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되신 하나님
요한복음 1:9-14
하나님의 평화가 말씀을 듣는 우리 가운데 함께 하시길 빈다.
오늘은 성탄일이다. 성탄의 은총이 여러분에게 임하시길 바란다. 올해 마지막 주일인 송년주일이기도 하다. 누구나 한 해를 결산하는 마지막 한 주간이다. 그리고 12월 31일 토요일 저녁에는 송구영신의 밤을 맞는다.
송구영신의 밤에는 색동교회 10대 뉴스를 뽑는 설문을 한다. 무려 선택할 후보가 80여 가지이다. 그 가운데 다섯 명의 아기 출생이 하나의 선택지이다. 세상에! 앞으로 100년 동안 계속 뉴스거리가 될 인물들인데, 단 하나의 후보라니 놀랍다.
올해는 ‘엘레노어 윤희, 연호, 소이, 유솔, 이현’ 이렇게 다섯 아기들 덕분에 무척 행복하였다. 마음을 졸인만큼 기다림은 더욱 크고, 감사한 마음은 더더욱 자랐다.
성경에서도 가장 큰 뉴스는 아기가 태어난 일이다. 구약과 신약 모두 그렇다. 클라우스 베스터만의 분류에 따르면 구약성경에서 족장사는 아기 이삭의 출생으로부터, 민족사는 아기 모세의 출생, 예언사는 아기 사무엘의 출생으로부터 시작한다. 세 아기 모두 순탄하게 태어나지 못하였다.
할머니에게서 나고, 나자마자 죽을 운명에 놓이거나, 아기를 낳지 못하는 어머니의 기도로 가까스로 태어났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정점에 아기 예수의 탄생이 있다. 놀랍게도 처녀를 어머니로 두었다. 성탄은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사건이다. 이것이 지난 2천 년 동안의 그리스도교 신앙고백이다.
성탄에 대한 4복음서의 증언은 서로 다른 서술의 옷을 입고 있지만, 그 증언의 목적은 한 가지이다.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이다. 복음은 딱 두 단어로 요약된다. ‘예수 그리스도’이다.
마태복음은 1-2장에서 예수 탄생의 소식을 전한다. 아버지 요셉의 시선으로, 그 가정에 찾아온 아기 예수가 얼마나 비밀스럽고 위험 가운데 태어났는지, 얼마나 멀리 피난을 가야 할 딱한 처지였는지 들려준다.
누가복음은 1-2장에서 아기 예수와 함께 요한의 출생을 말하면서 장차 이루어갈 하나님의 계획을 설명한다. 어머니 마리아의 결단과 용기, 목동들과 천사들의 경배, 시므온과 안나의 기다림을 이야기한다.
마가복음에는 성탄절 이야기 없다. 다만 하나의 문장으로 압축하여 요약한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막 1:1).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요한복음이다. 가장 신비한 언어와 고백으로 전하는 요한의 성탄 소식은 이렇게 시작한다.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9).
그리고 참 빛을 믿고,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선포한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12).
우리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그 믿음은 내 생각이나, 선택 곧 사람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말씀이다. 사실 성탄의 신비 그 자체를 믿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믿기 어려운 구석이 많이 있다. 그러나 믿음은 내 안에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가능하다.
그제(12.23) 읽은 톨레레게 중에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있다.
“이로써 너희가 하나님의 영을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요일 4:2).
이렇게 하나님이 사람의 모습을 입으시고, 육체로 임하시어, 인류 구원을 위해 인간의 역사 속에 강림하심을 기념하는 날이 크리스마스이다.
우리가 몸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고백하는 것은 자의적 생각이 아닌 성령의 도우심과 맑은 지혜 덕분이다. 성령의 사람은 곧 하나님께 속한 거룩한 영의 사람이다.
아이처럼 착한 심성을 가진 사람은 나이와 상관없이 우리 곁에 찾아오신 성탄을 기쁨과 감사로 맞이할 수 있다. 그리하여 예수님을 영접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다.
요한복음은 우리에게 찾아오신 하나님을 이렇게 설명한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14).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는 곧 성자가 되신 하나님이다. 율법이 모세로 인해 주어졌다면, “은혜와 진리”(14, 17)는 예수님 자신이시다.
이 본문이 예수님이 사람으로 오심을 뜻하는 ‘인카네이션’(the Incarnation)이다. 바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오심을 나타내는 개념이다. 이를 한자문화권에서는 ‘도성육신’(道成肉身), 또는 ‘성육신’(成肉身)으로 사용한다.
“말씀이 사람이 되셔서 우리와 함께 계셨는데”를 헬라어 그대로 풀이하면 ‘말씀이 사람이 되셔서 우리들 틈에 천막을 치셨다’라고 옮길 수 있다. 마치 출애굽 시대에 광야에 빼곡하게 들어선 천막촌을 연상시킨다.
광야의 성막처럼 구름과 불기둥으로 머무셨던 하나님이 우리들의 삶의 자리, 이웃과 더불어 사는 마을, 신앙공동체 속에 함께 하심을 상징하고 있다.
솔렌띠메나 농어민의 복음대화라는 부제가 붙은 <말씀이 우리와 함께>라는 책에 따르면 이를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느님이 우리 천막 동네에 와서 살기 시작하셨다’라는 뜻으로 풀이하였다.
요새 말로 풀이하면 “말씀이 우리들 틈에 판자집(또는 움막)을 지으셨다”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고 해석하고 있다. 그것이 성탄절의 의미이다.
이를 오늘의 ‘임마누엘’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나님이 계획하신 구원의 마스터 플랜에는 언제나 ‘임마누엘’ 즉,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등장한다.
성탄은 바로 하나님이 우리 동네에, 우리 집에 찾아오신 사건이다. 내 삶의 곁에서 가장 가까운 이웃이 되셨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살고 계신다는 고백, 이것이 참 성탄의 의미이다. 만약 이러한 하나님의 역사를 볼 수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인 해방의 역사, 곧 내 삶의 출애굽에 참여할 수 있다.
요한의 증언에 따르면 그리스도는 만민을 비추시는 참 빛이시다. 그분이 사람이 되신 것은 사실 우리한테 하나님을 알려 주시기 위해서였다고 요약할 수 있다. 만약 하나님께 전적으로 자신을 개방한 사람은 예수님의 ‘자기 계시’를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이를 고백하는 공식적이고 공개적인 자리가 바로 세례이다. 아기에게 그 소중한 믿음과 고백에 따라 살고자 하는 부모의 마음이 아기 세례이고, 입교식이라고 할 수 있다.
어느 할머니 한 분이 예수 잘 믿는 며느리를 맞은 덕분에 교회에 출석하게 되었다. 나이 들어 예수를 믿으려니까 도통 뭐가 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설교도 어렵고, 찬송가 따라 부르기도 힘이 들었다.
그래도 할머니는 마음이 바르고 심지가 곧은 분이어서 한번 마음 정하고는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교회엘 다녔다. 한 1년쯤 다니니 하루는 목사님이 부르더니 세례를 받으라고 하였다. 할머니 마음에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데 무슨 세례를 받을 자격이 있나?”하는 근심이 되어서 며느리에게 상의를 했다.
며느리는 시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기뻐하면서 아무 걱정하지 마시라고, 제가 다 가르쳐드리겠노라고 하였다. 이제 세례 문답을 하는 날이 되자 며느리는 근심스러워하는 시어머니에게 일러 주었다. “목사님이 예수님께서 왜 돌아가셨나요 하고 물으실 텐데 그러면 내 죄 때문이라고만 대답하세요.”
할머니는 그 말을 마음속 깊이 담아 두었다. 신기하게도 목사님은 며느리가 말한 대로 물었다. “할머니, 예수님은 왜 돌아가셨나요?” 할머니는 그 정도쯤 모르겠냐고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그거야 우리 며느리 죄 때문이죠.”
우리는 성탄절의 의미를 바르게 알아야 한다. 요즘은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인사 대신 해피 할러데이라고 한다. 방송에서 특정 종교를 편애하지 않으려는 의도란다. 그렇다고 메리 크리스마스가 그저 또 하나의 휴일일 수는 없다.
크리스마스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오신 하나님의 은혜의 날이다. 그래서 크리스마스는 ‘그리스도께 드리는 경배’란 뜻이 담겨 있다. 이를 약자화하여 ‘X-마스’라고도 한다.
존 데이빗은 우리에게 두 개의 크리스마스가 있다고 하였다. 하나는 진짜 크리스마스(Christmas)이고, 또 하나는 ‘X-마스’이다.
‘X-마스’에서 ‘X’라는 대문자는 원래 헬라어의 ‘크리스토스’라는 낱말의 두음 문자(첫 글자) ‘키’에서 온 것이다. 이것을 영어 발음으로 ‘엑스’로 읽는 바람에 ‘X-마스’가 되었다.
그런데 엑스(x)는 수학에서는 미지수를 뜻하고, O와 X의 경우에는 틀린 것이라는 뜻도 된다. 결국 약자로 쓰인 크리스마스가 마치 불가사의한 날처럼 불리게 된 것이다. 만약 우리가 성탄의 의미를 바르게 이해하지 못할 때 크리스마스는 미지수의 날이 되고 말 것이다.
성탄절은 무엇인가? 성탄은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메시야가 오신 날이다. 나를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날이다.
우리가 이날을 기억하고 기념하며, 축하하고 축복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아기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어린 아이의 마음으로 기뻐하고, 선물을 나누며, 진심으로 성탄을 목말라하며 사랑을 필요로 하는 이웃을 돌아보는 것은 마땅하다.
이날을 위해 헌신했던 부모 마리아와 요셉처럼, 우리는 부모의 마음으로 자녀들을 돌본다. 가까이에서 경배한 목동들처럼 내 일상의 자리에서 예배한다. 멀리서 찾아온 동방박사들처럼 때로는 순례의 자리로 나아간다.
그리하여 내게 주신 믿음, 지혜, 용기를 다하여 사랑의 사람, 의로운 사람, 평화의 사람 곧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 복된 성탄은 내 마음에 가장 큰 명절이다. 그런 은총의 날이 오늘의 나를 하나님의 자녀로 살게 하신다.
사람이 되신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인생을 참 빛과 거룩함으로 비추시고, 언제나 성탄의 축복으로 인생과 동행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