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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에 헨리 1세의 왕비 마틸다 왕비 이야기로 마쳤습니다. 흠...
이 이야기를 길게 서술한 이야기는 훗날 에드워드 1세가 왜 그리도 집요하게 스코틀랜드 먹으려고 안달을 했는지 선행 설명을 해야 할 것 같아서요... 마틸다로 인해 그의 외손자 헨리 2세는 당당하게 스코틀랜드 계승권을 주장할 수 있겠되었거든요. 물론 종가가 단절된다는 조건에 한해서였지만... 플랜타지네트 가문 입장에서는 브리튼 섬을 통일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준 고마운 할머니였죠... 헨리 2세가 왜 그리 잘난 척 할 수 있었겠습니까?
헨리 2세는 밑천은 프랑스인이었고 노르만 혈통이 조금 섞힌...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입장에서는 진짜 이방인에 불과했는데... 헨리 1세의 결혼 한 방에 계승권 둘을 다 확고하게 확보 가능케 되었던 것입니다. 스코틀랜드의 역사에서 보면 도널드 2세는 진짜 나쁜 넘이 된 거죠. 조카들을 추방했다가 계승권이 잉글랜드로 넘어가 버렸으니...
자 다시 House of Dunkeld (1034–1286)의 시대로 돌아갑니다...
데이비드 1세(David I, 1084-1153)은 맬컴 3세의 막내 아들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왕위계승권 이야기는 저 멀리 은하 밖이라... 앵글로 색슨 계열의 헌팅던과 노섬벌랜드 백작(Waltheof, 1st Earl of Northumbria)의 장녀 모드랑 결혼해서 명목상 헌팅던 백작이 됩니다.
즉... 모드의 아버지는 윌리엄 정복왕의 여동생인 아델라이드(Adelaide of Normandy)의 아들이었는데 반란을 일으켰다가 로부터 참수되고 노섬벌랜드를 몰수당하게 됩니다. 장녀였던 모드(Maud, Countess of Huntingdon)는 헌팅던 영지만을 물려받았는데 Simon de Senlis이란 남자랑 첫 결혼 했다가 3자녀를 얻고 과부가 됩니다. 백작령을 소유한 귀족 여성인지라 데이비드라는 영지도 없는 놈팽이 왕족이 붙죠...
데이비드랑 모드 사이에 2남 2녀가 태어납니다만... 어른으로 성장하는 자녀는 2남이었던 헨리(Henry of Scotland, 1114-1152) 뿐이었죠. 헨리는 이부형님이 죽자 명목상의 헌팅던과 노섬벌랜드 백작이 됩니다... 실제로 영지는 모두 잉글랜드왕이 가져가서 딴 넘에게 준 건데... 헨리는 여전히 어미니를 통해 영지 내 놓아라 요구하는 명목상 백작님이었죠... 참 헨리의 이름은 고보부였던 헨리 1세를 따서 지었다고 합니다. 제발... 선조들의 영지 좀 돌려주세요... 라는 심정으로요. 친인척간 대부나 대모가 되면 이름을 따라 짓는 풍습이 많은데... 이 덕분에 여러 나라로 이름이 널리널리 퍼져나갑니다. 다음 기회에 고유 이름의 이동도 한 번 소개해 드리죠. 게임에서도 엄청 확실히 구현하더군요. 무서운 역설사...
헨리는 상당히 상징적인 결혼을 합니다. 아내는 아다 드 워렌(Ada de Warenne)인데 노르만계 잉글랜드 귀족 여성입니다. 그녀의 부모는 윌리엄(William de Warenne, 2nd Earl of Surrey, d. 1138)과 엘리자베스(Elizabeth of Vermandois)인데 엘리자베드의 가문이 베르망두아... 즉 카를링거 가문의 마지막 혈손이 가졌던 영지의 명칭입니다. 베르망두아 가문도 한 번 소개드려야 되는데... 흠... 아무튼 드 워렌 가문은 시작은 윌리엄 1세의 평범한 기사였지만 2대 백작의 결혼 한 방에 상급 가문으로 성장합니다. 아마 게임 내에서는 켄트 쪽에서 시작되던데요. 장미전쟁 때 꽤 유명한 귀족 가문으로 성장합니다...
아무튼 아다 드 워렌은 카페 가문을 부계로(외조부가 프랑스왕 앙리 1세의 아들 위그) 카를링거 가문을 모계(외조모가 베르망두아 여백작 아델라이드 카를링거)로 두었던 프랑스 최고 명문 출신 어머니(이름은 Elizabeth of Vermandois, Countess of Leicester)로 둔 앵글로-노르만계 여성이었습니다. 이 결혼으로 스코틀랜드 왕가는 카페 가문과 카를링거 가문과도 혈통이 연결됩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키예프대공 야로슬라프까지 4대조로 두고 있죠. 점점 화려해 지는 혈통... 그리고 헨리와 아다 사이에는 모두 7명의 자녀가 태어납니다.
1. 맬컴 4세(Malcolm IV, d. 1165) 나중에 조부를 이어 스코틀랜드왕이 됨.
2. 윌리엄(William I ‘the Lion’, d. 1214) 외조부 윌리엄 드 워렌의 이름을 따 명명됩니다. 앞서 보시면 알겠지만 왕실에 점점 스코틀랜드 고유 이름보다는 외국에서 들여온 이름들이 왕자, 공주의 이름에 붙혀지죠. 그만큼 통혼권이 넓어진다는 반증입니다. 형을 이어 스코틀랜드왕이 됩니다. 별칭이 라이온인데 왜 붙었는지 잘 모르겠네요. 그다지 용맹한 인물은 아닌데...
3. 마가렛(Margaret) 두 번 결혼하는데 첫 결혼은 브레타뉴공작 코난 4세(Conan IV, Duke of Brittany) 였고, 두 번째 결혼은 험프리 드 보훈(Humphrey III de Bohun)이라는 잉글랜드 귀족이랑 합니다.
여기서... 명탐정 코난의 어원은 흥미롭지만 브레타뉴의 고대 이름에 등장합니다. 코난... 미래소년 코난도 있고 명탐정 코난도 있죠... 이 이름은 잉글랜드로 전해져서 셜록 홈즈의 작가 코난 도일도 이 이름을 물려받죠.
4. 데이비드(David of Scotland, Earl of Huntingdon) 부인은 마틸다(Matilda of Chester)로 앵글로-노르만계 귀족 여성입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휴(Hugh de Kevelioc, 5th Earl of Chester)이고 어머니는 베르트레드(Bertrade de Montfort)로 유명한 몽포르 가문 출신이었죠. 그냥 전형적인 노르만 귀족으로 보시면 됩니다. 이 데이비드와 마틸드 사이에 태어난 자손들이 브루스 가문과 연결됩니다.
5. 마틸다(Matilda) 유아사망
6. 마조리(Marjorie) 국내 귀족인 앵거스백작 질(Gille Críst, Earl of Angus)과 결혼.
7. 아다(Ada) 대륙으로 시집가서 플로리스 3세(Floris III, Count of Holland)와 결혼.
데이비드 1세의 유일하게 자손을 남긴 아들 헨리입니다.
노섬벌랜드 때문에 잉글랜드랑 자주 충돌을 일으키죠... 상속이 최고여~
데이비드 1세가 죽은 후 후계자는 손자인 맬컴 4세(Malcolm IV)였습니다. 12년을 통치했던 그는 별칭이 ‘the Maiden’ 즉... 아가씨... 였죠. 24세에 죽었는데 결혼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치세는 잉글랜드왕 헨리 2세와 겹쳐집니다.
헨리 2세... 이 야심만만한 왕이 맬컴을 어떻게 보았을지... 맬컴은 헨리 2세에 대해 할머니로 부터 전해진 노섬벌랜드 영지를 반환해 달라고 노력했고 또한 동생 윌리엄에게 주려고 노력 합니다. 당시 윌리엄은 형식적으로는 잉글랜드 영토인 노섬벌란드, 헌딩턴, 체스터 등을 물려받는데 헨리 2세가 인정할리 만무했죠. 맬컴은 헨리 2세를 만나러 더비까지 찾아가서 경의를 표하고 영지를 받으려고 했다는... 아무튼 2번 만남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건 헨리 2세가 프랑스의 영지인 아키텐을 인정받기 위해 프랑스왕을 찾아가는거랑 비슷한 봉건적인 예의죠. 맬컴은 잉글랜드의 영지인 노섬벌랜드를 받기 위해서 헨리를 찾아가는... 아무튼 봉건제도의 진리는 이렇게 봉신간의 계약이라는 것이 존재해서 우리 정서에는 이해 안되는게 많은 것 같아요. 그러니 게임도 이해하기 힘들죠...
형을 이어 즉위한 윌리엄 1세(William I the Lion, 1143-1214)는 스코틀랜드 역사상 2번째로 오래 재위한 군주였습니다. 1등은 제임스 6세로 58년간... 강보에 쌓여서 즉위했기에... 아무튼 윌리엄 1세는 1165년 즉위하여 1214년 죽을 때까지 군주노릇을 합니다... 오랜 기간 통치했으니 자손도 많습니다. 물론... 사생아가 많다는 이야기입니다... 흠...
윌리엄은 상당히 늦게 결혼합니다. 왕이 된지 21년이 지난 1186년에 비로소 결혼을 하게 됩니다. 그러니 사생아가 많을 수밖에... 없겠죠? 대략 6명 정도는 확실하게 알려져 있어요.
왕비는 에르멩가르드(Ermengarde de Beaumont, 1170-1234)로 아버지는 리처드(Richard I, Viscount de Beaumont), 어머니는 루시(Lucie de l'Aigle, Richard II de l'Aigle의 딸)로 잉글랜드 귀족이지만... 귀족치곤 신분이 낮은 여성입니다.
그러나 그녀가 선택된 데에는... 헨리 2세의 꼼수가 좀 있었죠...
스코틀랜드 왕가가 잉글랜드 왕가와 대등한 수준이기를 좋아하지 않았죠. 너희는 우리보다 하급 왕실이다... 알간???
뭐 이런 메시지가 깔린 듯... 확실히 헨리 1세의 딸 마틸다는 제국 황후도 되었죠...
그녀의 조모는 콘스탄스(Constance Maud FitzRoy)로 헨리 1세의 사생아였으며, 로셀린(Roscelin, Viscount of Beaumont)과 결혼해서 리처드를 낳았고, 리처드의 딸이 에멩가르드였습니다. 헨리 2세에게는 서이모 아들의 딸, 즉 사촌조카딸인지라 상당한 결혼 혼수를 마련해줍니다. 즉 헨리는 윌리엄에게 에딘버러의 몰수했던 성과 수 백명의 기사를 먹여 살리는 토지 등 상당한 영지와 재산을 하사합니다. 잉글랜드 때문에 왕 노릇 제대로 못하고 있었던 윌리엄에게는 그다지 밑지지 않은 장사... 아니 결혼이었죠.
실제로 윌리엄은 엄청 바람둥이였습니다. 결혼 전부터 많은 바람으로... 아무튼 그런 삶을 살다가 ‘매력적이고 재치 있고 언변이 능했던’ 에멩가르드와 결혼한 후 상당히 충실한 남편으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뭐 43세에 성실한 인간으로 돌아왔다면 얼마나 대단했을는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에멩가르드의 수완은 대단했다고 하네요. 그녀는 자신이 낳은 아들을 후계자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죠... 윌리엄과 에멩가르드 사이에는 4자녀가 태어납니다.
1. 마가렛 (Margaret, 1193–1259) 잉글랜드 귀족인 헐버트 드 부르그(Hubert de Burgh, 1st Earl of Kent)와 결혼합니다.
2, 이사벨 (Isabella1195–1253) 잉글랜드 귀족인 로저 비고드(Roger Bigod, 4th Earl of Norfolk)와 결혼합니다.
3, 알렉산더 (Alexander II of Scotland, 1198–1249) 나중에 스코틀랜드왕이 됩니다.
4. 마조리 (Marjorie, 1200–1244) 잉글랜드 귀족인 길버트 마샬(Gilbert Marshal, 4th Earl of Pembroke)과 결혼합니다.
두 사람의 딸들은 공주인데도 좋은 집안에 시집가길 못했네요. 아무래도 어머니가 ‘서자의 자손’이라는 결함이 있기 때문일 겁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서자 계열은 좀 대접받지 못하네요...
여담인데 게임 내 배우자의 선택은 ‘대등한 결혼’을 조건으로 합니다. 게임 때 절대 자식에게 남작 작위를 주면 안 됩니다. 평민과 결혼합니다... 그리고 게이머가 왕일 경우 자식은 공작 이상으로 분봉해주세요... 작위가 낮으면 며느리가 좋은 데서 안 들어옵니다... 족보가 형편없어져요. 금빛으로 빛나는 족보를 만들고 싶다면 응당 상응하는...
윌리엄 1세입니다. 플레이 할 수 있어요...
적자가 막내라서... 더 자식을 낳은 것이 좋습니다...
그렇지만 100% 확률로 또 아무 침실로 기어들어가는... (생략)
설명을 도식으로 표현해 보았습니다. 포샾 활용...!
이해를 돕기 위한... 정말 이런 건 구현 잘해요... 역설사!!!
이 사람이 역사에서 브루스 가문에게 왕관 쓸 기초를 닦은 데이비드입니다.
늙었는데 자식이 어려서... 한 번 플레이 했다가 바로 사망 하는 바람에... 어이가 없는 적이...
개인적으로 여성으로 플레이를 좋아하지 않아요. 워낙 크베(?)가 자주 나와서...
이때도 장녀로 계속 했는데 늙은 큰아버지(음탕을 달고 있슴)가 여백작 좋다고 침실로...
제가 게임하다가 크게 노한 적이... 또 아침드라마 찍냐? 난 게임 중이라고~
1214년 알렉산더 2세(Alexander II, 1198-1249)이 아버지를 이어 즉위합니다. 그는 왕이 되기 전에 잉글랜드에 가서 존 왕에게 기사 작위를 받는 등 상당히 오랜 시간을 런던에서 보냅니다.
웃기는 건... 존 왕은 알렉산더의 영토를 황폐화시키면서 약탈을 감행하곤 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알렉산더는 모든 인맥을 동원... 프랑스왕 루이와 교황, 상당수의 잉글랜드 귀족들을 포섭... 존의 아들 헨리에게 충성토록 조작을 합니다... 다들 아시는 대헌장 사건... 여기에는 수 많은 내막이 있겠지만... 스코틀랜드도 이 내막에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 중요하죠...
알렉산더의 역공은 효과가 상당했죠. 존 왕은 그 권위를 잃었고 나중에 설익은 복숭아 먹고 갑작스럽게 사망신고를 냅니다. 그래서 즉위한 어린 헨리 3세와 화친을 맺고 그의 여동생 조안과 알렉산더가 결혼한다는 아주 유리한 협정을 이끌어냅니다.
이제 조금만 잘 하면... 잉글랜드 왕위도 요구할 수 있게 되니까요...
그러나 조안(Joan of England, 1210-1238)은 젊은 나이에 자식도 남기지 않고 죽고 알렉산더의 꿈은 하늘나라로...
알렉산더는 결국 잉글랜드와의 동맹을 접고 프랑스와의 동맹을 굳건히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프랑스 귀족 여성으로 눈을 돌려 1239년 마리(Marie de Coucy, 1218-1285)와 결혼합니다.
두 번째 왕비가 된 마리는 상당히 야망과 파워를 겸비했던 앙게랑(Enguerrand III, Lord of Coucy)의 딸이었습니다. 랑게랑은 어머니 앨리스(Alice de Dreux)를 통해 프랑스왕 루이 9세와는 먼 친척이었죠. 세 번 결혼했는데 앞선 두 결혼은 왕실 여성과 했지만 마지막 결혼(Marie de Montmirall이라는 여성으로 하급 귀족임)을 통해 5자녀를 두었고 그중 4녀 마리가 스코틀랜드 왕비가 되는 행운을 얻게 됩니다.
쿠시 경의 업적은 프랑스왕 필립의 장군으로 화려한 군사경력을 가졌다는 점... 즉 무력을 동원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는 장점이 딸을 왕비로 만드는데 일조를 합니다. 더 웃기는 건... 존 왕의 프랑스 내 영토를 확 줄이는데 일등 공신이 바로 쿠시 경이었다는... 두 번의 전투 승리를 통해 잉글랜드군을 박살냅니다...
알렉산더 2세의 자녀로는 ‘인정된 서녀’인 마조리와 왕비 마리가 낳은 알렉산더 3세(Alexander III, 1241-1286) 뿐이었습니다. 유일한 적통계승자로 즉위한 그는 7살 갓 넘었을 때 즉위합니다. 그리고 21세가 될 때 자신이 달성하고자 하는 모든 일을 이루어내는 기염을 토하죠... 물론 노르웨이왕 호콘과의 충돌은 그의 왕위를 위협할 정도였지만 1251년 그는 잉글랜드왕 헨리 3세의 딸 마가렛(Margaret of England, 1240-1275)과 결혼... 자식을 세 명이나 얻습니다.
문제는 유아사망...
장녀 마가렛(Margaret, 1261-1283)만이 어른으로 성장하고 아들 알렉산더(d. 1284)와 데이비드(d. 1281)는 딱 20세에 미혼으로 사망... 머리가 아픈... 스코틀랜드 왕실...입니다.
마가렛 공주는 외갓집 윈저성에서 태어났죠. 외갓집이 잉글랜드 왕실인지라... 외갓집에서 출생... 고귀한 혈통?
그래서 1281년 노르웨이왕 에릭과 결혼하면서 바로 왕비가 됩니다. 이 결혼에는 1만4천 마르크나 되는 지참금이랑 스코틀랜드 왕관도 포함되었죠. 1283년 공주 마가렛이 태어나면서 두 왕국은 합쳐질거라는...
그런데 1286년 외할배 알렉산더가 승마 도중 사고로 사망하면서 너무 이른 시기에 여왕이 즉위합니다. 3살이라는...
이제 혼돈의 시대가 약속되죠. 겨우 안정된 왕권이 확립되어 가는데 악운은 한꺼번에...
마가렛 여왕은 House of Sverre (1286–1290)의 통치를 이룹니다만... 딱 5년 하다 사망신고를 냅니다...
유일한 알렉산더 3세의 적자 계통이 소멸되면서 한 치의 앞도 안 보이는 찬탈 전쟁이 일어납니다.
결국... 왕위는 공위의 시대를 알리죠...
그녀는 평생 스코틀랜드의 땅을 밟지 않았으며 명목상의 여왕이었을 뿐이었습니다.
단지 잉글랜드왕 에드워드 1세의 희망찬 브리튼섬 통합에 희생물이 될 거라는 정도의 예상만이 남았죠...
당시 에드워드 1세는 마가렛을 며느리로 삼아 손자 대에는 브리튼의 통합 왕국을 만들거라는 구상을 합니다.
그렇지만 죽음은... 결국 무력을 부르죠. 다시 잉글랜드의 외침과 귀족들의 내전만이 스코틀랜드를 기다립니다.
마지막 여왕 마가렛 입니다. 윙글리 가문 출신이더군요. 스코틀랜드에서 스베레 가문이라고...
아무튼 이 여왕의 죽음으로 던켈드 가문의 종가 전통은 단절됩니다.
마지막 여왕의 계보입니다... 금테가 잔뜩...
마가렛 왕의 부모님들... 어머니가 이뻐서 DNA 가져다 쓴 적이...
가만히 보면 윙글리 가문도 남계단 단절되었군요... 이런...
초상난 집이 여기도 있었군요...
이제 겨우 House of Dunkeld (1034–1286)과 House of Sverre (1286–1290)의 통치가 종결되네요. 던켈드 가문의 역사는 상당히 의미를 가집니다.
먼저 스코틀랜드의 국가 기틀이 잡히고 왕권이 안정됩니다. 그 힘을 바탕으로 잉글랜드와의 충돌을 결혼과 대립을 통해 어찌되었든 존립하기 위해 노력을 다했고 충실히 임했다고 보는데요. 결국 자손이 많이 안 태어나는 통에 망하네요. 마거릿이 오래 살아서 에드워드 2세랑 결혼했다면 훗날 백년전쟁도 안 일어나고 더 빠른 시기에 브리튼 왕국이 등장했을 겁니다. 덤으로 노르웨이까지 진출했을 테니까요.
역사에서 만일이라는 가정은 성립하지 않을는지 모르겠지만 마거릿의 요절로 결국 스코틀랜드에는 정당한 국왕 자리가 결위되어 결국 공위 즉 왕이 없는 시대를 맞이합니다.
역사에서는 First Interregnum (1290–1292)라고 부릅니다.
이후의 이야기는 다음 기회로 넘깁니다. 상당한 분량이 발생하기 때문에...
지금 이 글도 너무 길어요...
첫댓글 던켈드 왕가의 비극이 참 안타깝네요. 역사가 바뀔 일이라니 ㅜㅜ 공위시대들을 보면 직전은 늘 씁쓸합니다.
던켈드 가문이 이런 스토리가 있었네요 ㅎㅎ 스코틀랜드 가문들 보면서 뭐하는 가문인지 했는데... 잘보고갑니다!
애써 키운 애들이 죽으면 가슴이 아프죠 ㅠㅠ
그 다음은 브레이브 하트와 브루스 왕의 시대로군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