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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02월 20일 [Thr.]】 Good Morning
▣ 책거리와 문자도 들여다보기
조선시대에는 책그림을 우리말로 '책거리'라 불렀다.
책거리에는 책은 물론 각종 문방구와 도자기, 과일 등도 함께 그려 넣었다.
책거리는 왕실뿐만 아니라 민간에까지 널리 확산됐는데,
이것은 책거리가 민화 형태로 많이 나타나는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그만큼 책에 대한 관심이 사회 전반에 퍼졌다는 걸 의미한다.
책과 함께 서가의 모습을 담은 '책가도'도 유행했는데,
정조는 왕의 자리 뒤에 일월오봉도 병풍을 두는 대신에 책가도 병풍을 세우기도 했다.
책가도는 본디 정조가 학문으로서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장려했던 그림이었지만,
양반사회에서는 고급 수집 취미로, 민가에서는 배움의 열망과 출세를
상징하는 그림으로 발전해 나갔다.
김홍도의 《포의풍류도》
나 정선의 《독서여가》 같은 그림에서도 책을 생활화했던 당시 지식인의
모습을 엿볼 수가 있다. 문자도는 '수(壽). 복(福). 강녕(康寧). 부귀(富貴).
다남(多男)' 등 보편적인 바람이나 '효·제·충·신·예·의·염·치' 등의 유교적인
덕목을 의미하는 문자 및 잉어, 부채, 새우, 새 등 고사를 상징하는 동물이나
사물을 함께 그린 그림을 지칭한다. 문자도는 백성들을 교화하고 어린이들을
교육하고자 하는 목적을 지녔던 것으로 풀이된다.
문자와 책으로 그림을 그린
문자도와 책거리는 한국 문화의 독자성이 잘 나타난다. 보기에도 매우 독특한
문자도와 책거리는 오래전부터 외국에서는 그 예술성을 높이 평가받았지만 정작
우리들은 많이 잊고 있었다. 문자도는 유교적인 덕목을 전파하고 행복을 기원하는
의미로, 책가도는 왕권 강화를 위한 수단으로 시작됐지만, 배움을 향한 열망은
조선후기 책거리 그림이 집집마다 내걸린 것으로 표현됐다. 독서 열기와 이를
그림으로 표현한 책거리 문화의 유행은 지식의 확산에도 크게 기여했다.
조선후기 책과 지식문화 보급의 중심에 있었던 인물은 정조였다. 정조는
즉위 직후 창덕궁에 학문 연구이자 도서 수집 기관인
규장각을 건립했다.
김홍도의 풍속화 <자리 짜기>에는 베를 짜는 부모의 뒤로 책을 읽는 아이의
모습이 보이고, 조선후기를 대표하는 고전소설 《흥부전》에는 흥부가
탄 박 속에서 《논어》를 비롯해 《사략》, 《동몽선습》, ≪맹자》 등의 책이 나오기도 한다.
책을 통해 공부하여 신분을 상승하고자 하는 서민들의 욕망이 나타난 것이다.
문자도와 책거리 그림을 통해 왕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책을 늘 곁에 했던
우리 선조들의 전통을 확인하고 그 저력을 느껴보면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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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병주 지음
【신병주 교수의 조선 산책】
- P. 210 ~ 215 중에서
옮긴 이: S.I.AHN (정수님, 요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