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지뽕 열매
추석과 추분이 지나 가을이 점차 무르익어가는 즈음이다. 한로와 상강이 되면 가을은 절정에 이를 것이다. 9월 마지막 토요일은 창원을 벗어나 진주로 갈 일이 있었다. 지인 자제의 혼사 축의는 간접으로 전하고 문학동인 월례회는 사정이 있어 참석이 어렵다고 미리 알려주었다. 아침 식후 느긋하게 창원중앙역으로 나가 부산 부전역에서 순천으로 가는 경전선 하행열차를 탔다.
내가 가는 목적지는 진주 근교 반성이었다. 반성은 일반성면과 이반성면으로 나뉘는데 일반성면소재지에 사는 여동생을 찾아가는 길이다. 진주시청에 나가는 매제는 어른을 모시고 일반성에 살고 있다. 연전 매제 내외는 노환으로 수년 병수발 한 부친을 여의고 연세가 많아 거동이 편치 않은 모친을 모시고 살고 있다. 아래로 둔 두 딸은 반듯한 직장인 병원과 농협에 다니고 있다.
한 시간 남짓 걸리니 일반성역에 닿았다. 진주까지 KTX가 연장 개통되면서 예전 산등선을 돌아가는 굴곡진 철길은 직선으로 만들면서 지하구간이 많이 늘었다. 차창 밖으로 비친 시골 풍경을 바라보는 운치도 줄어들었다. 함안 군북 일반성의 기차역도 생활권과 떨어진 들판 가운데 있어 다소 불편한 듯했다. 원북과 수목원 앞에 있던 간이역은 아예 사라져버려 아쉬움이 더했다.
일반성 역에는 농협에 근무하는 생질녀가 차를 몰아 마중을 나와 있었다. 부모로부터 역으로 나가 외삼촌을 태워 일하고 있는 밭으로 바로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고 했다. 반성초등학교 가까운 야트막한 산언덕 밑으로 갔다. 매제와 여동생은 아침 일찍부터 밭둑에 나와 구지뽕 열매를 따고 있었다. 고구마를 심은 밭 언덕에 자라는 구지뽕나무는 두 그루로 수령이 꽤 되어 보였다.
내가 생각했던 구지뽕 열매보다 훨씬 모양이 컸고 달린 수량이 많았다. 탁구공보다 조금 작아 보이는 자주색 열매였다. 서너 알 먹어 보았더니 달달했다. 고구마 이랑엔 집에서 가져온 농산물 채집 상자가 늘어져 있었다. 매제는 나무 위에서 따고 여동생은 밭둑에 서서 따고 있었다. 나는 고소공포 때문에 나무 위로 오르지 못하고 손에 잡히는 가지를 휘어 구지뽕 열매를 땄다.
점심때가 되니 집에 들어갔다가 나오면 작업 능률이 떨어진다고 잡채밥을 시켜 먹었다. 식후에도 부지런히 땄다. 나보다 나무 위에 올라간 매제가 더 많이 땄지 싶다. 매제는 직장 동료에게 보낼 생 열매 한 박스는 달리 포장했다. 여동생은 올케가 갈아 먹어보라면서 별도로 한 박스 챙겨두었다. 나머지는 모두 탕제원으로 보내 진액을 추출해 가족 친지들과 나누어 먹는다고 했다.
매제와 여동생은 경운기 적재함에 실은 구지뽕 열매를 탕제원으로 운반했다. 탕제원은 일반성 장터 어디엔가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그 사이 여동생이 뽑아 놓아놓고 간 푸성귀를 가렸다. 가을 가뭄 속에도 배추와 무가 잘 자라고 있었다. 갓도 아주 보드라웠다. 밀식된 곳의 무와 배추를 솎아낸 것이었다. 애호박과 나물용 박도 따 주었다. 나는 풋고추를 따서 보태고 호박잎도 땄다.
다시 밭둑으로 경운기를 몰아온 매제와 함께 깎지가 벌어지는 콩을 거두었다. 일을 마쳐갈 무렵 하루해가 저물고 빗방울이 떨어졌다. 동생 내외는 오라비가 와서 일을 도와 하루 동안 마칠 수 있다고 고마워했지만 나는 나대로 아주 보람 있는 시간이고 적절한 운동도 되었다. 나는 오후 네 시 열차표를 예매해 두었는데 매제와 같이 저녁 먹고 일곱 시 무렵 열차를 타야할 형편이었다.
밭에서 멀지 않은 매제 집으로 갔다. 여동생은 오라비가 온다고 짧은 시간 상차림에 신경을 더 쓴 모양이었다. 나는 창원 집을 나서면서 매고 온 배낭을 풀었다. 초여름 산기슭에서 딴 돌복숭으로 담근 술과 말려둔 영지버섯을 조금 넣어 왔다. 모처럼 여동생 집을 들리면서 내가 산에서 직접 채집한 것을 챙겼다. 매제는 연한 갈색으로 우려져 나온 돌복숭의 향기가 참 좋다고 했다. 13.09.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