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비공개 입니다
까치봉(418m)-용문산(龍門山, 602m)-함박산(432m)
산 행 일 : ‘22. 5. 12(목)
소 재 지 :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및 옥포읍 일원
산행코스 : 명곡체육공원→원등→까치봉(299m)→기내미재갈림길→다른 까치봉(441m)→용문산→기내미재→함박산→기산→반송1리 마을회관(소요시간 : 9.33km/ 3시간 30분)
함께한 사람들 : 강송산악회
특징 : 달성군(대구)의 명산인 용문산과 그 주위의 산들이다. 주산인 용문산을 빼면 산이랄 것도 없지만 그 용문산이 문제다. 높이가 602m나 되는데다 가파름도 버거울 정도로 심하기 때문이다. 거기다 바윗길의 연속이어서 안전에 각별한 주의까지 요구된다. 대신 장점도 많다. 바윗길의 특징대로 조망이 시원스럽고, 용문산을 제외한 나머지 산들은 솔가리가 수북하게 쌓인 보드라운 흙길을 걷는다. 피톤치드로 가득한 소나무 숲길을 걷노라면 피곤함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 산행들머리는 ‘화원명곡체육공원’(대구 달성군 화원읍 명곡리)
중부내륙고속도로(지선) 화원·옥포 IC에서 내려와 좌회전 ‘5번 국도(비슬로)’를 타고 ‘대구시청’ 방향으로 달리다 설화명곡역(지하철) 앞 사거리에서 우회전하여 ‘화암로’로 옮기면 잠시 후 ‘화원명곡체육공원’의 옆 도로변에 이르게 된다.
▼ 5개나 되는 산이 연결되는 등산로라서 들머리 또한 여러 곳에서 열린다. 우리는 명곡체육공원에서 시작해 까치봉·용문산·함박·기산을 거쳐 ‘반송1리’로 하산했다. 이때 용문산를 생략할 수도 있으며(까치봉에서 내려와 기내미재까지 임도 이용), 함박산 정상에서 작약봉(함박꽃과 작약꽃은 같지 않나?)까지 왕복하는 추가 산행을 할 수도 있다.
▼ ‘화원명곡체육공원’으로 내려가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2014년에 문을 연 체육공원으로 명곡리 일대 만여 평의 부지에 축구장과 인라인스케이트장이 들어서 있다.
▼ 신축중인 ‘우방아이유쉘아파트’에서 공원으로 들어오는 굴다리에는 ‘명곡체육공원’으로 적혀있다. 하지만 네비게이션에다 저 지명을 입력할 경우 양산시 명곡동 주변의 체육공원들로 도배된다는 것도 기억해 두자.
▼ 축구장 쪽으로 30m쯤 걷다가 왼편 주차 구역으로 올라간다. 125면이나 된다는 널찍한 주차장은 전기차충전소까지 갖췄다. 이어서 3단으로 나눠진 주차장의 가장 윗단의 오른쪽 끄트머리에서 산자락으로 파고든다.
▼ 이정표나 등산안내도 등 이곳이 들머리임을 알려주는 시설물은 일절 눈에 띄지 않는다. 하지만 반질반질하게 길이 나있을 뿐만 아니라, 경사진 곳에는 나무계단까지 설치해놓아 길이 헷갈릴 일은 없다.
▼ 시야가 잠깐 열리면서 축구장이 눈에 들어온다. 인조 잔디에 라이트시설까지 갖췄으니 전천후 경기장인 셈이다. 하지만 평일이선지 운동장은 텅 비어있었다.
▼ 길은 일단 곱다. 보드라운 흙길에 경사까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 콧노래 흥얼거리며 10분쯤 걸었을까 널찍한 공터가 얼굴을 내민다. 잘 가꾸어진 잔디밭 한가운데는 제단(祭壇)이 놓여있었다. 명곡마을 주민들이 해맞이 축제라도 여는 모양이다.
▼ 6분(산행을 시작한지는 30분)쯤 더 오르면 ‘원등(172m)’ 정상이다. 하지만 산봉우리라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 뽈록하니 튀어나온 능선 상의 한 지점이라는 게 정확한 표현일 듯. 그러니 정상석이 있을 리가 없다. 원등(元嶝)이란 지명도 1908년경 대한제국 탁지부에서 설치했다는 구소삼각점(토지조사사업이 시작되기 전에 시행하는 시범사업 성격의 구소삼각지역에 세웠단다)의 안내판에 그렇게 적혀있을 따름이다.
▼ 먼저 다녀 간 이들이 매달아놓은 표지기로 정상석을 대신해본다. 심용보(沈爖輔)님과 배창랑님에 허총무님 것까지. 시작은 함께했지만 걸음이 빠르다보니 나보다 한참을 앞서가는 모양이다. 그런데 23,456개의 산을 올랐다는 문정남님의 것은 왜 보이지 않는 걸까. 어쩌면 다른 능선을 타고 계실지도 모르겠다.
▼ 이어지는 산길은 울창한 소나무 숲속을 헤집는다. 팔등신 몸매를 자랑하는 소나무가 한가득인데, 그 아래로 난 길에는 솔가리가 수북하다. 거기다 코끝을 스쳐가는 솔향기까지. 콧노래가 저절로 흘러나오는 기분 좋은 산길이 계속된다.
▼ 산악회에서 깔아놓은 ‘방향표시지’가 오늘도 내 길라잡이가 되어주었다. 특히 용문산 정상 어림의 바윗길에서는 큰 도움을 주었다.
▼ 산행을 시작한지 35분. 화원읍의 명곡지구 아파트단지에서 올라오는 주등산로와 만났다. 이 길의 이름은 ‘명심보감로’. 조선시대 서당 학동들의 필독서였던 ‘명심보감(明心寶鑑)’은 고려 말의 문신 ‘추적(秋適)’선생이 중국 원말·명초 때 학자인 법립본(范立本)이 편찬한 ‘명심보감’을 참고해 증보판으로 펴낸 일종의 교과서다. 글쓴이가 달성군 출신이라는 인연을 살려, 지자체에서 ‘명심보감로’라는 문화탐방로를 조성해놓은 모양이다.
▼ 이정표는 ‘제3쉼터’라는 이름표를 달았다. ‘명심보감로’가 시작되는 명곡 아파트단지가 아닌 체육공원에서 출발하다보니 1·2번 쉼터를 그냥 지나쳐버린 꼴이 됐다.
▼ 안내판도 ‘명심보감로’라는 이름표를 달았다. 그중 하나에는 ‘황금이 상자에 가득해도 자식에게 경서 한 권 가르치는 것만 같지 못하고, 자식에게 천금을 물려주는 것이 기술 한 가지 가르치는 것만 같지 못하다.’는 뜻의 훈자편 글귀(黃金滿籝이 不如敎子一經이요 賜子千金이 不如敎子一藝니라)를 적고 있었다.
▼ 탐방로는 ‘명심보감(明心寶鑑, 마음을 밝히는 보배 같은 거울)’의 본질을 제대로 살렸다. 자식을 가르치는 훈자편(訓子篇)의 글귀 외에도 성심(省心), 입교(立敎), 치정(治政), 치가(治家)에 관한 글들이 줄을 지어 나타난다. 또한 자연으로부터 배우는 방법을 네 단계로 나누어 설명하는가 하면, 숲에서의 오감체험, 숲에서 얻게 되는 건강, 숲 유치원의 등 숲과 관련된 많은 정보들을 현수막을 통해 탐방객들에게 알려준다.
▼ 탐방로는 정성들여 닦은 흔적이 역력하다. 바닥은 잡풀 하나 없을 정도로 말끔히 정리되어 있고, 심심찮게 만나는 갈림길에는 놓치지 않고 이정표를 세웠다. 곳곳에 쉼터도 만들어 두었다. 산책삼아 찾아온 주민들이 쉬엄쉬엄 걷다가 돌아가기에 딱 좋은 환경이라 하겠다.
▼ 길은 무척 곱다. 보드라운 흙길에 경사까지도 거의 없다. 경사 같지 않은 경사라도 생길라치면 부지런한 지자체는 어김없이 계단을 놓았다.
▼ 앗! 돌탑도 보인다. 평평하던 길이 조금 가팔라지다보니, 그게 사람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편안한 산행을 꿈꾸며 하나둘 올려놓은 돌멩이들이 모여 저렇게 큼지막한 무더기로 변했다.
▼ 까치산은 라이더들의 천국인가 보다. 산행 도중 꽤 많은 산악자전거 라이더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나저나 대단한 사람들이다. 배낭 하나 달랑 메고 오르기도 이렇게 힘든데, 자전거까지 타고 오르다니...
▼ 4쉼터는 두어 그루의 홍단풍이 예뻤다. 하지만 이정표(까치봉 0.3㎞/ 명곡미래빌단지 2.5㎞)와 평상, 운동기구 외에는 특별히 거론할만한 게 없었다. 참! 4쉼터까지 오는 동안 두어 곳(#1 : 원당지→, #2 : 인흥서원←/기내미재→, #3 : 인흥서원←)에서 갈림길을 만났었다. 하지만 이정표가 세워져 있어 길이 헷갈릴 일은 없었다.
▼ 아직도 산길은 고도 높이기를 서두르지 않는다. 하긴 까치봉의 높이가 299m에 불과하니 가파른 오르막길이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 오늘은 유독 백선이 자주 눈에 띈다. 마침맞게 꽃망울까지 활짝 열었기에 카메라에 담아봤다. 나중에 알아보니 이곳 달성지역은 ‘백선’ 자생지로 유명하단다. 방대한 면적에서 군락을 이루는 게 전국 최대로 부족함이 없단다.
▼ 산행을 시작한지 1시간 만에 ‘까치봉(299m)’ 정상에 올라섰다. 하지만 정상이란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 밋밋하게 흘러내리던 능선의 한 지점이 두루뭉술하게 튀어나왔다고나 할까? 지자체의 생각도 나와 같았던 모양이다. 정자를 지어 ‘쉼터’를 겸하도록 했다.
▼ 그렇게 생겨먹었다고 정상이 아니겠는가. 이정표로도 모자라 정상석까지 떡하니 버티고 있었다.
▼ 까치봉을 지나서도 산길은 서두르지 않는다.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며 서서히 고도를 높여간다. 그나저나 길은 소나무로 가득했다. 보드라운 흙길에다 솔향기까지 더해진 탓인지 어느덧 마음까지도 한없이 여유로워진다.
▼ 소나무는 그렇게나 몸에 좋다는 피톤치드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나무 중 하나. 지자체가 이를 놓칠 리가 있겠는가. 숲속에 침대형의 벤치를 놓아 푹 쉬어가도록 했다. 잠깐 누워보니 심신이 새로워지는 느낌이다. 맞다. 사람이 호흡을 통해 피톤치드를 흡수하면 스트레스가 완화되고 심리적으로 안정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 저게 왜 여자의 엉덩이로 보이지? 무학대사는 부처와 돼지의 눈을 들어 ‘시안견유시 불안견유불(豕眼見唯豕, 佛眼見唯佛)’이라 했다. 그렇다면 아직도 나는 한창때라는 얘기일 것이다.
▼ 갈림길(이정표 : 기내미재↑ 1.6km/ 남평문씨 안흥세거지→ 2.7km/ 명곡체육공원↓3.0km) 하나를 더 지나 명곡임도에 내려선다. 화원읍 본리리와 명곡 기내미재를 이어주는 임도다.
▼ 이정표(기내미재→ 1.5km/ 남평문씨 세거지← 3.0km, 화원자연휴양림 종점 4.8km/ 안흥서원↓ 2.2km)는 많은 정보를 담았다. 먼저 까치봉과 용문산을 거치지 않고도 함박산으로 갈 수 있다는 점이다. 기내미재 방향으로 가면 된다. 중국에서 목화씨를 가져온 ‘문익점(文益漸, 1329-1398)’선생의 후손들이 살고 있는 ‘남평문씨 세거지’는 왼편이다.
▼ 이정표에는 방향표시가 없지만 맞은편 산자락으로 들어서면서 용문산을 향해 산행을 이어간다. 이 구간 역시 울창한 소나무 숲속을 헤집는다.
▼ ‘산악오토바이 출입금지’. 초입은 물론이고 등산로 곳곳에 매달아놓은 현수막으로도 부족했던가 보다. 곳곳에 통나무를 놓아 오토바이의 출입을 불가능하게 만들어버렸다. 이건 숫제 오토바이와의 전쟁이다. 그것도 치열한...
▼ 잠시 후 산길은 가파르게 변한다. 그리고 18분을 걸어 숨이 턱에 차오를 즈음에야 ‘까치봉(418m)’ 정상에 올라설 수 있었다. 아까 올랐던 ‘까치봉(299m)과는 동명이봉(同名異峰)이다. 그나저나 버거울 정도로 힘들게 올라왔건만, 정상은 허무하게도 텅 비어 있었다. 정상석은 물론이고 그 흔한 이정표마저도 보이지 않는다.
▼ 까치봉도 먼저 다녀간 이들의 표지기로 위안을 삼는다. 아까 원등에서 보았던 심용보님과 배창랑님, 허총무님 등 우리 일행 말고도 꽤 많은 이들의 표지기가 매달려 있었다.
▼ 오늘의 메인 봉우리인 ‘용문산’으로 향했다. 이제부터는 오롯이 나 혼자만의 산행이 된다. 한발 앞서 걷던 이들이 하나같이 명곡임도로 되돌아갔기 때문이다. 얼마 전 ‘강송산악회’를 따라 용문산을 다녀갔다면서, 두 번 오를 필요가 없으니 임도를 따라 기내미재로 가겠다는 것이다.
▼ 산길은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면서 고도를 높여간다. 이때가지만 해도 콧노래가 절로 나오는 여유로운 산행을 할 수 있었다. 솔가리가 수북이 쌓인 보드라운 흙길에 솔향기까지 코끝을 스치는데 어찌 콧노래가 흘러나오지 않을 수 있겠는가.
▼ 하지만 바윗길로 변하면서 상황이 확 바뀌어버린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가파른 오르막길로 변해버린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바위를 피하거나 오르내리는 번거로움까지 더해진다.
▼ 졸고 있는 바둑이를 닮지 않았나요? 아니면 젖 짜주기를 기다리는 산양을 닮았을 수도 있겠다. 고진감래(苦盡甘來)라는 듯이 산길은 저렇게 기기묘묘하게 생긴 바위들을 여럿 보여준다.
▼ 조망 또한 이 구간에서의 장점이다.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바위가 늘어나면서 심심찮게 시야가 터진다.
▼ 동네 뒷산처럼 올랐다는 인근지역 등산객들의 양해를 구하고 바위 끝으로 나가니 이따가 오르게 될 함박산이 성큼 다가온다. 그 오른편에서는 화원읍의 고층아파트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 조금 더 오르면 삼거리가 나온다. 이정표(비슬산 능선↑ 1.6㎞/ 화원자연휴양림← 1.78㎞/ 까치봉↓ 2㎞)는 왼편이 화원자연휴양림에서 올라오는 길임을 알려준다. 직진하면 ‘비슬산 능선’이란다. 그럼 요 위에 있는 ‘용문산’은 신기루처럼 나타났다 사라지는 유령의 산이란 말인가.
▼ 삼거리를 지나자 가파른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밧줄난간까지 매달린 상황이 눈앞에 펼쳐지자 두되는 싫다고 외쳐댄다. 강송산악회의 회원들은 빠른 속도를 자랑한다. 그런 이들이 지름길로 갔으니, 속도가 느려터진 데다 산 하나를 더 넘어야하는 나로서는 민폐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주어진 시간에 맞추려고 무리한 속도로 올라오느라 진이 다 빠져버렸으니 어이할꼬?
▼ 그 오르막길이 짧았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라 하겠다. 아무튼 까치봉을 출발한지 30분(산행을 시작한지는 2시간) 만에 용문산(606m) 정상에 올라섰다. 두세 평쯤 되는 공터로 이루어진 정상은 날선 바위들로 포위되어 있는 모양새이다. 그 한가운데에 오석으로 된 정상석을 세워놓았다.
▼ 정상에서의 조망은 뛰어나다. 먼저 비슬산으로 연결되는 능선에서 솟아오른 ‘닭지봉’이 그 자태를 그러낸다. 계속에서 저 능선을 탈 경우 진달래로 유명한 비슬산으로 이어진다.
▼ 시선을 조금 옮기자 이번에는 ‘함박산’이 성큼 다가온다. 그 오른편에는 대구 시가지와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이 놓여있다.
▼ 하산을 시작한다. 조금 전 올라왔던 곳으로 내려가 정상 바로 아래에서 왼편으로 방향을 잡으면 된다. 그런데 길 찾기가 만만치 않다. 바위지대라서 길의 흔적을 잃어버리기 일쑤기 때문이다. 이럴 때마다 산악회에서 매달아놓은 방향표시지가 구세주가 되어주었다.
▼ 바위에 의지해서 내려가야만 하는 산길은 위험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기기묘묘하게 생긴 바위들을 구경하는 장점도 있었다. 호랑이가 담배 피우던 시절 전설의 거인이 공기놀이를 했을 법한 저 바위도 그중 하나다.
▼ 관모(官帽)처럼 생긴 바위도 보인다. 제목은 생각나지 않지만 TV 연속극에서 저런 모자를 쓴 고대왕국의 관료를 본적이 있었다.
▼ 밧줄에 의지해 내려가야만 하는 구간도 있다.
▼ 위험에 빠질 때 인간은 신을 찾는다고 했다. 저 돌탑도 그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얼마나 가슴 졸였으면 저렇게 정성들여 쌓아올렸을까.
▼ 산길은 기내미재에 이를 때까지 계속해서 가팔랐다. 무릎이 성치 않은 이들에게는 최악의 구간이 될 수도 있겠다.
▼ 그렇게 30분을 내려서니 ‘기내미재’다. 화원읍 명곡리에서 옥포읍 반송리로 넘어가는 고갯마루로 간이식당(메인 디시인 국수와 수제비는 물론이고 닭백숙과 족발까지 파니 음식백화점이라는 게 더 옳겠다)에 화장실까지 갖춘 의젓한 쉼터다. 참고로 기내미라는 지명은 귀네미(정감록에서는 무릉도원으로 가는 길목으로 사용된다)에서 따왔다는 설이 유력하다. 그게 귀넘이를 거쳐 기내미로 변했다는 것이다.
▼ 찾는 사람이 많다보니 불미스러운 일도 생기나 보다. 이정표 옆에 잃어버린 사다리를 돌려달라는 당부를 적어놓았다. 카메라를 돌려보겠다는 엄포까지 놓으면서...
▼ 기내미재는 화원읍 명곡리와 옥포읍 반송리를 잇는 임도(아니 군내버스까지 다니는 의젓한 도로이다)가 지나간다. 탐방로는 임도 위로 내놓은 야생동물 이동통로(차량통행도 가능하다)를 따른다.
▼ 동물이동통로를 지나 함박산의 산자락으로 들어선다. 초입에 ‘달성보 녹색길’의 아치형 대문이 세워져 있으니 참조하면 되겠다. 달성보녹색길이란 대구수목원을 출발해 달성지역의 아름다운 경관과 문화유적지(남평문씨 세거지·인흥서원·용연사·소계정)들을 지나 달성보에 이르는 22km 길이의 둘레길이다. 이곳 기내미재에서 함박산까지의 구간이 달성보녹색길과 겹친다는 것이다.
▼ 하지만 난 곧장 오르지를 못하고 평상에 드러눕고 말았다. 지름길로 간 일행들에게 뒤쳐지지 않으려고 가파른 산길을 달리다시피 오르내리느라 몸에 무리가 왔던 모양이다. 부랴부랴 포도염(鹽+糖) 다섯 알을 복용한 다음 15분 동안 푹 쉬니 체력이 회복된다. 다시 산행을 이어갔음은 물론이다.
▼ 해발 288m인 이곳 기내미재에서 함박산 정상까지는 600m에 불과하다. 하지만 144m의 고도차를 극복해야만 하는 쉽지 않은 구간이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산길은 초반부터 침목계단이 깔려있다.
▼ 잠시 후, 이번에는 나무계단이 길손을 맞는다. 지친 몸이라서 버겁겠지만 걱정할 필요까지는 없다. 속도를 조금 떨어뜨리고 한걸음 또 한걸음 내딛으면 될 일이다. 천리길도 한걸음부터라고 하지 않았던가.
▼ 고생은 좀 되지만 조망만은 일품이다. 고개라도 돌릴라치면 오르내리느라 버거워했던 ‘용문산’이 버티고 있다. 그 고생을 시켰으면서도 산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연록의 아름다움으로 빛난다. 맞다. 신록이 본격적으로 펼쳐지는 소만(小滿)이 일주일 밖에 안 남았다. 생강꽃, 진달래에 이어 철쭉까지 진 산하는 이제 녹음이 숲을 점령했다. 생명의 기운을 만끽할 수 있는...
▼ 다시 나타난 침목계단을 오르자 산길은 언제 가팔랐느냐는 듯이 사나왔던 기세를 뚝 떨어뜨린다. 그리고는 울창한 소나무 숲속으로 파고든다. 말 그대로 피톤치드 샤워장에 온 느낌이 드는 순간이다.
▼ 기내미재를 출발한지 20분 만에 ‘함박산(432m)’ 정상에 올라섰다. 두루뭉술한 흙봉우리인 정상은 왠지 꽉 차있다는 느낌이다. 정상석과 이정표(옥연지↑ 4.3㎞/ 기산리← 1.0㎞, 반송삼거리 2.4㎞/ 기내미재↓ 0.6㎞)로도 부족한 듯 김문암씨의 정상표지판까지 걸렸다. 참! 아까 용문산을 생략했던 회원들은 이곳에서 작약봉(446m)까지 다녀왔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겐 언감생심이다. 그렇지 않아도 꼴찌인데 왕복 2.3km를 언제 다녀오겠는가.
▼ 정상 근처에는 두 개의 돌기둥이 우뚝 서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함박바위'라는데 산 이름이 먼저 생겼는지 아니면 이 바위에서 산의 이름을 따왔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 하산을 시작한다. 이정표가 가리키고 있는 기산리 방향(왼쪽)이다. 이어서 크고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면서 고도를 낮추어 가는데, 아까보다는 못해도 길은 양호한 편이다. 소나무 숲도 여전하다. 다만 키가 작아졌을 따름이다.
▼ 그렇게 20분 남짓 내려오자 ‘기산(276.6m)’ 정상이다. 특별할 게 하나도 없는 정상은 정상표지석까지도 없다. 그 흔한 이정표도 눈에 띄지 않는다. 그저 대구의 ‘길손’이라는 분이 매달아놓은 정상표지판이 이 모든 것을 대신할 따름이다. 아니 먼저 다녀간 이들이 매달아놓은 표지기도 한몫을 하고 있었다. 오늘 함께 산행을 한 심용보님과 김신원님, 배창랑님, 신산호님, 허총무님도 빠뜨리지 않고 매달아 놓았다. 그런데 저 ‘만산동호회’ 표지기는 누가 걸어놓고 간 걸까.
▼ 기산을 지나서도 산길의 형편은 변함이 없다. 내리막의 가파름도 여전하다. 아직은 코스 정비가 덜 돼 한발 한발이 조심스럽다.
▼ 15분 후, 삼각점(왜관 485)이 설치되어 있는 또 다른 봉우리(192.6m)에 올라섰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달성군에서 세운 안내판(삼각점의 내력을 적었다)에 이곳을 ‘기산(岐山)’으로 적어놓은 것이다. 그럼 아까 만났던 ‘기산’은 대체 뭐란 말인가?
▼ 삼각점봉을 지나면서 산길은 고와진다. 평지에 가까울 정도로 경사를 누그러뜨린다. 다만 두어 곳에서 이정표 없이 길이 나뉘지만 산악회에서 깔아놓은 방향표시지 덕분에 별 어려움 없이 진행할 수 있었다.
▼ 무덤이 무리지어 있는 능선을 따르다가 갈림길에서 왼편 샛길로 내려서니 ‘반송마을’이 나온다. 반송(盤松)이란 지명은 이 지역에서 자라는 반송에서 유래됐다. 원래는 반석으로 이루어진 지형 때문에 나무가 자라지 못했는데, 한 농부로부터 극진한 대접을 받은 허기진 승려가 그 보답으로 반송을 심도록 권하더란다. 그 후로 반송이 산 전체를 뒤덮었고, 이에 마을 이름을 반송이라 했다는 것이다.
▼ 산행날머리는 반송1리 마을회관(달성군 옥포읍 반송리)
이어서 마을안길을 조금 더 걸으면 ‘반송1리 마을회관’ 앞 도로(용연사길)에 이르면서 산행이 종료된다. 오늘은 9.33km를 3시간 30분에 걸었다. 산길 대부분이 가파른 산길이었음을 감안하면 무척 빠른 속도로 걸은 셈이다. 앞서간 이들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였는데, 그 덕분에 주어진 시간보다 30분이나 먼저 도착할 수 있었다.
▼ 산행을 마친 뒤 인근 뷔페식당(다담뜰)으로 옮겨 ‘문정남’선생의 ‘23,456산 등정(4,500일 산행)’ 기념식을 치렀다. ‘1만 산’ 등정을 넘겼거나 가까워진 유명 산꾼들은 물론이고, 산을 주제로 시를 쓰는 ‘김운남’시인(저서인 ‘三千山 詩塔을 위하여’를 선물 받았다)과 취재차 나온 ‘월간 山’지 ‘신준범’기자도 함께했다. 그나저나 4,500일이라면 매주 5일씩을 산에 오른다고 해도 18년이나 걸린다. 그게 가능한 일일까? 불가능에 가까운 그의 열정을 곁에서 봐온 나로서는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
출처: 비공개 입니다
첫댓글 만들어만 놓고 깜빡 잊고 있다가,
산행 따라가려고 검색하다 눈치채고 이제야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