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내가 처음 개미라는 책을 접한 건, 정말 할 일 없었던 중학생 시절이었다. 나는 뽐내는 걸 좋아하는 아이였다. 그러나 정상적으로 뽐을 내는 아이는 아니었다. 예를 들자면, 중학교 3년 동안 세 번 정도 밖에 교복 외투를 빨지 않았다던가, 나랑 사귀어보고 싶다고 했던 여자아이가 냄새난다고 저리가라고 할 정도로 머리를 안 감는다던가, 노란 분필을 하루 왼종일 주머니에 넣고 주물럭거린다던가 하는 그런 식으로 뽐을 내곤 했다. 나는 뽐 내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책을 읽었다. 그것은 어릴 적 내가 나와 어울리던 친구들 중에서 유일하게 특수반에 들어가지 못했던 기억 때문에, 내가 조금 특별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일런지도 모르겠다. 나는 작은 중학교에, 좁은 도서관에서, 가장 두꺼운 책을 찾았다. 그리고 칸막이로 막힌 책상에 앉아서, 개미 위에 비듬을 털었던 기억이 있다. (참고적으로 그 시절의 개미 1권은 꽤 두꺼웠고, 중학교 도서관에는 3권까지밖에 없었다.)
그 한 권의 책은, 지나치게 교과서적이지 못했던 그 책은, 나에게 있어서 엄청난 도전이었다. 일단 심각하게 자연과 밀접한 위치에 주거공간을 가지고 있던 나에게도 개미라는 것은 그저 일렬로 나가는 흥미로운 작은 벌레였을 뿐이고, 다른 사람들에겐 방 바닥에 흘린 오래된 과자 부스러기를 옮기기 위해사는 작은 벌레였을 뿐이고, 동화에선 그냥 협동심 좋고 부지런한 벌레였고, 다큐멘터리에서도 다른 동물과 그다지 차별을 두지 않은, 군집생활을 하는 곤충들이었다. (그 다큐멘터리를 제대로 보지 않은 것이 지금에 와서야 후회가 된다. 왜냐하면 그 책에 나오는 개미와 관련된 개념들이, 사탕을 나르거나 옥수수나무 아래에서 번데기를 키우는 일개미와 소수의 병정개미와 가끔 날아다니는 수개미를 본 것 밖에는 본 게 없는 나로서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책에서 개미와 인간은 동등하다. 개미 한 마리와 인간 하나가 동등한 건 물론 아니다. 그 보다는 인간의 역사와 개미의 역사, 인류와 개미류가 동등하다는 듯한 어조로 말한다. 그것은 엄청난 도전이었다.
외계인과 인간, 신과 인간, (판타지의) 이종족과 인간의 만남을 다룰 뿐인 모든 틀을 깨고,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익숙한 개미에게서 새로운 문명을 발견하는 것은 엄청난 도전이었다. 베르나르베르베르는 중학교 시절의 나보다 백 배는 더 뽐내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어쨌든, 당신이 다음 두 줄의 글을 읽는 몇 초 동안
- 40명의 사람과 7억 마리의 개미가 지구 위에 태어나고 있다.
- 30명의 사람과 5억 마리의 개미가 지구 위에서 죽어가고 있다.
세밀한 작품은 아니다. 작가 스스로도 세세한 부분은 신경쓰지 않은 것 같다. 이 소설을 읽으며 유의할 것은, '말도 안 돼.'라는 생각을 절대로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적어도 글을 읽는 순간만큼은 개미들에게 진정 문명이 있으며, 그들의 뇌도 인간의 수준만큼 학습할 수 있으며, 한 사람의 백과사전이 어떤 혁명의 원동력이 될 수 있으며, 버섯 농사나 진딧물이 분비한 꿀물 따위로 지하에서 목숨을 연명할 수도 있고, 그저 하루 안에 컴퓨터 안에 그럴듯한 세계를 만들 수가 있다.
또 한 가지, 작가는 물론 자기 사고방식과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작품 자체에는 주제가 없을 수도 있다. 그저 한 사람이 보고 생각했던 세상의 모습을 그 사람의 방식으로 표현했을 뿐이다. 세상을 본 사람이 세상을 표현한 것 뿐. 즉, 개미들의 종교가 어린아이의 장난에서 시작되었던 것처럼, 우리의 신도 장난처럼 우리를 만들었을 수도 있으나, 그것에 너무 감흥하여 '아마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또, "만약에 그러면 어떻게 하지?"하고 두려워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노파심.
개미는 적어도 나에게는, 사고의 폭을 넓혀주는 계기가 된 소설이었다.
그리고 그에 못지 않게, 창작의 폭을 넓혀주는 계기가 된 소설이었다.
하나의 소설이 몇 개의 층을 이룬 채로 번갈아가며 설명되는 구조도 그렇고, 수수께끼를 도입해 흥미를 유도하는 방식도 그렇고, 독자의 틀에박힌 고정관념을 깨서 놀려먹는 것도 그렇고. 그것은 마치 추리소설 같으면서도, 작중 인물들 간의 갈등 보다, 작가와 독자간의 갈등을 유도하는 글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개미는 영화로 만들 수 없다는 것. 나는 개미라는 애니메이션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같은 작품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했다. 개미를 보았을 때, 나는 소설만의 메리트를 온몸으로 느꼈다.
그리고 얼마 전, 우연히 서점에 들렀다가 개미 5권을 보았고, 그 자리에 서서 읽다가 돈 내고 집으로 가져와버렸다. 드디어 다 읽었다. 읽는데 대략 6, 7년 걸렸다.
1+1=3. 사과 하나에 사과 하나를 더하면 둘이지만, 개미와 인간을 더하면 3이란다. 왜냐하면, 개미랑 인간은 다르니까. (물론 그런 말은 소설에 나오지 않는다.)
첫댓글 저도 일주일동안 머리를 감지 않았다가 일요일에 감는 방식을 애용합니다. 책에 비듬을 털어본 기억을 공유하고 있다니 기쁩니다. 문제는 사귀자고 하는 여자가 있었다는 점이군요.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음... 전 여름엔 2번/1일, 겨울엔 1번/1일 샤워를 하는데..; 문득 중1때 덩치가 저보다 몇 배는 되는 듯한 말그대로 워크의 타우렌이나 스타의 울트라를 연상시키는 애가 저한테 사귀자고 했던 기억이 나는군요-_-; 너무 경악스러워 '지랄'이라고 외쳤다가 중1땐 여자애들한테 공적 취급을 받았었지요.
아, 난 한 평생을 고구마 농사랑 고양이 사냥이나 하면서 미개인으로 지내야 할 것인가! 일단 이 미개인 생활을 벗어난다면 그 다음에 우울함과 고독을 논하리. 수신, 수신, 수신. 저는 다람쥐가 싫어요. 따뜻한 물이 그립습니다.
문제는. 베르베르의 소설은 어느정도의 관련된 지식을 가지고있다면 '말도안되'가 막 떠오릅니다. 물론 소설로 쓰기위해 어느정도 조정한건 알지만.. 재미있게는 못보겠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