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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현대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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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 게 시 판 스크랩 훈민정음(訓民正音)과 중국(中國)의 의미
무한의주인공 추천 0 조회 49 16.09.20 18:02 댓글 2
게시글 본문내용

훈민정음의 원문에 기록되어 있는 "이호중국(異乎中國)"에서 과연 중국(中國)은 나라 즉 국가(國家)를 지칭하는 것일까요?

훈민정음의 원문에서 중국(中國)에 대한 주석을 보면, 중국(中國): 황제(皇帝)께서 계신 나라이니 우리나라 상담(常談=백성들의 속언)에 강남(江南)이라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혹자들은 훈민정음 상에 나오는 중국(中國)에 대해 중국(中國)이 국가(國家)이다. 아니다. 하는 논쟁이 있습니다. 이러한 논쟁에 앞서 역사상에서 고문헌에서 말하는 중국의 실체에 대해 심층적으로

고증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중국의 그 실체에 대해 옛 문헌들을 통하여 생각해 보았습니다.

시경(詩經) 대아(大雅) 민영(民勞)편에 대해 모전(毛傳)의 주석을 보면,中國,京師也。四方,諸夏也。(중국은 경사(수도)이다. (그 중국의 주변의)사방은 제후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고문(古文)에서의 중국은 국호(國號)가 아닌 수도(首都)를 가리키는 말이었던 것입니다. 또 사기(史記) 오제본기(五帝本紀)에서 말하는 중국에 대해 송(宋)의 배인(裵?)의 사기집해(史記集解)에서 후한(後漢) 유희(劉熙)의 글을 인용했는데 이를 보면, 劉熙曰:帝王所都爲中 故曰中國 (유희가 말하길 제왕의 도읍은 (나라의) 중앙에 있으므로 그런 연고로 중국이라 한다.)

또 춘추곡량전(春秋穀梁傳)에서 말하는 중국에 대해 동진(東晉)의 학자인 범녕(范寧)의 주석을 보면 中國猶國中也(중국은 마땅히 나라의 중앙에 있다.) 또 국어(國語) 오어(吳語)편에서 말하는 중국에 대해 오(吳)의 위소(韋昭)의 주석을 보면,中國,國都(중국은 국가의 도읍이다.) 이러한 사실들을 두고 대만의 학자인 심건덕(沈建德)씨는 시경(詩經)에 대한 주석인 모전(毛傳)에서 "중국(中國)은 경사(京師=수도(首都)다." 라는 주석이 가장 타당한 주석이라 했습니다.

후한(後漢)의 학자인 반고(班固)가 편찬한 "백호통덕론(白虎通德論)"의 기록을 보면, 경사(京師):或曰 夏曰夏邑 殷曰商邑 周曰京師 (혹 말하길 하(夏)는 하읍이요,은(殷)은 상읍이요,주(周)는 경사(京師)이다.)

위의 기록을 보면,우리가 역사상에 알고 있는 하(夏),은(殷),주(周)의 호칭이 국호(國號)가 아닌 경사(京師=수도(首都)의 호칭임을 알수 있는 기록 입니다. 또 춘추전(春秋傳)의 기록을 보면,京曰天子之居也(경사=수도는 천자가 살고 있는곳이다.)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역대의 문헌에서의 중국은 수도(首都)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가장 근본적인 그 실체는 수도였던 것입니다.후한의 학자인 반고는 하(夏),은(殷),주(周)의 명칭이 국가가 아닌 수도의 명칭

즉 조정을 대신하는 조대명(朝代名)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역대의 역사에서 천자국(天子國)이 되는 자격조건이 존재 합니다. 이와 관련 다음의 기록을 보면,

 

삼봉집 제10권  경제문감 하(經濟文鑑 下)  현령(縣令)

 

당(唐) 적(赤)ㆍ기(畿)가 있어, 망(望)ㆍ긴(緊)을 상ㆍ중ㆍ하로 나누어 6등급의 차를 두었다.
【안】 경도(京都)에서 다스리는 곳을 적현(赤縣)으로 하고, 근방 읍[傍邑]은 기현(畿縣)으로 하였으며, 호구(戶口)의 많고 적음과 토지가 좋고 나쁨에 차등을 두었으니, 호구가 많은 곳이면 망(望)으로 하고, 그 다음을 긴(緊)으로 하되, 상ㆍ중ㆍ하로 나누어 그 아래의 6등급을 만들었다.

 

위의 삼봉집의 기록을 보면,황제가 통치하는 경도(京都)와 경도에서 다스리는 곳을 적현(赤縣)이라 하며,그 근방의 읍을 기현(畿縣)이라 하고 있습니다.

위의 기록은 황제국의 자격조건을 밝히는 아주 중요한 기록 입니다. 전국 시대 제(齊)나라 추연(鄒衍)이 중원(中原) 지방을 ‘신주적현(神州赤縣)’이라고 이름하였습니다.

또《사기(史記)》 맹자순경열전(孟子荀卿列傳)에, “중국을 ‘적현 신주’라 한다.[中國名曰赤縣神州]” 하였습니다.

이후로 역사에서는 천자가 살고 있는 지역을 신주(神州),적현(赤縣),신적(神赤),신도(神都)등으로 불렀으며 기록했습니다.

위에서 본인이 언급한 춘추전(春秋傳)의 기록에서 경(京)의 의미는 천자가 살고 있는 곳(天子之居也)이란 의미 입니다. 경(京)은 천자(天子)가 살고 있는 지역을 의미하며,또 천자가 직접 통치하는 지역은

적현(赤縣)이고,또 천자가 다스리는 지역의 그 근방은 기현(畿縣)이 됩니다. 이를 합하여 경기(京畿)지방이 나온것이며 경기지방의 진정한 의미는 천자(天子)가 살고 있으며 천자가 직접 통치하는 지방이란 뜻인 것입니다. 즉 국가에 경기(京畿)지방이 있다는 것은 그 나라는 황제국임을 의미 합니다. 사기(史記)의 기록에서 중국(中國)을 신주적현(神州赤縣)이라 했습니다. 여기서 일반적인 의미로 보아도

신주(神州)나 적현(赤縣)은 국가가 될수가 없습니다. 주(州)나 현(縣)은 하나의 지방에 불과 합니다. 위의 기록에서 추연(鄒衍)이 중원(中原) 지방을 ‘신주적현(神州赤縣)’이라 했는데,

여기서 중원지방은 위의 삼봉집의 사례를 통해서 보면,경기(京畿)지방을 의미 합니다.

이와관련하여 다음의 기록을 보면,

 

간이집 제2권  기(記)  애산당기(愛山堂記)

 

오음(梧陰 윤두수(尹斗壽)의 호임) 상공(相公)이 도성(都城) 서남쪽에 초당(草堂) 하나를 새로 짓게 되었는데, 공사가 반절도 채 진행되기 전에 나에게 함께 가서 한번 둘러보자고 권하였다. 이에 내가 가서 보니 그 지역 일대가 도성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데도 깊숙하고 그윽하여 자신만의 독특한 하나의 구역을 완연히 이루고 있었으며, 초당의 위치 역시 촌락 사이에 연해 있었는데도 전망이 앞쪽으로 시원스럽게 툭 터져 있어 사람으로 하여금 마치 하늘 위를 나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하였다............
상공의 뜻을 살펴보면 처음부터 산만을 전적으로 사랑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또한 느낄 수가 있었다. 가령 상공의 뜻이 전적으로 산을 사랑하는 데에 있었다고 한다면, 상공이 비록 조정의 중대사를 처리하는 대신(大臣)의 직책에 얽매여 있는 몸이라 할지라도, 훨씬 멋들어지게 산의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기막힌 장소를 국내의 동서남북 어느 곳에서든 어찌 꼭 찾을 수가 없었겠는가. 그리고 가령 신적(神赤)의 안으로만 국한해서 찾아본다 할지라도, 백여 걸음 정도만 조금 돌아 나가도 집에서 한가하게 감상할 수 있는 빼어난 장소를 얼마든지 구할 수가 있었을 것인데, 오히려 이런 곳에다 그냥그냥 자신의 집터를 잡고 말았겠는가.

 

조선 중기의 학자인 간이(簡易) 최립은 조선의 수도를 신적(神赤)이라 기록하고 있습니다. 위에서 본인이 언급한 기록을 통해서 알수 있는 사실은 "신주(神州),적현(赤縣),신적(神赤),신도(神都)"등은

황제국의 천자만이 칭할수 있는 호칭 입니다. 제후가 감히 사용할수 있는 호칭이 아닙니다. 그런데 현재의 역사에서는 조선은 제후국입니다. 그런데 황당하게도 조선은 황제국의 호칭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는 현재의 역사가 엄청나게 왜곡된 역사임을 알수 있습니다. 실록에서 역대의 기록에서 조선의 역사는 제후와 황제의 역사가 뒤죽박죽 섞여 있습니다.

어떤 기록에서는 제후의 역사를 말하고 있고 또 어떤 기록에서는 황제의 역사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조선이 황제국으로서 제후를 거느리고 있었다는 방증인 것입니다.

위의 기록처럼 조선이 황제국의 호칭을 사용한 사례가 이뿐 일까요? 많아도 너무도 많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실록에서는 극히 제한적인 기록이 전해지는데 학자들의 문집에서는 그 사례가 넘쳐 납니다.

이와 관련된 기록을 보면,

 

잠곡유고 제10권  교서(敎書)  경기 관찰사이성구에게 내린 교서 계유년(1633, 인조 11)

 

"......생각건대, 경은 그 아버지에 그 아들로서 그야말로 난형난제(難兄難弟)이다. 대대로 충정(忠貞)에 독실하여서 내직과 외직에서 부지런히 종사하였고, 집안 대대로 청백(淸白)함을 전해 여러 사대부들의 모범이 되었다. 경이 지성을 다해 봉공(奉公)하는데, 내가 어찌 사사로운 정을 가지고 헛되이 제수하겠는가. 치적이 이미 드러나 복성(福星)이 일찍이 주유(朱維)에서 반짝였고,여정(輿情)이 모두 기뻐하여 환뢰(歡雷)가 응당 적현(赤縣)서 울릴 것이다. 이에 경을 경기 관찰사로 삼는 바이니, 나의 이 명을 공경히 받들어서 즉시 그대가 받은 지역으로 가라......."

 

신증동국여지승람 제8권  경기(京畿)  음죽현(陰竹縣)

 

○ 정이오(鄭以吾)의 기(記)에, “음죽현(陰竹縣)이 삼국 시대에는 죽주(竹州)의 속현(屬縣)이었는데, 고려에 와서 쪼개어 현관(縣官)으로 만들었다. 국초에 태조(太祖)께서 도읍을 한양(漢陽)에다 정한 뒤에, 분할하여 기내(畿內)로 편입되어 적현(赤縣 경기도의 군현)이 되었으니, 어찌 천시(天時)ㆍ풍토(風土)가 고금의 변함이 있겠으며, 사람의 일이 따라서 옮겨지고 달라질 것인가. 이것은 음죽현이 두 번째 시초된 것이다. 표장하고 장려하며 교화하고 인도하는 시설이, 마땅히 여러 현에 솔선하여 사람들의 이목을 가다듬게 하여야 하겠는데, 홀로 문묘와 학교를 설립하지 않았으니, 아직 기다렸던 것인가.

 

신증동국여지승람 제35권  전라도(全羅道)  나주목(羅州牧)

 

신증』 관로소매경우탁(官路小梅經雨?) 김시습(金時習)의 시에, “금성(錦城)의 꽃 속에 와서 봄놀이를 하니, 꽃 아래 생황(笙篁)의 노래 나그네 수심을 방랑케 하는구나. 관청 큰 길의 작은 매확는 비를 맞아 벌어지고, 역정(驛亭)의 실버들은 바람에 불려 부끄러워하는 듯. 한 떼의 구름이 바다를 덮었는데 때때로 나팔 소리 들리고, 옥 같은 달은 창을 비취는데 홀로 누각에 의지하도다. 해거름의 호남(湖南)은 배나 쓸쓸하다. 오운(五雲)이 깃들인 서북쪽은 신주(神州 임금이 있는 곳)로다.” 하였다.

 

아계유고 제2권  기성록(箕城錄) ○ 시(詩)  감회(感懷)

 

송촌에 오랜 나그네 또 가을 오매 놀라나니 / 松村久客又驚秋
경물이 사람 어지럽혀 눈길마다 감회가 이네 / 景物?人感觸眸
잿마루의 달에 마음 쏠리고 귀밑털에 서리 내려 / 嶺月關心霜着?
바닷바람은 눈물을 불고 비는 시름을 더하누나 / 海風吹淚雨添愁
술이 회포를 너그럽게 해도 회포를 잊긴 어렵고 / 酒能寬抱難忘抱
시가 근심을 물리쳐도 근심을 풀지는 못한다오 / 詩可排憂未解憂
고향이 그리워 아녀자처럼 우는 게 아니라 / 不是懷鄕學兒女
천리 밖 오운이 서울을 가로막고 있네 / 五雲千里隔神州

 

용재외집  부(賦)  세 원수(元帥)를 조상하며

 

시대가 달라졌어도 분노는 외려 아니 풀려 / 憤有異世猶不洩
그래서 나의 마음이 격렬해지누나 / 故余心之激烈
어찌하여 아무 죄 없는 세 원수가 / 何三帥之無辜
이토록 참혹한 화를 당했단 말인가 / 羌遭此之慘酷
홍건적이 으르렁거리며 침입해서 / 紅寇?然而內?
우리 백성들 마구 학살할 때 / 恣魚肉乎生民
이 나라 강토가 적에게 유린되었고 / 神州擧爲陸沈
임금의 행차 허둥지둥 몽진하였지 / 乘輿蕩而蒙塵
만약 여러 장수들이 협력하지 않았다면 / ?非諸將之協力
뉘라서 도성을 수복할 수 있었으리요 / 疇克收復乎王京

 

점필재집 시집 제14권  [시(詩)]  도사 이세우의 시권에 두 수를 쓰다[書李都事世佑詩卷二首]

 

상서랑 삼 년에 집 천정은 머리에 닿았으나 / 郞署三年屋打頭
포정의 눈 밑에 온전한 소가 없었다오/ ?丁眼底欠全牛
높은 재주는 주머니의 송곳을 배우리오/ 高才肯學囊中穎
웅대한 뜻은 응당 막부의 계책을 꺼리리라 / 壯志應嫌幕裏籌
보리는 잘 되어라 공의 실혜를 알겠고 / 宿麥連雲知實惠
사당에 앵도 천신함은경기도에 으뜸일세 / 含桃薦廟首神州
영남의 관찰사는 그대 집안의 물건이니 / 嶺南節鉞君家物
부로들이 장차 면류관 쓰고 다니는 걸 보리라/ 父老行看露冕遊

 

점필재집 시집 제21권  [시(詩)]  우중에 직산을 출발하다[雨中發稷山]

 

위례성에 비 올 기미가 매우 농후한데 / 雨氣??慰禮城
피리 소리는 어이하여 가는 길을 재촉하는고 / 簫?何事促人行
진흙탕물이 옷 더럽힘을 꺼려서가 아니라 / 非嫌泥水征衫?
점차 서울과 멀어지니 서운함을 못 견디겠네 / 漸隔神州不耐情


 조선후기의 문신(文臣)이었던 김육의 "잠곡유고"에서는 임금의 교서를 기록하고 있는데 임금의 교서에서 신하의 치적을 치하하면 그 치적이 적현(赤縣)에 울릴것이라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음죽현(陰竹縣)이 적현(赤縣)에 편입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위의 설명에서 처럼 적현(赤縣)은 사기(史記)와 추연의 기록처럼 중국(中國)을 의미 합니다.

전라도 나주목을 설명하면서 전라도의 서북쪽에 신주(神州)가 있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조선 중기의 정치가인 이산해의 "아계유고"에서는 "천리 밖 오운이 서울을 가로막고 있네 /

五雲千里隔神州"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한국 고전번역원의 번역에서는 신주(神州)를 서울로 번역하고있습니다.

아주 타당한 번역 입니다. 그런데 조선왕조실록의 번역에서는 신주(神州)가 중국(中國)으로서 하나의 국가로 번역되고 있습니다. 즉 번역의 일관성이 없는 번역 입니다.

역사에서 신주(神州)는 하나 밖에 없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사실처럼 신주(神州)는 중국(中國)이며 신주=중국은 경사(京師=수도(首都)의 의미 입니다. 또

조선 전기의 문신이었던 이행의 시문집인 "용재외집"의 기록에서는 "홍건적이 으르렁거리며 침입해서 / 紅寇?然而內?  우리 백성들 마구 학살할 때 / 恣魚肉乎生民
이 나라 강토가 적에게 유린되었고 / 神州擧爲陸沈  임금의 행차 허둥지둥 몽진하였지 / 乘輿蕩而蒙塵"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위의 기록은 고려 시대 상황을 시문으로 남긴것인데,

번역이 참으로 이상 합니다. "이 나라 강토가 적에게 유린되었고 / 神州擧爲陸沈" 이 기록에서 "신주(神州)"를 "이 나라 이 강토"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것 처럼 "신주(神州)"는 전국 시대 제(齊)나라 추연(鄒衍)이 중원(中原) 지방을 ‘신주적현(神州赤縣)’이라고 말한 사실에서 기인된 용어이며 또 신주는 사기(史記)의 기록처럼

신주적현(神州赤縣) 즉 중국(中國)으로서 다시말해서 천자가 통치하는 수도 입니다. 위의 기록에 대한 바른 번역은 "천자가 통치하는 수도(首都)"라 해야 됩니다. 위의 기록의 번역자는 현재의 사관에

충실해서인지 원문에 대한 진정한 의미인 위의 사기(史記)와 추연(鄒衍)의 기록등을 무시한채 엉뚱한 번역을 하고 있습니다. 또 조선 전기의 학자인 김종직의 "점필재집"의 기록에서

"사당에 앵도 천신함은 경기도에 으뜸일세 / 含桃薦廟首神州" 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여기서 "사당에 천신함"이라는 의미는 예기(禮記)의 기록을 인용한 것인데, 예기에서 "월령(月令)에 의하면, 중하(仲夏)의 달에는 앵도(櫻桃)를 사당에 천신(薦新)한다고 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햇곡식,햇과일을 조상신에게 감사의 의미로 올리는 것을 말합니다. 아무튼 사당에 앵도를 바치는 것은 경기도에서 으뜸이라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번역자는 신주(神州)를 경기도라 번역하고 있습니다. 위에서 본인의 설명처럼 신주(神州)는 천자(天子)가 살고 있는 곳 입니다. 신주는 수도를 말하는 것이고 적현은 천자가

직접 통치하는 지역이며 적현의 그 근방 지역이 기현이 되므로 넓은 의미로 볼때 경기도가 중국(中國)이며 좁은 의미로 볼때 천자가 살고 있는 수도=신주와 신주의 통치를 받는 적현이 중국(中國)입니다.

위의 번역은 구체적인 의미를 밝힌 번역은 아니지만 그나마 합리적인 번역으로 볼수 있습니다. 위의 번역을 합리적으로 번역하면 "사당에 앵도 천신함은 황도(皇都)에 으뜸일세"라고 해야 합니다. 또

위의 점필재집의 기록에서 "점차 서울과 멀어지니 서운함을 못 견디겠네 / 漸隔神州不耐情"라는 기록처럼 조선의 수도를 신주(神州),신도(神都)라 기록한 사례가 학자들의 문집에서 무수하게

넘쳐 납니다. 조선의 학자들 선비들은 유교적인 대의명분과 예절과 질서를 목숨처럼 지키는 사람들 입니다. 이러한 사고방식을 가진 이분들이 조선의 수도를 신주(神州),신도(神都)라 칭함은

조선에 중국이 있었다는 방증 입니다. 이와 관련 다음의 기록을 봅시다.


홍재전서 제117권  경사강의(經史講義) 54 ○ 강목(綱目) 8  [당 고종(唐高宗)]

 

"........이른바 신주(神州)라는 것은 구주(九州) 이외에 별도로 한 지역이 있어 그것을 신주라 이름한 것인가, 아니면 중국을 지칭하는 황도(黃圖), 요도(瑤圖), 적현(赤縣), 제주(齊州)의 호칭처럼 구주를 총칭하여 신주라 이름한 것인가?"

[진사(進士) 이노익(李魯益)이 대답하였다.]
"..........신주(神州)는 곧 왕이 직접 다스리는 기내(畿內)를 지칭하는 것이고, 지신(地神)은 또한 후토(后土)라고도 부릅니다. 따라서 신주는 구주(九州)의 총괄적인 명칭도 아니요, 구주 이외에 다시 신주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위의 기록인 홍재전서는 정조 임금의 저작인데,위의 기록을 보면 한국고전번역원의 번역자들이 현재의 사관에 입각하여 지나친 의역을 하고 있습니다. 위의 기록의 원문을 보면,

 

所謂神州。抑九州之外。別有一州而名以神州歟。或九州之總名爲神州。而如黃圖瑤圖赤縣齊州之稱者歟。

(소위 신주라는것은 구주 이외의 별도로 한 지역이 있어 그것을 신주라 이름한 것인가? 혹 구주의 총칭이 신주가 되는가? 그리고 (신주는) 황도,요도,적현,제주와 같은 명칭인 것인가?)

이런식으로 번역해야 제대로 된 의미를 알수 있습니다.왜 한국고전번원역원 번역이 지나친 의역인지 증명해 보겠습니다. 위의 번역원의 번역에서 원문에도 있지도 않는 중국을 끌어다가

중국을 지칭하는 것은 황도(黃圖), 요도(瑤圖), 적현(赤縣), 제주(齊州)라 했고,중국은 구주이다(구주=국가로서의 중국)라는 등식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즉 번역자의 의도는 중국=국가 이다.라는 의미의 해석 입니다. 이는 말도 되지도 않는 지나친 의역 입니다.황도의 의미는 기보(畿輔)와 같은 말로, 경성(京城)이나 그 주위를 가리키는 용어 입니다. 즉 황도는 중국으로서 신주인 것이며 경성이나 그 주의를 가리키

므로 경기도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또 요도의 원래의 의미는 신선이 사는곳을 말하나 문헌상에서 말하는 요도의 의미는 제왕의 족보를 의미 합니다. 즉 제왕의 족보가 있는곳은 수도(首都)이므로

중국이며 신주인 것입니다.또 적현의 의미는 위에서 상세히 설명 한바 처럼 적현은 신주적현의 줄임말로 수도이며 중국이며 신주 인 것입니다. 또 옥편을 보면 제주(齊州)는 중국을 말하며 중주(中州)를

가리킨다고 되어 있습니다. 또한 현재의 역사에서 제주는 산동지역에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네이버 검색에서 중국어 사전을 보면,중주는 대륙의 하남지역을 말한는것이며 구주(九州)의 가운데에

있다하여 붙은 이름이라 되어 있습니다.즉 현재의 역사에서 제주=중주가 산동지역에 있었다는 학설은 잘못된 학설임을 알수 있고, 또한 제주=중주는 구주의 총칭이 아님을 알수 있습니다.

즉 제주=중주의 실체는 크게는 경기도이며 작게는 신주이며 적현이며 수도 였던 것입니다.이러한 역사적인 기록이 존재하거늘 이를 제대로 고증하지 않고

"중국을 지칭하는 황도(黃圖), 요도(瑤圖), 적현(赤縣), 제주(齊州)의 호칭처럼 구주를 총칭하여 신주라 이름한 것인가?" 라며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 번역에서 번역자는 중국을 지칭하는게  황도(黃圖), 요도(瑤圖), 적현(赤縣), 제주(齊州)이며,이들의 호칭처럼 구주를 총칭하여... 라고 번역했으므로 번역자의 해석은  황도(黃圖), 요도(瑤圖), 적현(赤縣), 제주(齊州)가 구주의 총칭이라는 의도가 깔린 해석 입니다. 그러나 네이버 검색에서 중국어 사전에 의하면 중주는 대륙의 하남지역을 말한는것이며 구주(九州)의 가운데에

있다하여 붙은 이름이라 되어 있습니다. 즉 제주=중주는 구주의 총칭이 아니라는것을 알수 있으므로 번역자의 번역은 현재의 사관에 입각한 지나치게 자의적인 의역을 하고 있음을 알수있으며

원문에서 전하는 내용을 잘못된 방향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이는 번역자가 현재의 사관에 입각한 해석을 하므로 이러한 현상은 당연한 귀결이나 본인이 위에서 언급한 고증처럼 이러한 고증을

상세히 하지 않고 번역을 한다는 것은 또 다른 역사의 왜곡을 양산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매우 걱정스런 사실 입니다. 위의 기록인 홍재전서의 기록을 보아도 수도(首都)로서의 중국을 말하는

신주(神州)는 구주(九州)의 총칭이 아니며 임금이 다스리는 기내(畿內)를 지칭하는 것이라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신주는 황도(黃圖), 요도(瑤圖), 적현(赤縣), 제주(齊州)와 같은 의미로서 천자의

수도를 말하는 용어 입니다. 참으로 어이없는 사실은 문헌을 고증해서 보면,황도(黃圖), 요도(瑤圖), 적현(赤縣), 제주(齊州)는 신주와 같은 의미의 용어임을 알수 있습니다.

그런데 위의 홍재전서의 내용을 번역한 번역자는 "중국을 지칭하는 황도(黃圖), 요도(瑤圖), 적현(赤縣), 제주(齊州)의 호칭처럼 구주를 총칭하여 신주라 이름한 것인가?" 라며 번역하고 있는데,

여기서 중요한 문장은 "황도(黃圖), 요도(瑤圖), 적현(赤縣), 제주(齊州)의 호칭처럼 구주를 총칭하여..."인데 번역자의 의미대로 라면

황도(黃圖), 요도(瑤圖), 적현(赤縣), 제주(齊州)는 중국을 말하며 "~호칭처럼 구주를 총칭하여" 라고 했음므로 황도(黃圖), 요도(瑤圖), 적현(赤縣), 제주(齊州)는 구주를 총칭하는 이름이라는게

번역자의 번역입니다. 그러나 위에서 고증한 내용을 토대로 보면,황도(黃圖), 요도(瑤圖), 적현(赤縣), 제주(齊州)는 신주(神州)와 같은 의미임을 알수 있습니다. 그런데 위의 홍재전서의 기록을 보면,

황도(黃圖), 요도(瑤圖), 적현(赤縣), 제주(齊州)와 같은 의미인 신주(神州)는 구주의 총칭이 아니며 임금이 다스리는 기내(畿內=경기도의 중심)를 지칭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즉 홍재전서의 원문은

본인의 고증과 일치하는데 번역자는 전혀 엉뚱한 번역을 하고 있습니다.즉 번역자의 번역은 그 자체적으로 심각한 오류를 범하고 있는 번역인 셈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훈민정음에서 말하는 중국(中國)에

대해 살펴 봅시다.

 

임하필기 문헌지장편(文獻指掌編)  훈민정음(訓民正音)

 

"세종은, 각 나라가 각기 문자(文字)를 만들어 그 나라의 방언(方言)을 기록하는데 우리나라에만 없다고 여기고, 마침내 자음(子音)과 모음(母音) 28자를 만들어 ‘언문(諺文)’이라 이름하고......."

 

청장관전서 제60권  앙엽기 7(?葉記七)  우리나라 활자(活字)의 시초

 

"삼한(三韓) 시대에 설총(薛聰)이 만든 방언 문자(方言文字)를 이두(吏讀)라 하는데..."

 

다산시문집 제14권  발(跋)  죽란물명고(竹欄物名考)에 발함

 

위의 《죽란물명고(竹欄物名考)》 1권은 내가 편집한 것이다. 중국(中國)은 말과 글이 일치하므로 한 물건을 입으로 부르면 그것이 바로 글이고, 한 물건을 글로 쓰면 그것이 바로 말이다. 그러므로 이름과 실재가 서로 어긋나지 않고 표준말과 방언이 서로 다르지 않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다. 마유(麻油 참기름) 한 가지만 예를 들어 말하더라도, 방언으로는 참길음(參吉音)이라 하고, 문자(文字)로는 진유(眞油)라고 하는데, 사람들은 ‘진유’라고 하는 것만이 표준말인 줄 알고, 향유(香油)ㆍ호마유(胡麻油)ㆍ거승유(??油) 등의 본명(本名)이 있는 줄은 모른다. 또 그보다 어려운 것이 있다. 내복(萊?)은 방언으로 무우채(蕪尤菜)라고 하는데, 이것은 무후채(武侯菜)의 와전임을 모르고, 송채(?菜)는 방언으로 배초(拜草)라고 하는데, 이것은 백채(白菜)의 와전임을 모른다. 이런 예로 말하자면 중국에서는 한 가지만 배워도 충분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세 가지를 배워도 부족하다.
내가 물명(物名)을 편집하는 데 있어서는 본명(本名)을 위주로 하고 방언으로 해석하여, 유별로 나누고 같은 종류끼리 모은 것이 모두 32장(張)인데, 누락된 것도 반이 넘는다. 그러나 규모는 이제 정해졌으니, 아마 아이들이 이를 이어서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죽란정자(竹欄靜者)는 쓴다.

 

위의 임하필기의 기록에서 훈민정음의 창제이유에 대해 방언(方言)을 기록하기위해 창제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이 방언에 대해 네이버 백과를 보면,

"공통어나 표준어와 다른 어떤 지역의 특유의 단어나 언어적용법"이라 말합니다. 즉 위의 기록에서 방언의 개념은 조선의 수도 이외의 지방의 언어를 의미 합니다.

또한 청장관전서에서는 신라의 설총이 만든 이두문자 역시 방언문자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이두문자를 두고 향찰(鄕札)이라고 기록한 그 이유가 신라의 수도 이외의 지방의 언어를 기록하기 위한 방편의 문자였기 때문입니다.

또 위의 다산시문집의 기록을 두고 혹자들은 본인의 설(說)이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말합니다.다산시문집에서 "중국은 말과글이 일치하는데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다."는 기록

을 근거로 제시 합니다. 그런데 위의 다산시문집의 기록인 "중국은 말과글이 일치하는데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다." 라는 기록의 원문을 보면,"우리나라"에 해당되는

원문은 동방(東方)입니다. 동방은 조선을 일컨는 말이라 합니다. 그런데 위의 다산시문집의 기록에서 "중국은 말과글이 일치하는데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다." 라는 기록과 더불어

"마유(麻油),진유(眞油)의 방언(方言) 즉 지방어(地方語)가 참길음(參吉音=참기름) 이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위의 기록에서 동방(東方)을 우리나라 라고 해석을 하고

있는데 위의 다산시문집의 기록에 의하면 참기름의 표준어는 마유(麻油),진유(眞油)이고 참기름의 표준어인 마유(麻油),진유(眞油)등을 방언(=지방어=동방어)으로는 참길음(參吉音)

이므로 동방(東方=우리나라)은 조선의 지방의 총칭임을 알수 있습니다. 즉 위의 다산시문집의 기록에서 "중국은 말과글이 일치하는데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다." 라는 기록의

진정한 의미는 조선의 수도인 중국(中國)은 말과 글이 일치하므로 사물에 쓰이는 용어를 배움에 하나만 배워도 충분하지만 조선의 수도 이외의 지역인 조선의 지방에서는 표준어인

조선의 수도에서 사용되는 표준어와 달리 지방어가 두루 쓰여서 표준어를 기준으로 여러가지를 배워도 부족하는 기록인 것입니다. 위의 기록에서 중국에서 쓰이는 말이 표준어라

했고 또한 동방지역에서 쓰이는 말을 방언 즉 지방어라 했으므로 위의 기록에서의 중국은 조선의 수도를 가리키는 말임을 알수 있습니다. 또 위의 기록에서 "중국(中國)은...

표준말과 방언이 서로 다르지 않다."라는 기록을 두고 어떤 사람은 중국이 국가(國家)이기에 그 중국의 표준어가 있고 중국의 지방어인 방인이 있다.면서 본인의 설(說)이 잘못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위에서 본인이 고증한 사례를 보면 "삼봉집"의 기록에서 (황제가)다스리는 경도(京都=神州)에서 직접 통치하는 지역은 적현(赤縣)이라

했고,경도와 적현 이 외의 지방은 기현(畿縣)이라 했습니다. 즉 경도와 적현,기현을 합하여 통칭 경기도가 됩니다. 경기도는 황제가 통치하는 수도가 있다는 의미의 지방명 입니다.

중국이란 크게보면 경기도를 말함이며 작게는 경도와 적현을 의미 합니다.사기(史記),전국시대 추연의 기록에 의거하면 중국에 대한 본래의 의미는 경도와 적현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경기도 내에서 중국은 경도와 적현이며 경도와 적현 이 외의 지역은 중국의 지방이 되는 것입니다. 즉 위의 기록인 다산시문집에서 말하는 기록의 의미는 경도와 적현을

의미하는 중국과 경도와 적현을 둘러싸고 있는 경기도의 여러 지방의 말들이 서로 다르지 않다는 의미인 것입니다.이와 관련하여

또 위의 조선 후기의 대학자인 이유원의 임하필기의 기록에서는 "훈민정음의 창제이유에 대해 방언(方言)을 기록하기위해 창제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즉 조선의 지방에서 통용되는 지방어를 기록하기 위해 훈민정음을 창제 하였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알수 있는 사실은 반대로 조선의 수도(首都)에서는 굳이 훈민정음이 필요하지가 않았다는 사실을 알수 있습니다.

또 위의 다산시문집의 기록에서 "중국은 말과글이 일치하는데 우리나라(동방)는 그렇지 않다."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즉 조선의 수도는 말과 글이 일치하므로 조선왕조실록,각종 공문서,학자들의 문집등이 한문(漢文)으로 쓰여졌던 것이고 조선의 수도 이외의 지역 즉 지방에서는 각 지방마다의 사투리(방언)로 인해 한자로 일일히 기록하는게 한계가 있으므로 훈민정음을 창제하여 발음체계의 통일과 서로의 의미전달을 원활하게 하고자 하였던 것입니다.일상 생활에서 쓰이는 용어인 참기름을 두고 조선의 수도인 중국에서는 마유(麻油),진유

(眞油) 라고 하는데 조선의 지방인 동방지역에서는 참기름 이라고 말합니다.조선의 수도인 중국에서 조선의 지방인 동방사람에게 참기름을 마유(麻油),진유(眞油)라 하면 이를 이해

할수 없습니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 입니다. 이와 관련된 기록인 훈민정음 원문에서 "國之於音異乎中國 與文字不相流通(나라(사람들의) 말소리가 중국과 달라서 문자와 더불어 말이 서로 통하지 않았다.)"라는 기록의 의미를 이제서야 이해할수 있습니다.1919년의 "기미독립 선언문"의 기록을 보면,조사와 말의 토씨만 빼면 완전히 한문(漢文)

으로만 이루어진 문장들 입니다. 즉 1919년 이 당시에만 해도 조선의 수도에서는 이러한 완전히 한문으로만 이루어진 문장들을 사용하였고 이는

이 당시 조선의 수도사람들의 언어 사용법임을 알수 있습니다.오늘날의 교육에 있어서 한글전용,일제 강점기 당시의 한글학회등에서 한글의 압도적 전용은 누군가에 의해 의도된

역사말살책 이라 생각됩니다. 위의 고증으로 알수 있는 사실은 조선의 수도인 중국에서는 한문전용이 이루어진 사회였고 또 조선의 수도에서 통용되는 표준어는 어디까지나

한문체계였고 한문체계에 맞춰진 표준어의 발음과 그 의미를 조선의 지방인 동방지역에게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서 그 방편으로 훈민정음을 창제하였는데 한글전용을 이룬다는

것은 조선의 수도인 중국과 조선의 지방인 동방지역과 그 경계가 생겨 역사적으로 아무런 관련이 없는 역사가 되어 버립니다. 이러한 의도하에 누군가가 한글전용을 추진하였던

것입니다. 위에서 고증한 결론은 중국은 조선 없이는 성립이 되지도 않으며 조선 또한 중국 없이는 성립이 될수 없는 관계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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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6.09.21 11:41

    첫댓글 중국은 명(明)나라라는 것을 의미하고 사대주의적인 발상입니다
    굳이 긴 문장으로서 따질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문장이 너무 길고 해독하기 어렵습니다

    한글은 컴퓨터시대에 알맞은 언어입니다~~

  • 16.09.21 14:15

    맞습니다.
    한글은 세계 제일의 소리글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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