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오 4,18-22
창조자만이 사랑할 수 있다.
오늘은 성 안드레아 사도 축일입니다. 성 안드레아 사도는 물고기를 잡는 어부였지만
형 베드로와 함께 주님의 부르심을 따라 사람 낚는 어부가 되었습니다.
물고기를 잡는 일과 사람을 잡는 일과는 분명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무슨 차일까요?
물고기 잡으며 그냥 살면 되지 않을까요?
내가 하는 일이 곧 나의 존엄성, 혹은 나의 가치를 증명합니다.
우리에게 사람이 물고기가 아닌 사람으로 보일 수 있는 눈이 필요합니다. 사람은 다 존중받고 싶습니다.
귀하게 여겨지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가능한 일일까요?
정말 인간은 단지 인간이라는 이유로 존엄할까요? 당연히 그렇다고 말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을 누가 보장해줄 수 있을까요? 적어도 나라는 보장해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합니다.
역사상 어느 나라가 국민을 존엄하게 보았을까요?
2022년 10월 28일 금요일 밤 10시에 방송된 KBS1 TV ‘시사 직격’이란 프로에서
‘3천 달러의 삶 – 해외 입양 잔혹사’라는 내용이 방영되었습니다.
저도 지금까지 입양은 우리나라에서 부모를 찾을 수 없고 우리나라에서 입양되지 않는 아이들을
외국에서 찾아와서 아이들을 살펴보고 데려가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지난 60년간 약 25만 명의 아동이 마치 물건처럼 외국으로 팔려나갔다는 것입니다.
그냥 70~80년대는 특별히 더 나라에서 달러가 필요했고 입양기관도 돈을 벌어야 했기 때문에
경찰서에 길을 잃어 맡겨지는 아이들은 부모를 찾을 기회도 주지 않고 거의 해외로 입양 보냈다고 합니다.
마치 현재 인터넷 쇼핑하듯 외국인들은 서류상으로 아이들을 입양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팔려 간 아이들의 존엄성은 이미 포기된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이에 최근 어린 시절 해외로 입양된 한인 입양인들이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에 모여들었습니다.
덴마크를 주축으로 미국, 벨기에 등 여러 국가에서 모인 이들은 자신의 해외 입양 과정에서
강압, 뇌물, 문서 위조 등의 불법 입양 양상이 나타났다고 주장하며, 인권침해와 국가개입 여부의 진실을
밝혀줄 것을 촉구했습니다.
고아가 아닌데도 외화를 벌어들인다는 명목으로 문서를 위조하여 3천 불을 받고 보내버린 것입니다.
이것은 인신매매이고 그 이상의 범죄입니다.
전문가들은 이른바 ‘우편 배송 아기’라 불리는 이 대리입양 시스템이 한국의 해외 입양률을 증가시켰을 뿐만 아니라,
양부모의 입양 적격성 심사를 불가능하게 만들고 입양아동을 폭력, 학대 등의 위험에 노출할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그런데 아직도 우리나라는 전 세계 아이 수출국 최상위 국가입니다.
다시 말해 아이들의 인권을 가장 무시하는 나라입니다.
물론 입양 가서 다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좋은 부모를 만나면 그나마 다행입니다.
하지만 사진만 보고 서류 한 장으로 물건처럼 아이를 사 온 부모가 아이의 인권을 존중해줄까요?
여기에서 1984년 초등학교 6학년 때 프랑스로 입양된 김유리 씨가 나왔습니다.
그녀는 아버지의 성폭력의 노예로 성장해야 했습니다. 부모를 고발하고 올해 초 입양서류를 확인하던 중,
자신이 호적상 ‘고아’로 기재되어 있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친부모의 이름과 한국에서의 삶을 모두 기억하기 충분한 나이였습니다.
그러나 유리 씨가 받은 입양서류 속 친부모의 이름은 모두 ‘무명’으로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부모의 가정 형편이 너무 어려워 잠시 보육원에 아이들을 맡겼던 것인데
보육원은 그런 아이들까지도 다 고아로 서류를 위조해서 팔아버린 것입니다.
해외 입양률이 정점을 찍은 1980년대에는 출생아 중 1%가 넘는 아동이 해외로 입양되었고,
이는 일종의 민간외교 정책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다 돈 때문이었습니다.
김유리 씨는 아예 성적 욕구를 풀려고 자신을 입양하려고 한 양부와 이를 묵인한 양모에게
자신을 성적 노예로 넘겨버린 나라와 입양기관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이건 아동 인신매매라고 봅니다. 그 사람이 입양 수수료를 낸 목적은 아이를 물건처럼 사서
자기 성적인 욕구를 푸는, 아이가 그런 물건이 되는 것을 바랐다고 생각합니다.”
자 이제 다시 생각해봅시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존엄합니까? 당연히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 존엄성은 어떻게 보장받을 수 있을까요? 자기를 존엄하게 여겨주는 대상 안에 속해 있어야 존엄합니다.
만약 돈을 좋아하는 나라나 성적인 욕구에 빠진 양부에게 맡겨지면 그 존엄성은 짓밟힙니다.
인간은 스스로 존엄해질 수 없습니다. 인간을 존엄하게 보아주는 대상은 그 창조자뿐입니다.
인간에게는 부모입니다. 왜냐하면 자녀에게 자신의 살과 피가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사랑하기에 자녀도 사랑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부모는 자녀도 사랑하지 못합니다.
심지어 종교도 우리를 귀하게 여기지 않을 수 있습니다. 사람이 아닌 물고기로 볼 수 있습니다.
저희 어머니도 어렸을 때 길을 잃어 남의 집살이 하던 10년간 학교도 가지 못하고 종처럼 일하면서
존엄성을 잃었습니다. 일하며 매도 수없이 맞았고 일한 값도 한 푼 받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머니의 존엄성을 짓밟은 그 집이 아주 독실한 가톨릭 집안이었습니다.
천주교를 믿는다고 사람을 존엄하게 대할 수 있을까요?
그 사람이 돈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사람도 도구에 불과합니다. 그냥 어쩌다 그물에 잡힌 물고기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나를 따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물고기 대신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고 하십니다.
이는 우리를 창조하신 하느님만이 우리 존엄성을 보장해주실 수 있는 분이란 뜻입니다.
세상 누구에게 의존해도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만든 적이 없습니다.
만든 사람만이 그 만든 것을 귀하게 여길 줄 압니다. 그 존엄성을 지켜줄 수 있는 것입니다.
진화론은 좀처럼 이런 인식을 가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진화론을 믿을수록 인간의 존엄성을 인정할 수 없는 나라가 됩니다.
생존, 곧 돈에만 집중하며 인간이 죽든지 말든지 신경 쓰지 않습니다. 자기 이익이 우선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그런 곳입니다.
우리는 우리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나를 만든 분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려는 그리스도에게서 우리의 창조자이심을 눈치채게 됩니다.
그분은 우리를 생존을 위해 살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이웃을 살게 하는 창조자가 되라고 하십니다.
창조자가 되라고 하신다면 우리도 창조자의 자녀란 뜻입니다. 복음을 전해 영혼을 구원하여
하느님 자녀로 만드는 일은 우리가 하느님께 속하였다는 유일한 증거입니다.
내가 존엄한 존재라는 인식은 내가 창조자의 일을 할 때 더욱더 강하게 나타납니다.
제가 신학교에 들어오기 전에 여자들을 사랑할 때는 ‘한 여자도 제대로 만족시키지 못하는 존재’라는
자존감이 떨어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떻습니까? ‘영혼을 구원하는 창조자의 협력자’입니다.
복음을 전하면서 스스로도 이렇게 큰 자존감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이 느끼는 자존감이고 그 사람이 갖는 존엄성입니다.
이 세상 누구도 자기를 피조물이라 여기는 한 우리를 존엄하게 보아주지 않습니다.
나도 하느님과 같은 창조자가 되었음을 믿지 않는 한 모든 인간을 물고기로 봅니다.
자신을 창조자의 자녀라 믿는 이들만 창조자의 존엄성에 참여하고 창조자답게 사람을 귀하게 여기게 됩니다.
그러니 자신이 창조자라 믿지 않는 이들에게 휘둘릴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다만 창조자로서 창조자와 함께 사랑할 뿐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