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만리 머나먼 길에
왕방연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운 님 여의옵고
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았으니
저 물도 내 안 같아서 울어 밤길 예놋다
[감상의 길잡이]
이 시조는 단종이 영월로 우배될 때 호송 책임을 맡았던 의금부도사
왕방연이 어린 임금을 유배지에 남겨두고 돌아오는 슬픔을 노래하고
있다. 단종은 1452년 문종이 재위 2년 만에 세상을 뜨자, 열두 살의
나이로 왕위에 오른다. 그러나 1453년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영월로 유배된다. 시의 화자는 어린 임금과 헤어져야 하는
자신의 슬픔을 냇물에 감정이입하여 표현하고 있다.
[작가소개]
왕방연[ 王邦衍 ]
시대 : 조선
출생 – 사망 : 미상 ~ 미상
성격 : 문신
성별 : 남
대표관직(경력) : 의금부도사
<생애 및 활동사항>
사육신을 중심으로 한 단종복위사건이 사전에 발각되어, 강원도 영월에 유배 중인
노산군(魯山君: 단종)에게 1457년 사약이 내려질 때 책임을 맡은 의금부도사였다.
영월에 이르러 사약을 받들고 노산군 앞으로 나아가려 하였으나 감히 어찌할 바를
몰라 머뭇거렸다. 나장(羅將)이 시각이 늦어진다고 재촉하자 하는 수없이 뜰 가운데
엎드려 있으니, 단종이 익선관과 곤룡포를 갖추고 나와서 온 까닭을 물었을 때
대답을 하지 못하였다.
그러자 단종을 항상 곁에서 모시던 공생(貢生: 관가나 향교에서 심부름하던
통인과 같은 사람)이 단종을 죽이는 일을 담당하였다. 당시 왕방연이 괴로운
심정을 토로한 시가 전한다.
『장릉지(莊陵誌)』에는 금부도사(그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다)가 밤에 굽이치는
여울의 언덕 위에 앉아 슬퍼하면서 노래를 지었는데, 그 뒤 1617년에
김지남(金止男)이 금강에 이르러 여자아이들이 부르는 노래를 듣고 한문으로
단가를 지었다고 전한다.
참고문헌
[네이버 지식백과] 왕방연 [王邦衍]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