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의 수요일
오늘 제1독서(요엘2,12-18)에서, 요엘 예언자는 주님의 날을 예언한 뒤 하느님의 심판을 선언하면서도, 백성에게 마음을 다하여 주 하느님께 돌아오라고(12절), 그분은 너그러우시고 자비로우시며, 분노에 더디시고 자애가 크신 분임을 믿고(13절) 회개할 것을 호소하였습니다.
오늘 제2독서(2코린5,20─6,2)에서,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과 화해하라고 간곡하게 권고하였습니다. 하느님의 은총을 헛되이 해서는 안 되며(6,1), 지금이 바로 은혜로운 때이자 구원의 날이기(2절)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복음(마태6,1-6.16-18)에서, 예수님께서는 자선과 기도, 단식이 대표적인 선행이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자선을 베풀 때에는 스스로 칭찬을 받으려 해서는 안 된다고(2절) 하셨습니다. 기도할 때에도 드러내 보이려고 하지 않아야 한다고(5절) 하셨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단식할 때에도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일 것이 아니라 숨어 계신 하늘의 아버지를 향해야 한다고(18절) 하셨습니다.
회개와 은총의 때인 사순 시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한 사랑으로 당신 자신을 내어 주시고 목숨을 바쳐 우리를 구원해 주심을 기념하는 시기입니다. 다가오는 부활에 우리도 주님과 함께 새로워진 삶이 되도록 기도와 단식과 자선의 참뜻을 실천해야 하겠습니다. “지금이 바로 매우 은혜로운 때이고, 지금이 바로 구원의 날”(2코린6,2)이기 때문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는 2024년 사순 시기 담화문에서 “하느님께서는 광야를 통해 우리를 자유로 이끄십니다”라는 초대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 재의 수요일 예식
‘재의 수요일’은 사순 시기를 시작하는 날이다. 교회가 이날 참회의 상징으로 재를 축복하여 신자들의 머리에 얹는 예식을 거행하는 데에서 ‘재의 수요일’이라는 명칭이 생겨났다. 이 재의 예식에서는 지난해 ‘주님 수난 성지 주일’에 축복한 나뭇가지를 태워 만든 재를 신자들의 이마나 머리에 얹음으로써, ‘사람은 흙에서 왔고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창세 3,19 참조)는 가르침을 깨닫게 해 준다. 오늘 재의 수요일에는 단식과 금육을 함께 지킨다.(매일미사 책에서)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2024년 사순 시기 담화)
하느님께서는 광야를 통해 우리를 자유로 이끄십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계시하실 때 언제나 다음과 같은 자유의 메시지를 주십니다. “나는 너를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 낸 주 너의 하느님이다”(탈출 20,2). 자유로의 부르심은 힘든 요구입니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이집트에 매여 있던 것처럼, 희망이 없다고 느끼는 순간들에 우리는 참으로 그러한 속박에 매여 있음을 깨닫습니다. 사순 시기는 은총의 때입니다. 이 은총의 시기에, 광야는 다시 한번 우리 첫사랑의 자리가 될 수 있습니다(호세 2,16-17 참조).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을 형성하시어 우리를 종살이에서 벗어나게 하십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죽음에서 삶으로 건너가는 파스카를 체험할 수 있게 해 주십니다.
사순 시기를 구체적으로 거행하려면, 그 첫걸음은 현실에 눈 뜨기를 바라는 것이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불타는 떨기나무에서 모세를 부르셨을 때, 당신께서는 보시는 하느님, 무엇보다도 들으시는 하느님이시라는 사실을 보여 주셨습니다.(탈출 3,7-8 참조). 오늘날에도, 억압받는 수많은 우리 형제자매의 울부짖음이 하늘까지 올라갑니다. 우리 자신에게 물어봅시다. ‘우리는 그 울부짖음에 귀를 기울이나요? 그 울부짖음이 우리를 괴롭게 하나요? 아니면 우리를 움직이나요?’
사순 시기는 회개의 시기, 자유의 시기입니다. 우리가 해마다 사순 제1주일에 기억하듯, 예수님께서도 친히 자유로이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가시어 유혹을 받으셨습니다. 광야는 다시는 노예 상태에 빠지지 않겠다는 개인적인 결심을 통하여 우리의 자유가 성숙해질 수 있는 장소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받으신 유혹과 탈출기가 분명히 보여 주듯이, 이는 어떤 싸움이 따르는 일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에게는 나 말고 다른 신이 있어서는 안 된다”(탈출 20,3). 하느님의 이 목소리에 원수와 그의 거짓말이 대적합니다. 파라오보다 훨씬 더 무서운 것이 우리 스스로 세운 우상들입니다. 그러한 것들은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기는커녕 무기력하게 만들고, 만남 대신 갈등을 낳습니다.
이제 행동할 때입니다. 사순 시기에 행동한다는 것은 또한 멈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기 위해 기도 안에서 멈추고, 사마리아인처럼 다친 형제나 자매가 있는 곳에서 멈추는 것입니다.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하나의 사랑입니다. 이러한 까닭에, 기도와 자선과 단식은 서로 관계없는 세 가지 행위가 아니라, 우리를 짓누르는 우상들과 우리를 구속하는 집착을 쫓아버리는, 개방과 자기 비움의 단일한 행위입니다. 그렇게 할 때 위축되고 외로웠던 마음이 회복될 것입니다. 하느님의 현존 안에서 우리는 형제자매가 되고, 서로에게 더욱 관심을 기울이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의 꿈이자, 우리가 노예살이를 뒤로한 채 여행을 떠나는 약속된 땅입니다.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의 모습은, 사순 시기가 시류를 거스르는 크고 작은 공동체적인 결정들을 내리는 때라는 것도 시사합니다. 저는 모든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이것을 꼭 실천하도록 초대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단식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침통한 표정을 짓지 마라. 그들은 단식한다는 것을 드러내 보이려고 얼굴을 찌푸린다”(마태 6,16). 이렇게 하는 대신, 가장 작은 이들과 가장 가까이 있는 이들부터 시작하여, 다른 사람들이 기쁨 가득한 얼굴을 보게 하고, 자유로운 느낌을 받도록 하며, 모든 것을 새롭게 하는 사랑을 체험하도록 합시다.
이번 사순 시기가 회개의 때가 된다면, 불안해하는 인류는 새로운 희망의 불꽃인 솟구치는 창조성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계속해서 찾아 나가고, 위험을 감수할 준비를 하십시오. 우리는 막대한 위기를 직면하고 있습니다. 너무나도 많은 사람의 고통스러운 애원을 듣습니다. 실제로 우리는 단편적으로 치러지는 제3차 세계 대전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단말마의 고통이 아닌 생명을 창조하는 과정에, 그리고 마침이 아닌 역사의 위대하고 새로운 장의 시작점에 머무르며 우리의 세상을 바라볼 용기를 냅시다. 우리는 이렇게 생각하기 위한 용기가 필요합니다”(리스본 대학생들에게 한 연설, 2023.8.3.). 이러한 것이 회개의 용기이고, 노예 상태에서 해방되면서 생겨난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와 여러분의 사순 시기 여정을 축복합니다.
로마 성 요한 라테라노 대성전에서
2023년 12월 3일 대림 제1주일
프란치스코
(CBCK 홈페이지에서 인용)
첫댓글 "너는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은 다음,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마태6.6)
아멘.
보이기 위한 행함보다도 드러나지 않는 겸손함을 간직할 수 있는 낮은 자로 머물게 하소서.
사랑합니다.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라
그렇게 하여 네 자선을 숨겨
두어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 마태 6 , 3~4 )
평화로운 하루 되십시요.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그렇게 하여 네 자선을 숨겨 두어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마태 6.4절 )
재의 수요일 잘 보세요.
아멘.
주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며
제안의 위선과 욕심을 비우는 영적 단식되어
기도와 자선과 단식의 사순시기가 되게 하소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