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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경미의영화인사이드] ‘판도라’의 경고
출처 세계일보 : http://www.segye.com/content/html/2016/12/08/20161208003061.html
미국 트래블러스 보험사에서 근무하던 하인리히는 “큰 사고는 그전에 여러 번의 경고성 징후와 전조들이 반복된다”는 것을 밝혀냈다. 이른바 하인리히 법칙이다. 우리나라는 지진의 안전지대라는 인식 때문에 주택과 건물 그리고 기간산업체의 재난 대비가 미흡하다. 하지만 최근 경주에서 발생한 강도 5.8의 지진은 더 이상 우리가 지진으로부터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말해 준다. 더욱이 원자력발전소와 근접한 지역에서 잦은 지진이 발생한 것이 활성단층 때문으로 알려지면서 원자력 사고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박정우 감독의 신작 ‘판도라’가 8일 개봉했다. 역대 최대 규모의 강진과 이로 인해 한반도를 위협하는 원전사고까지. 영화는 예고 없이 찾아온 대한민국 초유의 재난 속에서 최악의 사태를 막기 위한 평범한 사람들의 사투를 그린 재난 블록버스터다.
‘판도라’는 기존 재난영화와 공식을 달리한다. 일반적으로 재난영화는 재난을 야기시킨 상황과 사건에 집중한다. 최대한의 볼거리를 제공하면서 극적 드라마를 완성시킨다. 가족애 또는 인류애가 부각된다. 결국 눈물과 사랑이 범벅된다. 그러나 ‘판도라’는 재난의 심각성을 객체의 입장에서 담담하게 보여주는 교육영화와 같다.
우리나라가 전 세계 원전 밀집도 1위 국가임을 경고한다. 현재 국내에는 4개의 원자력발전소가 있고 여기 모인 총 24기의 원자로가 가동되고 있다. 문제는 원자력발전소 단지 반경 30㎞ 이내에 9개의 광역자치단체와 28개의 기초자치단체가 밀집해 있다는 것이다. 영화는 지진에 의한 원전 폭발로 인근 도시의 많은 사람들이 심각한 피해를 입는 상황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묵직하면서도 현실감 있게 전달되는 영화 속 재난은 그 자체가 교육이자 공포다. 영화 속 지도자의 무능함과 시스템의 부재는 우리를 더욱 공황상태로 몰고 간다. 재난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는 국가 지도자, 위기관리 매뉴얼이 없다는 장관,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도 자기 잇속을 따지는 원전마피아, 아무런 대책 없는 공권력, 이러한 모습에 우리의 현실이 겹쳐지면서 극도의 공포감이 유발된다.
원전시설과 원전사고를 표현하기 위해 사용된 최첨단 컴퓨터그래픽(CG)이 다소 과장돼 보인다. 현실을 떠올리게 하는 직접적인 대사는 작위적이다. 신파적 구성도 아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판도라’는 사실적이고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이는 박정우 감독이 보여준 현실 직관 능력 때문일 것이다. 그는 2012년 영화 ‘연가시’를 통해 메르스 사태를 예견한 바 있다. 영화적 상상을 넘어 그의 직관이 다시 재현되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불안해하는 이유다.
영화를 본 관객들은 대부분 원자력의 공포를 인지하고 원전 추가 건설을 반대하며 탈핵을 주장한다. 그러나 우리는 6기의 원자력발전소를 추가로 건설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4기를 더 세울 계획이다. 늘고 있는 전력수요를 감안하면 대안 없이 원자력 발전을 포기하기란 쉽지 않다. 차선의 해법은 절전을 생활화해서 전력수요를 줄이고 동시에 원자력 발전에 대한 안전규제를 한층 강화해 재해에 따른 대형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다. 영화 ‘판도라’가 우리에게 전하는 경고를 결코 가볍게 들어서는 안 된다.
양경미 영화평론가·한국영상콘텐츠산업연구소장
<행복을 나눠 주는 남자>가 행운을 주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을 위해 기적을 행하시는 정광호 선생님, 저는 10년전 이곳 미국으로 이민 와 작은 슈퍼마켓을 운영하고 있는 김동수라고 합니다. 제가 이처럼 펜을 든 것은 한 번도 선생님을 만나 뵌 적도 없고 선생님에 대해 잘 알지 못했음에도 선생님의 저서 <행복을 나눠 주는 남자>로 인해 선생님께서 행하시는 기적을 직접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그 얘기에 앞서 길게 느껴지시겠지만 먼저 제 이야기를 조금 말씀드리겠습니다. 사실 누추한 제 이야기를 먼저 꺼내는 이유는 선생님의 초광력超光力을 통해 입은 은혜가 얼마나 제게 커다란 힘이 되었는가를 설명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하여 저와 제 가족들에게 초광력超光力이 얼마나 큰 힘으로 서게 되었는지를 선생님께 꼭 말씀드려야 하겠기에 이렇게 염치 불구하고 펜을 들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넓은 마음으로 누추한 제 글을 읽어 주시리라 믿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그저 그런 평범한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나 특별할 것 없는 일상 가운데 그저 그런 대학을 졸업하고 중소기업에 입사하여 결혼하고 아들과 딸을 낳아 기르던 아주 평범한 가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제가 다니던 회사가 부도로 망하고 저는 몇 개월간 실직 상태로 있다가 친구의 소개로 작은 오퍼상에 취직을 했습니다. 그 곳에서도 이런 저런 이유로 1년여만에 실직하고 다시 다른 중소기업으로, 다시 오퍼상으로, 또 다시 중소 무역회사로 너댓 번을 옮겨 다녀야 했습니다.
어느덧 나이는 마흔을 바라보고 아이들은 커 가는데 제 자신을 돌아보니 미래에 대한 비전은 보이지도 않고 드난꾼처럼 또 언제 직장을 옮겨야 할지 불안감이 앞서 착잡한 날들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결혼 12년 동안 죽도록 아끼고 줄였대도 모아 놓은 것이라고는 아이들의 교육부금 붓던 것과 폐차 직전의 중고차, 그리고 변두리에 위치한 서른 두 평형의 아파트뿐이었습니다.
이렇게 살다가는 도저히 희망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 즈음이었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된 분의 소개로 이민을 오게 되었습니다. 물론 평범했지만 저희 집안은 난리가 났었지요. 명색이 장남이고 결혼까지 했지만 연로하신 부모님을 제대로 모시지도 못하던 형편에 아예 타국으로 이민을 간다고 하니 누구라 반기셨겠습니까?
그러나 저는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막상 비행기가 이륙하자 제 심정은 말할 수 없이 착잡했습니다. 미국에 간다고 해도 정해진 일자리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나를 반기어 도움 줄 일가친척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믿고 의지할 사람이라고는 아내와 두 아이 뿐이었습니다.
희망이 없기는 한국이나 미국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이미 엎질런진 물이었습니다. 죽으나 사나 미국에서 다시 일어서야 했습니다. 그래야 기막혀 하시던 부모님을 다시 뵐 면목이 서기도 하는 일이었으니까요.
처음 미국에 도착하여 아내와 저는 밤낮을 바꿔가며 일을 했습니다. 그야말로 대형 슈퍼마켓 청소에서 접시 닦기, 햄버거 굽기 등 해보지 않은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면서도 틈틈이 랭귀지 스쿨을 다니며 영어를 배웠지요. 미국에서 그나마 권리를 박탈당하지 않고 억울하게 봉변을 당하지 않으려면 영어를 잘 해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이럭저럭 이민 4년만에 작은 식당을 개업했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식당을 하는 일도 그리 쉽지는 않았습니다. 번번이 걸리는 등급제 때문에 설움도 많이 받고 고생도 많이 했지요. 그러다가 아는 분이 하던 슈퍼마켓을 인수 받은 것이 4년 전입니다.
하지만 슈퍼마켓도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툭하면 몰려들어 어수선한 가운데 물건을 훔쳐 가는 불량한 아이들을 경계하는 일도,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총을 든 도둑들도 하루하루를 외줄타기처럼 힘들게 하는 일들이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저를 위로하는 한 가지는 오로지 교회였습니다. 외롭고 힘든 이민 생활에서 누군가 절대자가 있다는 것은 엄청난 위안과 힘이 되었습니다. 저는 교회를 열심히 다녔습니다. 그러나 기적을 바라는 기도 같은 것든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우리 가족이 평안하고 효도 한 번 못한 제 한국의 부모님이 평안하시길 간절히 기도 드렸을 뿐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아무리 이국 땅에 정착했더라도 결코 한국인의 자존심을 무너뜨리는 일은 하지 말자, 더구나 양심을 팔면서 이익을 추구하지 않도록 힘을 주십사 하는 것이 기도의 전부였습니다.
그런 나날로 어느새 이민을 온 지도 10년을 맞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알고 지내던 분들과 교회가 마치는 시간을 틈타 저녁을 먹던 자리에서 저는 처음으로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정확히 그 분들도 선생님을 직접 만나 뵙지 못했기에 선생님의 저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우리는 한참 동안을 선생님을 화제로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 이민 생활에 힘들고 외로운 우리들에게 선생님의 기적 같은 이야기들은 당연히 화제가 될 수밖에 없었지요. 그 중에는 정말 몸이 아파 병원 생활이 집에서의 생활보다 더 많은 시간을 차지하는 사람도 있었으니 모두에게 선생님의 이야기는 솔깃한 유혹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모두들 곧장 선생님의 책을 사야겠다는 의견으로 모아질 무렵, 마침 선생님의 책을 갖고 계시던 분이 저희 집과는 가까운 터라 염치 불구하고 저는 그 분께 책을 빌리기로 했습니다. 사실 힘들고 외로운 이민 생활이었지만 가족 중 누가 특별히 아프거나 아이들이 속 썩이는 일도 없었으며, 그렇다고 넉넉하지는 않지만 당장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것도 아닌 저로서는 반신반의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때문에 선생님의 책을 살 생각까지는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저는 책을 빌린 다음 날부터 틈나는 대로 조금씩 선생님의 책을 읽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도 혹시 지나치게 과장을 한 것은 아닌지하는 의심도 들었습니다. 제 눈으로 확인한 일들도 아니고, 그렇다고 제가 뭔가를 실제로 느끼는 것도 없었으니 그런 의구심이 드는 것도 당연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우매한 의구심이었지요.
그런데 제 아내에게는 오랜된 지병이 있었습니다. 이민을 오면서부터 생긴 병인데, 노이로제 같은 것이었지요. 특별한 계기도 없이 아내는 사람을 두려워하고 밤잠을 잘 못 자곤 했습니다.
결혼 후 두 아이를 낳고 집안에서 살림에 재미를 붙이면서 아내는 45킬로그램의 몸무게에서 무려 60킬로그램까지 불었었습니다. 아내는 걱정을 했지만 마른 것보다는 넉넉해 보여 오히려 몸이 불은 아내가 보기 좋았습니다. 그런데 이민을 온 후부터 아내는 하루가 다르게 살이 빠졌습니다. 심할 때에는 무려 39킬로그램까지 빠졌으니까요.
처음에는 큰 병인 줄 알고 온갖 검사를 다 했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고작 노이로제였습니다. 불안증과 노이로제 때문에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 것이었죠. 지금은 계속되는 치료와 교회 일을 맡으면서 44킬로그램까지 불기는 했지만, 아일 둘을 낳은 주부로서는 지나치게 마른 체구임은 분명했습니다. 게다가 아내는 그때까지도 심한 불면증으로 병원에서 처방하는 안정제를 먹지 않으면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집에 돌아와 보니 아내가 깊은 잠에 빠져 있었습니다. 초저녁부터 약을 먹었나 보다 생각하고 그냥 두었는데, 아내는 밤새도록 단 한 번도 깨지 않고 잠에 빠져 있더군요. 문득 걱정이 된 저는 지나치게 약을 많이 복용한 것은 아닌지, 자꾸만 아내의 입가에 귀를 대 보며 숨을 쉬는지 확인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아내의 숨소리는 고르고 평온했으며 몸 한 번 뒤척이지 않고 깊은 잠에 빠져 있었습니다. 아내의 잠든 모습은 이민 온 후 단 한 번도 본 적 없이 평온해 보였습니다.
다음 날, 아내는 제게 호들갑스럽게 선생님의 책을 내밀었습니다.
“이 책 정말 기적을 주는 책이에요. 당신도 읽어 보세요. 당신이 바라는 일이 이루어진다니까요.”
“그게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야?”
“어제, 저 자는 것 못 보셨어요? 저는 지금 날아갈 것만 같다구요. 이젠 병원 약 같은 것은 필요 없어요. 병원에 다니지도 않을 거라구요.”
뜨악한 얼굴로 아내를 바라보는 내게 아내는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사람을 두려워하는 것 때문에 슈퍼마켓에 나오던 일도 그만두었던 아내가 선생님의 책을 읽으면서 간절히 자신의 문제를 빌었던 모양이었습니다. 그랬더니 스르르 몸이 노곤해지면서 잠이 쏟아지더라는 것이죠. 열 시간이 넘도록 잠을 자고 일어난 아내는 단 한 번의 꿈도 없이 아주 깊고 평온한 잠을 잤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믿어지지 않았지만 아내가 굳이 손에 들려 주는 선생님의 책을 들고 슈퍼마켓으로 나왔습니다.
그 동안 읽었던 부분부터 다시 읽으려다가 다시 처음부터 그 책을 읽기로 했습니다. 아내가 진정 이 책 때문에 숙면을 취할 수 있었다면 어떤 내용이 들어 있는지 찬찬히 잘 읽어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오후 시간이 되자 저는 점점 책의 내용에 빠져 헤어나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책이나 읽을 요량으로 퇴근을 서둘렀지요. 하루쯤 일찍 문을 닫는다고 굶어 죽을 정도의 형편은 아니었으므로 저는 서둘러 슈퍼마켓의 문을 닫고 있었습니다.
셔터를 반쯤 내렸을 때였습니다. 갑자기 흑인 네 명이 나를밀치며 슈퍼마켓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저는 그들에 의해 카운터로 밀려갔습니다. 퍼뜩 강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제 마음은 오히려 편안했습니다. 제 스스로도 이상할 만큼 떨리거나 두렵지 않았습니다. 강도가 들었다면 돈은 물론 목숨도 왔다갔다 할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도 말이지요. 그저 저는 선생님의 책을 가슴에 안은 채 멍하니 그들이 끊임없이 떠드는 소리를 듣고만 있었습니다. 물론 그들 중 두엇은 슈퍼마켓을 돌며 물건들을 마구 주머니에 쑤셔 넣고 두엇은 제게 돈을 내 놓으라고 총구를 들이대며 협박했습니다.
“선생님 도와주실 거죠?”
저도 모르게 선생님의 책을 가슴에 안은 채 그렇게 외쳤습니다. 돈을 내 놓으라고 소리치던 흑인 두 명은 내 알 수 없는 소리에 의아한 표정을 짓다가 다시 총구를 들이대며 돈을 내 놓으라고 소리쳤습니다. 그 때였습니다.
-와장창!
반쯤 열린 셔터 문을 부수며 트럭 한 대가 질주해 들어왔습니다. 저를 협박하던 강도 둘이 그 트럭에 부딪혀 진열대로 쓰러지고 물건을 훔치던 두 명은 달려나오다가 쓰러지는 진열대에 깔렸습니다.
정말 단 몇 분 동안 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상하리만치 그 일을 찬찬히 아주 자세하게 지켜 볼 수 있었습니다. 마치 슬로비디오의 영화를 보는 것처럼 말입니다.
경찰이 들이닥치고 트럭 운전사와 강도들이 잡혔습니다. 트럭 운전사는 끊임없이 외쳤습니다.
“결코 졸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이 지점에서 핸들이 이 쪽으로 꺾였다.”
어쨌든 강도도 당하지 않았고 슈퍼마켓도 보험에 들어 있었기에 오히려 깨끗하게 새단장을 다시 할 수 있었습니다.
그 동안 저는 보상 문제다 진술이다 바쁜 와중에도 선생님의 책을 놓지 않았습니다. 꼭 가지고 다녔지요. 그것은 분명 도움을 청하는 제게 선생님께서 응답을 주신 것이었으니까요. 이것은 어쩌면 하늘의 은혜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선생님과 선생님의 초광력超光力의 은혜라고 확신합니다. 그 날의 사건과 제 자신의 변화를 깊이 생각해보면 선생님의 은혜와 기적이 아니라면 도저히 설명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제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듯한 표정들이 되곤 합니다. 하긴 제 자신도 처음에는 믿어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생각도 못했으니까요. 하지만 그 일이 기적이 아니라면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겠기에 곰곰 생각한 결과 선생님의 초광력超光力의 힘이란 걸 알게 된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나를 본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나라는 존재에 대해 알짖도 못하는 당신의 저서 한 권 달랑 들고 있었던 우리 가족에게 이런 기적을 행사하시는 선생님에 대한 감사함과 놀라움은 점점 커져 갑니다.
과연 이런 일들이 가능은 한 것일까? 그러나 이젠 그런 우문도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저는 이제 선생님과 선생님의 초광력超光力만을 믿고 의지하며 남은 생을 보내기로 했습니다.
그 후로 우리 가정에는 따뜻한 안정감이 감돌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도 부부간의 갈등이나 아이들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팍팍한 이민생활은 우리 가족들에게 늘 바쁜 하루하루를 강요하고 그로 인해 집안에는 늘 삭막한 기류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요즘 아주 편안하고 느긋한 마음으로 생활합니다. 물론 아내도 틈틈이 슈퍼마켓에 나와 일을 도와 줄 정도로 대인 공포증도 없어졌구요. 아이들도 예전보다 훨씬 활기차게 학교 생활을 합니다.
저희 가족은 잠들기 30분 전이면 조명을 낮추고 마음을 비운 후 선생님께 간절히 기도합니다. 한국에 계신 부모님의 평안과 양심을 팔면서 이익을 추구하지 않는 자존심 있는 한국인으로 살기를 그렇게 도와 주시기를 간절히 빕니다.
요즘 저희 부부는 작은 병에 지폐를 조금씩 모으고 있습니다. 선생님을 만나 뵈로 한국으로 갈 비용을 모으는 것이지요. 경제적으로 힘들어서 비용을 모으는 것은 아닙니다. 한국에 나가려면 우선 아이들 학교 문제도 있고, 슈퍼마켓을 누군가에게 부탁하고 가야 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기간이 필요한데, 그 기간이나마 헛되이 보내지 않기 위해 외출 후, 혹은 퇴근 후에 귀가하면 주머니에 있던 지폐를 그 병에 넣기로 한 것이지요. 그냥 선생님과 선생님의 초광력에 대한 저희 부부만의 예의와 믿음에 대한 약속 같은 겁니다.
곧 선생님을 찾아 뵙겠지만, 이렇게 편지를 먼저 드려서 저를 알려 두는 것이 선생님을 직접 만나 뵈었을 때 훨씬 좋겠다는 생각에서 저희 부부가 머리를 맞대고 작성한 편지입니다. 워낙 글쓰는 재주가 없는 터라 두서도 없고 그저 제 기쁨과 감사를 표현하기에 급급해 산만하더라고 이해해 주십시오.
그럼 그 동안 평안하시고 다음에는 한국에서 선생님을 뵙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LA에서 김동수 드림
초광력超光力은 나만의 것이 아닙니다.
먼저 어려웠던 시간을 대 우주의 마음으로 무사히 넘기셨음을 저 자신도 우주의 마음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더러 들어서 알고 있기는 하지만, 머나먼 타국 땅에서 살아가기가 얼마나 힘든지를 안다고 말하는 것은 살아 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기 식이겠지요. 어려운 가운데에도 그 만큼이라도 자리를 잡고 열심히 사시는 선생의 의지에 마음 깊은 곳에서 박수를 보내드립니다.
낯 설고 물 설고, 거기에 말도 설은 땅에서 10여 년을 살면서 겪은 어려움이 선생이 보내 주신 편지글 행간 행간마다 그리고 자간 자간마다 느껴졌습니다. 잘 이기고 헤쳐 나가며 열심히 사셨습니다. 충분히 우주의 마음을 움직이실 만큼 열심히 살았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러므로 초광력超光力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 가운데 초광력超光力의 힘을 입게 되었을 것입니다. 본디 우주의 마음은 선하고 맑은 마음을 지닌 사람에게는 언제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원할 때마다 그 힘을 보여주곤 한답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그 광대한 힘이 사악한 곳에도 쓰이고 사회와 세상을 혼란에 빠뜨렸을 것입니다. 그러니 선생은 제게 감사를 하실 것이 아니라 선생 자신이 얼마나 착실하고 반듯하게 살았는지에 대해 자신감을 가져도 되겠습니다, 그려.
그리고 제가 책을 낼 때마다 초광력超光力 씰을 봉입하는데, 그렇기 때문에 책만 가지고도 언제든지 초광력超光力과 함께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정신과학학회에서 인터넷에 올린 글을 보니, 그 중에 이런 내용이 있더군요. 이것은 특수한 공간의 형태에 의해 형성된 에너지와 생명체와의 상호작용에 관한 것인데, 3차원적인 피라미드나 석굴암, 첨성대, 아자방, 그리고 2차원적인 히란야, 음양태극, 삼태극, 팔괘, 각종 부적, 각종 만다라 등의 형태는 각자 여기에 공명될 수 있는 특수한 우주에너지(機)의 장을 형성할 것이라는 겁니다.
예로부터 우주에 있는 모든 만물은 그 형상이 있다고 하였으니, 우리가 형이라고 하는 것은 시각이나 감각을 통하여는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앞에 열거한 공간의 구조나 문양은 바로 우주의 이러한 상을 표현해 놓은 것이라 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 자체가 우주에너지(氣)의 흐름을 제어하고 유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제가 책에 봉입하는 초광력 씰도 그런 것들과 일치한다고 할 수 있겠지요.
선생의 경우와 같이 제 책만 가지고도 초광력超光力의 신비한 힘을 느끼고 혜택을 받은 사람들은 아주 많습니다. 그것은 그 책이 우주의 마음을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기능을 하기 때문입니다. 초광력超光力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기 때문에 책에 봉입된 씰로 인해 선생께서 봉변을 면하셨다고 믿으시면 됩니다. 즉, 그 책에 봉입된 씰이 초광력超光力의 안테나 역할을 했다면 설명이 될까요?
아울러 그 책에 씰을 봉입한 것은 그 씰을 통해 책을 접하는 모든 이들에게 좀 더 많은 혜택을 가게 하기 위함이지요.
마지막으로, 이런 얘기들이야 한국에 나오시기로 했다니 그때 직접 뵙고 해도 되는 얘기지만 굳이 펜을 든 것은 선생의 편지 중에 정광호의 초광력超光力이라는 말씀을 바로잡아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초광력超光力은 저 정광호의 초광력超光力이 아닙니다. 그것은 대 우주의 마음이고 힘이며 뜻입니다. 그것이 저를 빌어 빛으로 행사하실 뿐인 것입니다. 초광력超光力은 제가 만들어 행사하는 것이 아니고 저 자신도 우주의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한 함부로 아무 곳에나 초광력超光力을 쓸 수 없습니다. 만일 제가 스스로 만들어 행사하는 것이 초광력超光力이라면 저도 삿된 욕심의 일에도 쓰고 더러 내키지 않지만 두둑한 봉투를 내밀며 자신의 병을 고쳐달라는 맑지 않은 영혼을 가진 사람들의 봉투를 탐해 병을 낫게 해 줄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우주의 마음은 결코 그런 일에 마음을 돌리지 않습니다. 주어진 삶에 열심히 살고 정직하며 남을 기만하지 않고 순수하고 맑은 정신을 가진 사람에게는 굳이 제가 청하지 않아도 우주의 마음은 언제든지 찾아가 주십니다.
반대의 경우 만일 그렇지 못한 사람이 저를 붙잡고 아무리 애원해도 저는 요령부득입니다. 우주의 마음은 입을 굳게 닫은 채 제게 응답을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나쁘게 말하면 고리대금업을 하면서 숱한 사람들의 주머니에서 눈물 어린 돈을 빼내어 갑부 소리를 듣던 한 사람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말기 암이었지요. 그런데 우주의 마음에서 ‘죽는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 분께 고통은 조금 덜어드리되 죽음을 막을 방도는 없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다음 날, 그 분은 가방에 가득 돈을 넣어가지고 저를 찾아왔습니다. 원하면 더 줄 수도 있으니 살려만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우주의 마음은 더 굳게 입을 닫았습니다. 물론 저는 초광력超光力을 주면서 그저 극심한 고통을 덜어 주기만 했지요. 다음날, 그 분은 더 큰 가방에 돈을 가득 넣어 제게 찾아왔습니다. 고통이 준 것으로 보아 분명 살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전 재산을 다 줄 테니 목숨을 연장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분은 한 달 만에 돌아가셨습니다. 하지만 초광력超光力의 힘으로 엄청난 고통과 싸울 필요는 없었지요.
이렇듯 초광력超光力은 그저 아무에게나 아무 때나 청하면 나타나기도 하고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기도 합니다. 즉, 사람을 읽는다는 것이지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초광력超光力의 힘은 죽음을 연장해 주기도 하고 모른 척 고통만 줄여 주어 예정된 시간에 죽음을 맞이하게 합니다.
이것만 봐도 초광력超光力은 일개 인간인 제가 만들어 행사하는 힘이 아닙니다. 그저 저는 그 분께 선택된 전령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 분이 시키시는 대로 행사하고 감사를 드릴 뿐인 것입니다.
저는 저를 찾는 모든 분들께 말씀 드립니다.
“당신이 어떤 종교를 가졌든 초광력超光力의 힘으로 건강이든 가정의 화목이든 어떤 은혜를 입었다면 그 분께 감사를 드리십시오.”
라고 말입니다. 그 분이 부처님이어도 좋고 천주님이어도 좋습니다. 하느님이어도 괜찮고 예수님, 상제님, 조물주여도 괜찮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참 나’ 안에 있는 우주의 마음이신 그 어떤 분에게라도 진심으로 감사하고 고마워하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선생이 이제껏 사셨던 것처럼 열심히 착실하게 사신다면 초광력超光力은 언제고 선생이 청하실 때마다 선생에게 힘이 되고 은혜가 될 것입니다. 부디 건강하시고 화목한 가정을 일구시길 저도 이곳에서 깊이 기원 드리겠습니다.
좋은 날, 정광호 드림
출처 : 행복을 찾는 사람들에게 P. 144~157
첫댓글 시공간을 초월하는 빛명상, 빛에대한 순수한 마음이 중요함을 깨닫는 빛의글, 우리나라에 대한 재난에 대해서도 생각해보는 글 스크랩 감사합니다.
빛의 놀라운 기적같은 귀한 체험이 담긴 이야기 함께 할수 있게 자세하게 설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서유종님 빛과함께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서유종님, '양경미의영화인사이드] ‘판도라’의 경고'의논단과 귀한빛글 감사드립니다.
행복하시고 건강하세요.감사합니다.
한국 영상콘탠츠 산업 연구소장 양경미의
영화인사이드 "판도라"의 경고
잘 읽었습니다.
LA 에 이민가신 김동수님의 체험사례
감동입니다. 학회장님의 보내신 답장을
읽으면서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서유종님 늘 근원의 빛안에서 건강하시고
행복 하시길 축원 드립니다 ~~♧
절전의 중요성과
<행복을 나눠주는 남자>가 행운을 주었습니다,
초광력은 나만의 것이 아닙니다,
학회장님의 저서에 나온 글 다시 읽을 수 있게 올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언제나 빛과 함께 가족들 모두 건강하시고 행복가득 하시길 바랍니다, ^*^
빛책속의 놀라운 이야기 다시 읽어 새겨봅니다
이민가신 김동수님의 귀한 체험내용을 빛카페에서 다시 읽을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에 정말 감사합니다..
국외에 계신분들이 그렇게 뵙고 싶어하는 학회장님을 가까이에서
자주 뵈울수있는
초광력은 사람을 읽는다 가슴에 새겨야겠습니다. 베풀어 주신 은혜에 대하여는 언제나 감사해라 고맙습니다.
김동수님이 미국에서 학회장님께 보낸 편지내용과 학회장님의 답글을 보니 마음이 뭉클해집니다.
판도라라는 제목, 원전이라는 주제만 들어도 마음이 쿵하고 내려앉는 느낌이지만, 빛viit과 함께하시는 학회장님께 간절히 청하는 마음이 되어봅니다.
고맙습니다.
서유종 님, 귀한 글 올려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초광력은 나만의 것이 아닙니다." 감사드립니다.
차음 김동수씨 글을 읽어 내려오면서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다음엔 책을안고 강도를 면할수있었을땐 박수를 치고싶었습니다.
다음 학회장님을 뵙기위해 가족모두 돈을 모으신다는 말씀에 눈물이 났습니다.
저도 그랬으니까요.
학회장님의 우리 대한민국 모든 국민들을 사랑하시는 마음에 또 눈물이 났습니다.
우주근원초광력을 생각하는 마음에 빛viit을 주시는 우주근원, 언제나 사랑합니다. 언제나 감사합니다. 학회장님 감사합니다.
귀한 글 감사드립니다 ^^~
오랫만에 읽으니 감동입니다. 늘 함께하는 근원이신 우주마음님이 주시는 초광력. . .
빚과함께하시는 학회장님께서 우리곁에 계심을 감사하고 감사합니다.
저도 오랫만에 다시 읽으니 감동이 다시 느껴지네요 먼나먼 이국땅에서
빛의 책 한권으로 위험에서 벗어나고 온 가족이 행복을 되찿으셨다니
정말 잘 되셨지요 유종님 귀한 빛의책 귀한내용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정말 읽고 있으면 빛과 함께 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감사드리게 됩니다. 귀한 글 감사합니다.
김동수님의 체험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잘보았습니다.
판도라의 영화 소개 감사드리며,미국 이민생활을 하시면서
어려움과 위기에서 빛의 힘으로 무사하실 수 있었던 김동수님의
사연 소개 감사합니다.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지 일깨
워 주신 학회장님의 말씀도 다시 새겨 봅니다. 감사합니다.
시공간을 초월하여 의지하고 맑게 사셨을때 우주마음께서 허락하신 기적을 봅니다
다시금 귀한글을 마음에담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랫만에 다시 읽게 되는 초광력의 이야기~
우주근원의 빛은 그 사람을 읽는다~!
늘 겸손과 감사로 맑은 빛마음을 밝히도록 해야겠습니다. 귀한 글 감사드립니다.
읽고 또읽어 봅니다, 너무 신기한 글 감사히 잘 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