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의 문>에 들어서는 것은 쉽지 않다. 올해 인디다큐페스티벌 개막작으로 선정된 <진실의 문>은 미제 사건으로 남아 있는 '김훈 중위 의문사 사건'을 추적하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올해 28세인 김희철 감독은 방대한 자료와 끈질긴 노력, 담담한 시선으로 갇혔던 진실을 풀어낸다.
김희철 감독은 1995년 육군사관학교 2학년 1학기 기말 시험지를 백지로 내고 자퇴했다. 육사 입학은 이북 출신의 실향민으로 어린 시절부터 미군 부대에서 일하면서 미군 문화와 군대 문화에 흠뻑 젖어든 아버지의 바람이었고, 육사에 간 큰형과 작은형의 뒤를 따르는 자연스러운 결정이었다. 그런데 막상 들어가고 보니 분위기가 자신과 전혀 맞지 않았다. 김희철 감독은 결국 아버지의 경멸을 견디며 군인의 길에서 벗어났다. 사실상 군인 가족인 집안에서 그만 떨어져 나온 것이다. 어쨌든 육사 54기 김희철로 살던 시절, 김훈 중위는 52기였다. 친하진 않았지만 얼굴은 알았고 같은 공간에서 같은 공기를 마시며 살았던 2년 선배. 김희철 감독과 김훈 중위의 인연은 그 정도에 불과했다. 그리고 1998년 2월 24일. 공동경비구역 241GP 내 3번 벙커에서 김훈 중위의 시체가 발견됐다. 그의 죽음은 명확한 근거 없이 자살로 발표됐다. 유가족들의 진상 규명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건 발생 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진실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금기의 문을 열다
올해 4회를 맞은 인디다큐페스티벌의 개막작 <진실의 문>은 김훈 중위 의문사 사건을 통해 무너진 인권의 실태를 추적한 작품이다. 1976년 생인 김희철 감독은 2001년 <나의 아버지>라는 가족에 관한 첫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하지만 그 이전인 1998년부터 김훈 중위 사건에 대한 관심은 꾸준했고, 조금씩 관련 자료를 모아왔다. "엄청난 사명감과 책임감에 불타 시작한 일은 아니었다"지만 개인사적 배경을 생각하면 그에게 김훈 중위 사건이 남다른 느낌으로 다가왔을 법도 하다. 진실을 다루는 다큐멘터리에 대한 관심과 개인사적 배경은 <진실의 문>의 뼈대를 세우는 첫 기반이 되었다. "솔직히 말해 이 사건은 요소요소 그 자체로 너무 다큐적이었다. 공중파 시사 프로그램들이 몇 차례 김훈 중위 의문사 사건을 다루었고, 그때마다 시청률은 꽤 높았다. 하지만 상업적인 프로그램이나 보도물이 아니라 개입 없이 진실을 보여 주는 다큐멘터리로 만들고 싶었다. 그것이 진상 규명으로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은 작업을 하며 커졌다"고 김희철 감독은 말한다.
<진실의 문>의 카메라는 유가족들이 애타게 바랐던 결과가 번번이 좌절되자 실망하고 분노하는 모습을 말없이 쫓는다. 일단 한 장교의 죽음을 정당한 근거 없이 자살로 몰고 가는 과정에서 국가 권력의 인권 유린이 벌어진다. 김훈 중위의 사인 분석을 놓고 법의학 토론회가 벌어졌을 때 비양심적인 집단주의를 보이는 법의학자들, 당시 선정적 추측 보도를 했던 언론들, 이해할 수 없는 논지로 판결을 뒤집어 국방부의 손을 들어준 사법부까지 이 체계적인 '진실 가리기'에 동참한다. 또한 군대라는 성역 안에서 벌어진 이해할 수 없는 죽음이 당시 판문점 부대의 군기 문란, 군 상부자들의 이익과 지대한 관련이 있다는 주장으로도 발전해 나간다. 이 모두와 함께 간과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사실은 사건의 전말을 알면서도 외면한 주한 미군의 침묵이라고 <진실의 문>은 힘껏 목소리를 내고 있다. 무엇보다 3성 장군이자 김훈 중위의 아버지인 김척 장군과 유족들이 주장하는 김훈 중위의 타살 가능성은 외로움 때문에 자살했다는 국방부 측의 추측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한.미군이 공존하기에 정부의 통제가 불가능한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몇몇 부대원들이 북한군과 접촉하고 군 무기와 군 식량을 부대 밖으로 반출해 팔아 이득을 취해왔고, 이를 알아내고 저지하려던 김훈 중위를 살해했을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유족 측은 김훈 중위의 메모를 증거로 제시하고 있다. 이처럼 105분의 러닝 타임은 증거의 증거라고 할 만큼 방대한 자료와 동영상 화면, 인터뷰로 가득하다. 이 자료와 관계자 인터뷰는 그간 알려지지 않았던 김훈 중위 사건의 충격적인 면모를 생생하게 전달한다.
당시 천주교인권위원회 간사이자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고상만 조사관, 15대 국회 내에서 이 사건에 주목했던 전 하경근 의원 보좌관 정태용 씨, 유족 측 이덕우 변호사, 김훈 중위 의문사 사건을 9개월 동안 추적 보도했던 '시사저널' 정희상 기자, 김훈 중위가 사망하기 직전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경비 대대에 복무했던 최문성 병장의 인터뷰는 영화 곳곳에 퍼져 있다. 지난 6년간 진상 규명을 위해 숱한 노력을 기울였던 이들의 말과 동영상 화면이 교차 편집되고, 시간이 갈수록 <진실의 문> 속 김훈 중위의 타살 가능성은 점점 더 큰 설득력을 얻는다. 외형상으로는 김훈 중위가 사망한 시점부터 최근까지 시간순을 따르는 단순한 구성이지만 별다른 가지 치기 없이 감독의 주관적인 개입을 최대한 배제한 연출은 사건의 진실에 집중하게 하는 힘을 발휘한다. 김희철 감독은 "처음엔 김훈 중위 타살 주장을 의심했었다. 유족들에게 미안한 얘기지만, 법의학 토론회에서 법의학자들이 말하는 것을 듣다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만약에 자살이라고 해도 그런 식으로 처리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점차 사실 관계들이 밝혀지면서 도대체 이 죽음이 어떻게 자살인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한다. 김희철 감독의 인식 변화로 인해 <진실의 문>은 어느새 자살이라는 결론이 정해진 채 미군의 초동 수사부터 국방부의 특별조사단 수사까지 모든 것이 꿰어 맞춰지는 흔적을 따라잡는다.
거리를 두고 진실 쫓기
대부분의 다큐멘터리들이 그렇지만 특히 <진실의 문>처럼 정치적인 미해결 사건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든다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이다. 우선 물질적인 문제들이 뒤따랐다. 2천만 원의 제작비로 10명의 스탭과 작업하면서 경제적인 어려움은 말할 수 없이 컸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했던 것은 김훈 중위 유가족들의 신뢰를 얻는 것이었다. 가진 것이라곤 젊음과 열정뿐이었던 김희철 감독은 1999년 무작정 유가족을 찾아갔다. 그가 김훈 중위와 같은 시기 육사에 다녔다는 사실이 유족들의 호감을 사긴 했지만 그것이 모든 일을 해결해 준 건 아니었다. 의심의 눈초리를 신뢰의 눈빛으로 바꾸기 위해 관련 공판이 있을 때마다 빠짐없이 참석하고, 유가족 곁에 있다는 느낌을 주지 않았다면 <진실의 문>은 결코 만들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놀랍게도 대다수의 중요 자료들이 유족들을 통해서 얻어졌기 때문이다. 심지어 국방부가 유족들에게 넘긴 자료 화면 중에는 어떻게 이것을 넘겨주었을까 의심할 만한 자료들까지 있었으니 말이다. 당시 김훈 중위의 소대원 가운데 한 명이 조사를 받으면서 갖은 회유와 협박을 받은 장면이 생생하게 찍힌 화면과 미군이 사건 당일 벙커를 수사하는 동영상 자료가 그것이었다. 김척 장군이 국방부로부터 받아낸 자료에 포함돼 있었던 자료다.
김희철 감독은 "국방부로서는 발목을 잡힐 만큼 불리한 자료인데, 어떻게 유족들이 갖게 됐는지 구체적인 경로는 알 수 없다. 아마 공무원들이 계속 바뀌면서 잘 모르고 귀찮게 여겨 넘겨줬을 수도 있다. 어쨌든 이것이야말로 김훈 중위의 유족들이 국방부를 상대로 얼마나 끈질기게 요구를 해왔는가를 말해주는 증거"라고 말한다. 중요한 증인 가운데 한 명인 최문성 병장의 연락처도 유족들에게서 얻었다. 당시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경비 부대에 있었던 그의 증언은 매우 중요했다. 김훈 중위가 사망하기 한 달 전 전출해 사건 현장에 없었기 때문에 다른 소대원들처럼 군의 통제를 받지 않았던 인물이라는 사실, 그리고 그가 전해주는 부대 내의 생생한 분위기는 유족들의 주장을 크게 뒷받침해주는 근거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김희철 감독은 혹시라도 생길 수 있는 불이익을 막기 위해 모든 것을 책임지겠다는 동의서를 만들고 최문성 병장 가족들의 허가를 얻은 후 인터뷰를 진행했다. 완성이 될 때까지 여러 차례 편집본을 보여 주며 증인들을 안심시키는 작업도 병행해야 했다.
그동안 김훈 중위 유족들은 매우 체계적으로 자료를 수집해 공판을 준비했고, 모든 증언을 일일이 공증받는 등 치밀하게 조치를 취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유족들이 만든 홈페이지는 6년간의 재판 과정과 언론 보도, 그리고 김훈 중위 타살에 관한 증거들로 꽉꽉 채워져 있다. 하나 번번이 기대가 좌절되면서 먼지만 쌓였던 유족들의 귀한 자료들은 김희철 감독의 카메라 속에 담겨 진실의 문 밖으로 나오게 됐다. 천주교인권위원회 캐비닛 안에서 잠자고 있던 법의학 토론회 동영상 화면을 얻은 것도 큰 수확 중 하나였다. 여기엔 김훈 중위의 죽음이 자살일 수 없다는 재미 법의학자 노여수 박사의 다양한 소견, "나는 군을 사랑한다. 하지만 잘못은 고쳐야 한다"는 김척 장군의 호소와 "내 머리에 총을 대서 실험해 주기 바란다. 나는 내 몸을 내 자식한테 바친다!"는 어머니 신선범 씨의 절규가 담겨 있다.
하지만 유가족의 신뢰 관계에서 독립해야 하는 순간도 다가왔다. 편집본을 보여 줄 때마다 긍정과 부정의 반응을 동시에 보인 유가족들의 요구를 모두 수용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김희철 감독에겐 그들의 도움을 얻고 함께 진실을 쫓으면서도 객관성을 유지해야 하는 다큐멘터리스트로서의 행보 그 자체가 아마 가장 힘겨운 일이었을 것이다. 유가족의 인터뷰를 넣지 않은 이유도 그래서다. "유가족들은 섭섭해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디다큐페스티벌 개막식날 참석한 아버지(김희철 감독은 김척 장군을 이렇게 부른다)는 '희철이 아니면 이렇게 만들기 힘들었을 거다'고 말씀하셨다. 그분들이 만족스러웠을 거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실망하진 않으신 듯하다"며 말을 아낀다.
세월을 극복하는 방법
1998년 사건 당시 방송 뉴스와 신문은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벌어진 한 육사 출신 장교의 의문에 찬 죽음에 대해 연일 보도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경비 대대 부소대장 김훈 중위 사망 의혹 사건은 많은 인권 운동가들에 의해 국가 권력에 의해 어떻게 진실이 은폐될 수 있고 인권이 무너지는가에 대한 실태를 증명하는 사례로 여겨져 왔다. 이 사건을 한복판에서 지켜본 당시 천주교인권위원회 고상만 조사관은 1999년 <니가 뭔데...>라는 책을 출간하며 3분의 1가량을 김훈 중위의 이야기로 채워 넣었다. 유족들의 자료와 고상만 조사관의 책, 그리고 김희철 감독이 케이블 TV 다큐멘터리 채널 Q채널에 근무하면서 얻은 자료들로 이루어진 <진실의 문>이 완성을 앞둘 무렵, 2004년의 시점에서 상황은 과거와 많이 달라져 있었다. 판문점 부대의 고질적 관행들이었던 미군 물품 반출과 부대원들의 북한군 접촉 등의 실상이 언론에 보도돼 파문이 일었고, 부대원 중 한 명이 타살 용의자로 지목되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심지어 지목된 당사자와 가족들이 법적인 대응에 나서는 일도 있었다. <진실의 문>이 공개된 후 전 국방부 관계자들이나 전역병들이 언제 어떻게 나올지 알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2001년, 김훈 중위 사건을 모티프로 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내에서 일어난 일을 다룬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가 개봉했을 때도 그랬지만 누구라도 작정하고 발목을 잡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김희철 감독은 달라진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자문 변호사를 두고 도움을 얻었다. 법의학 토론회 동영상에서는 국방부 측 법의학자들의 얼굴을 가리고 음성을 변조했었지만 "소신껏 발언한 학자들의 모습을 공개된 자리에서 촬영한 것이기에 명예 훼손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답변을 얻기도 했다. 이 토론회 영상의 등장인물들과 그들의 어처구니없는 진술이야말로 <진실의 문>의 볼거리(?)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설득력 없는 법의학자들의 증언은 아무런 꾸밈이 없는 화면 속에서도 마치 풍자 코미디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와 반대로 유족 측 증인들이 서로 토스하듯 한 가지 단서을 둘러싸고 끊임없이 정보를 제공하는 화면은 시간이 지날수록 김훈 중위 타살 의혹에 대한 심증을 굳게 한다.
이렇듯 한국 사회의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과 태도를 객관적으로 담으려 노력한 <진실의 문>은 기획안을 만들고 영화진흥위원회 독립영화 제작 지원금을 받아 2003년 가을부터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갔다. 인터뷰 촬영에 들어간 것은 올해 5~6월, 이후 일주아트하우스를 아지트로 삼고 7월부터 9월까지 전체 러닝 타임을 105분으로 편집했다. 그리고 9월 말 인디다큐페스티벌 개막작으로 선정됐다. <진실의 문>을 지지하는 인디다큐페스티벌의 남인영 프로그래머는 "<진실의 문>에는 김희철 감독과 유가족들이 함께한 6년간의 세월이 보인다. 호흡면에서는 더 다듬어야 하겠지만 다큐멘터리의 기본 화두, 진실을 찾는다는 것에 매우 충실한 작품이다. 그것도 방대한 자료와 노력으로 아주 끈질기고 집요하게"라며 개막작 선정 이유를 밝혔다.
망각을 깨우치는 다큐멘터리
"겁난다. 나도 사람이니까." <진실의 문>을 완성한 지금 김희철 감독의 솔직한 심정이다. 심지어 현직 군인인 큰형의 진급에 걸림돌이 될지도 모른다는 가족의 반대(이 때문에 정면 사진 촬영을 정중히 거절했다)를 무릅쓰고 작품을 완성했지만 두려운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두려운 만큼 기대도 크다. 김훈 중위의 죽음 외에도 이 땅에서 생겼던 억울한 죽음들은 수없이 많지만 국가 공권력이 개입된 경우 그 어떤 사건도 진상이 제대로 규명된 적은 없었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 <진실의 문>이 그 장벽을 뚫어줄 수 있다면 다행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김희철 감독은 "지금 막 뚜껑을 열었기 때문에 앞으로 벌어질 일이 어느 정도일지 예상하지 못하겠다. 그런데 또 생각해 보면 어떤 식으로든 반응이 있어야 알려지지 않을까 싶다"며 담담하게 웃는다.
지난 10월 28일 인디다큐페스티벌 개막일에 <진실의 문> 상영 직후 김훈 중위 유가족들이 무대 인사를 가졌다. 김훈 중위의 어머니는 무려 20분간 아들의 죽음에 관해 억울했던 심정을 털어놓았다. 유족 측의 이덕우 변호사는 "무서운 건 망각이다. 잊어버리지 않게 기억해야 한다. 자극적이지 않지만 진득한 김희철 감독의 영화를 많이 봐달라. 사회를 바꾸는 거대한 무기가 되도록 힘써 달라"는 소감을 밝혔다. 올해 인디다큐페스티벌 조직위원장이었던 <송환>의 김동원 감독은 "접근하기 어려운 소재였다. 여러 가지 우리 현실의 문제를 짚어내고 있다. 미군 문제, 군대 문화, 정부 차원의 문제까지. 아직 호흡이 잘 맞지 않는 미완의 작품이기는 하지만, 그 시도는 의미 있다"고 평가한다. <진실의 문>을 바라보는 독립 다큐멘터리 진영에서는 "의미 있다"는 지지와 "어줍잖다. 화면 연출이나 가족 이야기가 밋밋하다"는 반대 의견이 공존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김동원 감독은 "파괴력은 작아도 <진실의 문>은 분명 설득력이 있다. 유족들이 재판에 참고 자료로 제출할 예정이라고 들었다. 잊혀진 사건이 회자되고, 판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 이 영화의 의미는 더 커질 것"이라고 말한다. <진실의 문>의 인터뷰 속에서 "김훈 중위의 목숨이 살아오지 않는 대신 더 많은 목숨들이 살아갈 수 있다"는 고상만 간사의 말은 큰 울림을 갖는다. 국가 권력에 의해 짓밟힌 한 인간의 진실을 규명해 내는 것은 또다시 생길지도 모르는 그와 유사한 죽음을 막아내는 계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김희철 감독은 "<진실의 문>을 보면 이 사건이 타살이라는 심증이 강하게 느껴지는데, 혹시 범인을 아느냐"는 질문도 받는다. 김희철 감독은 "누가 죽였는가보다는 그 사건을 자살로 몰아가게 된 과정이 더 중요하다. <진실의 문>이 사건을 완전히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김훈 중위 사건의 판결이 어떻게 나느냐에 귀 기울이고 있는 이들이 많다. <진실의 문>이 앞으로 어떤 사건이 일어나든지 간에 더 이상 이렇게 처리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면 좋겠다"는 작은 소망을 피력한다. 국가를 상대로 김훈 중위 유가족이 낸 손해 배상 소송은 1심에서 기각되었고 현재 항소심을 거쳐 대법원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진실을 방해하는 가장 무서운 요소가 사회적 망각임을 생각할 때 <진실의 문>은 분명 그것을 일깨우는 소중한 다큐멘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