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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엘뤼아르의 시
모퉁이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https://naver.me/5rMhdX4f
정의
포도로 포도주를 만들고
숯으로 불을 피우고
키쓰로 인간을 만드는 것
이것이 인간의 뜨거운 법칙이다
전쟁과 비참에도 불구하고
죽음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본연의 자태를 그대로 간직하는 것
이것이 인간의 가혹한 법칙이다
물을 빛으로
꿈을 현실로
적을 형제로 변하게 하는 것
이것이 인간의 부드러운 법칙이다
어린애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최고 이성에 이르기까지
계속 자체를 완성시켜가는
낡고도 새로운 법칙이다
아무도 나를 알 수 없다
아무도 나를 알 수 없다
네가 나를 아는 것 보다 더 잘
우리 둘이 잠들어 있는
너의 눈이
세계(世界)의 밤에게 보다
인간(人間)의 빛에 더 좋은 운명(運命)을 만들었다
내가 여행하는 너의 눈은
길의 제스쳐에
대지(大地)와는 초연한 의미(意味)를 주었다
네 눈 속에선 우리에게
우리의 무한한 고독(孤獨)을 나타내는 이들은
벌써 그들이 생각했던 바와는 다르다
아무도 너를 알 수 없다
내가 너를 아는 것 보다 더 잘
나는 너를 사랑한다
내가 알지 못했던 모든 여자를 위하여 나는 너를 사랑한다
내가 살아보지 못한 모든 시간을 위하여 나는 너를 사랑한다
큰 바다와 따뜻한 빵의 향기를 위하여
첫 번째 꽃들을 위하여 녹는 눈을 위하여
인간을 무서워하지 않는 동물들을 위하여
사랑하기 위하여 나는 너를 사랑한다
내가 사랑하지 않는 모든 여자를 위하여 나는 너를 사랑한다
나에게 너를 반영하지 못한 것에서는 나는 거의 볼 수가 없다
네가 없다면 나는 황량한 사막만 볼뿐이다
과거와 현재 사이에는
짚 위에서 내가 넘었던 이 모든 죽음들이 있었다
나는 내 거울의 벽을 통과할 수가 없었다
나는 말 그대로의 삶을 배워야 했다
사람들이 잊는 것처럼
나는 내 것이 아닌 너의 지혜를 위해서 너를 사랑한다
건강을 위해서
환상일 뿐인 모든 것에 대항하여 너를 사랑한다
내가 가지지 못한 이 영원한 마음을 위하여
너는 의심이라고 믿지만 너는 이성일 뿐이다
너는 내가 나에게 확신을 가질 때
내 머리위로 떠오르는 큰 태양이다
죽음 사랑 인생
교류도 소식도 없이 적나라한 나의 슬픔으로
나는 이 깊고 거대한 공간을 깨뜨릴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나는 아무도 드나들지 않은 순결의 문이 있는 나의 감옥 안에 누웠었다
마치 죽는다는 것을 알았던 현명한 사자(死者)처럼
완전한 무(無)외에는 아무 장식도 없던 죽은 자처럼
꺼진 재의 사랑으로 인해 스며든 독의
희미한 물결 위에 나는 누웠었다
고독은 내게 있어 피보다 더 생생해 보였다
나는 삶을 분리하고 싶었다
주검과 죽음을 함께 나누고 싶었다
나의 마음을 공허에 돌려놓고 공허를 삶에 돌리며
아무것도 없도록 모든 것을 지우고 싶었다 유리창도 수증기도
앞에도 뒤에도 온전히 아무것도 없도록
예전에 나는 두 손안의 얼음덩이를 없애기도 했었고
차가운 겨울의 앙상한 뼈대를 없애기도 했었다
지금은 지워져가는 삶의 욕망으로
그런데 네가 와서 불은 다시 살아났고
어둠은 물러났고 저 아래의 한기는 별처럼 빛이 났다
투명한 너의 살로 대지는 뒤덮였고 나는 다시 가벼워짐을 느꼈다
네가 와서 고독은 극복되었다
나는 지상의 안내자를 갖게 되었고 내 갈 길을 알게 되고
끝없이 나아갈 것을 알게 되었다
앞으로 나아가게 되자 공간과 시간을 얻게 되었다
나는 너를 향해 나아갔다 끝없이 빛을 향해 나아갔다
삶은 육체를 갖게 되었고 희망은 그의 돛을 올리게 되었다
잠은 꿈으로 넘쳐흐르고 그리고 밤은
새벽에 신뢰의 눈길을 약속하였다
네 양팔의 빛살은 안개를 헤쳐 퍼져갔고
네 입술은 첫 이슬로 축여졌다
황홀한 휴식은 피로를 몰아냈고
그리고 나는 내 생애 처음의 날들처럼 사랑을 예찬했다.
들판은 경작되고 공장들은 빛이 난다
보리는 넘실대는 파도 속에 결실을 맺는다
포도수확과 추수에는 수많은 증인들이 있다
아무 것도 단일하지 않고 홀로 있지 않다
바다는 하늘이나 밤의 눈 속에 있다
숲은 각 나무들을 보호해 준다
집의 벽들도 같은 형체로 이어져 있다
또한 모든 길들도 항상 서로 만나게 된다
사람이란 서로 귀기울이도록 만들어졌다
서로 이해하도록 서로 사랑하도록 만들어졌다
사람들은 훗날 인류의 아버지들이 될 아이들을 갖게 되고
불도 없고 장소도 없이 아이들은
인류를 다시 건설할 것이다
그리고 자연과 그리고 그들의 나라를
모든 사람들의 나라
모든 시대의 나라를.
자 유
나의 학습 노트 위에
나의 책상과 나무 위에
모래 위에 눈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내가 읽은 모든 책장 위에
모든 백지 위에
돌과 피와 종이와 재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황금빛 조각 위에
병사들의 총칼 위에
제왕들의 왕관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밀림과 사막 위에
새둥우리 위에 금작화 나무 위에
내 어린 시절 메아리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밤의 경이 위에
일상의 흰 빵 위에
약혼 시절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나의 하늘빛 옷자락 위에
태양이 녹슬은 연못 위에
달빛이 싱싱한 호수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들판 위에 지평선 위에
새들의 날개 위에
그리고 그늘진 풍차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새벽의 입김 위에
바다 위에 배 위에
미친 듯한 산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구름의 거품 위에
폭풍의 땀방울 위에
굵고 멋없는 빗방울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반짝이는 모든 것 위에
여러 빛깔의 종들 위에
구체적인 진실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살포시 깨어난 오솔길 위에
곧게 뻗어나간 큰 길 위에
넘치는 광장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불켜진 램프 위에
불꺼진 램프 위에
모여 앉은 나의 가족들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둘로 쪼갠 과일 위에
거울과 나의 방위에
빈 조개 껍질 내 침대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게걸스럽고 귀여운 나의 강아지 위에
그의 곤두선 양쪽 귀 위에
그의 뒤뚱거리는 발걸음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내 문의 발판 위에
낯익은 물건 위에
축복된 불길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균형 잡힌 모든 육체 위에
내 친구들의 이마 위에
건네는 모든 손길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놀라운 소식이 담긴 창가에
긴장된 입술 위에
침묵을 초월한 곳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파괴된 내 안식처 위에
무너진 내 등대 불 위에
내 권태의 벽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욕망 없는 부재 위에
벌거벗은 고독 위에
죽음의 계단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회복된 건강 위에
사라진 위험 위에
회상없는 희망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그 한마디 말의 힘으로
나는 내 일생을 다시 시작한다
나는 태어났다 너를 알기 위해서
너의 이름을 부르기 위해서
자유여.
그리고 미소를
밤은 결코 완전한 것이 아니다
내가 그렇게 말하기 때문에
내가 그렇게 주장하기 때문에
슬픔의 끝에는 언제나
열려 있는 창이 있고
불 켜진 창이 있다.
언제나 꿈은 깨어나며
욕망은 충족되고
배고픔은 채워진다.
관대한 마음과
내미는 손 열려 있는 손이 있고
주의 깊은 눈이 있고
함께 나누어야 할 삶
삶이 있다.
야간통행금지
어쩌란 말인가 문은 감시받고 있었는데
어쩌란 말인가 우리는 갇혀 있었는데
어쩌란 말인가 거리는 차단되었는데
어쩌란 말인가 도시는 정복되었는데
어쩌란 말인가 도시는 굶주려 있었는데
어쩌란 말인가 우리는 무장 해제되었는데
어쩌란 말인가 밤이 되었는데
어쩌란 말인가 우리는 서로 사랑했는데
그러나 빛은 내게 주었지
그러나 빛은 내게 우리의 만남이 새긴 음화의 아름다운 이미지를 주었지. 나는 여러 존재 중에서 너를 알아보았어, 내가 그들의 이름을 부르고 싶었을 때, 그중 다른 한 존재만이 그 이름을 증명했지, 그것은 항상 같은 이름, 네 이름이었어, 나는 존재들을 변화시켰지, 충만한 빛 속에서 내가 너를 변모시켰듯
이, 누군가가 유리컵 안에 담아 샘물을 변모시키듯이, 누군가가
타인 손을 잡아 제 손을 변모시키듯이. 우리 뒤에 드리운 고통스러운 스크린이었던 눈(雪)조차도, 그 위에서 수정 같은 맹세가 녹아내렸던 눈조차도 감춰졌네. 지상의 동굴 속에서, 화석이된 식물들이 출구의 목선을 찾고 있었지.
눈부신 혼돈을 향해 완전히 부풀어 오른 심해의 어둠이여, 나는 네 이름이 환상으로 변하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네, 내 입술 위에서만 맴돌았을 뿐이고, 점점, 유혹의 얼굴이 현실로, 전체로, 유일하게 나타났었지.
그래서 나는 네 곁으로 돌아왔어.
까마득히
내 몸의 감각 속에서
모든 나무 모든 가지 모든 잎
토대를 이루는 풀 바위 그리고 수많은 집
멀리 네 눈이 미역을 감고 있는 바다
이런 나날의 이미지
그토록 불완전한 악덕 미덕
우연히 마주친 거리에 있는 행인들의 투명함과
네 집요한 추적에 의해 뿜어져 나오는 여자 행인들
순결한 입술을 무거운 마음으로 누르는 네 고정관념
그토록 불완전한 악덕 미덕
허락하는 시선과 네가 정복한 눈의 유사성
육체 피로 열정의 혼돈
단어 태도 생각의 모방
그토록 불완전한 악덕 미덕
사랑은 미완성된 인간이다.
나는 그 손이 빛을 되찾고
나는 그 손이 빛을 되찾고 비 온 뒤의 꽃들처럼 몸을 일으키는 것을 본다. 손가락의 불꽃은 하늘의 불꽃을 찾고 그 불꽃들이 나뭇잎 아래, 땅 아래, 새들의 부리 안에서 낳는 사랑은 나를 나 자신으로, 과거의 나 자신으로 돌아가게 한다.
내가 그린 이 초상화는 무엇인가? 내가 생명을 불러일으킨 삶, 그것은 되찾은 내 기억, 내 모든 옛 욕망, 내 미지의 꿈들, 내가 잊었던, 내가 몰랐던 모든 진정한 순백의 힘이 아닌가?
나는 다시는 그널 사랑하지 않으리라 결심했고 밤과 뒤섞였지. 그녀는 자유로웠고 떠돌아다닐 수 있었다. 그러나 여기서
나는 그녀를 되찾고, 여기서, 새롭게, 나는 그녀의 지평선과 경계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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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엘뤼아르
사랑의 시인 혹은 정치적 시인이란 평을 받는 폴 엘뤼아르Paul Eluard(1895-1952)는 20세기 프랑스의 대표적 시인의 하나다.
그는 파리 북쪽 교외에 있는 노동자의 거리 생 드니에서 출생하였으나 아버지는 회계사이며 어머니는 양재사인 비교적 유복한 중산층 출신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몸이 허약하여 중고등학교 시절 폐결핵으로 공부를 중단해야 했고, 1911년에서 1913년까지 스위스의 다보스라는 곳에 있는 용양원에서 지내게 되었다.
여기에서 그는 보들레르, 아폴리네르 등의 작품을 읽게 되고 특히 미국 시인 휘트만의 시를 좋아하며 스스로 시를 쓰기 시작했다. 또한 소년 엘뤼아르는 여기에서 러시아 태생의 한 소녀를 만나 사랑하게 된다. 그 사랑은 결실되어 4년 뒤인 1917년 드디어 결혼하게 되는데 후일 그가 애칭으로 갈라라고 부른 여인이다. "그녀는 순결한 눈을 녹게 하고 풀 속에서 꽃을 피어나게 한 유일의 존재이다"라고 그는 찬양했다.
이보다 앞서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났고 엘뤼아르는 요양원에서 나오자마자 간호병으로 전선에 동원되었다. 그는 야전 병원에서 전쟁의 참상을 맛보았고 이는 그의 마음 속에 큰 충격을 주어 전시 중 병원에서 쓴 '평화를 위한 시' 외 1편의 선언문 같은 시들을 자비 출판했다.
파리에 돌아온 그는 한때 차라와 당시 유행하던 다다이즘 운동을 벌였고 후에는 앙드레 브르통을 만나 데스노스, 아라공과 함께 초현실주의 운동의 중요하고 열렬한 멤버가 되었다. 엘뤼아르와 초현실주의와의 관계는 밀접할 뿐 아니라, 이 새로운 문학 정신이 그의 시에 준 영향은 깊다. 1920년에서 1936년까지 그는 브르통이나 르네 샤르와 공동으로 여러 권의 초현실주의적인 시집과 평론을 펴냈을 뿐만 아니라 '죽지 않으므로 죽는 일' 및 그의 걸작으로 꼽히는 '고통의 수도', '사랑, 시', '목전의 삶', '모든 사람의 장미' 등 그의 중요한 시 작품들은 모두 직접 간접으로 초현실주의의 영향을 받은 것들이다.
시집 <모든 사람의 장미>로 그의 초현실주의 시대는 끝난다. 이 동안에 엘뤼아르는 첫 부인 갈라와 헤어지고 제2의 부인 마리아 벤즈, 속칭 뉘슈와 결혼한다. 뉘슈와의 사랑과 애정은 그의 첫사랑인 갈라에 못지않게 짙고 깊어 수많은 아름다운 시를 낳게 했으며 그녀의 영향은 그녀가 죽은 뒤에도 계속되었다.
1936년을 전후하여 그의 시는 점차 사회적, 정치적 관심을 보이고 인류와 정의를 위한 연대 운동에 가담한다. "지금의 모든 시인은 그가 다른 사람의 생에, 공동의 생에 깊이 관여되어 있음을 주장할 권리와 의미를 가지고 있는 때가 왔다"고 그는 썼다. 1936년 스페인 내란이 일어나자 그는 공화파에 가담하였고 '게르니카의 승리'를 발표했다. 이동안 인간애와 자유를 노래부른 시집에 <풍요한 눈>, <자연의 흐름>, <볼 것을 준다> 등이 있다.
1940년 제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자 한때 사랑과 꿈의 시인이었던 엘뤼아르는 자유와 조국을 위한 투사가 되었다. 이로부터 1944년 전쟁이 끝날 때까지 항독 비밀 저항 운동에 가담하여 싸웠고, 작가 국민 위원회의 북부 책임자가 되어 비밀 출판물인 <심야총서>를 간행하여 자유와 조국 해방을 위하여 시를 통해 투쟁했다.
이동안에 그는 시집으로 <시와 진실>(이 시집 맨 첫머리에 유명한 시 '자유'가 실려 있다), <전쟁 중에 일곱 편의 사랑의 시>, <독일인의 집합지에서> 등이 있다. 1942년에는 영국의 항공 편대가 수천 부의 그의 <시와 진실>을 독일군 점령 아래 싸우는 프랑스의 항독 투사 위에 뿌렸다. 시가 무기가 된 것이다.
대전이 끝나자 그는 세계 각국을 여행하며 인간에 대한 신뢰와 연대감을 고취하고 계속 시집을 펴냈으로써 자유와 인간애를 노래불렀다. <그치지 않는 시>, <정치 시편>, <도덕의 한 교훈>, <모든 것을 말한다> 등이다. 그가 세계와 인류와의 연계를 주장하는 소위 참여 문학에 가담했다고 하나 그의 시는 계속 개성적이며 서정적이고 그의 시의 주제는 언제나 영원한 사랑과 죽음, 평화, 자유였다.
1946년 그가 강연 여행으로 스위스에 있을 때 아내 뉘슈의 죽음의 통지를 받았다. 그는 한때 절망과 공허에 빠져 약 1년 동안 실어증에 빠져 있었으나 인류에 대한 신뢰와 사랑과 희망으로 이 위기를 극복했다. 1949년 멕시코의 세계 평화 회의에 참석했다가 거기서 다시 도미니크라는 여성을 만나 제3의 부인으로 맞이했다. 이 재혼을 기하여 엘뤼아르는 <불사신>이라는 시집을 써서 생의 기쁨을 되찾은 행복을 노래했다.
그러나 1952년 엘뤼아르는 과로와 협심증을 일으켜 급사했다. 그의 유해는 전세계의 지식인과 문인의 애도를 받으며 파리의 페르 라셰즈 묘지에 묻혔다.
https://naver.me/xIg9s3YG
[허연의 트위터처럼 시 읽기] 폴 엘뤼아르 「그리고 미소를」
엘뤼아르를 어찌 그 시절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었겠는가?
옛날 민음사 세계시인총서는 내게 밥과 같은 존재였다. 공교롭게도 대학 신입생 시절 세계시인총서 값은 학교식당 비빔밥과 가격이 같았다. 시에 막 눈을 뜨기 시작할 무렵, 세계시인총서를 사서 모으는 재미에 푹 빠졌던 나는 점심시간마다 고민에 빠져야 했다. 용돈이 부족한 시절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글허연(시인, 매일경제신문 문화부장)
001 이곳에 살기 위하여 표지.jpg
허연 Retweeted
폴 엘뤼아르 @ 폴 엘뤼아르
밤은 결코 완전한 것이 아니다
내가 그렇게 말하기 때문에
내가 그렇게 주장하기 때문에
슬픔의 끝에는 언제나
열려 있는 창이 있고
불 켜진 창이 있다.
언제나 꿈은 깨어나며
욕망은 충족되고
배고픔은 채워진다.
관대한 마음과
내미는 손 열려 있는 손이 있고
주의 깊은 눈이 있고
함께 나누어야 할 삶
삶이 있다.
- <그리고 미소를> 中 133글자
옛날 민음사 세계시인총서는 내게 밥과 같은 존재였다. 공교롭게도 대학 신입생 시절 세계시인총서 값은 학교식당 비빔밥과 가격이 같았다. 시에 막 눈을 뜨기 시작할 무렵, 세계시인총서를 사서 모으는 재미에 푹 빠졌던 나는 점심시간마다 고민에 빠져야 했다. 용돈이 부족한 시절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이야 판형이 달라졌지만 당시 문고판 크기의 총서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표지에는 촛불을 형상화한 디자인이 있었고, 내지에는 밀레가 그린 「땔감을 나르는 사람들」이라는 스케치가 은은하게 인쇄되어 있었다. 어쨌든 점심시간마다 에즈라 파운드, 보들레르, 랭보, 로트레아몽, 스테판 말라르메... 이런 대가들이 비빔밥과 대결을 벌여야 했다. 그래도 다행스럽게 대문호들이 비빔밥을 이기는 경우가 많았다.
이 시절 비빔밥에게 승리를 거둔 시집 중에는 폴 엘뤼아르의 「이 곳에 살기 위하여」가 있었다. 사람들은 주로 이 시집에서 「자유」라는 시를 좋아했지만 나의 눈을 사로잡은 건 「그리고 미소를」이라는 시였다. 첫 단어부터 마지막 단어까지 단 숨에 읽어 내려갈 수 있는 이 시는 내게 막연한 희망의 윤곽을 보여주었다.
아마 나는 당시 내 청춘을 ‘어두운 밤’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 내게 “밤은 완전한 것이 아니다”는 계시를 내려준 시 였으니 그 감동이 오죽했을까.
사실 엘뤼아르는 ‘혁명의 시인’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나 감미로웠고, ‘낭만 시인’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나 혁명적이었다. 바로 이 묘한 지점에 엘뤼아르의 시가 존재한다. 새로운 여인과 사랑에 빠질 때마다 시 세계가 바뀌었다는 시인. 그러면서도 자기가 살았던 시대적 책무를 멀리 하지 않았던 시인. 엘뤼아르는 그렇게 인간적인 모습으로 내게 다가왔다.
시집에는 엘뤼아르의 면모를 보여주는 「야간통행금지」라는 시도 실려 있다.
“어쩌란 말인가 문은 감시받고 있는데 / 어쩌란 말인가 우리는 갇혀 있는데 / 어쩌란 말인가 거리는 차단되었는데 ...(중략)... 어쩌란 말인가 밤이 되었는데 / 어쩌란 말인가 우리는 서로 사랑하는데.”
삼엄한 사회 분위기에 대한 저항시를 쓰면서도 ‘사랑’으로 결말을 내고야 마는 엘뤼아르를 어찌 그 시절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었겠는가?
이곳에 살기 위하여엘뤼아르 저/오생근 역 | 민음사
초현실주의 시인이자 열렬한 저항시인이라는 평가를 받는 P. 엘뤼아르의 시집.
https://naver.me/5wAlYXba
내 청춘의 주술, 엘뤼아르
[허연의 시 읽어주는 남자-3]
밤은 결코 완전한 것이 아니다 내가 그렇게 말하기 때문에
내가 그렇게 주장하기 때문에
슬픔의 끝에는 언제나
열려 있는 창이 있고
불 켜진 창이 있다.
언제나 꿈은 깨어나며
욕망은 충족되고
배고픔은 채워진다.
관대한 마음과
내미는 손 열려 있는 손이 있고
주의 깊은 눈이 있고
함께 나누어야 할 삶
삶이 있다.
-폴 엘뤼아르 '그리고 미소를'
옛날 민음사 세계시인총서는 내게 밥과 같은 존재였다. 공교롭게도 대학 신입생 시절 세계시인총서 값은 학교식당 비빔밥과 가격이 같았다. 시에 막 눈을 뜨기 시작할 무렵, 세계시인총서를 사서 모으는 재미에 푹 빠졌던 나는 점심시간마다 고민에 빠져야 했다. 용돈이 부족한 시절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이야 판형이 달라졌지만 당시 문고판 크기의 총서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표지에는 촛불을 형상화한 디자인이 있었고, 내지에는 밀레가 그린 '땔감을 나르는 사람들'이라는 스케치가 은은하게 인쇄되어 있었다.
어쨌든 점심시간마다 에즈라 파운드, 보들레르, 랭보, 로트레아몽, 스테판 말라르메…. 이런 대가들이 비빔밥과 대결을 벌여야 했다. 그래도 다행스럽게 대문호들이 비빔밥을 이기는 경우가 많았다.
이 시절 비빔밥에 승리를 거둔 시집 중에는 폴 엘뤼아르의 '이곳에 살기 위하여'가 있었다. 사람들은 주로 이 시집에서 '자유'라는 시를 좋아했지만 나의 눈을 사로잡은 건 '그리고 미소를'이라는 시였다. 첫 단어부터 마지막 단어까지 단숨에 읽어 내려갈 수 있는 이 시는 내게 막연한 희망의 윤곽을 보여주었다.
아마 나는 당시 내 청춘을 '어두운 밤'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 내게 "밤은 완전한 것이 아니다"는 계시를 내려준 시였으니 그 감동이 오죽했을까.
생각해 보면 이 시로부터 큰 위안을 얻었던 것 같다. 시에서 가르쳐준 것처럼 포기하지 않고 '밤은 완전하지 않다'고 읊조리면 밤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시는 내 청춘의 주술이었다.
사실 엘뤼아르는 '혁명의 시인'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나 감미로왔고, '낭만 시인'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나 혁명적이었다. 바로 이 묘한 지점에 엘뤼아르의 시가 존재한다.
새로운 여인과 사랑에 빠질 때마다 시 세계가 바뀌었다는 시인. 그러면서도 자기가 살았던 시대적 책무를 멀리 하지 않았던 시인. 엘뤼아르는 그렇게 인간적인 모습으로 내게 다가왔다.
시집에는 엘뤼아르의 면모를 보여주는 '야간통행금지'라는 시도 실려 있다.
"어쩌란 말인가 문은 감시받고 있는데 / 어쩌란 말인가 우리는 갇혀 있는데 / 어쩌란 말인가 거리는 차단되었는데...(중략)...어쩌란 말인가 밤이 되었는데 / 어쩌란 말인가 우리는 서로 사랑하는데."
삼엄한 사회 분위기에 대한 저항시를 쓰면서도 '사랑'으로 결말을 내고야마는 엘뤼아르를 어찌 그 시절 사랑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