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함 속 낯설음은 주변에서 많이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익숙함에 속아 발견하지 못한다. 그 중에서 난 내 자신이 가장 큰 익숙한 낯설음이라고 느꼈다.
난 아무런 의심없이 나 자신을 잘 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나를 잘 알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낯설음을 느꼈다. 이 낯설음은 한 수업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종이에 써보세요.”라는 단순한 질문에서 알게 되었다. 질문에 답을 하지 못하는 나를 발견했을 때 느낀 낯설음은 말로 설명할 수 없다. 그 질문을 통해 왜 나는 이런 간단한 질문에도 답을 하지 못하는가에 대해 스스로 물어봤던 기억이 있다. 당시에는 내가 너무 멀게 느껴지는 것 같아서 이 물음에 제대로 답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지금 낯선 철학하기 수업에서 익숙한 낯설음이라는 과제를 통해 잊어버렸던 이 물음이 떠오르게 되었다. 지금 이 글을 쓰며 내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 단순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묻는다. 다행이도 이 질문에 답이 바로 떠오른다. 그때 나는 내 주관이 뚜렷하지 않고 남의 말을 더 믿고 따랐었다. 하지만 현재의 나는 그 낯설음과 주관적 선택의 경험들을 통해 내 자신에 대한 정보가 쌓이며 지금 그 물음에 답을 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지금 이 글을 쓰며 과거 나와의 낯설음이 느껴진다. 앞으로 미래의 나는 지금의 나에 대해 낯설음을 느낄 것이다. 이 글을 시작할 때에는 낯설음이 부정적으로 다가왔지만 이에 대해 생각하고 글로 써보니 이 낯설음은 성장의 증거로 느껴진다. 이후로 낯설음을 느끼게 된다면 그 낯설음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느껴보고자 한다.
첫댓글 자기 자신이 가장 익숙한 존재라고들 생각합니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나만큼 나를 잘 모르는 사람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끊임없이 자신에 대한 생각을 보정해나가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는 어제와 오늘 똑같은 존재는 아닙니다. 어제보다는 오늘 이만큼 더 살았고, 그만큼 더 많은 경험을 하면서 바뀌어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내가 어떻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사실상 무리입니다. 그런데도 왜 우리는 스스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할까요? 심지어는 다른 사람이 그렇게 매일 보고 있는 얼굴을 보기 위해서 거울을 빌려야 하는 데도 말이지요. 과연 좌우반전된 내 얼굴이 다른 사람에게도 똑같이 보이는 것일까? 내 목소리가 내 귀에 들리는 것과 다른 사람 귀에 들리는 것이 같을까? 그런데도 왜 우리는 각자가 보고 듣는 것을 다른 사람도 똑같이 보고 듣는다고 생각할까? 이렇게 생각을 확장해나가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