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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왕건 <제 91회>
씬 1 압해도 해안(새벽)
아침이 밝고 있다.
바다에는 푸른 여명이 서서히 벗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 위로 수많은
왕건의 전함들이 꼬리를 물고 정박해있다.
해전은 끝난 것이다.
왕건과 태평이 해안을 걸어오고 있다. 군사들이 상륙하여 이곳 저곳에서 정렬
하느라 부산하다.
태평 주군, 날이 밝고 있사옵니다.
왕건 (바다 보며) 아직까지도 바람이 남동풍이네 그려.
태평 그렇사옵니다. 하오나 얼마 남지 않았사옵니다. 한 시각 정도 후면은 다시 북서풍으로 되돌아갈 것이옵니다.
왕건 (신기한 듯 태평 보며)
한 시각 후면 말인가?
태평 예, 주군.
왕건 신기한 일이야. 하긴 자네 자체가 알 수 없는 사람이긴 하지만 말일세. 이번 해전은 엄청난 승리일세. 도저히 지난 밤의 전과가 믿기지가 않아.
태평 믿으시오소서. 주군께서 해내신 것이옵니다. 적군의 배를 무려 백여 척이나 모두 불태웠사옵니다.
그때 저만큼 배현경, 홍유, 왕식렴, 염상, 김락, 천부장들이 바다에서 육지쪽으로 올라오고 있다.
가까이와 예를 올린다.
배현경 총사, 대단한 승리이옵니다. 적군의 태반이 불에 타 죽거나 물에 빠져 죽었사옵니다.
이렇게 큰 화공은 처음이옵니다.
홍유 우리의 전과가 크기는 하나 일부 백제군의 패전병들이 뭍으로 올라 도망쳤사옵니다. 추격을 해야 하지 않겠사옵니까?
왕건 그것을 예상하고 능산 장군을 이미 앞질러 보냈소이다.
김락 (감탄하며) 그렇사옵니까? 아니 그렇다면 우리가 이긴다는 것과 견훤왕이 어떻게 도망친다는 것까지 다 염두에 두었다는 이야기가 아니옵니까?
염상 왜 아니겠사옵니까? 기가 막히옵니다. 도대체 이번 작전은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의문 투성이옵니다. 아무것도 모르겠사옵니다.
왕건 하하하,들 그럴 것이오.
자, 저리들 가서 작전을 계속 논의하십시다.
씬 2 그곳 일각
해안 언덕에서 장수들이
지형도를 걸어 놓고 회의 중이다. 왕건이 지휘봉으로 가리키며 지시를 내리고 있다.
왕건 지난 밤에는 남동풍의 힘을 빌려 우리가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전투는 끝이 난 것이 아니오이다.
지금까지 형편으로 보아 백제의 견훤왕은 살아서 도망친 것이 확인되었고, 그 예하 장수들도 함께 퇴각 중인 것으로 드러나고 있소이다.
배현경 능산장군은 앞질러 상륙하여 퇴로를 막을 것이라고 하지 않았사옵니까?
태평 그렇사옵니다. 하오나 그 일에 결과는 아무도 장담할 수가 없사옵니다. 지금이라도 다시 증원군을 보내어
추격하는 것이 마땅할 줄로 아옵니다.
왕건 옳은 말이오. 능산 아우는 고작 군사 삼 백을 데리고 갔소이다. 백제군은 해전에 참가한 병력을 빼고도 이삼천이 산성과 강 주변에 배치되어 있다고 들었어요. 지원을 해야지요. 홍장군!
홍유 예, 총사.
왕건 장군은 즉시 군사 오 백을 이끌고 강 하구로 가주시오. 그쪽에서 상류로 올라가는 외길에 지금 능산 장군이 가있소이다. 가서 도와주셔야겠소이다.
홍유 예, 총사.
태평 홍장군.
홍유 왜 그러시오이까, 군사?
태평 만약에 한 시각 안에 견훤왕이나 백제군을 만나 승부가 잘 안나거든 다시 화공을 쓰도록 하십시오.
홍유 그건 무슨 말씀입니까?
태평 이 바람은 한 시각이 있으면 바뀝니다. 그 안에 백제군을 만나 싸우다가 승부가 나지 않거든 불을 지르라는 것이옵니다. 아직도 바람은 저쪽으로 불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홍유 알겠소이다, 군사.
왕건 그리고, 배장군!
배현경 예, 총사.
왕건 마군 오백을 줄 터이니 영산강 중류에 포진해 있는 백제군 쪽으로 가서 저들을 초토화시키시오. 지금 견훤왕이 그리로 가고 있을 것이오. 말하자면 홍장군은 뒤를 쫓고, 배장군은 우회하여 저들을 포위하자는 것입니다.
배현경 예, 총사.
태평 또 있사옵니다, 주군.
지금 이 전세를 계속 몰아 제해권을 확실히 해둘 필요가 있사옵니다.
왕건 그 또한 옳은 말이네.
이참에 아예 끝을 보아야지.
태평 (지형도를 가리키며) 여기 이렇게 고이도와 진도 일대까지 내려가 해상과 해안을 완전하게 평정할 필요가 있사옵니다.
왕건 그렇게 하세. 그 토벌 작전은 김장군과 염장군 두 분이 해주셔야겠습니다.
두사람 예, 총사.
왕건 (일어서며) 자, 다시 서두르십 시다. 식렴 아우는 나와 같이 가고.
왕식렴 예, 총사.
씬 3 강 하구 어느 길
무수한 갈대 밭을 지나 견훤, 최승우, 수달, 방장군들이 이십여명의 장졸들과 함께 말을 달려오고 있다.
어디가 어디인지 길을 분간하기도 어렵다.
견훤 (주변을 돌아보며) 길이 없지 않은가, 여기가 어딘가?
방장군 조금 더 가면은 강과 인접한 길이 나올 것이옵니다.
수달 (뒤에서) 폐하, 이제 조금 안심을 하셔도 될 것 같사옵니다. 쫓아 오는 적병은 없는 것 같사옵니다.
최승우 그렇지 않소이다. 이렇게 갈대밭이 무성한 곳은 특히 위험하오이다. 적병이 여기에 불이라도 놓게 되면 그야말로 꼼짝달싹 못할 것이외다. 자, 어서 이곳을 빠져 나가야 합니다.
그들이 그렇게 서두르며
얼마쯤 가는데 누군가 말을 타고 달려오는 장수가 보인다. 그들은 모두가 긴장하고
놀라서 보는데, 오고 있는 사람은 공직과 부하 두어명이다.
공직 폐하, 여기 계셨사옵니까? 공직이옵니다.
견훤 오, 공장군. 살아 있었구먼.
공직 참으로 망극하옵니다.
군사와 배들을 모두 잃었사옵 니다, 폐하.
견훤 그 이야기는 그만 하세.
자 어서 여기를 벗어나세.
수달 폐하, 우측으로 가시오소서. 조금 더 가면 길이 나올 것이옵니다.
견훤 알겠네. 자 가세. 어서 여기를 빠져나가 강 중간에 있는 능애 아우와 만나야 한다.
방장군이 앞을 서거라.
방장군 예, 폐하.
씬 4 강 하구
강가 숲 속에 군사들이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다. 능산이 그 군사들을 지휘하고 있다. 군사들은 구덩이 위에 잔가지를 얹고 위장하고 있고, 또 한쪽으로는 통나무들을 밧줄로 옮겨 메고 있다.
능산 다들 되었느냐?
군사들 예, 장군.
능산 태평 군사의 말을 빌린다면 백제국의 견훤왕이 반드시 이리로 온다고 하였다. 놓쳐서는 아니 된다.
군사들 예......
능산 (주변 보며) 우리가 앞질러 와서 이렇게 함정을 파고 장애물을 설치해 놓았으니 쉽게 여기를 빠져나가지는 못할 것이다. 꼭 견훤왕을 사로잡아야 한다. 어떤 일이 있어도 화살을 쏘아 서는 아니된다.
군사들 예, 장군.
능산 자, 말에 자갈을 물리고 각자의 위치에서 매복하라.
드러나지 않도록 하라.
군사들이 대답하며 숲 속에 여기 저기에 숨기 시작한다.
씬 5 강변 숲 길
능산이 있는 곳이다.
산비탈과 강가에 인접한
계곡이다. 주변을 두리번
거리며 방장군이 앞을 서서 오고 있고, 그 중간에 견훤와 최승우, 그리고 공직과
수달이 뒤를 경계하며 따르고 있다.
견훤 (한숨을 쉬며 주변을 본다) 허허허, 이거 오늘 내 꼴이 말이 아니게 되었네 그려. 천하의 대 백제국 황제가 이렇게 도망치고 있는 꼴이라고는, 쯧쯧쯧....
최승우 참으로 망극하옵니다. 모든 것이 천기를 읽지 못한 소신의 책임이 크옵니다.
견훤 아니야, 아니야. 하늘이 우리를 돕지 않은 게야. 어떻게 바로 그 시점에서 아주 맞춘 듯이 바람이 바뀐단 말인가? 믿기 지가 않아. 도저히 믿기 지가 않아.
최승우 망극하옵니다, 폐하.
견훤 (그렇게 가다가 보며) 삼십 여리만 더 가면 능애군이 있을 것이야. 허허허... 내가 왕건이라면 미리 군사를 보내 이쯤에서 매복을 놓겠네. 미쳐 여기까지는 생각 하지 못했던 모양이구먼. 허허허...
최승우 (그러나 이상하다) 하오나, 폐하. 아무래도 이 주변에 살기가 있는 것 같사옵니다.
견훤 살기?
최승우 이상할 정도로 조용하지 않사옵니까?
이들 그렇게 계곡으로 접어든다. 능산의 사정권 안에 든 것이다. 모두들 바짝 긴장하며 주변을 본다.
그리고 얼마쯤 갔을까 숲 속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오며 한 장수가 모습을 드러낸다. 능산이다.
능산 하하하하하..... 이렇게 기가 막힐 수가 있나? 우리 태평 군사의 말이 기가 막히게 들어 맞았군 그래.
견훤들 (경계하며) ........?
능산 거기 오시는 분이 백제국의 견훤 황제가 아니시오? 기다리고 있었소이다.
최승우 뭣들 하느냐? 폐하를 뫼시어라.
방장군 신이 앞서겠사옵니다.
당황하지 마시오소서.
능산 황제께서는 순순히 말에서 내리시오소서. 이곳을 곱게 지나가실 수가 없게 되었소이다.
견훤 그대는 누구인가?
능산 소장은 대 마진국의 장군 능산이라 하오이다. 폐하를 기다린지 오래 되었소이다. 얘들아 백제국의 폐하를 뫼시어라.
군사들이 와~ 하고 일어선다. 견훤의 이십여 병졸은 삼백이나 되는 능산의 군사들을 당할 수가 없다.
순간 뒤로 도망치려 하는데, 공중에 묶여 있던 굵은
통나무들이 그대로 내려
떨어진다. 아우성이다.
통나무에 맞아 말들이 쓰러지고, 군사들이 깔린다.
견훤의 말도 통나무를 맞아 쓰러지고, 견훤이 나뒹군다. 최승우와 공직이 급히 내려 부축한다.
그들 폐하......
견훤 나는 괜찮네.
수달 (가까이 오며) 방장군 뭘 하는가? 어서 저 자를 가서 막게. 폐하 신이 뫼시겠사옵니다.
방장군 (급히 능산에게 다가가며) 이놈들 가까이 오지 말라, 이놈들. 능산이라고 하였느냐?
나는 방이라는 장수이다. 나와 한 번 겨루어 보자.
능산 하하하하.... 반가운 소리로구나. 어서 오거라.
다가오는 방장군을 맞아
능산이 접전을 벌인다.
그 사이에 견훤과 최승우, 공직, 수달들은 겹겹이 에워싸는 군사들을 막고 있다. 그러나, 워낙 중과부족이다. 사정이 급박하게 되었다. 대 접전이 계속되고 있다. 견훤은 스스로 통나무를
들어 휘젓기 시작한다.
그 옛날의 괴력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군사들이 낙엽처럼 쓰러진다. 그들은 간신히 길을 뚫고 한켠으로 나가려 한다.
바로 그 순간이다.
방장군이 비틀거리며 멈추어 선다. 능산의 칼을 맞은 것이다. 능산이 다시 한 합을 그으면 방장군은 그대로
폐하를 외치며 숨을 거둔다. 견훤은 싸우다가 그런 방장군을 본다.
견훤 아니, 저런, 저...... 방장군!
최승우 폐하, 어서 이곳을 벗어나셔야 하옵니다. 어서요!
수달 오너라, 이놈들아.
다 내게 오너라, 이놈들아. 내가 수달이니라.
공직 폐하....어서, 이쪽으로... 이쪽으로....
수달 폐하, 어서 말에 오르시오소서. 소신이 막겠사옵니다.
수달은 적병과 싸우며 소리친다. 견훤은 휘두르던 통나무를 놓고 급히 빈 말에 오른다. 그리고, 그들은
조금씩 길을 뚫리는 것 같다. 능산이 미소 지으며 옆으로 비켜서 가고 있는 그들을 보고 있다.
능산 (다가가며) 여기를 결코 빠져 나갈 수 없소이다. 항복하시오. 모두 항복하시오.
공직 폐하, 어서 이쪽으로...여기를 벗어나셔야 하옵니다, 폐하.
수달 자, 이쪽으로 오시오소서. 폐하, 어서 이쪽으로...... 여기는 소장이 맡겠사옵니다. 오너라, 이놈들아. 내가 수달이니라. 능산이라 하였느냐, 나와 한 번 놀아보자꾸나.
능산 하하하하...네가 수달이로구나? 한 번 본 적이 있었느니라. 얘들아 무얼 하느냐? 저 수들의 목을 가져오너라.
군사들 예........
군사들이 다가가자 수달은 집단을 베듯 군사들을 마구 벤다. 그 옆으로 견훤들이 틈을 비집고 나가고 있다. 결국 못 당하겠다는 듯 군사들이 갈라지며 길을 크게 연다. 수달이 잠시 미소
지으며 앞으로 나아간다.
수달 폐하, 길이 뚫렸사옵니다. 어서!!
견훤 자, 어서들 가세.
그런데, 갑자기 얼마쯤
앞서던 수달의 모습이 휘청거리며 말고 함께 사라진다. 함정에 빠진 것이다.
모두의 시선이 한꺼번에
그리로 쏠린다.
병졸들이 와 하고 함성을 지른다. 견훤의 눈이 크게 떠진다.
견훤 아니, 저.... 수달, 수달이.....
공직 폐하, 어서 신을 따르시오소서. 지금 빠져나가셔야 하옵니다. 어서요!
견훤 수달이......
최승우 폐하, 어서........
그러면서, 공직은 함정을 우회하며 길을 연다.
능산의 표정이 굳어 진다. 견훤과 최승우도 공직과 함께 마구 검을 날리며 군사들을 베면서 필사적으로 그곳을 벗어난다. 길이 뚫린 것이다. 능산은 군사들 속에서 발을 구른다.
능산 비켜라, 내가 갈 것이다.
물러들 서라.
군사들이 길을 열자, 능산이 달려나간다. 이미 견훤들의 모습은 멀어지고 있다.
능산 (잠시 함정을 보며) 수달을 포박하여 끌어 올려라. 내가 견훤왕을 잡아 올 것이다.
부장 예, 장군.
능산이 달려나간다.
몇 몇 기병이 그 뒤를 따른다. 부장과 군사들이 함정 속의 수달을 보고 있다.
마치 표범처럼 그렇게 우르렁 거리는 수달의 표정에서...
씬 6 평원
강기슭 어느 곳이다.
견훤들이 온 힘을 다해
달리고 있다. 군사들도
두셋 밖에 없고.....
그 평원의 끝자락에 능산이 부장들 몇을 데리고 쫓아 오고 있다.
견훤 저들이 계속 쫓아 오고 있지 않는가?
공직 염려 놓으시오소서. 소장이 뒤를 끊겠사옵니다. 어서 앞서 가시옵소서.
견훤 일단은 이 벌판을 벗어나세. 내 아우가 저 끝에 있을 것이야. 전령을 미리 보냈다고 하지 않았는가?
공직 예, 폐하. 방장군이 그리 말하였사옵니다.
씬 7 평원 능산이 있는 곳
능산들이 역시 온 힘을
다해 쫓고 있다.
부장1 장군, 너무 깊이 들어온 것 같사옵니다.
능산 알고 있다. 하지만, 눈 앞에 적을 어찌 놓칠 것인가?
견훤왕을 잡아야 한다.
부장1 이 이상은 무리이옵니다. 보시오소서, 장군. 저기.....
부장이 가리키는 곳을 보다가 능산은 말을 멈춘다.
거기 구름처럼 대군이 몰려오고 있는 것이다.
혀를 차는 능산.
능산 적군이 아닌가? 강 중류에 있던 백제군이야.
씬 8 그 곳
견훤과 공직, 최승우가
가다가 역시 능애군을 보았다. 긴장이 풀리면서 최승우는 그만 눈을 감는다.
공직 능애 장군이옵니다, 폐하. 드디어 우리 군대를 만났사옵 니다.
견훤 ....... (비감하다)
능애 (가까워지며) 폐하, 신 능애이옵니다. 어찌되신 것이옵니까? 전령의 보고를 받았사옵니다 만은....
견훤 (밀리 서 있는 능산 쪽을 본다) 추격을 받고 있었어.
능애 염려 놓으시오소서. 우리 군사들은 사기가 충천하옵니다. 저들을 곧 무찔러 버리겠사옵니다.
견훤 그래야해. 수달이가 잡혔어. 방장군이 죽고.... 수달이가 잡혔어. 수달이가....구해와야지. 수달이를 구해내야 해.
능애 염려 놓으시오소서, 폐하.
그러다가, 이들은 다시
고개를 갸웃한다.
능산이 있는 쪽으로 마진의 군대가 구름처럼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씬 9 다시 그곳
홍유가 배현경과 함께 군대를 거느리고 오고 있다.
이들이 있는 평원도 역시 그 일대가 모두 갈대와
마른 나무 숲으로 차있다. 능산이 멍해서 보고 있다.
능산 아니, 장군들이 어쩐 일이시오?
홍유 강 중류에 있던 백제군을 토벌 하러 앞뒤로 포위해 들어왔는데, 놓쳤소이다. 보다싶이 저기 견훤왕을
구하느라고 군대가 이동을 했기 때문이오.
배현경 들어가십시다. 이참에 견훤왕을 잡아 보십시다.
홍유 아니 되오.
능산 아니 될 것이 무엇이오이까? 해볼만한 전투가 아니겠소이까?
홍유 태평군사가 이른 말이 있소이다. 한 시각 안에 적을 만나서 결판이 나지 않으면 싸우지 말고 화공을 쓰라고 했소이다.
능산 또 화공이란 말입니까?
홍유 그렇소이다. 보시오. 애써 싸우기보다도 이 바람 속에 불을 놓으면 어찌 되겠소이까?
능산 하지만, 견훤왕을 잡아야....
배현경 견훤왕은 이미 틀린 것 같소이다. 자, 그런 명령이 있었다면 불을 지릅시다.
홍유 얘들아, 섶을 준비하라.
이 일대를 모두 태워버려라!
대답과 동시에 군사들이
부산하게 움직인다.
그리고, 불길이 타오르기 시작한다. 마른 갈대밭이다. 삽시간에 불길이 널름거리며 견훤 쪽으로 번져가고 있다. 엄청나다.
온 일대가 불바다로 변해간다.
홍유 계속 불을 더 질러라. 태울 수 있는 것은 다 태워버려라.
씬 10 그 곳 견훤 쪽
능애가 놀라서 보다가 소리친다.
능애 폐하, 불이옵니다. 저들이 불을 질렀사옵니다. 피하시오소서. 이 일대가 모두 갈대밭이옵니다. 어서 피하시오소서.
최승우 폐하를 뫼시어라. 폐하를 뫼시 어라.
견훤 또, 불이야. 또 불이야?
최승우 폐하, 어서.......
공직 능애장군, 여기를 벗어나야 하오이다. 어서 군사들을 물리시오.
능애 그래야 하겠소이다. 퇴각하라! 모두 퇴각하라. 퇴각하라.
소라 소리가 운다.
군사들이 흩어져 도망치기 시작한다. 아비귀환이다. 불길은 빠르게 이들 쪽으로 다가온다. 백제군들은 금방 불길 속에 잠긴다.
견훤도 공직, 최승우 들도 그대로 말을 달려 도망치고 있다. 그 처참한 모습에서
....... 길게 디졸브....
씬 11 나주 관아
말을 탄 전령이 급히 달려와 관아 앞에서 내려 안으로 들어간다.
다련군 (E) 무엇이야? 바다에서 싸움이 끝났어?
씬 12 동 집 안
다련군과 오씨가 전령의
보고를 받고 있다.
다련군 싸움이 끝났단 말이지? 백제군이 퇴각하고 있어?
전령 예, 태수어른.
오씨 그 많던 백제의 배들이 다 타버렸단 말인가?
전령 예, 마님. 뿐만 아니오라 왕건총사께서는 다시 전함을 보내시어 진도와 고이도 일대를 모두 평정중이시옵니다.
다련군 그래?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단 말이냐? 배도 적고, 군사도 적었다면서?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어?
오씨 몰라서 물으시옵니까?
그게 다 남동풍 때문이 아니옵 니까? 신풍 말이옵니다.
하늘이 준 바람 말이옵니다.
다련군 그래도 그렇지, 세상에..... 참으로 지난 밤은 믿기가 어렵 구나.
오씨 강 중류와 산성 쪽에 있는 백제군은 모두 어찌 되었는가?
전령 그들은 모두 견훤왕을 구하기 위하여 공격 지점을 버리고 황급히 이동 중에 있다고 들었사옵니다.
오씨 (미소) 역시 서방님이시옵니다. 아니 그렇사옵니까, 아버님?
다련군 그러게 말이다. 그러게 말이다.
씬 13 강변 길
김언이 어느 지점에서 기다리고 있다. 왕건과 태평, 왕식렴, 천부장 들이 오고 있다. 이들 가까이 하자, 김언이 군례를 올린다.
김언 총사, 어서 오시오소서.
소장 나주 도독 김언이옵니다.
왕건 어랫만이오, 김장군. 헌데 금성산성에 있어야 할 장수가 여기는 왠 일이오?
김언 하하하, 전쟁이 싱겁게 된 것 같사옵니다.
왕건 싱겁다니?
김언 우리와 맞붙어 싸우려했던 백제군의 신덕, 애술 같은 장군들이 황급히 퇴각을 하였사옵니다.
태평 그랬을 것이옵니다. 이번 전투는 끝난 것 같사옵니다, 총사.
그때, 능산의 부장 하나가 수급을 말 안장에 매달고 달려와 군례를 드리고 말한다.
부장 총사, 소장은 능산장군의 수하 부장이옵니다.
왕건 오, 어인 일인가?
부장 전투가 종료되었사옵니다.
태평 하하하, 그렇소이까? 견훤왕은 잡으셨소이까?
부장 놓쳤사옵니다. 대신, 능산 장군께오서 (수급 들어보이며) 여기 백제군의 명장 방장군의 목을 베셨사옵니다.
또한, 수달이라는 장수를 사로 잡아 압송 중에 있사옵니다.
왕건 (너무 놀라) 수달....? 지금 뭐라 하였는가? 백제군의 수달을 잡았어?
부장 그렇사옵니다, 총사.
왕건 그것이 정말인가? 수달이가 어떤 장수인데, 그를 잡아? 그게 정말이냐고 묻고 있지 않는가?
부장 사실이옵니다. 능산 장군께서 함정을 파놓고 유인하시어 사로 잡았사옵니다.
태평 하하하, 어차피 견훤왕을 잡기는 처음부터 어려운 것이었사옵니다. 헌데, 백제군의 맹장 방장군의 목을 베고 견훤왕이 자랑하는 장수 수달까지 잡았다니 참으로 큰 소득을 올렸사옵니다.
왕건 수달......수달을 잡았다?
수달이를 말이야. 수달이는 견훤왕은 의제일세. 의형제 말이야. 능산이 참으로 큰 일을 하였네 그려. 자, 모두 관아로 향하세. 군사들을 정비하고 그리로 들 모이라고 해.
천부장 예, 총사.
왕건 가세, 태평이.
태평 예, 총사.
그들 그렇게 움직이면서...
씬 14 어느 야산 기슭
견훤, 최승우, 공직, 신덕, 애술, 능애 들이 있다.
견훤이 초라한 모습으로 풀이 죽어 먼 산을 보고 있다. 하늘을 보며 중얼거린다.
견훤 바람이 또 바뀌었어.
다시 북서풍이 불고 있어.
최승우 그렇사옵니다, 폐하.
견훤 도대체 어떤 자 이길레 하늘의 조화를 마음대로 좌지우지 할 수 있단 말인가? 그 자가 누구야?
최승우 부끄럽사옵니다. 신의 재주를 몇 배나 능가하는 책사가 왕건 밑에 있는 것 같사옵니다.
견훤 (도리질하며) 너무나 참담하게 당했어. 당해도 지독하게 당했어. 이로소 우리는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모든 바닷길을 다 잃었어.
능애 고정하시오소서, 폐하.
군세를 재정비하여 되찾으면 되옵니다.
견훤 되찾아, 어떻게? 배라는 배는 모조리 타버렸어. 우리가 한 발자욱도 저 금성 땅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어.
군사를 태반이나 다 잃었어.
그들 망극하옵니다, 폐하.
견훤 아, 아...... 그 용맹하던 방장군이 죽었어. 내 앞을 막다가 죽었어.
최승우 상황이 위급했었사옵니다. 어쩔 수가 없었사옵니다, 폐하.
견훤 그리고, 수달이...... 수달이가 어떻게 되었을까? 내 아우 수달이 말이야. (비통하다) 수달이.....수달이.....수달이. 아, 이 일을 어이할꼬. 내 아우 수달이를 어이할꼬....... 모두들 나를 구하려다가 그 지경들이 되었어.
씬 15 나주 관아 길
왕건의 대군이 위풍당당
하게 오고 있다.
태평, 배현경, 홍유, 능산, 왕식렴, 김언, 천부장 들이 뒤를 잇는다.
백성들과 고을 호족들이
모두 환호하고 있다.
관아 앞에 이르러 왕건이 내려선다. 다련군과 오씨도 왕건들을 맞는다.
다련군 왕총사, 어서 오시게.
왕건 장인어른, 그간 고생이 많으셨사옵니다.
다련군 고생은 무슨... 이렇게 대승을 거두었는데...
오씨 어서 오시오소서, 서방님. 대승을 감축드리옵니다.
왕건 고맙소이다, 부인. 이게 다 하늘이 우리를 도와주셨기 때문이오. (호족들에게) 이번 전쟁은 모두가 합심이 되어 단결하였기 때문에 승리로 이끌 수가 있었습니다. 모두 여러분들의 덕입니다.
호족들 감축드리옵니다, 장군.
왕건 이 승리는 이미 폐하께 전령을 띄워 보고가 되고 있소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넉넉한 상급이 내릴 것이오.
호족들 감축드리옵니다, 장군.
왕건 자, 들어들 가십시다. 아, 참.... 이보게, 능산 아우.
능산 예, 총사.
왕건 이번 전쟁 중 자네 공이 가장 컸네. 수달이는 어디 있는가?
능산 미리 압송해 와 뜰 안에 있사옵니다. 가서 보시오소서.
왕건 들어가세.
씬 16 동 관아 안 뜰
수달이 포박되어 무릎 꿇려 있다. 왕건이 제장들을
거느리고 들어서서 자신의 자리 쪽으로 가다가 그런 수달을 보고 발걸음을 멈춘다. 두 사람의 시선이 한동안 부딪친다. 갑자기 왕건이 노여워하며 소리친다.
왕건 이것이 도대체 무슨 일인가? 누가 이리하라 하였는가?
모두들 .........? (영물을 몰라한다)
왕건 수달장군이 누구인가?
천하의 영웅인 수달장군을 누가 이렇게 대하라고 하였는가? 어서 포박을 풀지 못할까?
능산 ....(미소) 포박을 풀어드려라.
병사들이 달려와 포박을
풀려하자, 수달이 이를
뿌리치며 웃는다.
수달 하하하하. 왕장군, 그러실 것 없소이다.
모두들 ...........?
수달 나는 이미 패장이고 또한 마진군의 포로가 되었소이다. 포박을 지우는 것은 당연한 일이오.
왕건 (보다가 다가와) 수달장군, 그렇지가 않소이다. 이 사람은 오래전부터 장군을 알고 있었고 그 용맹을
흠모해왔소이다. 포박을 풀어 드리리다.
수달 (왕건이 풀려하자 다시 거부한다) 이러지 마시오, 왕장군.
내 포박을 풀어서 어쩌자는 것이오?
왕건 수달장군, 함께 살자는 것이오. 우리 모두 함께 잘해보자는 것이외다. 내 성의를 받아주시구료.
수달 하하하하. 나는 왕장군이 꽤나 의리가 깊은 사람이라 들었는데 그렇지가 않은 모양이오.
이보시오, 왕장군. 사람을 제대로 좀 살펴보시구료. 이 수달이가 어떤 사람 같소이까?
왕건 그대는 사내 중 사내이고 장수 중에 장수요.
수달 하하하하. 고마운 말씀이시오. 그게 진정이라면 나를 말 그대로 사내답게 대해 주시구료.
왕건 무슨 말씀이시오?
수달 장군이 내 포박을 풀어주고 내가 거기에 응하게 되면 나는 나의 주군이시자 대 백제국의 황제이신 그 분을 배신하는 것이 되오. 제 주인을 배신하는 사내도 사내라고 말할 수 있겠소이까?
왕건 ........?
모두들 ......(감탄처럼 수달을 본다)?
수달 그 함정에 빠질 때부터 이미 수달은 죽었소이다. 불사이군(不事二君)이라는 말을 들어보셨을 것이오. 한 번 주인을 정한 몸인데 어찌 다른 마음을 또 품을 수 있겠소이까? 더군다나 그 주인은 사사로이는 형제이고 형님이시오. 과연 내가 돌아설 수 있겠소이까?
왕건 지금은 전국시대올시다. 그대는 목숨을 중히 여길 줄 알아야 하오. 형편이 어려우면 때로는 옆으로 비켜 갈 수도 있는 것이 사람 사는 세상이오.
수달 하하하, 그만 억지를 부리시구료. 더 이상 나를 욕되게 하는 말을 삼가해주시오. 나를 사내로 대해 달라고 하였소이다. 부탁이오. 속히 내 목을 쳐주시오.
왕건 .......(큰 한숨) 어떻게 이렇게 이 사람의 마음을 몰라 주신단 말이오? 이보시오, 수달장군. 그대의 목숨을 아끼시오.
수달 (단호하게) 그만 욕보이라고 하였소이다. 그대도 생각이 있는 대장부라면 제발 나를 그만 욕보이시오. 부탁이오이다.
속히 목을 쳐주시구료.
왕건이 눈을 감고 한숨을 쉬다가, 자신의 자리에 가서 앉는다. 모두들 침묵이다. 능산도 감탄처럼 눈을 감고 있는 수달을 본다.
왕건 (한참만에) 수달장군을 옥사로 데려가라. 비록 적이기는 하나 훌륭한 장수이다. 모두들 함부로 대하지 마라.
장졸들 예, 총사.
수달이 부장들에게 끌려간다. 그는 담담한 모습이다.
한참 후 다시 왕건이 일어나서 가득한 장졸을 향해 말한다.
왕건 자, 장졸들이어. 우리는 이번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었다. 우리가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천지신명이 함께 했기 때문이다.
군사들 와..........
왕건 오다가 들으니 저 고이도와 진도에서도 백제에 협력하던 일부 해적들이 모두 소탕되었다고 들었다. 이 모두가 폐하의 은덕이니라. 나라와 폐하의 덕을 잊어서는 아니될 것이다.
군사들 와...........
왕건 이 고을 호족들이 장졸들에게 먹일 술과 고기들을 마련해 왔다 들었다. 일선의 경계병을 빼고는 모두 즐겁게 마시고 먹을 지어다.
군사들이 와, 하고 함성을 계속 올리고 있다.
장수들도 두 손을 들며
기뻐하고 있다.
손을 흔들어 답례하는 왕건의 그 표정에서 디졸브.
씬 17 관아 중 어느 전각 안
잔치가 계속되고 있다.
그 중앙에 왕건과 오씨가 앉아 있고, 다련군이 보인다. 태평, 능산, 배현경, 홍유, 왕식렴, 염상, 김락, 김언, 천부장 들이 있다.
왕건 지금 생각해도 엄청난 전투였습니다. 이번 전투는 내 생전에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다련군 맞는 말일세. 지금도 가슴이 두근두근 하이. 누가 봐도 이길 수가 없는 전쟁이었어.
정말 하늘이 도왔어요.
오씨 그렇습니다. 하늘이 도왔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런 바람을 빌려와서 어려운 전세를 단숨에 바꾸어 놓을 수가 있겠습니까?
왕식렴 그러하옵니다, 형수님.
형님과 더불어 저 또한 누구보다도 바다를 잘 안다고 장담해왔사옵니다. 하오나 그 남동풍은 참으로 꿈 같은 일이었사옵니다.
능산 이보시오, 태평군사.
태평 예, 장군.
능산 지금쯤은 말해주어도 될 것 같소이다. 어떻게 그 바람을 빌려 왔소이까? 그것도 정확하게 시간을 맞추어서 말이오.
배현경 군사, 우리 모두가 궁금해하는 일이올시다. 말씀 좀 해주시구료.
홍유 들어보십시다, 군사.
김락 말씀해주시구료.
모두들 웅성거리며 말하자고 졸라댄다. 왕건이 한 번 더 정리한다.
왕건 태평군사, 말해주시게. 나도 궁금하이. 그대는 목을 내놓고 이번 작전을 수행하게 하였네. 무엇을 믿고 그리하였 는가?
태평 (한참 미소 짓다가) 우리는 하늘에 빌었사옵니다. 분명한 것은 하늘이 우리를 도왔다는 사실이옵니다.
왕건 그렇다면 정말 하늘이 우리의 기도에 응답했다는 것인가?
태평 그렇사옵니다. 그러나, 그에 앞서 천문을 살피고 읽어서 기후의 변화를 어느 정도 감지하였기 때문이옵니다.
왕건 기후의 변화를 감지해? 어떻게?
태평 이 반도의 겨울 날씨는 대부분 삼한사온으로 이루어져 있사옵 니다. 그리고, 규칙적인 흐름을 반복하옵니다. 그 삼한사온 중 사온이 문제이옵니다. 따뜻하던 마지막 날이 추위로 변할 때에 짧은 바람의 변화가 일어나옵니다. 즉, 차고 더운 것이 부딪치면서 바람 또한 북서풍이 남동풍으로 순간적으로 변하는 것이옵니다.
모두들 (우하며 놀란다).........
태평 그 변화가 짧게는 한 시각에서 크게는 반나절까지 이어지는데 어떤 때는 워낙 미미하여 많은 사람들이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또 반대로 거센 바람이나 폭풍을 몰고 오는 수도 있사옵 니다. 이번의 남동풍이 그러했사옵니다.
왕건 어떻게 그것을 알았는가?
수십년 아니 수대를 이어오면서 바다를 업으로 살아온 우리네도 모르고 있어.
태평 삼국지연의에 보면 제갈공명이 동남풍을 빌어 오는 대목이 있사옵니다. 어떻게 그리 할 수 있었을까 오랜 세월 궁금해왔었사옵니다. 그리고, 찾아 낸 것이옵 니다. 기후는 주기적으로 변하고 있다. 차고 더운 것이 부딪치고 바뀔 때 문제가 있다.
왕건 (신기한 듯 본다) 오, 그랬는가?
태평 소생은 그것을 그렇게 알아냈사옵니다. 하늘에 기도를 드린 것은 우리가 필요로 하는 많은 바람을 불게 해달라는 것이었사옵니다. 그리고 하늘은 그 기도를 들었사옵니다. 바람은 바뀌어서 남동풍이 되었고 그리고 크게 불었사옵니다.
모두들 웅성거린다.
오씨도 ? 나간 듯 그런
태평을 본다. 왕건이 그런 태평의 손을 잡는다.
왕건 자네는 신인일세.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제갈공명 보다도 더 큰 인물일세. 아, 하늘이 참으로 자네 같은 사람을 나에게 보내 주어 어떻게 보답을 해야 할 지 모르겠네.
태평 과찬이시옵니다. 누구나 깊게 주의를 기울이면 다 알 수 있는 일이옵니다. 하하하.
자, 한잔 드시옵소서, 총사.
왕건 아니야, 자네는 참으로 놀라운 사람일세. 자네는 신인이야.
해설 태평이 빌려온 남동풍! 그랬다. 고려사 실록에 보면 이 당시 왕건의 군대가 얼마나 전황이 불리했는가를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태조가 나주에 이르렀을 때 견훤이 직접 군사를 거느리고 전함들을 늘어놓아 그 형세가 목포에서 덕진포(영암군 덕진면)에까지 이르렀다. 적의 군세가 강성함을 보고 여러 장수들이 근심하고 걱정하였다.
이때, 태조가 풍세를 타서 불을 놓으니 저들이 불에 타고 물에 빠져 죽은 자가 태반이었고, 견훤은 작은 배를 타고 도망하였다” 라고 되어있다. 이때의 이 바람, 그렇다. 비록 실록에는 짧게 나와있지만 왕건은 틀림없이 엄청난 바람의 혜택을 입어 견훤군을 화공으로 대파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바람은 바로 지금 태평이 설명했던 것처럼 계절풍을 읽고 그 흐름을 파악하여 썼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가 있는 것이다. 참고로 이때까지만 해도 우리 나라에서는 대륙풍의 변화를 크게 이용할 줄을 몰랐다고 한다. 우리가 본격적으로 계절풍을 항해에 이용한 것은 16세기 무렵, 그러니까 이때부터도 오육백년 후에 일이라는 것이다.
어쨌든 왕건은 화공을 이용하여 대승을 거두었다. 오늘날 신안군 일대에 해당하는 이 넓은 서남 해의 전투는 이렇게 왕건의 승리로 끝이 났다. 우리 나라의 그 많은 해전사를 통 털어 보아도 이 신안군 해전만큼 그 규모면에서 크고 웅장했던 일은 이후로도 기록에서 찾기가 어렵다.
씬 18 그 연회장(계속 연결)
모두들 태평을 보고 있다. 왕건이 그 손을 잡아 흔든다.
왕건 이번 전쟁은 크게 두 사람의 공이 있네. 그 하나는 바람을 빌려 온군사 태평이요,
또 한 사람은 적장 방장군의 목을 베고 수달을 생포한 능산 일 것이야. 두 사람의 공을 다시 폐하께 상주해 올릴 것일세.
두사랍 황공하옵니다, 총사.
왕건 자, 드십시다. 우리 오늘 유쾌 하게 마셔보십시다.
그들 위로 크게 웃는 궁예의 웃음 소리가 들려온다.
씬 19 철원 황궁 외경
씬 20 동 대전
궁예가 껄껄대며 웃고 있다. 그 앞에 종간과 복지겸이 앉아 있다. 궁예는 읽고 있던 장계를 놓는다.
어깨를 크게 펴본다.
그리고, 고개를 외로 꼰다.
궁예 물론 그대들도 보았겠지? 방금 올라온 이 장계 말이야.
두사람 예, 폐하.
궁예 나도 들었어. 오래전부터 그 수달이라는 이름말이야.
그 수달이를 생포했다는 구먼.
복지겸 방장군이라는 자도 우리 장군 능산에게 목이 잘렸다 하옵니다.
종간 수달을 생포한 사람도 능산장군이라 하였사옵니다.
궁예 암, 나도 읽어 보았어.
서남해의 일대가 온통 불바다가 되었다는 구먼. 태평이라...? 허허, 거 이름 한 번 근사하지 않는가? 태평이라, 태평이라.... 이런 군사가 많아야 그 많은 전쟁을 잘 치룰 것인데....
종간 아무튼 감축드리옵니다, 폐하. 모두들 근심하였던 그 전선을 다시 안정시켜놓았사옵니다.
궁예 암, 내 아우 왕건이가 가서 안되는 일이 어디 있었던가? 상황이 이런데 내가 어찌 저 북방 제국 건설을 서두르지 않겠는가?
두사람 ........
궁예 (다시 기록 보며) 하하하, 이거 견훤왕도 잡았어야 했는데... 이 장계를 보면 능산 장군이 견훤왕을 다 잡았다가 놓쳤다는 구먼. 아, 아까운지고....
아까운지고....
씬 21 조당
신료들이 모여 있다.
광치나 유천궁, 은부, 아지태, 박지윤 , 강장자, 환선길, 이흔암 들이 보인다.
유천궁 나주가 벌컥 뒤집혔답니다. 왕장군이 백제의 수백척이나 되는 함선들을 모두 불태워 버렸답니다.
박지윤 놀라운 일이올시다. 적의 반 밖에 안되는 전함과 군사를 가지고 어떻게 이겼다는 것이오이까?
은부 이게 모두 폐하의 은덕이시오. 폐하께서 평소 관심이 크신 곳이 바로 나주였소이다.
그러니, 왕장군이 독한 마음을 먹고 싸운 것이지요. 아니그렇소이까, 들?
아지태 옳은 말이올시다. 다 폐하의 은덕이고 말고요.
강장자 아, 당연한 말이지요.
그만큼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는 왕장군이오. 목숨을 다해 싸우니 이렇게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이지요.
환선길 허지만, 전쟁이란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올시다. 폐하의 은혜가 컸다 하더라도 역시 실력이 있어야지요.
이흔암 암요, 인정할 것은 해야 합니다. 이번에 왕장군이 이긴 것은 기적에 가까운 것입니다. 마땅히 칭찬 하고 위로해 주어야지요. 아무튼 대단합니다. 믿기지가 않는 전공이에요.
환선길 폐하께서도 아주 기뻐하시겠습 니다? 병부령과 내원어른도 대전에 가 계신다지요? 허허, 이렇게 좋은 소식이 있다니..... 이제 서남해는 안심이올시다. 안심이구 말구. 백제군은 아주 결정적 타격을 입었소이다. 정말 대단해요.
씬 22 왕건의 집(밤)
두 여인이 왕신, 장수장
함께 마주해 있다.
유씨 도련님, 그것이 정말이옵니까? 서방님께서 그토록 큰 승리를 거두셨답니까?
왕신 그렇다하옵니다, 큰형수님.
수인 다들 걱정한 전쟁이옵니다. 계속 밤 잠을 설쳤는데 그런 소식을 들으니 이제 눈을 좀 붙일 수 있겠사옵니다.
유씨 왜 아니겠는가? 나주부인도 지금쯤 아주 신바람이 나있겠네 그려. 그 사람이야말로 그곳까지 따라가서 얼마나 애간장이 탔겠는가?
수인 그렇기는 하겠지만 나주 형님이야말로 우리 중에 제일 행복하신 분이시옵니다. 누구보다도 서방님을 가까이 모시고 계시지 않사옵니까?
유씨 그거야 그렇네만은....
수인 저도 그런 기회가 있다면 꼭 따라가 뫼실 것이옵니다.
유씨 이사람아, 난들 싫은 줄 아는가? 사람하고는....
씬 23 나주 관아 외경
씬 24 동 관아 안
왕건과 김언이 마주해 있다.
왕건 그동안 이곳 나주에서 고생이 많았소이다, 김장군.
김언 어인 말씀이시옵니까? 총사께서야말로 어려운 전장터마다 골라 다니시며 고생이 많으시옵니다.
왕건 어인 말씀을....
김언 폐하께서는 참으로 너무 하시옵니다. 이 어려운 전장터에 관심조차 없으신 분이 아니시옵니까? 대체 그 작은 병력과 함선을 가지고 어떻게 싸우려 하셨사 옵니까?
왕건 황제 폐하의 영은 하늘이오. 어찌 따르지 않을 수가 있겠소 이까?
김언 페하께서는 물정을 너무 모르시옵니다. 독재와 압박 밖에는 모르시는 분이옵니다.
왕건 물론 그런 면도 있소이다. 그러나, 그럴수록 우리는 나라를 위해 일해야 하지 않겠소이까? 그저 어려울 때는 황도에 있기 보다도 이렇게 밖에 나와 있는 것이 그래도 좋은 것이오.
김언 그렇기는 하지만....
왕건 저 수달 장군을 어떻게 해야 할지 참으로 고민이외다.
김언 많은 장수들도 수달장군을 아까워하고 있사옵니다. 그러나, 어쩌겠사옵니까? 저토록 완강하게 귀순을 거부하고 있사옵니다.
왕건 그러게 말이오. 너무도 안타까워 ...이 일을 어찌한다.....?
씬 25 그곳 옥사
수달이 눈을 감고 앉아 있다. 모든 것을 포기한 초연한 모습이다.
씬 26 완산주 황궁 외경
씬 27 동 황후전
박씨와 고비가 태자 신검과 능환, 박영규를 마주해
파랗게 질려 있다.
박씨 그많은 군사들이 태반이나 죽었다고요?
능환 그렇다하옵니다, 황후마마.
박씨 폐하께서는 어찌되셨습니까?
능환 폐하께서는 일단 무사히 무진주 성까지 돌아오셨다하옵니다.
고비 세상에...... 어떻게 방장군이 전사를 하고 수달 장군까지 저들에게 잡힐 수가 있사옵니까?
신검 형편이 최악인 것 같사옵니다. 지금 상주전선에 나가 있는 추장군, 최필, 지훤 장군 들을 모조리 나주 전선으로 이동시키라는 폐하의 급보가 내려져 있사옵니다.
박씨 어이할꼬...이 일을 어이할꼬...
박영규 그러게 말이옵니다.
그 많은 전투를 치루었지만 이번처럼 희생이 큰 적은 없었잖사옵니까?
능환 그러게 말일세. 이해가 되지를 않아. 파진찬 그 사람이 전략을 잘 못 구사해도 그렇지 어떻게 이렇게까지 할 수 있단 말인가?
씬 28 무진주 성 외경
씬 29 동 성 안
견훤이 제장들과 회의
중이다.
견훤 상주는 어떻게 됐어? 그곳에 나가 있는 추허조와 최필, 지훤들을 모두 부르라고 하였잖아?
공직 전령을 급파했사옵니다.
견훤 (머리를 쥐어 뜯을 듯)
이걸 어떻게 한다....? 우리가 받아 본 첩보로는 아직 까지 수달이가 살아 있다는 것 이야. 수달이를 구해야하지 않겠는가?
모두들 ..........
견훤 수달이를 구해야 해.
나를 구하려다가 그렇게 됐어. 얼마나 이 형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겠는가? 파진찬,
최승우 예, 폐하.
견훤 군사를 준비해. 다시 저 상주 전선의 군대를 이리로 끌어와. 다시 공격을 해야 겠어.
최승우 폐하, 장수들은 올 수가 있사오나 군대를 옮겨 올 수는 없사옵니다. 자중하시오소서.
노여움을 참으시오소서.
견훤 (눈물 보이며) 방장군이 전사를 했어. 내 아우 수달이가 저들에게 잡혀 있어. 저들에게 말이야. (속이 탄다) 아, 속이 탄다. 속이 타. 이러다가는 수달이도 죽게 돼. 저들을 구해야 하네. 구해야 해. 수달이 말이야. 내 아우 수달이 말이야.
공직 고정하시오소서, 폐하.
능애 고정하시오소서.
견훤 다른 전선에 장수들을 다 오라고 하였어. 나는 다시 공격할 것이야. 그리고, 내 아우를 구해 올 것 이야.
신덕 폐하, 이미 우리 군세가 꺾였사옵니다. 싸움은 먼저 그 기가 살아야 하옵니다. 지금은 때가 아닌 줄 아옵니다. 다시 충분히 정비하신 후에 공격을 취하셔야 할 줄로 아옵니다.
견훤 (버럭) 내 아우가 저들에게 잡혀 있다고 하였어. 내 아우가 말이야. 우리는 피로써 맹세했어. 한날 한시에 죽을 것이라고. 그런데, 이 형이 모른 척하라는 말인가? 내 아우가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는데 어떻게 내가 모른 채 할 수가 있어? 어떻게....?
씬 30 나주 관아 외경
씬 31 동 옥사
왕건과 옥 속의 수달이가 마주해 있다.
왕건 수달장군,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간청하는 바이오. 마음을 돌려 주시구료. 장군이 너무 아깝기 때문에 이러는 것이오.
수달 (대답 없이 눈을 감고 있다)....
왕건 장군, 나와 함께 마진에서 사십시다.
수달 (역시 대답이 없다)
왕건 장군, 지금 진심으로 청하고 있는 것이오. 나는 장군과 함께 하고 싶소.
수달 (비로소 눈을 뜨며) 무릇 장수란 늘 목숨을 전장터에 맡겨 놓고 사는 것이오. 이제 그것을 내어 줄 때가 되었는데, 자꾸 감추려 한다면 처음부터 군인이 되지 말았어야 했소이다. 나를 생각해 주는 그 마음이 참으로 고맙소 이다. 이제 내가 부탁을 하십시다. 수달이라는 내 별호답게 나를 죽게 해주시구료. 그리고, 죽어서라도 내 시체를 우리 주군이 계신 이 서남해를 보고 묻히게 해주시구료. 그것이 내 마지막 바램이오.
왕건 (안타깝다) 수달장군..... ?!
안타깝게 보는 그 왕건의 표정에서...담담한 수달의 표정으로 옮겨지면서....
< 91회 끝 > (01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