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신 | 사진작가
"장터에는 잘난 사람도, 못난 사람도 없어요. 사탕과 담배만 있으면 누구하고나 친구가 될 수 있죠. 웃는 얼굴로 '물건을 참 예쁘게 진열하셨네요.' '오늘 너무 고우세요.' 하고 다가가면 반겨 주며 얘기를 꺼내는 곳이에요." 1984년, 연이은 신춘문예 낙방에 속이 상한 한 소설가 지망생은 '사람 공부'를 위해 장터를 찾았다. 어린 시절 엄마를 따라 다닌 오일장의 기억이 떠오른 것. 그렇게 하루 종일 사람을 구경하며 물건을 팔러 나온 어르신들을 만났다. 그곳에서 마주한 건 사람들간의 정(情). 그 넉넉한 마음에 이끌려 전국의 장터를 떠돌기 시작했다.
40여 년 동안 오일장을 찾아다니며 그곳의 시간과 사람들을 사진으로 기록해 온 정영신 님의 이야기다.
"시장 할머니들이 들려주는 삶이 재밌었어요. 할머니들과 놀며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 순간 시장이 저에게 말을 거는 듯했고 장 서는 날이 기다려졌어요. 연암 박지원이 저잣거리에서 우울증을 치료했다는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었죠." 처음 카메라를 든 것은 컬러 TV가 전국으로 보급됐을 무렵이다. TV에 나오는 사람들의 화려한 옷차림과 머리 모양을 따라 하는 사람이 늘면서 시골 장터의 풍경 달라졌다. 문득 그 변화를 기록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떤 꾸밈도 없이, 있는 그대로를 보여 주는 사진으로, 그 속에 담긴 사람들의 모습을 한 꺼풀씩 벗겨 내 보면 이 역시 문학이었다. 지금껏 다닌 오일장만 500곳 이상이다. 전국에 가 보지 않은 장이 없다. 돈이 생기는 족족 이곳저곳을 다니며 장터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주머니 사정은 늘 넉넉지 않지만, 여전히 장터가 재밌어 기차표 값만 있으면 일주일에 한두 번은 꼭 찾아간다고.
"장터는 각 지역의 생활을 담고 있는 박물관인 셈이에요. 그러니 사라져 버린 것도, 아직 남아 있는 것도 모두 찍어서 남겨야죠."
"정직한 땀과 삶이 녹아 있는 물건을 팔아 돈을 버는 사람들이 인상적이었어요. 그 돈으로 팍팍한 삶을 이어 나가면서도 정을 잃지 않았죠. '오늘 돈 좀 벌었는데, 뭐 줄까? 다음에 맛있는 거 사줄 테니 또 와' 하는 식이었어요. 사람이 사는 데 가장 중요한 건 사람이고 정이잖아요. 그 모습들을 남기려는 거죠." 그는 한 노인의 사연을 들려줬다. 노인은 이른 아침부터 장터의 양지바른 곳에 자리를 잡는다. 앞에 늘어놓은 것은 다 팔아도 채 만 원도 되지 않는 적은 양의 농산물. 1000원, 2000원 조금씩 팔다 누군가 남은 걸 한꺼번에 사겠다고 하자 고개를 젓는다. 장터란 팔 물건만 있다면 온종일 있어도 괜찮지만, 다 팔면 떠나야 하는 곳. 적적한 집으로 돌아가기가 싫어 얼마 없는 물건이라도 쥐고 앉아 있던 것이다. 그 노인에게 장터란 사람들을 만나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유일한 창구였으리라. "시골 장에는 아직도 그런 분들이 많아요. 하루 몇 대 다니지 않는 버스가 끊길 때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죠. 그곳에서 서로 다른 삶이 한데 뒤섞여 이야기가 되고, 또 각자의 터전으로 옮겨가요. 그 모습과 시간이 쌓여 우리네 역사를 이룬다고 생각해요." 사진을 모아 전시회를 열 때면 사진 속 주인공들을 초대하곤 한다. 그들은 사진으로 마주한 자신의 모습을 낯설어 하면서도 자긍심을 얻는다. 평범하고 보잘것없다 여겨 온 자신의 지난 삶에 가치가 있다는 걸 깨닫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이름보다 누군가의 엄마, 할머니로 불리는 날이 많은 어르신들에게 말한다. "당신의 이름으로 살아가세요." 그들에게 이름을 돌려주는 것이 그들이 살아온 역사를 일깨워 주는 것이라 믿는다. 꿋꿋이 기록해 온 40여 년의 시간. 이제는 각 지역 미술관 등지에서 그에게 전시를 제안한다. '장터는 곧 역사'라는 오랜 신념이 빛을 보고 있는 것. 그의 꿈은 마지막 날까지 장터를 찾고 기록하는 것이다. 오랜 시간 장터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음에도 아직까지 풀어내지 못한 이야기가 있다고. "집에 돌아오면 꼭 장에 무언가를 두고 온 기분이 들어요. 저를 기다리는 사람들과 더 담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니까요." 시간이 흐르며 장터도, 그곳의 사람들도 하나둘 사라지고 있다. 이전에 분명 찍은 곳인데 오랜만에 찾아가면 텅 비어 있는 경우도 많다. 그럴 땐 옛 모습을 떠올리며 빈 터를 배회한다. 늘 "맛있는 거 사줄 테니 또 놀러 와." 하던 한 할머니를 다시 찾은 날은 이미 그녀가 세상을 떠난 다음이었다. 그 자리에 주저앉아 한참을 울었다. 마음이 상해 셔터 한 번 누르지 못하고 돌아오는 날도 허다하지만, 그래서 그는 마음을 더 굳게 먹는다. "요즘 시대엔 상상하기 어렵겠지만, 예전의 장터는 농촌 사람들이 유일하게 소통 할 수 있는 공간이자 오락과 유흥거리가 가득한 곳이었어요. 그곳에서 우리네 가치관과 풍속이 만들어졌죠. 장터는 각 지역의 생활을 담고 있는 박물관인 셈이에요. 그러니 사라져 버린 것도, 아직 남아 있는 것도 모두 찍어서 남겨야죠." 유통이 발달하면서 최근에는 어느 지역에서건 비슷한 공산품을 팔지만, 그는 지역마다 다른 정서와 문화가 있다고 말한다. 전남 담양장에선 죽(竹) 제품, 충남 청양장에선 구기자, 홍성 광천장에선 새우젓, 서천 한산장에선 모시, 인천 강화장에선 화문석을 만날 수 있으며, 남원의 인월장은 전북과 경남의 경계선에 있어 '화합의 장'이라고도 불린단다. "수많은 삶이 모인 장터는 절대 사라지지 않을 거라고 믿어요. 제가 가진 희망을 믿고 끝까지 지켜보며 기록하고 싶어요." 그를 만난 건 고양 일산장이 선 날이었다. 이야기를 마친 그는 바쁜 걸음을 옮겨 갔다. 홀로 걷지만 혼자가 아닌 '함께'라 느끼는, 장터 속으로. 글_황혜원 기자
2011년 충남 예산장
2012년 경남 김해 장유장
2012년 전남 곡성 옥과장
어머니의 안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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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글 감사 합니다
반갑습니다
동트는아침 님 !
다녀가신 고운 걸음
멘트 감사합니다 ~
태양의 계절 7월입니다
건강하고 활기찬
나날들 보내시길
기원합니다
~^^
안녕 하세요.....망실봉님
좋은 글 고맙습니다..
무더위에 건강 조심 하세요
오늘도 수고 많으셨어요...
편안한 쉼 하세요...^^
반갑습니다
핑크하트 님 !
다녀가신 고운 걸음
멘트 감사합니다~
편안하고 여유로운
좋은 하루보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