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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시온산 제단(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한 논리로 완전해독) 원문보기 글쓴이: 티끌
사단도 하나님이다
1. 사단은 하나님보다 더 하나님 같다.
인간은 최초로 수렵사회에서 그 후 농경사회와 산업사회를 거쳐 오늘의
정보화사회로 발전했습니다. 인간은 그동안 녹색혁명과 산업발달을 일으켜
먹고 쓰는 물자의 풍요로움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최첨단 생명공학으로
인간만세를 꿈꾸게 되었으나, 결국 동전의 양면처럼 지구환경의 파괴와
인간심성의 황폐화를 동반했으므로 오히려 인류파멸에 직면케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21세기 인류에게는 그리스도의 천국정부가 대안으로
떠오를수 밖에 없는 시대말을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믿음은 세상의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요구됨이 아니고 믿는 우리들에게 요구됩니다.
세상은 현재 정보화시대까지 도달해서 천국정부를 맞게 되었는데,
우리 믿음의 시대들은 어떻게 전개되어 왔을까요? 믿음의 시대들은 간단히
최초에 여호와의 구약시대에서 초림주의 복음시대로 진입해서 이천년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이제 재림주의 천국정부시대를 맞게 되었습니다.
모두 하나님이 역사해오신 신앙의 시대들입니다.
세상의 시대들도 신앙의 시대들도 모두 하나님이 이끌어오신 창조세계이며,
창조란 이렇게 시간을 동반하는 양시대(兩時代)들로 병행해 오다가
결국은 재림주의 천국정부에서 합류하게 됩니다. 즉 마지막 때는
인간세상을 그리스도가 통치하시는 신권통치의 제정일치(祭政一治)를
이루게 됩니다.
하지만 누가 과연 21세기 우리세대에 그리스도의 천국정부의 도래를 믿을
것인가 입니다. 아브라함의 말년에 하나님이 앞으로 이삭을 주시리라
하셨을 때 그것을 믿었던 아브라함을 의롭다고 하셨으며, 노아에게 앞으로
홍수로 심판하시리라 하셨을 때 그것을 믿고 준비했던 노아를 의롭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을 요구하셨고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는다는 것은
이와 같은 미래지향적인 믿음을 의미합니다. 과거와 기존의 것을
믿는 것을 믿음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이미 존재하고 있는
사실이므로 참신한 믿음이 되지 않습니다.
참신한 믿음은 아직 보지않는 것에 대한 믿음입니다. 가까운 미래에
도래할 재림주의 신권통치가 오늘 우리의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믿음은 미래지향적입니다. 과거지향은 믿음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과거의 구약이나 이천년전의 초림주의 복음은 믿음이 아니었을까요?
물론 당연히 믿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그 당시의 믿음들입니다.
구약때는 구약의 믿음이 있고 신약 때는 신약의 믿음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들이 오늘의 믿음일 수는 없습니다. 오늘의 믿음은 재림주가
출범시킬 그리스도 천국정부입니다.
하나님은 과거 유대인 시대에는 구약의 유대인과 함께 계셨습니다.
그러다가 이천년전 초림주가 오셨을 때는 구약의 유대제단을 떠나
복음제단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재림주가 오신 때에는 복음
제단을 떠나 재림주의 새말씀 제단으로 오십니다.
그러면 사단은 그 때마다 어디에 있을까요?
우선 사단은 "내가 사단이다" 라고 선포하는 자가 아닙니다.
사단이야말로 "내가 하나님이다" 라고 거짓말하는 자이므로 사단도
하나님이 계시는 곳마다 반드시 따라다니며 하나님보다 더욱 사랑으로
달콤하게 속삭이며 모방에 능한 또 하나의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에 계실 때는 그도 세상에 있고, 하나님이 구약제단에
계실 때는 그도 구약제단에 있고, 하나님이 복음제단에 계실 때는 그도
복음제단에 있고, 하나님이 오늘날 재림주의 새말씀제단에 계시면 그도
오늘날 세 말씀 제단까지 반드시 공략해 들어와서 똑같이 하나님의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에덴동산은 하나님이 계시는 곳인데 그곳에 옛뱀(사단)이 있었음을
기억하십시요. 이처럼 사단은 하나님을 반드시 따라다니며 하나님의
노릇을 하는 하나님의 모방꾼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가짜 하나님이 진짜 하나님보다 더욱 사랑의 하나님같이
행세한다는 사실입니다. 복음백성이 사는 에덴동산의 예를 들어볼까요?
복음은 비유이므로 겸손하게 하나님을 계속 찾고 찾으라는 명령의
말씀입니다. 겸손하게 계속 찾고 찾아야 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내 복음이
최고선이라는 선악분별의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독려의 채찍을 가하셨습니다.
그런데 뱀은 하와에게 그러한 선악과를 따먹도록 유혹했기 때문에
복음으로 이미 구원을 받았다고 주장한 것이 됩니다.
하나님은 복음은 비유이므로 아직 구원이 없으니, 계속 겸손하게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찾고 찾아야만 하는 죄인이라고 하실 때,
뱀은 그 반대로 예수님이 피 흘려주신 십자가의 공로와 그 복음으로
이미 충분히 구원을 이룬 의인이 되었으니 이제 더 이상 죄인이 아니고
죽어서 천당갈 일만 남았다고 달콤한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어느 쪽이 더 사랑의 하나님 같은가요? 사단입니다. 복음으로 이미
충분히 죄사함 받았고 구원 받았고 천국에 들어가는 천국시민이 되었고
다 이루었다고 끊임없이 설교해주시는 교단의 목사님들과 그 하나님을
떠올려 보십시요. 얼마나 아름답고 사랑스럽고 감동스러운 하나님일까요?
그러나 그게 곧 가짜 하나님이요 사단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참 하나님은 지금 어떤 모습으로 계실까요?
2. 참하나님과 거짓하나님의 구별법
참 하나님은 어디에 계실까요? 그리고 마귀는 어디에 있을까요?
여러분들은 하나님을 하얀 수염을 달고 있는 할아버지로 그리시나요?
그리고 마귀는 뿔 달린 괴물로 그리시나요?
하나님은 할아버지가 아니며 보이지 않는 영입니다. 마귀는 뿔 달린 괴물이
아니며 역시 보이지 않는 영입니다. 하나님도 사단도 모두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영인데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며 사단은 어디에 있을까요?
참 하나님은 과거에 구약제단에 계셨고, 그 후엔 초림주의 복음제단에
계셨고, 그 후엔 오늘의 재림주의 새말씀 제단에 계신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이제 하나님은 구약제단에도 복음제단에도 계시지 않습니다.
오늘날은 오직 오늘의 새 말씀 제단에만 계십니다.
하지만 사단은 과거의 구약제단에도 있고,
복음제단에도 있고, 오늘의 새 말씀제단까지 광범하게 침범해 있으면서
하나님의 노릇을 하고 있으며 사람들을 감쪽같이 속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쉬임없이 계속 창조하시는 창조주로서 미래를 향해 발전적으로
창조하시는 그 자리마다 계시므로 과거에 머물러 계시지 않습니다.
하지만 마귀는 창조자가 아니고 하나님의 창조를 방해하는 파괴자이므로
하나님의 창조하시는 자리마다 꼬박 따라붙어 사람들이 하나님께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막아서는 자이기 때문에 지나온 과거의 자리마다
그리고 현재까지 꼬박 점령해 있습니다.
따라서 사단은 과거에서 현재까지 어디든지 사람들을 손아귀에 장악하고
광범위하게 포진해서 하나님의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구약의 여호와는
신약의 초림주로 오셨으나 지금도 유대인들은 구약의 하나님만 섬기는
것을 보십시요. 초림주는 다시 오늘날 재림주로 오셨으나 복음백성들은
여전히 초림주의 복음만을 믿고 있음을 보십시요. 이는 모두 사단이
그들을 붙잡아서 하나님의 노릇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사단은 언제나 시대마다 인간의 눈 높이에서 존재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하나님을 알려주실 때 언제나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에서 알려주시기 위해 구약 때에는 구약시대에 맞게 신약 때에는
신약시대에 맞게 창조하시는데, 마귀도 이 때마다 항상 하나님을
따라 들어와서 하나님의 노릇을 하기 때문에 둘은 인간의 눈 높이에서
존재합니다.
즉 구약제단에도, 복음제단에도, 오늘의 재림주 제단에도
참 하나님과 가짜 하나님이 함께 필연적으로 존재하면서 서로 주권쟁탈을
위한 싸움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면 참 하나님과 사단 하나님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구약에서 참 하나님은 예수님을 준비해 계시며 예수님을 맞이할 수 있도록
선지자를 통해 자기백성들에게 늘 깨어있으라고 경고하시며, 앞으로
나아가도록 훈계와 책망과 채찍을 가하시는 분이셨으므로 인기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사단은 그 반대로 거짓 선지자를 통해 백성들에게 달콤한 소리로
평안하다 안전하다를 외치며 현재에 안주하도록 하는 자이므로 인기만점
입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이 마침내 예수님을 보내주셨을 때는
어떤 일이 발생했나요?
하나님의 편에 서서 깨어있는 자들은 예수님의 복음을 받아드린 복음백성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구약제단에 안주했던 사단의 추종자들은 예수님과
그 제자들을 핍박하고 잡아죽였습니다.
그리고 다시 복음제단에서도 참하나님은 재림주를 준비하시고 재림주를
맞이할 수 있도록 늘 깨어있으라고 경고하시며, 앞으로 나아가도록
훈계와 책망과 채찍을 가하시며 마침내 재림주를 보내주시는 분입니다.
하지만 사단은 백성들에게 이미 복음으로 구원을 다 이루었다는 달콤한
속삭임으로 평안하다 안전하다를 외치며 복음제단에 안주하도록 유혹했기
때문에 오늘날 재림주가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재림주를 알아보지 못하며 주의 음성을 듣지 못하게 가로 막고 있습니다.
오늘에 안주하지 말고 변화를 받아드리며 내일의 비전을 향해 나아가라고
늘 채찍질하시는 참하나님이 인기가 있을까요? 과거 전통만이 최고의
진리이니 평안히 오늘에 안주하라고 달콤하게 속삭여주며 온갖 어리광을
다 받아주는 가짜하나님이 더 인기가 있을까요? 당연히 후자입니다.
때문에 오늘날 하나님의 인맞은 자의 수가 온전히 다 찬다고 해도 겨우
144,000 일때, 가짜하나님 편에서 택함받지 못하는 자들은 수수억명이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참하나님은 인기가 없지만 항상 과거를 떠나 앞질러
창조하시는 미래지향이시고, 사단은 인기를 한몸에 받으며 하나님의
창조의 발목을 붙잡아 창조를 가로막는 과거지향입니다.
그리고 이와 같이 항상 마귀가 하나님의 창조의 발자취마다 따라붙어서
점령하는데 그 점령당한 과거의 창조의 자리와 시대가 모두 우상이 됩니다.
하지만 느브갓네살 왕의 꿈속에 나타난 금, 은, 놋, 철, 철과 진흙 등의
금머리 신상이 마지막 때에 뜨인돌(재림주의 진리의 새말씀)에 의해
흔적도 없이 날아가는 우상입니다.
이는 창조주 하나님이 맨 끝날에 최후로 재림주를 보내셔서
말씀으로 이기신다는 뜻입니다. 재림주가 주시는 말씀은 무엇이기에
그 거대한 금 머리신상을 모두 단번에 깨부술까요?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은 이성(理性=로고스)이라고 알려주고 있습니다
(계19:13). 말씀은 형이상학이며 명명백백한 논리 그 자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구약 때에도 신약 때에도 말씀을 주실 때 이성의 말씀으로
하나님을 알려주신 일이 전혀 없었습니다.
오직 이적기사와 표적 등을 통해
하나님을 알려주셨으며 자연계 물질을 들어 비유로 알려주셨습니다.
즉 형이상학의 말씀을 형이하학의 말씀으로 감추어서 알려주셨습니다.
신구약시대가 모두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 창조의 자리라고 할지라도
그 성경기록시대는 우리가 하나님을 온전히 아는 생명의 참말씀으로
창조된 일이 없으며, 따라서 우리는 신자이든 비신자이든 모두 동일하게
죽어왔습니다.
왜 성경기록 그대로 하나님을 믿으면 그 믿음으로는 영생을 얻지 못할까요?
다시 말하지만 성경문자는 모두 비유로 기록되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비유로 기록되었기 때문에, 그 비유가 풀릴 때까지
하나님은 자기백성에게 항상 미래로 나아가라고 채찍질을 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비유의 성경을 풀어주실 분은 오늘의 재림주입니다.
하나님의 최종적인 목표는 재림주이며 재림주의 새말씀을 알기까지 계속
미래로 나아가도록 강한 손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시대말 재림주는
신구약의 모든 비유를 낱낱이 풀어주심으로써 마침내 하나님을 온전히
알려주시고 영생을 주시는 분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재림주 때는, 마귀가 제 아무리 과거의 유대당을 장악하고 있고
복음제단에서 하나님의 노릇을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비유로 된
성경문자로 하나님의 노릇을 하고 있는 가짜 하나님임이 드러나게 됩니다.
즉 우상임이 드러납니다. 그런데 느브갓네살의 오색우상은 날아가고
그 우상을 친 돌이 태산을 이루어 세계에 가득하리라 했으므로
마귀는 더 이상 발붙일 곳을 찾지 못하고 멸망당하며
재림 예수님의 진리만이 세상에 충만하게 됩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진리의 말씀으로 하나님을 온전히 아는 심령창조를
받고 영원한 생명을 받게 됩니다. 사람은 지금까지 죽어왔습니다.
사망이 왕노릇했습니다. 때문에 참하나님은 가장 마지막 때에 재림주를
통해 생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시고 앞으로 전진하도록 하신 분입니다.
그런데 사단도 똑같이 하나님으로 군림하며 인간에게 생명을 준다고
약속을 합니다만,
그는 뒤로 뒤로 후진하도록 하는 하나님입니다. 사단은 우리에게
어제의 나, 혹은 오늘의 나로만 머물러 교만히 행하도록 가르치는
선악과의 주인공입니다.
하지만 참 하나님은 자기를 높이지 못하게 하십니다. 재림주의
새 말씀을 만날 때까지 자기를 부인하고 따라오도록 하십니다.
3. 성경을 풀었다고 주장하는 자들은 모두 옳은가
지금까지 사단은 성경문자를 그대로 믿도록 하는 자이고, 참하나님은
성경문자 속에 감추어진 참뜻을 풀어서 알려주시는 분임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성경을 풀었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부지기수인데 그들이
무조건 모두 참 하나님께 속한 자들일까요?
물론 아닙니다. 성경을 온전히 풀어주실 분은 오직 재림주 단 한분
뿐이라는 점에서도 우선 아닙니다.
앞에서 사단은 재림주의 제단까지 침범해 들어와 있다고 했는데
이들 수많은 성경해석자들이 곧 그들로 일단 분류됩니다.
즉 모든 성경해석자들은 그 중에 재림주도 있고, 재림주를 흉내내는
적그리스도도 있고, 재림주께 합류해서 144,000으로 부름받을
자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반드시 알아 두십시요!
모든 성경해석은
모든 성경 무해석보다 좋다는 것을 반드시 아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결정적으로 풀어주실 분은 재림주 한 분 뿐이지만,
그 외의 모든 성경해석도 여러분들이 성경을 문자 그대로 믿는 소경의
사고를 불식시켜 준다는 점에서 우선 유익합니다. 그만큼 성경을 문자
그대로 믿는 것은 확실한 멸망이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어떠한 잘못된 적그리스도의 자의적 성경해석일지라도 접하면
접할수록 성경에 대한 이해력을 조금은 넓혀주고
성경에 대한 논리를 추구하도록 도와준다는 점에서 반드시 유익합니다.
우리의 모형인 이스라엘민족을 하나님이 이방 바벨론(적그리스도)
에게 사로잡혀 가도록 명하셨을 때 본국에는 한사람도 남지 않도록 하신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역시 우리의 모형인 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복음백성)도 뱀이 주는
선악과를 범했다는 것은 내 복음의 성경문자만이 최고선이라고 하는
선악분별심을 취했다는 뜻입니다.
성경문자를 그대로 믿는 죄인임이 드러났기 때문에 하나님이 자기백성을
에덴동산에서 쫓아내셨을 때
입혀주신 가죽옷은 적그리스도의 옷입니다. 적그리스도의 옷을 입고
쫓겨났다는 것은 적그리스도에게 넘겨졌다는 뜻입니다.
왜 적그리스도에게 넘기셨을까요? 한마디로 적그리스도는 예수님을
흉내내어 성경을 풀었다고 주장하는 자들인데, 우선 그들의 엉터리
성경해석을 접할수 있도록 배려하신 것입니다. 적그리스도의 엉터리
성경해석을 접하면서 이것이 이러한가 저것이 저러한가 말씀의 논리를
따져보는 고생이 이만 저만이 아닐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자기백성을 정결케 되고 희게 되도록 하는 훈련입니다.
즉 하나님은 자기백성에게 심판의 벌로 모진 고생을 시키시는 일입니다만,
그래도 그 고생은 자기백성을 살리기 위한 사랑의 매라는 점입니다.
누누히 말씀드리지만 그만큼 성경해석은 옳든지 그르든지 일단 중요합니다.
복음제단(기성교단)에서 우리가 성경을 전혀 풀지않고 앞뒤 문맥이 맞지 않으면
맞지 않는대로 믿고싶은 부분만 골라서 무조건 성경문자 그대로 믿었던
때는 아무 고생없이 평안히 믿었습니다. 하지만 일단 성경해석에 들어가면
너무나 난해해서 참으로 머리 아프고 답답해서 고생이 이만 저만이 아닙니다.
고생을 하면서 아프면서 사람들은 성숙해지는데,
하나님은 그 훈련을 시키기 위해 성경을 풀었다고 주장하며 자기를 들어
자칭 재림주라고 하는 수많은 이 땅의 적그리스도에게 먼저 붙이신 것입니다.
그 훈련 가운데 있는 적그리스도의 집권중에 하나님은 재림주를 보내셔서
결정적으로 성경을 온전히 풀어주시고 그동안 받은 상처를 고쳐주시게
됩니다. 그런데 이 때에 깨어있는 지혜로운 자들만 적그리스도로부터
재림주의 새말씀으로 도망나오게 되고 상처를 치유받게 됩니다.
깨어있지 않고 계속 적그리스도의 성경해석에 만족해 있는 소경들은
짐승의 표를 받고 머물러 있게 됩니다.
이처럼 오늘날 성경을 풀었다고 주장하는 자들은 각양각색으로 많은데
그 중에 누가 과연 재림주의 제단인지, 어떻게 식별해서 도망나올 수
있을까요? 이 점을 여기서 제가 소상히 말씀드리기 보다는
여러분들이 그 정도는 스스로 판단해보시도록 숙제로 남겨놓는 것도
좋으리라고 생각되는군요. 제 카페의 자료를 읽어보신다면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