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운사
대학시절 종교시설에 대한 기억은 시대의 아픔을 어루만지며 안전가옥 역할을 톡톡히 하여준 고마움으로 남아있다.
명동성당, 조계사, 새문안교회를 위시하여 많은 곳이 학생들의 피난처요 응원단이었던 것이다.
수배중인 학생들을 보살펴주던 사찰 암자, 유인물 제작 인쇄를 도와준 교회, 성당의 인쇄시설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
여기에 더해 명동의 YWCA 강당은 위장결혼식 사건으로 민주화운동사에 기록되어 있으며, 명동성당은 6월 민주항쟁의 성지였다.
특히 당시 민주화운동의 중심에 있던 고려대학교 학생들은 알게 모르게 개운사의 신세를 많이 졌다.
담을 넘어 거리로 나선 학생들이 도망치다가 숨어들기 일쑤였고, 피신이 필요한 학생들에게는 노잣돈을 마련해주기도 했다.
나 역시 그런 저런 객꾼의 하나였다.
'80년 서울의 봄'이 어느새 40년이 흐른 오늘, 5.14를 앞두고 제종길 전 안산시장과 함께 개운사를 찾았다.
안산시에서 월악산 덕주사 주지로 오셔서 많은 일을 하셨던 보림 큰스님께서 정암 총무스님과 함께 새로이 개운사 주지스님으로 부임하셨다.
아카시아 향기가 유난히 짙게 드리운 산기슭에 은은한 독경소리가 퍼져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