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세계를 좇아서
흔히 세인들이 좋아도 한세상, 싫어도 한세상이라며 신세를 한탄한다. 그 삶은 영원에 비해 찰나이며 또 다른 세상의 희망을 품고 산다. 그렇게 희망의 세계를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죽으면 끝이지 하고 사는 이도 있다. 여러분은 어느 쪽에 속하는가?
유물론자와 무신론자는 이 세상의 삶이 끝이며 무로 돌아간다고 한다. 과연 그럴까. 그렇다면 수많은 종교가 왜 생겨났을까? 무언가 보이지 않는 세계가 있다고 예부터 믿어왔다. 4,000년 전 인류 최초의 고대 문명 발상지인 메소포타미아에서도 신의 존재를 믿었음을 ‘길가메쉬 서사시’에서 밝히고 있다.
오후 한나절 거실에서 남매지를 바라보니 못 가운데 빛 물체가 하나 보였다. 그것은 서쪽 하늘에 기울고 있는 해의 그림자이다. 집에서 실체의 해는 볼 수 없지만, 존재하는 것으로 이성적으로 믿고 있다. 하늘의 해를 볼 수 없다고 가정하면 물속의 그림자인 해를 통해 보이지 않는 실제의 해를 떠올리며 추구하게 된다.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은 형이상학의 이데아를 추구하라고 한다. 현실의 나는 ‘모형의 나’로서 그림자에 지나지 않으며 또 다른 ‘원형의 나’인 실체가 있다는 것이며 그 세계를 추구하라고 한다. 그 세계가 어디일까? 영원한 세계로 우리가 꿈꾸는 이상향의 세계인 피안의 세계가 아닐까. 원형의 나를 추구하는 삶이 이데아의 삶이다.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로 이어졌으며, 그리스도교 철학으로 발전하였다.
<왓칭 1, 2>의 저자 김상운(MBC 기자 출신)도 우주 공간에 존재하는 만물의 최소 단위인 소립자가 평소에 빛의 물결로 잠재하다가 내가 어떤 생각이나 이미지가 입자화된 형태로 내 안에 들어온다. 육신은 그 영혼이 담긴 그릇에 불과하며 육신이 사라져도 영혼은 미립자의 에너지 형태로 존재하여 원래의 우주 공간으로 되돌아간다고 한다. 그 영혼이 또 다른 나 즉 ‘원형의 나’가 아닐까.
20세기에 이르러 세상은 급속도로 변하여 과학 만능시대이다. 무엇이든 과학이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켜준다고 믿고 있다. 이성적 합리주의로 인간 중심, 개인 중심으로 흐르고 있다. AI, 쳇GPT, ICBM 등으로 무엇이든 쉽게 해결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면서 자기 스스로 神이며 신은 없다고 한다. 영국의 도킨스는 과학만능주의자로 그의 저서 <만들어 신>에서 신은 인간이 만들었으며 이제 신은 죽었으며 필요 없다고 한다.
<과학의 시대에도 신앙은 필요한가>의 저자 김도현(카이스트 물리학 박사)은 결코 과학 만능시대는 있을 수 없다고 한다. 오히려 과학이 우리 삶을 피폐하게 만들고 노예로 만들고 있다고 한다. 물질과 정신, 과학과 신앙이 대립각을 세울 것이 아니라 함께 아우르며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길 위를 걸었던 많은 선각자의 깨우침과 가르침을 받아들여 가는 길에 방황하지 않고 바로 가도록 이정표로 삼아야 한다. 우주 공간의 한 원소인 ‘원형의 나’를 좇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