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 살게 된 지 2년이 조금 넘었다. 처음 방을 구하러 육지에서 내려온 날을 잊지 못한다. 매서운 바람과 더불어 스티로폼 같은 눈이 내리는 날이었는데 내가 살던 지역과는 사뭇 다른 날씨가 인상 깊었다. 자취를 시작한다는 설렘 때문이었는지 처음 마주한 작은 원룸은 꽤 마음에 들었고 빨리 이사하고 싶은 생각이 가득했었다. 그렇게 나는 ‘아라동’이라는 동네에 살기 시작했다. 낯선 거리의 풍경, 낯선 사람들, 낯선 사투리, 모든 것이 낯선 이곳은 나에게 특별하게 다가왔었다. 평소 제주도를 관광지라고 생각했던 나는 단순히 동네를 걷는 것만으로도 여행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처음의 설렘과 특별함을 뒤로하고 시간이 2년 넘게 흐른 지금, 나에게 아라동이라는 장소는 익숙한 공간이 되어버렸다. 동네는 변한 것이 거의 없는데 내가 동네를 대하는 감정은 변해 있었다. 늘 보는 풍경은 신선함을 주지 못했고 매일 걷는 같은 길은 때론 지루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익숙한 낯설음에 대해 고민하면서 내가 지내온 동네를 천천히 한번 둘러보기로 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제주대학교 병원 버스 정류장, 내가 늘 버스를 타고 내리는 곳, 원래 저렇게 경사진 곳에 지어져 있었나? 꼭 저렇게 만들어야 했던 이유가 있었을까? 지금까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비탈길에 세워진 버스 정류장이 우스꽝스러워 보였다. 또 내가 너무나도 익숙해져 버려 지루하다고 생각했던 길의 바닥에는 조명등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이 어두운 골목길을 밝혀주는 조명등이 누군가에겐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익숙해져 버린 것을 다시 보니 낯선 모습들이 보였다. 새로운 것을 처음 접했을 때 느끼는 낯섦과는 달랐다. 이번 과제가 언젠가부터 익숙하고 당연하다고 여겨왔던 것들을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될 것 같다. 아라동에 머무는 동안 익숙해진 것들에 관해 관심을 가져봐야겠다. 졸업 후에 육지로 돌아갔을 때도 아라동을 익숙하지만, 낯선 공간으로 기억하려 한다.
첫댓글 낯선 장소에 처음 왔을 때는 모든 것이 낯설어 보입니다. 그런데 거기서 생활하다보면 금세 익숙해지죠. 익숙한 풍경들은 의미 없는 일상이 됩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런 풍경을 가만히 살펴보면, 이런 것이 있었나, 왜 이렇게 있나, 그건 왜 그럴까 라는 생각이 꼬리를 물게 됩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겠지만, 그것이 한동안 기억 속에 남게 되는 것이지요. 일상은 이렇게 우리에게 익숙합니다. 하지만 다른 눈으로 보기 시작하면, 일상은 낯설고 특별합니다. 그래서 여기서부터 시작하자는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보는 것은 그것이 있음을, 그것이 가진 의미를, 그것이 가진 가치를 생각해보는 행위입니다. 왜 제대병원 버스정류장은 그렇게 가파른 고갯마루에 지어야만 했을까요? 제대 병원이 거기 있으니까 하고 생각을 멈추면 거기서 한 걸음 나아가지 못합니다. 제대 병원은 그럼 왜 여기에 지었을까? 이렇게 가파른 고갯마루에 예전에는 다니기가 쉬웠을까? 왜 중앙로는 516도로라고 불릴까? 이런 생각들을 하다보면, 제주의 장소에 대한 생각들로 확장시켜나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