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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한가운데― 1951년, 미국 대륙 한가운데― 아이오와 디모인에서, 베이비붐 세대의 일원으로 태어난 빌 브라이슨. 그가 ‘선더볼트 키드Thunderbolt Kid’라는 페르소나를 주인공으로 삼아 그 자신과 미국의 1950∼1960년대를 생생하게 되살렸다. 원자폭탄의 위력에 매료돼 방사능 낙진마저 반겨 맞았던 원자력 부흥의 시대 분위기, 반공 이데올로기를 조장했던 정치 사기극, 소련과의 우주경쟁, 억압적일 정도로 성을 금기시하던 풍습, 세상의 모든 신상품을 소비하기 위해 “더 일해서 더 많은 것을 사는 쪽을 택”하는 길을 택한 미국 중산층…. 그리고 원자변기ㆍ미사일 우편물ㆍ텔레비전을 시청용 의상, 엑스레이로 발 크기를 측정하는 구둣가게 등 상상 그 이상의 상상력이 현실화되었던 ‘유년기 미국’이 위트가 담긴 신랄한 문체 속에 되살아난다.
서문 평범하지만 특별했던 그 시절을 기억하며 008
01 풍요의 시대 011
02 키드의 눈으로 바라본 세계 045
03 우리는 모두 영웅이었다 069
04 모든 꿈이 가능했던 시대 093
05 소박하지만 모두를 열광시켰던 놀잇거리들 119
06 섹스 그리고 호기심 천국 143
07 핵과 공산주의 : 코미디 혹은 공포 161
08 철없던 시절의 철없던 학교 풍경 181
09 가족이란 이런 것 203
10 미국 가족농업의 마지막 황금기 223
11 미국도 안전지대일 수만은 없다 247
12 우리들만의 천국 269
13 행복했던 시대의 끝자락에서 305
14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339
빌 브라이슨,
악동 같은 눈빛과 입담으로
미국의 1950∼1960년대 풍경을 되살리다
자전적 회고를 씨줄로, 사회문화사를 묘파하는 유쾌통쾌한 직설을 날줄로 엮어낸 《빌 브라이슨 발칙한 미국산책》은 작가의 유년기 기억 속에 사회상을 펼쳐낸, 자전적 역사 에세이이다.
20세기 한가운데― 1951년, 미국 대륙 한가운데― 아이오와 디모인에서, 베이비붐 세대의 일원으로 태어난 빌 브라이슨. 그가 ‘선더볼트 키드Thunderbolt Kid’라는 페르소나를 주인공으로 삼아 그 자신과 미국의 1950∼1960년대를 생생하게 되살렸다.
원자폭탄의 위력에 매료돼 방사능 낙진마저 반겨 맞았던 원자력 부흥의 시대 분위기, 반공 이데올로기를 조장했던 정치 사기극, 소련과의 우주경쟁, 억압적일 정도로 성을 금기시하던 풍습, 세상의 모든 신상품을 소비하기 위해 “더 일해서 더 많은 것을 사는 쪽을 택”하는 길을 택한 미국 중산층…. 그리고 원자변기ㆍ미사일 우편물ㆍ텔레비전을 시청용 의상, 엑스레이로 발 크기를 측정하는 구둣가게 등 상상 그 이상의 상상력이 현실화되었던 ‘유년기 미국’이 위트가 담긴 신랄한 문체 속에 되살아난다.
빌 브라이슨 혹은 미국의 ‘유년기’
―우리 시대 가장 유머러스한 작가의 자전 에세이로 읽는 1950∼1960년대 미국사회사
재기발랄한 문체로 여행ㆍ과학ㆍ언어ㆍ역사 분야를 막론하는 글쓰기를 왕성하게 해온 빌 브라이슨의 자전적 에세이이자 1950∼1960년대 미국의 사회문화사이다.
출생 시점부터 십 대 시절까지 빌 브라이슨의 ‘개인사’적 배경이 되는 것은 전쟁이 끝난 후, 미국의 ‘사회사’다. 패권국 미국의 1950∼1960년대는 어땠을까? 빌 브라이슨은 그 시절을 “미국만큼 생동감 넘치고 즐거운 시간과 공간이 있었을까? 어떤 나라도 그런 번영을 누린 적이 없었다”(5쪽)고 회고한다.
미국의 숱한 매체에서 각기 다른 종말론을 쏟아내고, 설문조사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곧 세계 대전과 유사한 지구적 재앙이 닥쳐올 것 같다고 응답할 때, 종말 위기와는 별개로 미국인들은 새 집에 실내 수영장을 들여놓을 계획을 세웠으며 노후계획을 세우며 바쁘게 지냈다.
세계 인구의 5퍼센트에 불과한 미국인이 나머지 95퍼센트 인구보다 많은 재산을 차지했던 이 풍요의 시대를 방증하는 또 한 가지 키워드는 ‘베이비 붐’이다. 빌 브라이슨은 바로 그 베이비 붐 세대의 일원으로서 자신의 유년기 기억 위에 ‘유년기 미국’의 초상을 가로놓아 개인사와 시대사가 만나는 아주 특별한 역사 에세이를 만들어낸다.
성장 과정은 평탄했다. 특별히 고민하거나 땀 흘려 애쓰며 지낼 필요가 없었다. 누구에게나 흔한 일을 겪으며 지냈다. 따라서 내 이야기가 너무 밋밋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하지만 넓은 안목에서 보면 내 삶에서 가장 무서우면서도 오싹하고 흥미진진했으며, 눈알이 튀어나올 정도로 놀랍고 유익했고, 유난히 욕심을 부리고 모든 일에 열심이었으며, 불안해하면서도 무사태평했고, 당황하면서도 차분하게 지냈지만, 한편으로는 무력하기만 한 시절이었다. 우연한 일치였는지 그때는 미국도 그랬다. (본문 8쪽, 서문)
상상 그 이상의 풍경들, 유쾌함에서 통쾌함으로 나아가며 미국 읽기
사상 최고의 풍요를 누렸던 그 시절의 미국이 아름답기만 했던 것만은 아니다. 저자는 경제적으로는 활달하되 이념적으로는 경직되어 있던 시공간을 복원하는 방식으로 ‘풍자’를 택한다. 예리한 관찰력과 대담한 입담으로 풍자해낸 과거는 막연한 향수를 넘어, 사실을 바탕으로 진실을 직시함으로써 독자에게 유쾌함 이상의 통쾌함을 선사한다.
원자폭탄의 위력에 매료돼 방사능 낙진마저 반겨 맞았던 원자력 부흥의 시대 분위기, 반공 이데올로기를 조장했던 정치 사기극, 소련과의 우주경쟁, 억압적일 정도로 성을 금기시하던 풍습, 세상의 모든 신상품을 소비하기 위해 “더 일해서 더 많은 것을 사는 쪽을 택”하는 길을 택한 미국 중산층…. 그리고 원자변기ㆍ미사일 우편물ㆍ텔레비전을 시청용 의상, 엑스레이로 발 크기를 측정하는 구둣가게 등 상상 그 이상의 상상력이 현실화되었던 ‘유년기 미국’이 위트가 담긴 신랄한 문체 속에 되살아난다.
모든 꿈 그리고 죽음조차도 흥미를 자아내던 상상력의 시대
빌 브라이슨은 “억세게 물리적이고 때로는 비상식이 지배했지만 평화롭기 그지없는”(58쪽) 정감 어린 유년기의 놀이문화와 신종 장난감을 손에 쥔 듯 들뜬 모습의 무기개발자들을 대비시킨다. 이를테면 핵폭탄 개발의 목적은 ‘평화적’인 것이라는 아집에 빠져 있던 과학자 에드워드 텔러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핵폭탄을 이용해 대기의 먼지량을 조절해서 지구의 기후를 바꿔버리면, 미국의 북부 지역에서 겨울을 영원히 사라지게 하고 소련은 영원히 추운 겨울에 시달리게 할 수도 있다 … 핵탄두를 실험하기 위한 표적으로 달을 이용할 수 도 있다 … 그렇게 되면 지구에서 쌍안경으로도 폭발을 볼 수 있으므로 많은 사람에게 흥미로운 볼거리를 제공할 수 있다.”(165쪽) 타인의 무자비한 죽음을 상상하는 것마저도 환호를 받던 세계였다.
코미디와 공포의 경계에 서 있던 반공 이데올로기의 시대
‘반공’이 최고의 정의였던 시대의 다양한 에피소드는 ‘코미디와 호러’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든다. 적색 공포 속에서 초등학생조차 납득할 수 없는 방공호 훈련이 행해지는가 하면, 낚시 허가를 얻는 데도 프로 레슬링 게임에서도 충성 서약을 요구하는 것은 일종의 코미디였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을 공산주의자로 지목해 그들의 삶을 파괴시키기도 했던 반공 이데올로기는 실재하는 공포이기도 했다.
풍요의 시대가 가져온 환상과 소비 풍조
“경제는 멈출 수 없는 기관차가 됐다.”(37쪽) 경제적 풍요의 시대는 곧 더 일해서 더 많은 것을 소비하려 했던 새로운 삶의 형태가 등장시켰으며 새로운 상품을 쏟아내는 광고와 TV 매체의 발달을 가져왔다. “의사들이 즐겨 태우는 담배”라는 광고 카피가 허용될 정도였으며, 화학첨가제에 먹을거리가 포함된 꼴인 식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바야흐로 더 좋은 세상이 아니라, 더 나은 이익을 보장받으면 무슨 일이든 저질러지는 세상이 다가오고 있었다.”(308쪽)
지금, 우리가 미국의 유년을 되돌아보는 이유
《빌 브라이슨의 발칙한 미국 산책》은 때로는 당혹감을 불러일으킨다. 단지 기억에 의존하지 않고, 자기 체험에 풍부한 사료를 더한 이 생동감 넘치는 자전 에세이는 전혀 별개의 존재인 제3자의 것이 아닌 미국의 이야기인 까닭이다. 그렇다면 미국이 나라 밖에서 벌인 전쟁의 무대였고 그 전쟁의 그늘에서 반세기를 보낸 우리에게, 미국의 황금기를 돌아보는 것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그 모든 역사적 사실의 불편함을 끌어안고도 미국의 얼굴을 요목조목 뜯어볼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인지도 모른다. 우리의 현대사를 읽는 시점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미국의 유년기는 곧, 한국의 현재를 만든 요소들을 끝없이 반추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 책은 《빌 브라이슨의 재밌는 세상》의 개정판으로 원제는 《The Life and Times of the Thunderbolt Kid》입니다.
[추천사]
그는 언제나 ‘사실’을 바탕으로 ‘진실’을 쓰지만 딱딱하거나 교조적이지 않다.
―이우일(만화가)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과 향수. 그리고 가려진 진실으르 빌 브라이슨은 날카로운 위트로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김려령(소설가)
한 시대를 보여주는 브라이슨의 묘사는 거의 완벽에 가깝고, 부드럽고, 유쾌하고, 진실하다.
―타임스
[책속으로 추가]
공산주의에 대한 두려움을 가장 멋들어지게 이용한 사람은 위스콘신 출신의 공화당 상원의원 조지프 매카시(Joseph McCarthy)였다. 1950년 웨스트버지니아의 휠링에서 한 연설에서, 매카시는 국무부에서 일하는 공산주의자 205명의 명단을 주머니에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다음날에는 57명의 이름이 적힌 또 다른 명단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 후 4년 동안 매카시는 공산주의자 첩자의 이름이 쓰인 수많은 명단을 흔들어댔다. 이처럼 근거 없는 폭로를 하는 과정에서 그는 많은 사람의 삶을 파괴하는 데 큰 역할을 했지만, 약속한 명단을 제시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 때문에 증거를 제시하지 않고 남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는 일이 유행이 될 지경이었다. (174쪽)
내가 저지른 잘못은 일일이 헤아리기 힘들 정도였다. 학교 전체를 곤경에 빠뜨렸고, 교장 선생님까지 곤경에 빠뜨렸다. 나 자신을 모욕했을 뿐 아니라, 내 조국까지 모욕했다. 핵전쟁에 대비한 훈련을 등한시한 짓은 배신의 전조였다. 나는 가망이 없는 아이였다. 나는 나지막이 말하고 걸핏하면 결석하는 아이였다. 저축 스탬프를 열심히 사지 않고, 여자애가 입는 카프리 바지를 입고 나타나는 아이였다. 나는 볼셰비키 집안에서 태어난 게 분명했다. 그 후 나는 초등학교 생활의 대부분을 탈의실에서 보냈다. (201쪽)
그 시대에 인기를 누린 출판물을 면밀히 조사해보면, 순수한 낙관주의와 안타까운 실망감이 흥미롭게 뒤섞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1955년에 실시된 조사에서는 미국인의 40퍼센트 이상이 5년 내에 세계 전쟁과 유사한 형태로 전 지구적 재앙이 닥쳐오리라 생각하고, 절반 정도가 그로 인해 인류가 종말을 맞는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어느 때라도 죽음을 각오한다고 대답한 바로 그들이 새 집을 사고, 실내 수영장을 건설하며, 주식과 채권에 투자하고, 노후 계획을 세우느라 바쁘게 지냈다. 요컨대 모두가 지겹게 오래 살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처럼 처신했다. 한마디로 1950년대는 섣부른 짐작이 불가능한 시대였다.(260쪽)
내가 열한 번째 생일을 맞기 직전이던 1962년 가을이었다. 그때 나는 집에서 혼자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백악관에서 전하는 특별 성명이 있다며 프로그램이 갑자기 중단됐다. 그리고 피곤함에 지친 심각한 표정으로 텔레비전에 나온 케네디 대통령은 쿠바 미사일 위기에 관련된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
그날 케네디 대통령은 우리가 시나리오에서 ‘그렇지 않으면’이란 상황에 처해 있다고 말했다. 내가 그 말을 지금도 뚜렷이 기억하는 이유는 케네디의 얼굴이 걱정과 근심으로 핼쑥해 보였기 때문이다. 열 살인 내가 대통령에게 기대하는 얼굴이 아니었다. (…)
케네디의 어조에서 상황의 긴박성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아래층에 내려가 누이에게 남겨놓기로 약속한 토들 하우스 초콜릿 파이의 남은 조각을 몽땅 먹어치웠다. (266∼267쪽)
1950년대를 끝내가던 시기에 대부분의 국민, 특히 대부분의 중산층은 예부터 꿈꾸던 모든 것을 갖추게 됐다. 따라서 돈을 갖고 특별히 살 것은 많지 않았지만, 꼭 필요하지는 않은 것과 더 크게 변형된 것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그들이 애초부터 그렇게 열심히 일하지 않았다면 필요하지도 않았을 기계를 사려고…….
(…)미국인은 더 일해서 더 많은 것을 사는 쪽을 택했던 것이다.(307∼308쪽)
(…)소련은 스푸트니크 2호를 발사했다. 앞선 인공위성보다 훨씬 크고 무게도 500킬로그램이나 됐으며, 라이카라는 이름의 공산당 개까지 태우고 우주로 나갔다. 자존심이 크게 상한 미국은 자체 개발한 인공위성을 조만간 발진시킬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마침내 1957년 12월 6일, 플로리다 케이프 커내버럴에서 산뜻한 뱅가드 인공위성을 탑재한 바이킹 로켓의 엔진이 불을 뿜었다. 바이킹 로켓은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천천히 60센티미터쯤 올라가다가 거꾸러지더니 폭발해버렸다. 치욕적인 실패였다. 신문에서는 그 사고를 빈정대며 ‘카푸트니크’ ‘스테이푸트니크’ ‘스푸터니크’ ‘플로프니크’라고 재밌게 표현했다. 그 사고로 꾸준한 인기를 누리던 아이젠하워의 지지도가 한 주 만에 22퍼센트나 떨어졌다. (310∼311쪽)
1950년대의 미국만큼 생동감 넘치고 즐거운 시간과 공간이 있었을까? 어떤 나라도 그런 번영을 누린 적이 없었다. 전쟁이 끝났을 때 미국 공장들의 가치는 260억 달러에 달했다. 전쟁 전에는 아예 존재하지도 않던 공장들이었다. 또 1,400억 달러의 저축과 전쟁 채권이 축적돼 있었고, 폭탄 피해도 없었다. 실질적인 경쟁 국가도 없었다. 미국 회사들은 탱크와 전함의 제조를 중단하고 뷰익과 냉장고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이들도 낳기 시작했다.
(…)세계 인구의 5퍼센트에 불과한 미국인의 재산이 나머지 95퍼센트 인구가 지닌 재산보다 많았다.
(…)미국은 다른 나라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세계에서 가장 풍요한 나라가 됐다. (15∼16쪽)
비숍 식당의 화장실에는 세계에서 유일한 원자 변기가 있었다. 적어도 내가 알기에는 세계에서 유일했다. 소변을 보고 물을 내리면, 엉덩이 부분이 자동으로 들려서 벽에 똑같은 모양으로 오목하게 파놓은 곳에 들어갔다. 그럼 따뜻하고 위생적이며 첨단 과학적인 자주색 빛이 흘러나와 엉덩이 부분을 감쌌다. 그 후 원래 자리로 가만히 내려온 엉덩이 부분은 흠잡을 데 없이 깨끗하고 따뜻하기까지 했다. 따지고 보면 원자열로 소독되고 따뜻하게 덥힌 것이었다. 1950∼1960년대에 원인을 알 수 없는 엉덩이 암으로 얼마나 많은 아이오와 사람이 죽었을까? 하지만 그 멋진 원자 변기의 즐거움에 비하면 뺨이 홀쭉해지는 고생은 견딜 만했다. 우리는 다른 도시에서 놀러 온 사람들을 비숍 식당의 화장실로 데려가 원자 변기를 보여주곤 했다. 그럼 모두가 지금껏 본 것 가운데 최고의 변기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35∼36쪽)
언젠가 누이는 백화점에서 받았지만 별로 마음에 안 드는 선물을 내게 준 적이 있다. 주물로 만든 마차와 말이었다. 길이는 6.5센티미터밖에 되지 않았지만 무척 정교했다. 마차 문이 열리고, 바퀴도 돌았다. 작은 마부는 가는 금속 고삐를 쥐고 있었다. 태평양에 떠 있는 패전국에서 온 저임금 노동자가 심혈을 기울여서 손으로 만든 것이 분명했다. 나는 그처럼 멋진 것을 본 적이 없고, 가져본 적은 더더욱 없었다. (41∼42쪽)
사람들은 원자폭탄이 갖는 무기로서의 지존한 위치와 막강한 위력에 매료되고 홀딱 빠졌다. 군부가 라스베이거스 외곽 네바다 사막 지역의 프렌치맨 플랫이란 말라붙은 호수 바닥에서 원자폭탄의 실험을 시작하자, 그곳은 갑자기 라스베이거스에서 최고의 관광 명소가 됐다. 사람들은 도박을 하러 라스베이거스에 가는 것이 아니었다. 적어도 도박만을 하러 가는 것은 아니었다. 사막의 끝자락에 서서 발밑에서 흔들거리는 땅을 느끼고, 그들 앞에서 연기와 먼지가 기둥을 이루며 치솟아 오르는 광경을 보고 싶어했다. (99∼100쪽)
1953년 5월, AP통신 보도에 따르면 보스턴에는 텔레비전(78만)의 수가 욕조(72만)의 수보다 많았다. 한 여론조사에서도 텔레비전 없이 사느니 차라리 굶겠다는 놀라운 대답을 한 사람이 많았다. 실제로 많은 사람이 그렇게 살지 않았을까 싶다. 1950년대 초 공장 노동자의 세후 평균 소득이 주당 100달러에 훨씬 못 미쳤던 반면에 텔레비전의 가격은 500달러를 넘었으니 말이다. (101쪽∼102쪽)
인디애나 주의 로마 가톨릭 대주교 관구는 거의 같은 시기에 혼외 섹스는 죄이고 부도덕하며 생식적으로 위험한 짓일 뿐 아니라 공산주의를 조장하는 행동이라고 선포했다. 건초 더미 속 지푸라기 하나가 공산주의의 가차 없는 진군을 어떻게 돕는다는 건지 명확하게 말하지 않았지만, 그런 시시비비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어떤 행동이든 공산주의에 도움을 준다고 판단되면 그 근처에 얼씬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149쪽)
헝가리 태생의 물리학자로 수소폭탄의 개발을 뒤에서 주도한 천재 가운데 하나이자 반미치광이였던 에드워드 텔러(Edward Teller)는 핵폭탄을 평화적 목적에도 이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냈다. (…) 예컨대 산을 통째로 폭파시켜 거대한 노천 광산으로 만들고, 우리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강의 흐름을 바꾸며, 오스트레일리아의 대산호초처럼 선박 수송과 교류를 방해하는 거추장스런 장애물을 날려버릴 수 있다는 공상이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유럽의 다뉴브 강을 자본주의 국가만 통과하도록 흐름을 바꿔버릴 수도 있었다. (165쪽)
첫댓글 빌 브라이슨 지음 / 역자 강주헌 옮김 / 출판사 추수밭 | 2011.0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