법으로 금지 되있는 것처럼 민둥머리만을 고수하던 리그에서 용기있고 개성강한 헤드밴드를 매경기 착용하고 출전함으로써 지금에 헤드밴드 문화를 만들어낸 진정한 선구자였습니다~^^
그에 대한 자료가 미비하여 인터넷 검색을 통해 찾다가 그에 대한 좋은 글이 NBA매니아 싸이트에 올라와 있어서 발췌해 봤습니다~ 글을 잘 읽어보시면 그에 파란만장한 농구 인생을 고스란히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즐감하시고 좋은하루 되세요~~^^
**제목:'묻혀져 가는 그 이름' 클리포드 로빈슨**
클리포드 로빈슨은 리그에서 가장 과소평가 받고 있는 선수다. 샤리프 압둘라힘도 로빈슨에 비하면 몇 배나 좋은 평가를 받고 있음에 틀림없다. '과소평가'하면 언제나 압둘라힘은 거론되지만, 로빈슨은 그렇지가 않다. 어쩌면 팬들은 로빈슨에게 '무관심'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느덧 노장 축에 접어들어 '묻혀져 가는 그 이름'이 된 클리포드 로빈슨. 그를 한 번 들여다보자.
■ 2라운드로 지명된 'UCONN' 스타
로빈슨은 코네티컷大 출신이다. 코네티컷에서 로빈슨은 3년 동안 팀 득점을 리드했고, 특히 마지막 4학년 때는 스틸과 블록슛까지 리드했다. 로빈슨은 4학년인 88-89시즌에 평균 20.0득점, 7.4리바운드로 All-Big East 세컨드 팀에 이름을 올렸다. 그는 코네티컷의 스타였고, 대학 역사에 자신의 이름을 남기기도 했다. 코네티컷大 역대 통산 득점 4위에 오른 것이다. 그러나 로빈슨은 89년 NBA 드래프트에서는 퍼비스 엘리슨, 대니 페리, 션 엘리엇 등에게 가리면서 2라운드 36위라는 다소 아쉬운 픽으로 포틀랜드 트레일 블레이저스에 지명된다.
■ 절벽 새가슴
하지만, 로빈슨은 빠르게 NBA에 적응해나가기 시작했다. 그는 루키시즌에 전 경기를 벤치멤버로 나서 평균 9.1점을 올리는 알토란같은 활약을 펼쳤다. 포틀랜드는 파이널에 진출했고, 로빈슨도 루키 자격으로 파이널 무대를 밟는 감격을 누렸다. 루키 시즌에 성공적으로 자리잡은 로빈슨은 이후 '주전 같은 식스맨으로 맹활약하게 된다. 그는 주로 제롬 커시, 케빈 덕워스, 벅 윌리엄스 등의 백업으로 출전했는데, 그 영향력은 오히려 그들을 뛰어넘을 정도였다. 특히, 식스맨 상을 수상했던 92-93시즌에는 식스맨임에도 불구하고 31분 가량의 플레잉 타임을 얻으며 평균 19.1득점, 6.6리바운드를 기록, 득점과 리바운드에서 팀 내 2위에 올랐고, 평균 1.9블록슛으로 팀 내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식스맨 상 수상에 앞선, 92년 파이널에서 로빈슨은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당시, 시카고 불스와 파이널을 치렀던 포틀랜드는 마이클 조던을 묶기 위해 정신이 없었다. 포틀랜드의 릭 아델만 감독은 클라이드 드렉슬러의 수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로빈슨에게 조던을 맡겼지만, 로빈슨은 철저하게 무너져야 했다. 조던은 신기에 가까운 3점슛 퍼레이드를 펼쳤고, 로빈슨은 그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이 때, 조던을 놓친 이유가 포틀랜드 선수들의 정신력과 근성 부족이었는데, 그 중심에 로빈슨이 있었던 것이다. 괜찮은 수비 능력을 지니고 있는 로빈슨이었지만, 근성 부족 탓에 조던에게 참담하게 당해야 했다. 또한, 공격에서의 부진도 그를 '새가슴' 선수로 낙인찍히기에 충분한 요인이 되었다. 로빈슨의 애칭은 '클리프', 즉 절벽이다. 하지만, 이후에도 계속되는 큰 무대에서의 부진은 그를 '절벽 새가슴'으로 만들고 말았다. 현재까지도 그는 역대 플레이오프 평균득점(11.1점)이 역대 정규시즌 평균득점(15.5점)보다 약 4점 가량 떨어진다. 수치상으로 판단하기에는 부족한 면이 많지만, 그 4점 차이도 최근에 들어와서 줄였다는 점을 상기해 보라. 로빈슨이 충분히 NBA의 대표적인 '새가슴 플레이어'로 불릴 만 하지 않은가?
■ 독특한 헤드벤드와 플레이 스타일
로빈슨은 '헤드밴드'의 선구자로 유명하다. 90년대 초반, 그는 크리스 개틀링과 함께 알록달록한 헤드벤드를 매 경기 착용하고 나와, 헤드벤드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그들이 일으킨 열풍 탓에 지금은 많은 선수들이 헤드벤드를 애용하고 있다. 그러나, 로빈슨과 함께 선구자적 역할을 한 개틀링이 지난 2001-02시즌부터 헤드벤드를 벗어 던졌기 때문에, 로빈슨이야말로 진정한 '헤드벤드'의 대부로 불릴 만하다.
그의 독특한 헤드벤드 만큼, 로빈슨의 플레이 스타일 역시 독특했다. 208cm, 108kg의 체격조건을 지니고 있는 로빈슨은 그와 어울리지 않게 유연하고 빠른 몸놀림을 보였고, 하이-포스트에서 시도하는 미들 슛은 백발백중이었다. 부드러운 슛 셀렉션으로 곧잘 3점슛도 성공시켰다. 몸싸움에서 상대에 밀리는 느낌을 주기도 했지만, 과감한 페네트레이션과 능숙한 포스트 플레이를 선보이기도 했다. 거기에 스몰 포워드, 파워 포워드, 센터 등 어느 포지션을 맡아도 자신의 몫을 톡톡히 해냈고, 심지어 전성기적에는 슈팅 가드 포지션에서 수비를 하기도 했다. 타이밍을 맞춰 상대를 저지하는 블록슛은 그의 장점 중 하나이고, 스틸에도 남다른 감각이 있는 선수다. 수비 능력도 뛰어났는데, 감각적인 블록슛과 스틸은 물론, 어느 포지션에서든 효과적으로 상대를 저지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1999-00시즌에는 올 NBA 디펜시브 세컨드 팀에도 선정됐다. 다소 취약한 리바운드 능력이나, 부족한 파워 등을 제외하며 어느 것 하나 부족함이 없는 선수다. 90년대 초, 로빈슨이 보여줬던 플레이는 '창조적'이었다. 당시, 그 키에 3점슛을 쏘고, 대부분의 포지션을 소화하면서 놀라운 수비능력을 보여주는 선수가 도대체 얼마나 됐을까?
다소 과장을 곁들인다면 로빈슨은 케빈 가넷의 선구자적 역할을 한 선수일지도 모르겠다. 체격조건과 플레이 스타일이 여러모로 가넷과 비슷하며, 로빈슨의 전성기적 운동능력도 남부럽지 않았다. 또한, 가넷이 한 때 드러냈던 문제점이었던 파워부족과 소프트함을 로빈슨은 미리 보여줬다. 어쩌면, 가넷이 로빈슨을 벤치마킹 한 것은 아닐까?
■ 꾸준한 남자, 그러나 우승반지가 없다
로빈슨은 정말 꾸준한 남자다. 플레이도 공격과 수비를 가리지 않고 언제나 기복 없는 안정적인 플레이를 펼친다. 물론, 플레이오프 같은 큰 무대에서 죽을 쑤는 경우가 많았지만, 그 문제도 최근에 들어서는 노련해진 탓인지 많이 좋아졌다. 그는 또 존 스탁턴에 버금가는 '성실男'이다. 로빈슨은 지금까지 통산 1,179경기에 출전했는데, 결장한 경기가 19경기밖에 되지 않는다. 그도 스탁턴만큼이나 '연봉 값'을 하는 선수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는 '성실'하면 스탁턴과 칼 말론만을 생각했지, 로빈슨은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래저래 '과소평가', 아니 '무관심' 받는 선수가 바로 클리포드 로빈슨인 것이다.
66년생으로 우리나이 39세인 로빈슨은 아직 우승경험이 없다. 칼 말론, 레지 밀러만큼이나 급한 마음일 것이다. 로빈슨은 루키 시즌인 90년 파이널에서 디트로이트 피스톤스의 '배드 보이스' 앞에 무릎을 꿇어야 했고, 92년 파이널에서는 조던에 의해 참담하게 무너져야 했다. 식스맨 수상 후, 로빈슨은 주전으로 발돋움 해 쾌속발전을 했고, 94년 올스타전에도 참가했다. 95-96시즌에는 포틀랜드 팀 프랜차이즈 기록인 178개의 3점슛을 성공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로빈슨과는 반대로 포틀랜드는 점차 우승권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결국 로빈슨은 97년 여름, 피닉스 선즈로 팀을 옮겼다. 피닉스에서 제이슨 키드를 만난 로빈슨은 여전히 꾸준한 모습으로 팀을 이끌었다. 이 와중에 앤퍼니 하더웨이가 합류해 '백코트 2000'이 결성된 1999-00시즌에 로빈슨은 우승에 대한 열망을 불태웠지만, 예상치 못한 하더웨이의 부상에 우승 길이 막히고 말았다. 2001-02시즌에 디트로이트에 합류한 로빈슨은 파워 포워드와 센터를 오가며 벤 월라스와 함께 포스트를 구축, 릭 칼라일 감독이 이끄는 끈적끈적한 수비 농구의 중심이 되기도 했다. 월라스와의 상호보완적인 플레이는 로빈슨의 활용가치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하지만, 2003년 여름에 로빈슨은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로 트레이드 된다. 아쉽기 그지없는 트레이드였다. 디트로이트는 우승 가능성이 있는 팀이었고, 2004년에 우승을 일궈냈다. 게다가 트레이드 된 팀이 근 10년 동안 리빌딩을 하고 있는 골든스테이트라는 점이 더욱 암울했다.
골든스테이트를 매도할 의도는 전혀 없다. 이 팀에는 전도유망 한 젊은 선수들이 많고, 최근의 개혁을 통해 희망찬 미래를 바라보고 있는 팀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로빈슨이 아쉬운 것이다. 골든스테이트 입장에서는 로빈슨이 젊은 선수들과 함께 팀의 리빌딩을 이끌어주기를 바라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로빈슨은 아직까지 우승반지가 없다. 우승반지를 위해 도전할 시간도 많이 남지 않았다. 아직, 로빈슨은 활용가치가 대단히 높은 선수다. 39살의 나이에도 여전히 어느 포지션에서도 제 몫을 해줄 수 있는 선수가 바로 로빈슨이다. 그의 전방위 공격력도 아직 녹슬지 않았다. 지난 시즌에도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와의 경기에서 35득점, 8리바운드, 3블록슛, 4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팀을 승리로 이끌 정도로 기량이 충분하다. 또, 큰 부상만 입지 않는다면 그는 앞으로 몇 시즌을 더 뛸 수 있을 하드웨어도 지니고 있다. 한 마디로, 우승을 노리는 팀, 특히 인사이드가 부족한 팀들이 있다면 로빈슨에게 오퍼를 던지는 것도 괜찮다는 말이다.
로빈슨 같은 선수는 '우승반지'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한다. 아직, 우승반지를 손가락에 끼지 못했지만 활용가치가 높은 그를 많은 팀들이 가만히 놓아둘 리가 없다. 만약, 로빈슨이 우승반지를 끼지 못하고 이대로 묻혀진다면 그는 영영 '과소평가' 받은 채 커리어를 마감할 지도 모른다. 그래서, 클리포드 로빈슨은 남은 커리어 기간 동안에 우승반지를 얻어야 한다. 그래야, 그동안의 '무관심'을 조금이나마 보상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첫댓글 그렇군요..^^
참좋은선수죠...아쉬운게 디트시절에도 잘했는데 골스로 트레이드 된게....네츠로 와도 성적을 어느정도 끌어올리수는 있지만 우승은 힘들어 보입니다
디트에서 쌩고생만하다가 팀 바뀌니 우승했죠... 정말 아쉬울듯...
제목보고 딱 크리스 개틀링이 생각났는데 아 클리포드 로빈슨도 있었지요!
nba live 사기유닛인데 ~~
몇 시즌 전 플옵에서 선수들이 팀 헤어밴드를 착용하는게 유행처럼 번지더니..시초가 클리프 옹이었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