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낯섦’ 첫 주 ot에서 들은 살면서 처음 들은 모순적인 단어였다. 나에게 ‘익숙함’이라고 하면 편안하고 안정적인 상태가 생각나고 ‘낯섦’이라고 하면 불안하고 어색한 상태가 생각난다. 이렇게 이미지가 다른 두 개의 감정이 어떻게 한 문장속에 존재 할 수 있을까에 대해 2주동안 생각을 해봤다.
어느날 동아리가 끝난 후 잔디밭을 지나다 하늘을 봤는데 수많은 별이 각자 다른 밝기와 색으로 빛을 내고 있었다. 그저 너무 예쁘고 내가 살던 지역에서는 눈으로 별자리를 보는건 상상치도 못하던 일이라 한참을 아무 생각 없이 바라봤다. 그 무수한 별을 보다 보니 우리가 평소에 항상 보는 하늘을 우리와 정반대의 계절을 살고 있는 남반구 사람들과 정반대의 시간을 살고 있는 서양 사람들도 같은 하늘을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이 들고 난 후 익숙하던 하늘이 낯설게 느껴졌다. ‘하늘은 그럼 대체 얼마나 클까?’ ‘내가 보이지 않는 하늘은 뭔가 다를까?’ ‘지구에서 보이는 하늘과 다른 행성에서의 보이는 하늘은 다르다 했는데 다른 행성에 가서 보는 하늘은 어떨까?’ ‘우리가 하늘이라고 부르는것은 사실 우주가 아닐까?’라는 사실을 생각해보니 다시 한번 내 눈에 보이는 하늘이 낯설게 느껴졌다. 이것이 내가 느낀 첫 익숙한 낯섦이었다.
과제가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다보니 평소에도 생각이 많던 내가 더 많은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본가에 가서 부모님을 만나니 익숙하면서도 낯설었다. 하지만 나는 이런건 그냥 낯가림이라고 생각한다. 평소처럼 엄마와 대화를 하던중 엄마에게도 ‘익숙한낯섦’에 대해 물어봤다. 엄마는 매일매일이 익숙한 낯섦이라고 말을 했다. 삶에 익숙해져서 아무 의심과 의문 없이 살아가지만 갑자기 문득 엄마가 된 삶과 어른이 된 삶, 그리고 바뀐 주변 사람들에 낯섦을 느낀다고 한다.
그날이 내가 처음으로 장례식에 간 날이었다. 나에게 장례식이라고 하면 모두가 슬퍼하고 울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는데 막상 가보니 다들 오랜만에 만난 친척들과 기쁘게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그 모습에 어리둥절하고 있으니 엄마가 나에게 와서 호상이라 다들 기쁘게 있는것이라고 말을 해주었다. 처음에 어색해했던 나도 어느새 익숙하게 다른 사람들과 섞여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집에 가는 길에 엄마에게 돌아가신 고모할아버지는 어떤 분이셨는지 물어보았다. 엄마는 어렸을 때부터 가족들끼리 자주 만나 항상 같이 시간을 보냈던 어렸을 적 추억을 공유한 사람이라고 말씀하셨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갑자기 ‘죽음’이 낯설게만 느껴졌다. 우리는 모두 당연한 듯 하루하루를 살고 있고, 아직 죽음을 생각하기는 이른 나이라 미래를 그리고, 당장 내일 할 일을 정하고 일주일 남은 시험을 걱정한다. 하지만 살아가는 것이 당연할까? 지금 당장 하늘에서 유성우가 떨어져 죽거나 사고로 인해 죽을 수도 있는데 무엇을 믿고 미래를 그리는 것일까? 아마 그럴 확률이 희박하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적은 확률의 일이 발생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렇게 하나하나 다 생각하다보면 삶을 살아가기 피곤하다고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한 번쯤 해보는 것도 좋은 것 같다. 이후로 당연하게 살아가고 있는 현재가 익숙하지만 낯설게 느껴졌다.
과제를 하면서 뭔지 모르는 낯설고도 복잡한 감정을 느낀 것은 처음인 것 같다. 덕분에 나의 인생을 돌아보고 생각 정리도 할 수 있었고, 나만의 철학에 대해 생각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철학을 그저 어려운 학문이 아니라 편하게 다가갈 수 있는 학문이라는 것을 깨닫고 세상을 철학적으로 보는 방법에 대해 알게 된 것 같다.
첫댓글 우리가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가치를 찾아내려고 하는 까닭은 그것이 안정되고 편안한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안정되고 편안한 상태가 지속되면 그 가치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습니다. 어린 시절을 되짚어 보면 하늘을 보며 경탄했을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경탄은 일상에서 곧 사라져버렸겠지요. 그러다보니 문득 어떤 계기로 하늘을 보았을 때, 하늘이 있었구나, 저렇게 생겼구나, 별이 많기도 하다 등등의 생각이 들겠지요. 그러면서 하늘의 존재함이, 그리고 그 의미가, 그리고 실재하는 것인지에 대한 다양한 생각들이 나오게 되는 것이랍니다. 장례식도 마찬가지지요. 내가 그냥 인사만 드리고 온 장례식장과 내가 관계자가 되어서 참여하는 장례식장은 또 다릅니다.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그것은 다른 의미로 다가오게 되는 것이지요. 희박한 확률, 그에 비해 당연하게 살아가는 것들도, 사실 그 내부를 찬찬히 살펴보면 희박한 확률인 경우가 많습니다. 엄마와 아빠가 만날 확률, 임신이 될 확률, 내가 태어날 확률 등등은 모두 희박하고, 그래서 가치가 있는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