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 알았으랴! 턱뼈에 구멍을 뚫어 인공 치아를 해 박는다는 임플란트를 내가 하게 될 줄 은 몰랐다. 지난해인 2008년 5월이었다. 고향 친구의 여식 결혼식에 간 나는 언감생심 홍어무침 한 점을 입에 넣은 것이 청천벽력이었다. 치과에 갔더니 뽑아버리고 임플란트를 하라는 것이다. 기가 막혀 멍했다. 감싸 보철을 해주면 괜찮을 줄만 알았던 나는 요즘 임플란트가 유행이라더니 무조건 권하고 보자는 것 같았다. 250만원이라는 비용도 내게는 큰 부담이었다.
병원을 나오며 야매치과가 떠올랐다. 야매란 은밀하여 물어물어 찾아 가니 군대시절에 배웠다는 반백의 노인은 허름한 의자에 나를 앉혀놓고 손전등을 비춰보며 혀를 찼다. 두 쪽이 났다는 것이다. 그러니 치과 사람들 공돈 안 먹는다며, 돈도 많이 안 들 테니 치과로 가라는 것이었다. 실망감 속에 묘책이 없던 나는 다른 치과를 찾았지만 뽑아야 한다는 안타까움뿐이었다. 안쪽 맨 끝 위 어금니는 조각조각 바스러져 난공불락이었다. 의사도 진땀을 빼는 가운데 두 시간여 동안 나는 저승에서 빠져나온 허깨비 같았다.
의사는 역시 임플란트를 하라며 비용을 물으니 180만원이라고 했다. 귀가 번쩍 뜨였다. 그런데 말이 곧 달라졌다. 대부분 위턱뼈는 두께가 얇아 임플란트가 10센티는 박혀야 하는데 모자라다는 것이다. 그 공간을 인공 뼈로 채워야 될 경우 추가 부담이 100만원이라고 했다. 많이 내렸다고는 하지만 나는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결정을 미루고 인터넷에 알아보니 140만원부터 4,5백만 원까지 대종없었다. 비용뿐만 아니라 임플란트를 하였다가 염증으로 고생하는 사람들도 많다는 것을 TV에서 보았는데 잇몸이 안 좋은 나는 걱정이 많았다.
내가 처음에 갔던 치과를 다시 찾은 것은 가격과 간판에 그려진 임플란트 표시의 신뢰에서였다. 다른 치과에서 있었던 자초지종을 털어놓고 백수 영세민이라고 하였더니 180만 원에 가능하다고, 인상 좋은 젊은 의사는 철저한 검사를 거쳐 부작용 없게 한다며 걱정 말라고 했다. 파격적이란 생각에 나는 주저 없이 아래 어금니도 함께 덧씌우겠노라고 했다. 이미 손상되어 언제 또 당할지도 몰랐다. 금니는 40만원과 30만원 두 종류로 빛의 차이가 많이 났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했더니 간호사가 웃으면서 10만원을 할인한 가격에 결정했다.
그로부터 두 달, 발치한 자리에 뼈가 채워져야만 임플란트를 심을 수 있다고 하여 기다려야했었다. 그런데 수술하기 직전, 의사는 사진을 들여다보며 인공뼈의 생성을 돕기 위해 턱뼈 조각을 떼어 내 이식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러면 추가 비용이 50만원이지만 30만원을 예상하라고 했다. 복병을 만난 기분이라 씁쓸했다. 처음부터 감안한 것 아니냐며 따져 묻고도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타산을 맞추려는 것 같아 보였고, 결국은 그런 방법으로 받을 금 다 받는구나! 싶었다.
마취가 시작되고 의사는 긴장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곧 시작된 수술, 입을 크게 벌리라는 잇단 독촉과 타액인지 혈루인지가 목을 파고들어와 숨통을 막아 발악할 것만 같았다. 그때마다 흡입 호스가 들어와 해결하지만 꼴깍! 꼴깍! 나는 잡혀 온 한 마리 붕어 같은 신세였다. 엑스레이 불빛이 몇 차례 번쩍이며 턱뼈에 구멍 뚫는 소리가 한동안 요란했다. 이식할 턱뼈를 쪼아내는 해머 소리도 쾅! 쾅! 쾅! 귀 창을 울려대며 어느 석공의 땀방울을 방불케 했다. 온몸에 힘이 가해지며 버티는 내게 의사는 “잘 협조해 주고 계십니다.” 를 연발했다. 마침내 나사를 돌리느라 손길이 바빠졌고, 소곤대며 실을 꿰매는 느낌은 전쟁 뒤의 평화로움이었다.
수술은 예상시간보다 빨라 2시간이 채 안되어 끝이 났다. 의사는 컴퓨터 사진을 가리키며 잇몸에 염증이 있어 모두 제거하고 옆쪽으로의 차단을 위해 격벽을 설치했다고 수술 결과를 설명해 주었다. 찬 것과 뜨거운 것을 마음대로 먹을 수 없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을 것만 같았던 나는 더 이상 문제가 없기를 간절히 바라며 의사의 노고가 더없게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임플란트의 가격이 터무니없이 높다는 생각도 모두 사라져버린 것이었다. 제공해준 죽을 집에 가져와 점심을 먹는데 걱정했던 것 보다는 훨씬 편했다.
그런데 수술 3일째가 되자 봇물 터지 듯 콧물이 악취를 내며 쏟아져 나왔다. 의사는 염증이 생겼다고 약을 처방해 주며 최악의 경우에는 임플란트를 제거하고 더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생각하기조차 싫었다. 우울한 2주, 항생제 덕분인지 다행히 냄새가 없다. 잘 될 것 같은 기분, 가벼운 마음으로 찾아가니 의사는 신중한 듯 오늘은 실밥 뽑고 치료한 후 1주일 더 약을 복용해보자며 염증이 낫지 않았다고 했다. 3주가 되자 상처도 콧물도 많이 나아진 상태여서 식사하기도 편해졌지만 의사는 이제 항생제는 그만 먹고 콧물 치료제인 액티피드 감기약을 사먹으라고 했다.
수술 4주째였다. 아침에 세수를 하니 가래에 피가 보였다. 불안했지만 오래 가지는 않았다. 5주째에는 가끔씩 욱신거리기도 하며 미세한 통증이 왔다. 의사는 염증이 남아있어 그렇다며 콧물 치료제를 더 먹으라고 했다. 7주가 되도록 계속된 약 복용, 나는 졸음과 무기력증에 빠져 사고가 막힌 농판 같았는데 의사는 약을 그만 끊고 사진 결과도 이상 없으니 3주 후에 다시 보자고 했다. 기분이 좋았지만 열흘 후 다시 전화가 왔다. 검사를 해보더니 의사는 1주일동안 소염제를 더 먹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염려가 되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4개월이 되자 심어놓은 임플란트에 동그란 덮개를 씌우는 수술을 하는데 30분도 걸리지 않았다. 의사는 잘 되고 있다며 1주일 있다 실밥을 제거하고 한 달 후에는 본을 뜨자고 했다. 마라톤선수가 골인 지점을 눈앞에 두고 달리는 기분이 그럴 것만 같았다. 손거울을 들고 입안을 들여다보았더니 잇몸에 까맣고 동그란 눈 하나가 박혀 있어 야릇했다. 한 달 후에는 예정대로 본을 뜨고 하여 맞춰 온 이를 걸었지만 잇새가 끼는 바람에 다시 조정을 해 와야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강도가 무리였던지 주변 이들까지 스트레스를 받아 단식투쟁을 하자며 결의를 한 모양이었다.
그런데 임플란트 잇몸에 염증까지 가세, 말랑말랑 그 불쾌감이라니! 하지만 의사의 처방으로 곧 나을 수 있었지만 문제는 무리를 지어 단식 농성을 거두지 않고 있는 주변 이들이었다.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임플란트 때문이라며 재협상을 해보자고 했지만 의사는 치아만 골라줄 뿐, 환자 뜻에 맞추다보면 신뢰에도 문제가 생기며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없다고 했다. 나는 한 달 보름이 지난 터라 이대로 두면 주변의 성한 이도 잘못될까 걱정이라 했고, 의사는 임플란트가 아닌 옆 이는 충치 때문일 수도 있다며 뜯어보고 치료 한 뒤 다시 보철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여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의사는 1주일만 더 기다려 본 뒤 내 뜻대로 하자고 했다. 그러나 멀기만 한 일주일! 나는 그동안이라도 아니다 싶으면 곧 달려오리라 결심했다. 그런데 참 묘했다. 다음날부터 한풀 꺾인 단식농성은 하루하루가 다르게 누그러지며 나의 조급했던 마음을 부끄럽게 했다. 공돈 안 먹는다는 야매치과 노인의 말을 상기하게 된 나는 병원을 찾았을 때 이제 고정시키자며 내심 미안했다. 발치한지 7개월, 병원방문 스물여섯 번 만이었다. 긴 터널을 빠져나왔다는 후련함에 나는 딱! 딱! 이를 맞춰보며 얼마나 다행을 느꼈다. 그리고 소중한 이, 오래오래 금 쪽같이 아껴 쓰리라며 다짐했다.
첫댓글 치아가 오복중에 하나라는 걸 다시금 실감했습니다. 치아 때문에 고생 많으셨습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26번 방문..정말 끔찍합니다...^^ 이를 잘 가꾸어야 겠다는 생각이 절로 드네요. 선생님 본래 치아보다 훨씬 좋게 되길 바랍니다...
휴!!! 생각만 해도 무섭습니다.정말 고생 많이하셨습니다.선생님.
잘 일었습니다. 좋은 지식이기도 하구요. 개인 자료 퍼가고 다른데는 쓰지않겠습니다. 양해바랍니다.
남편이 임플란트를 할 생각인데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사실 겁이 더 나기도 하는군요. 건강하세요.
선생님 고생 많으셨습니다..오복중의 하나 참 중요합니다..저도 몇칠전 치과 치료를 통해서 눈물 쏙 빼고 왔답니다..잘 읽고 갑니다..
선생님! 고생 하셨지만 잘 되어서 축하 드립니다. 이제 평안히 누리시길 바랍니다.
건강이 소중함을 잘알지만 소홀했던 치아 관리도 선생님의 글을 통해 다시 가다듬어 봅니다 고생하셨어요 건강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