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상섭은 1897년 서울특별시 종로구에서 출생했다. 염상섭(廉想涉)의 본명은 상섭(尙燮)이며 호는 횡보(橫步)이다. 보성전문학교를 중퇴했고 교토부립중학을 졸업했다. 게이오 대학 사학과를 중퇴했다. 1919년 2월 8일 오사카 텐노지 공원에서 혼자 독립선언서를 발표했는데, 재오사카조선노동자대표라는 명의를 사용했다. 염상섭은 일본 경찰에 검거되어 투옥되고 자신을 변론하는 과정에서 일본 판사와 경찰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귀국 후 『동아일보』 기자가 된 데에는 그 영향이 있었다고 전한다. 1920년 『폐허』 동인에 가담했고 1921년 『개벽』에 한국 최초의 자연주의 소설, 「표본실의 청개구리」를 발표하여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식민지 조선의 현실을 담은 사실주의 소설들을 발표했다. 당시 문단의 두 흐름이었던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사이에서 중립적인 노선을 견지하며 작품 활동을 했다. 『동명』, 『시대일보』, 『매일신보』, 『경향신문』에서 일했다. 1936년 만주로 건너가 『만선일보』 주필 겸 편집국장으로 활약했다. 한국전쟁 중 해군 소령으로 복무했다. 한국전쟁 이후 1954년에는 예술원회원에 선임되었고 서울시문화상을 수상했다. 1955년 서라벌예대 초대학장을 지냈고 1956년 제3회 아세아자유문학상, 1957년 예술원공로상, 1962년 삼일문화상 예술부문 본상을 수상했다. 1963년 3월 14일 아침 성북동 자택에서 직장암으로 타계했다. 묘소는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 천주교 묘지에 있다. 「만세전」, 「잊을 수 없는 사람들」, 「금반지」, 「고독」, 「두 파산」, 「일대의 유업」, 「짖지 않는 개」와 장편 『삼대』, 『취우』 등을 발표했다.
염상섭의 작품에는 염상섭의 고향이자 문학 활동의 주 무대였던 서울의 당시 모습이 사실적으로 재현되어 있다. 특히 당대의 표준어가 잘 나타나 있어 언어적 측면에서도 가치가 높다. 염상섭의 대표작인 『삼대』(1931년 『조선일보』 연재)는 식민지 시대 서울을 배경으로 한 중산층 집안에서 벌어지는 세대 갈등을 그리고 있다. 유교사회에서 자본주의 사회로 변화하는 과도기적 갈등 상황이 현실적으로 나타나 있는 작품이다. 주인공 덕기의 행보를 따라가다 보면 효자동, 당주동, 서대문, 홍파동, 충독부 도서관 등 당시 서울의 각지를 만날 수 있다. 당시 서울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소설이다. 『취우』(1952년 『조선일보』 연재)에는 한국 전쟁 중 폐허가 된 서울의 모습이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