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용묵-내 붓끝은 먼 산을 바라본다.
-분야: 어문 > 수필 > 경수필/수필
-저작자: 계용묵
-원문 제공: 한국저작권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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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소설이란 것과 인생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다. 처음 소설이란 것을 쓰기 시작했을 때도 소설이 무엇인지 모르고 썼다. 물론 인생이란 무엇인지도 몰랐다. 소설이 무엇인지 모르면서 소설을 쓰고 있는 동안에 나는 소설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인생도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그래서 인생을 알고 소설을 쓴다고 소설을 써왔다. 이렇게 인생을 알고 소설을 안다고 인생을 살면서 소설을 써 오는 동안에 나는 또 내가 아는 인생이 인생이 아닌 것 같고, 내가 쓰는 소설이 소설이 아닌 것 같게 생각이 되어서 인생을 알려고 애를 쓰면서 붓을 떼었다. 인생을 모르고 소설이 무엇인지 모르면서 인생을 말하는 소설을 쓸 수가 없었던 것이다. 지금 나는 널리 인생이라는 것은 고사하고 내 자신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산다. 만일 이런 것이 인생이라고 한다면, 그리하여 제 자신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인생을 찾아보는 것이 소설이 가지는 임무라고 한다면, 그것을 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이 인생에게 흥미를 느끼게 되지 않는다. 흥미 없는 인생에게 붓끝을 가게 되는 수는 없다. 소설에 붓을 못 댈 것이다.
오늘 이 자리에서 내가 인생을 알게 된다면, 그리하여 인생에게 흥미를 느끼게 된다면 붓을 들 것이다.
아마, 이렇게 된다면 나는 과학과 싸우는 소설을 쓸 것이다. 과학의 위력을 두드려 부수는 것이 오늘날 우리 인생이, 진실한 인생만이 느낄 수 있는 통절한 부르짖음이어야 할 것 같다. 과학의 힘과 예술의 힘을 맞비겨 보라. 과학은 지금 이 우주를, 이 인생을 진탕치듯 짓이기고 있지 않는가. 동양 사상이 약시약시(若是若是)하면서 춘향의 절개를 가상하다고 무릎을 치고 앉았다가 화성인(火星人)과 악수를 하게 된다면 그때에도 우리 인생은 예술을 말하고 살게 될 것일까. 아니, 그때에도 인생이란 존재가 있게 될 것일까. 정말 나는 오늘의 인생이라는 것을 모른다. 화성인과 악수를 하려고 인생을 배반한 인생들, 이런 인생을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나 개인은 나지만, 나도 인생이니까 인생의 일원임에는 틀림이 없다. 인생의 자격으로서 나는 지금 정신이 얼떨떨하여 내 붓끝은 한참 먼 산을 바라보고 있다.
<재편집: 오솔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