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돈은 똥이다
몇 년 전 SBS ‘궁금한 이야기 Y’에 한 시골 할머니
사연이 방영되었습니다. 이야기의 배경은 눈이 자주 와서 눈 치우는 게 일인 강원도 정선 산골마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건 마을 사람들이 어느 한 집 눈을
열심히 치워주고는 도망치듯 사라져버립니다.
그 이유를 물으니 “누구야! 누가 왔다 갔어!”라고
호통을 치시는 90세 호랑이 할머니에게 들키면 혼이 나기 때문이랍니다.
(이인옥 할머니는 2015년 92세의 나이로 생을 마치셨습니다).
할머니는 50대 때부터 척추 문제로 허리가 굽으셨지만 생활에 불편이 없으시고 후레쉬만 있으면 웬만한 것도 다 보일만큼 정정하십니다.
그런데 귀가 약간 어두운 할머니가 쉬시는 동안
마을 분들이 드나들면서 연탄 갈아주고, 반찬 가져다주고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일을 할머니에게 들키면 큰일 나는데도 마을 분들은 왜 이런 일을 도맡아 하는 것일까요?
할머니는 본인의 땅(16000제곱미터 상당)과 집을
모두 마을에 기부하고 기초수급 지원비만으로 생활
하고 계셨습니다.
하루에 한 번 배달되는 기초수급 도시락을 3등분
하여 하루 식사를 해결하십니다. 그리고 손님이
오면 그것마저도 나누어먹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공덕비까지
세워주었는데, 할아버지는 이북에서 피난 내려오시면서 가져온 재산과 농사지은 돈으로 마을에 방제
초등학교를 세우셨고 할머니는 굶어서 소나무 껍질을 뜯어먹을 지경이었던 탄광촌 150명의 아이들에게 매일 밥을 해 먹이셨다고 합니다.
이분들이 아이들에게 이런 관심을 가진 이유는 딸 셋을 피난통에 굶주림으로 모두 잃으셨기 때문입니다. 모든 아이들을 당신들 아이들처럼 대하며 사셨던 것입니다.
아직도 할머니는 기초수급 지원비를 모은 돈으로
아이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계십니다. 그리고 누구든 손님이 찾아오면 몇 만원을 쥐어주시며 “돈이 없어서가 아니고 마음이잖아, 서로...”라고 말씀하십니다.
할머니에게 돈은 마음이었습니다.
이인옥 할머니는 자주 돈은 똥이라고 하셨습니다.
쌓이면 악취를 풍기지만 뿌리면 거름이 되기 때문
입니다.
사람의 몸에서 똥이 배출이 되지 않으면 변비에
걸리고 결국 관장을 해야 하는 상황까지 오며 더
심하면 생명을 위태롭게 만듭니다.
그래서 변비가 되지 않기 위해 몸은 설사와 같은
방법으로 변을 빼내기도 합니다. 그러나 가장 좋은 것은 적당히 먹고 먹은 만큼 적당히 내보내는 것
입니다.
그러면 그 내보내는 것들이 거름이 되어 주위에
양식이 풍성하게 됩니다.
돈은 쓰일 때 가치가 있고 자신에게 머물러 있을
때는 독이 됩니다. 똥과 같기 때문입니다.
오늘 뉴스에 보니 노키아 핸드폰을 17년 간 사용
하고 한 달 용돈 11만원으로 살며 지하철을 자주
이용하는 홍콩 영화배우 주윤발 씨가 자신의 전 재산 8천억 원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영화 한 편 출연하는데 100억 이상씩 받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재산이 자신 것이 아니며
잠시 보관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돈이 있으면 사치스럽게 살고 또 그렇게 돈이 많은 것을 자랑하려는 일부 사람들과는 분명 차이가 있는 삶입니다.
과연 누가 세상을 즐기며 사는 것일까요?
모든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사람들일까요,
아니면 자녀에게 물려주기 위해 편법이라도 쓰려는 사람들일까요?
집착이 없어야 즐길 수 있습니다.
떠나보낼 줄 알아야 참으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돈도 집착하면 자신과 하나가 될 수 있다는 뜻
입니다.
자신과 하나가 되면 즐길 수 없습니다.
축구경기를 보며 분에 못 이겨 싸움을 한다든가
컴퓨터 게임을 하며 화가 나 컴퓨터를 부수는 정도가 되면 즐기는 게 아니고 사로잡힌 것입니다.
사로잡힌 사람이 노예생활 하면서 어떻게 삶을
즐길 수 있겠습니까?
인생을 즐기려면 인생에서 접하는 모든 것들은
아깝지 않게 떠나보낼 수 있는 상태여야 합니다.
이겨도, 져도 즐길 수 있어야 즐기는 것입니다.
돈을 즐기려면 돈이 있어도, 없어도 상관이 없는
상태여야 합니다.
그런 마음이어야 돈이 더 많이 흘러들어올 수도
있습니다.
깨끗함은 이렇듯 집착함이 없는 마음입니다.
이런 깨끗한 마음만이 참으로 이 세상을 자유롭게
살고 즐기며 살 수 있습니다. 뱃속에 똥이 가득 찬
사람의 불안한 얼굴로 살아가지 말아야겠습니다.
어느 신부의 강론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