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더워진다고 하더니 우리나라가 그새 열대지역이 되었나? 열대과일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는 소리에 든 생각이다. 그러고 보니 바나나는 흔해진 게 사실이다. 제사상이나 차례상에까지 버젓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을 만큼 익숙한 과일이 되었는데, 이즈음에는 흔하다 못해 천덕꾸러기가 된 것 같다.

사시사철 맛보는 이국의 맛이여
해마다 더워진다고 하더니 우리나라가 그새 열대지역이 되었나? 열대과일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는 소리에 든 생각이다. 그러고 보니 바나나는 흔해진 게 사실이다. 제사상이나 차례상에까지 버젓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을 만큼 익숙한 과일이 되었는데, 이즈음에는 흔하다 못해 천덕꾸러기가 된 것 같다. 사시사철, 도시 골목골목, 심지어 시골 장에까지 리어카에 가득 실려 거의 떨이 수준으로 팔리고 있으니 말이다.
참 별난 일이다. 우리나라에서 재배되지도 않는 과일이 이토록 흔하다니. 놀라운 것은 사정이 이런데도 여전히 바나나 수입량은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바나나뿐만이 아니다. 망고와 파파야, 파인애플은 해마다 두 배 이상 수입량이 늘어나고 있고, 구아바, 두리안, 람부탄, 리치, 망고스탄, 롱간, 잭푸르트, 스타애플, 스타푸르트 같은 이름도 낯선 과일들도 속속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신문이며 잡지에서는 특집으로 열대과일을 소개하고, 인터넷에는 열대과일 판매상들이 줄을 서 있다.
소비량이 늘어나자 국내에서도 열대과일을 재배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제일 따뜻하고, 그래서 벌써 아열대 기후권에 들었다는 제주도에서 적극 나섰는데, 아열대과일인 키위는 이미 성공했고, 두리안, 망고, 아떼모야, 용과 같은 과일들이 시험재배에 성공해 판매되고 있다는 것이다. 수입하는 것보다야 국내에서 재배해 먹는 것이 훨씬 좋은 일이고 제주도에서라면 가능한 일이다 싶기도 하지만, 그렇게까지 해서 열대과일을 꼭 먹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하긴, 미국산이나 호주산 고기에, 태국산 새우며 노르웨이산 고등어, 스페인산 가자미가 오르고, 중국산 참기름과 수입산 콩(유전자 조작이 의심되는)으로 만든 식용유를 두른 음식이 밥상에 오르는 게 예사가 된 시절인 만큼, 세계화한 밥상의 구색을 갖추자면 평범한 국산 과일보다는 낯설어 새롭게 보이는 열대과일이 한결 돋보일 수도 있겠다.

비행기를 탄 열대과일들
우리나라에서 열대과일이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중반 이후로, 생활수준이 높아지고 이 무렵 급증한 해외여행, 특히 동남아단체 여행이 붐을 이룬 뒤부터라고 한다. 동남아 여행을 갔다가 현지에서 맛본 열대과일을 잊지 못하고 국내에서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수요가 크게 늘었다는 것이다.
화려한 빛깔이며 색다른 맛에 감탄하는 것은 이해하겠으나, 물질의 여유와 다양해진 입맛을 강조하기에는 치러야 하는 대가가 너무 큰 것 같다.
비행기는 지구온난화에 끼치는 영향이 매우 큰 교통수단이다. 덩치가 크고 높은 고도에서 이산화탄소를 쏟아내 여행 중에 발생하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40퍼센트를 차지한다고 한다. 지구온난화 주범 가운데 하나라는 말이다. 비행기를 이용한 여행을 조심스러워 해야 할 이유다. 최근 들어 주목받는 공정여행이라는 개념도 이런 시각에서 비롯한 것일 테다.
주로 동남아에서 수입되는 열대과일들은 냉동 상태가 아니라면 대체로 비행기로 운반된다고 한다. 내 입맛을 위해서 지구 온난화에 부채질을 하는 격이 아닌가. 열대과일을 굳이 마다하는 사람들도 많다. 열대과일 농장을 확보하기 위한 다국적 식품 기업의 압력과 횡포, 그 과정에서 자급자족의 기반이던 땅을 잃고 도시 빈민으로 몰락하고 마는 원주민들, 화학비료와 농약, 살충제가 뿌려지는 거대한 농장에서 멸종되고 마는 다양한 식물과 동물, 곤충들. 운반과 보관 과정에서 뿌려대는 방부제에 대한 의혹. 그들이 내세우는 이유는 물론 타당하고 마땅하다.
바나나는 익은 채로 우리나라에 들어오지 않는다. 채 익지 않아 파란 것을 따서 들여오는데, 시장에 내놓기 직전에 빨리 노랗게 익어 보이도록 에틸렌 가스라는 걸 쏘인다고 한다. 에틸렌 가스는 식물의 노화를 촉진하는데 한때 제주도 감귤도 색을 노랗게 만들기 위해 이 가스를 뿌려 문제가 된 적이 있다. 노화를 일으키는 만큼 부패를 촉진하기 때문에 과일이 빨리 썩는다.

열대과일은 대개가 ‘후숙’ 과일이다. 바나나처럼 따고 나서 익는다는 말인데, 시장에 나오기까지 과정이 바나나와 크게 다를 바 없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열대과일은 당연히, 열대 지방의 산물이다. 열대의 기후조건에 적응하며 자란 식물이고, 열대 지방 사람들의 체질에 맞는 과일이다. 머지않아 우리나라가 아열대 기후권에 들 것이라고는 하지만, 아직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번갈아 드는 온대 지역이다. 철철이 나오는 우리 과일이 얼마나 풍성한가. 우리가 공들여 먹어야 할 것은 열대과일이 아니라 우리 땅에서 나는 우리 과일이어야 마땅하다. 열대과일에 듬뿍 들어있다는 각종 영양소와 효능이 이 땅의 과일과 채소에는 없는 것이던가.
이탈리아의 슬로우푸드 운동이라든지 일본의 지산지소 운동은 따지고 보면 우리나라의 신토불이 정신과 다를 바 없다. 먹을거리를 제 손으로 길러 먹지 못한다면 최대한 좁은 지역 안에서 유통되는 것을 사먹는 게 좋다. 지구차원으로 생각하고 지역에서 행동하는 것도 지구 온난화를 막는 한 방법이다.
사라지는 사과와 감이 먹고 싶을 때는
우리나라가 더워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것도 다른 나라보다 훨씬 빨리 더워지고 있단다. 지난 100년 동안 우리나라 기온상승은 세계 평균인 0.74도보다 두 배가량 높은 1.5도를 기록했으며, 이산화탄소 발생량도 세계 평균치의 1.4배라고 한다. 산업화에 목매달고 하염없이 달려온 결과이리라. 기온이 올라가면서 국내 농작물의 재배 한계선도 점점 북상하고 있다. 추위에 약해 한강 이남에서만 자라던 감나무가 서울 북쪽 지역으로 올라온 지는 꽤 되었고, 제주도 특산품이던 한라봉을 전라남도 고흥에서도 재배한다. 이대로 간다면 언젠가는 사과며 배, 감, 복숭아, 대추 같은 우리에게 익숙한 과일나무들은 한반도에서 사라질 것이고, 더는 그 과일들을 먹을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믿어지지 않지만 사실인 것이, 유엔 기후변화패널에 따르면 2080년 우리나라 연평균 기온은 2008년에 견주어 4.2도가량 오를 것이라는데, 이렇게 되면 사실상 온대과일 생산이 어려워진다고 한다.
이런 기후변화에 발맞추어 제주도와 전라남도를 중심으로 열대와 아열대에서 나는 각종 채소와 과일을 시험 재배하는 지역이 늘고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제주도에서 열대과일 몇 종류가 성공했다고 해서 모든 시험 재배 작물이 다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열대식물을 연구하는 난지농업연구소의 말을 빌리면, “단순히 연평균 기온이 올라간다고 아열대 작물을 바로 심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 땅에 맞는 품종과 재배법을 개발해야 하고, 그러자면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식물도 그럴진대 사람이야 두말할 나위 없는 일이다. 우리 몸도 열대의 조건에 맞춰지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 동안 무얼 할까. 이 땅에서 자취를 감출 사과나무와 감나무를 미리 아쉬워하며 지낼까. 글쎄, 수입 열대과일 하나를 먹지 않는다고 해서 지구온난화가 멈추지야 않겠지만, 아주 조금 늦춰지지는 않을까.
안혜령 님은 잡지사기자와 방송국 구성작가로 일하다 농부가 되고 싶어 칠 년 전 남편과 함께 충북 괴산으로 귀농했다. 전국귀농운동본부에서 활동하며 틈틈이 글을 쓰고 《농부의 밥상》을 펴내기도 했다.
|
첫댓글 과일은 우리나라 과일이 참으로 맛있습니다. 제가 열대지방에서 2년정도 살아봐서 압니다. 열대지방에서 나오는 몇몇 과일 즉, 듀리안, 망고 등...을 제외하면 사과, 배, 감등 한국의 대표적 과일은 한국의 맛을 따라올 게 없습니다. 최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