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로 변한다면(김진해)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처럼 번지는 질문이 있다. “만약 내가 바퀴벌레로 변한다면 어떻게 할 거야?” 갑자기 부모나 친구한테 물어보니 상대방은 당황할 수밖에.
엉겁결에 “밟아 죽여야지” “변기 물에 내릴래” “살충제 뿌릴 거야”라고 답해 경악과 분노를 선물하기도 하고, “그래도 사랑할 거야” “예쁜 집에 넣어 기를게” “나도 바퀴벌레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겠지”라고 하여 처음으로 가화만사성을 경험하기도 했단다.
헛소리라고 핀잔만 줄 일이 아니다. 자못 깊은 의문을 갖게 한다. ‘바퀴벌레로 변하면 나는 나인가, 바퀴벌레인가?’ 정신과 육체가 따로따로라 생각해온 우리는, ‘껍데기는 바뀌지만 나는 그대로’라고 느낀다. 하지만 그럴까? 바퀴벌레는 껍데기일 뿐이고 그 속엔 변함없이 ‘나’ 가 들어앉아 있는 걸까.
‘말’ 은 수시로 탈바꿈한다. 주변 환경이 조금만 바뀌어도 세심하게 자신을 바꾼다. 예컨대, ‘쏘다’ 를 보자. 총을 쏘기도 하지만, 전파도 쏘고, 벌이 내 팔을 쏘기도 한다. 이 셋은 같은가, 다른가? 생맥주는 톡 쏘는 맛에 마시지만, 무례한 사람에게도 한마디 톡 쏘아 주기도 한다. 이 둘은 다른가, 같은가? “내가 쏠게.” 할 때의 ‘쏘다’ 는 ‘총을 쏘다’ 와 같은 ‘쏘다’ 인가?
말의 변신은 주변에 어떤 말을 만나느냐에 전적으로 달려 있다. 불변하는 본질이란 없다. 변하지 않는 게 없는데, 사람이라고 다를쏘냐? 자아의 경계를 계속 허물어 어제와 다른 나로 탈바꿈할 뿐. 그렇다면 내일 바퀴벌레로 변하는 것도 기대해봄 직한 일이다. 어둡고 습한 곳을 안식처 삼아 더듬이 휘날리며.
첫댓글 두 번을 읽어봐도 재밌군요.
가화만사성이될지?
퉁 맞을지?
작은 딸에게서 받은 질문이네요~^^
'누가 죽이면 안되니까
방에 두고 밥도 주고 잘 돌봐야지' 라고
흡족할만한 대답을 했습니다.
'그런데 알을 자꾸 까서 바퀴벌레로
방이 가득차면 네가 낳은 벌레들까지
돌볼 자신은 없어..'라고 ㅋ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