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왕 21년 여름에 큰 가뭄이 들어 백성들이 굶주려서 서로 잡아먹고, 도적이 많이 생겼다. 신하들이 창고를 열어 진휼하여 구제할 것을 청하였으나 왕이 듣지 않았다. 한산 사람 중 고구려로 도망간 자가 2천 명이었다. 겨울 10월에 전염병이 크게 돌았다.
22년 봄에 임류각을 궁궐 동쪽에 세웠는데 높이가 다섯 길 이었다. 또한 연못을 파고 기이한 짐승을 길렀다. 신하들이 반대하며 상소하였으나 대답하지 않고, 다시 간하는 자가 있을까 염려하여 궁궐 문을 닫아버렸다.
여름 4월에 우두성에서 사냥하다가 비와 우박을 만나서 그만두었다. 5월에 가물었다. 왕이 측근들과 더불어 임류각에서 잔치를 베풀며 밤새도록 환락을 즐겼다.
(생략)
-‘무령왕, 신화에서 역사로’(정재윤지음), 삼국사기 동성왕의 기록 중에서-
첫댓글 뭔가 기시감이…
아직 공산성에 연못이나 뭐 그런 흔적은 없는 거 같은디요..
과연 웅진시대 백제궁궐은 어디였을까.
발굴 주도하셨던 이남석 교수님이 급사하신 뒤로는 뭐... 이렇다 할 소식을 못 들음.
서울의 위례성 함락후, 개로왕과 그 가족들이 사망하고 신라로 구원병을 요청하러 갔던 그의 동생 문주왕이 급하게 임시?로 세웠으니 그 흔적을 찾기는 쉽지 않을 듯합니다.
연못 있습니다. 공산성에도 물론 어느 정도 비슷한 게 있고요.
@마법의활 뭣보다 공산성이 백제 왕성이라기에는 규모가좀.. 아니면 우리가 왕성을 너무 큰 개념으로 보고있는건지
@PANDA 전시와 평시가 있는데 그중 하나인 전시용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저런게 무슨 왕성터에요
제대로된 터 하나안나오는구만..
학자들도 그냥 추정하는거지 확신이 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