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전세사기피해자 지원 및 주거 안정에 관한 특별법’이 국회 본회의에 부의되자 지켜보던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모처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고 합니다.
이번 달 안에 국회 본회의가 다시 열리면 통과될 가능성이 생겨서라고 하는데 강대강으로 대치 중인 정치권 상황을 감안하면 ‘희망고문’에 그칠 수도 있어 안타깝기만 한 일입니다. 청춘들의 생때같은 전셋집이 지금 순간에도 속속 경매로 넘어간다는 사연이 쏟아지고 있건만 총선 끝난 여의도는 둔감하기만 합니다.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하는 미국이 ‘칩스법’ 등으로 옥죄면서 반도체·배터리·디스플레이·바이오 등 한국의 첨단전략산업 종사자들은 전전긍긍하고 있다고 합니다.
대기업부터 납품하는 중소기업들까지 다가올 태풍에 대비하기 위해 정부의 지원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고, 정부 역시 팔을 걷어붙이고, 각종 법안을 국회에 보냈다고 합니다. 그런 노력으로 일부 법안은 가까스로 여야 공감대를 이뤘지만 정쟁으로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는 것이 걱정입니다.
이뿐 아니고 여야가 이견이 별로 없는 비쟁점 법안마저도 폐기될 위기에 처한 게 수두룩하다는데 ‘고준위 방폐물 관리 특별법’은 여야가 합의 처리에는 공감했지만 특검 대치 국면으로 표류하고 있다고 합니다.
윤 대통령 취임 2주년을 앞두고 여야 정치 원로들은 세계일보 인터뷰에서 이구동성으로 ‘협치’와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했지만 총선 승리에 취한 듯 민주당은 협치를 버리고 연일 강공 모드로 나가고 있습니다.
채 상병 특검법 등을 통해 윤석열 정권을 정조준하고 있는 민주당은 문재인정부 시절 여권 인사를 겨냥한 검찰 수사도 특검의 수사 대상에 넣는 방안까지 검토 중이라고 합니다.
특히 1·2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의 비리 의혹에 대해 ‘조작 수사’ 여부를 들여다보겠다는 태세이고, 민주당의 새 원내 사령탑인 박찬대 원내대표는 22대 국회에서 법제사법위원장과 운영위원장을 모두 가져오겠다고 벼르고 있는데, 당내 상황은 대놓고 ‘이재명 일극화 체제’로 치닫고 있나 봅니다.
<“국민이 원하시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우리의 생각만을 밀어붙였습니다. 일의 선후와 경중과 완급을 따지지 않았고 정부와 당보다는 나 자신을 내세웠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17대 대선에서 패했고 뒤이은 18대 총선에서 겨우 81석의 나락으로 떨어졌습니다. 우리는 이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2020년 4월 17일 당시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1대 국회 초선 당선인에게 보낸 편지의 한 대목이다. 열린우리당의 몰락은 민주당 계열 정당에서 최악의 ‘흑역사’로 꼽힌다.
2004년 17대 총선 당시 열린우리당은 노무현 대통령 탄핵의 역풍에 힘입어 과반인 152석을 차지했다. 그러나 17대 국회 내내 내분이 계속됐다. 숱한 계파들로 찢어져 싸움박질했다. 국가보안법 폐지 법안 등 무리한 입법도 남발했다. 그 결과 총선 이후 8번 선거에서 모두 패배했고 정권까지 내줬다.
이해찬 대표가 ‘열린우리당을 잊지 말자’고 당부했으나, 민주당은 21대 국회에서도 비슷한 궤적을 밟았다. 총선 압승 뒤 또다시 힘자랑에만 몰두했다. 어설픈 부동산 정책, 소득주도 성장, 탈원전 정책 등을 밀어붙였다. 그 결과 국회·지방 권력을 장악했는데도 5년 만에 정권을 내주고 말았다. 두 번의 총선 대승 후 이어진 두 차례 대선에서 모두 패배한 것은 민주당의 오만과 독주 탓이다.
22대 총선에서 압승을 거둬 기세등등한 민주당은 4년 전의 이 반성문을 다시 꺼내 읽어야 할 것 같다. 요즘 민주당의 행태를 보면 민심을 오독한 게 분명하다. 민주당에서는 협치를 부정하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강성 친명계 인사는 “협치라는 말을 머릿속에서 지워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협치의 부정은 곧 정치를 하지 말자는 얘기다.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추미애 당선자와 조정식 의원 등은 “국회의장은 중립이 아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국회의장이 되면 조정자가 아닌 거대 야당의 대리인을 자처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여야 합의를 주문했다고 자당 출신 국회의장에게 입에 담기 힘든 욕설을 퍼붓기도 한다. 더구나 민생법안에 앞서 민주 유공자법, 제2 양곡법 개정안, 가맹사업법 등 지지층 입맛에만 맞는 법안들을 밀어붙이고 있다. 선후·경중·완급을 제대로 따지지 못하는 것이다.
민주당은 권력 분점 취지에 입각한 국회 관례도 깨고 22대 국회에서 국회의장은 물론 법제사법위원장과 운영위원장까지 독식하겠다는 입장이다. 16대 국회부터 국회의장과 법사위원장은 여야가 나눠 맡아왔다. 민주당은 ‘궤멸적 패배’를 당한 18대 국회에서 81석으로도 자신들이 법사위를 차지했던 사실은 잊었단 말인가.
민주당은 자신들이 능력을 갖추고 올바른 비전을 제시해서 승리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착각이다. 총선의 여러 지표가 이를 증명한다. 민주당이 국민의힘에 비해 지역구 의석을 71석 더 얻었지만, 총 득표율 차이는 5.4%포인트에 불과했다.
민주당이 얻은 비례대표 정당 득표율은 26.7%다. 조국혁신당을 찍은 24%는 정부 여당을 심판함과 동시에 ‘이재명 민주당’도 싫다는 의사를 표시한 것이다. 투표장에 가지 않은 유권자를 포함하면 전체 유권자 중 비례대표 투표에서 민주당을 찍은 사람은 17%에 불과했다.
총선 이후 민주당 지지율이 30%대 전후로 국민의힘과 비슷한 점도 주목해야 한다.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국민의힘에 뒤지기도 한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 지지율이 형편없는데도 민주당 지지율 역시 보잘것없다. 야당의 총선 승리가 민주당이 좋아서가 아니라 윤 대통령에 대한 반감과 정권 심판론이 불붙은 결과라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다. 민주당이 폭주하거나 민생을 챙기지 않으면 민심은 언제든 등 돌릴 것임을 예고한다.
총선 민의, 즉 국민이 원하는 것은 누가 뭐래도 대화와 타협을 통한 ‘정치의 복원’이다. 수적 우위를 앞세운 우격다짐을 국민은 절대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민주당이 17대, 21대 국회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자세를 낮춰야 한다. 강성 지지층이 아니라 국민 전체의 관점에서 정치를 해야 한다.
실패한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면 또다시 패배할 수밖에 없다. 민주당은 같은 실수를 되풀이할 것인가.>세계일보. 박창억 논설위원
출처 : 세계일보. 오피니언 [세계포럼] 민주당의 착각
수컷 농게는 집게발이 전체 몸무게의 절반에 달할 정도로 크고 무겁다는데, 다른 수컷과의 경쟁에서 이겨 암컷을 차지하려고 덩치를 키워서라고 합니다.
하지만 경쟁에서 이기고 나면 집게발은 쓸 데가 없고 되레 커다란 집게발 때문에 더 많은 에너지를 충전해야 하고, 먹잇감을 찾아 갯벌로 나가다가 천적인 새들에게 포식당한다고 합니다.
그 집게발을 가급적 빨리 도려내는 게 상책인데 민주당이 팬덤만 의식하다간 수컷 농게 신세가 될 수 있건만 그런 비판 따윈 아랑곳하지 않나 봅니다.
윤석열 대통령에게 불통이라고 연일 호통치면서 자신들의 불통은 전혀 느끼지 못하는 것이 바로 더민당의 특징으로 보입니다.
대한민국의 신조어 ‘내로남불(我是他非)’의 원조가 바로 그들이었습니다.
時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