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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팝송 스크랩 Otis Redding
응암동늑대 추천 0 조회 165 11.11.04 13:22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Otis Redding





















짧은 인생을 살았음에도 소울 음악의 진수를 보여주며 수많은 명곡들을 남기며 후대의 많은 아티스트들에게 큰 영향을 주며 많은 사람들이 'King of soul'이라고 부르는데 주저함이 없는 보컬 'Otis Redding'은 1941년 미국 조지아 주 도슨에서 태어나 메이컨 근교에서 자라면서 어린 시절 교회 성가대에서 활동하며 노래를 시작하게 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같은 지역 출신의 락앤롤 뮤지션 'Little Richard'의 음악에 매료되어 그와 같은 락 뮤지션이 되겠다고 마음먹고 음악에의 길을 걷게 된다. 훗날 그가 "내가 Little Richard를 알지 못하였더라면 나는 이곳에 없었을 것이며, 내가 음악에 뛰어든 것도 Little Richard 때문이고, 그는 나에게 영감을 주었으며, 나의 음악은 대부분 그에게서 나왔다."라고 말할 정도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멤피스레코드사 계열의 스택스 스튜디오에서 레코딩을 하게 되면서 그의 노래는 Little Richard의 강한 로큰롤로부터 흑인 특유의 짙은 소울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이후 그의 노래는 '소울 발라드'라는 명칭이 붙여졌다.
그가 솔로로 데뷔하기 전인 1960년도에는 지역에 인기 밴드였던 'Johnny Jenkins and The Pinetoppers'에 가담하여 그룹의 보컬로 활동하였고, 투어 때는 로드 매니저 역까지 겸하게 된다.
그러다 1962년 Johnny Jenkins 세션 중에 시간이 남아 Otis Redding이 작곡한 곡 'These Arms of Mine'을 녹음하게 되는데, 이 곡으로 인해 유명한 음반회사인 스텍스의 자회사인 볼트 레코드사와 계약을 하게 되고, 이 곡은 R&B 히트를 치며 80만장의 판매고를 올리게 된다.

1964년에는 이미 싱글들이 성공을 거두고 있던 시기에 Otis Redding의 솔로 데뷔 앨범 [Pain In My Heart]이 발매되어 기존에 락앤롤이 아닌 소울보컬로 음악적 지향점을 굳히게 되지만 그가 위대한 소울 뮤지션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것은 1965년 발표한 앨범 [Otis Blue]다. 이 앨범은 당시 사회상황과 흑인민중들을 대변해주는 곡들로 소울 음악을 평정하였고, 음악적으로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흑인 권리신장요구와 폭동들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되어지고 있다.
이 앨범에는 'I've Been Loving You Too Long', 'Rolling Stones'의 곡을 커버한 곡인 'Satisfaction', 흑인들의 자긍심을 고취시키고 훗날 'Aretha Franklin'이 리메이크하여 히트시킨 곡 'Respect'와 'Shake' 등의 히트 싱글을 쏟아내게 된다.

흑인 음악의 용어가 리듬 앤 블루스에서 소울로 바뀌게 된 것은 1960년대 중후반의 사회상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1965년 뉴욕의 할렘 폭동, 1967년 디트로이트 폭동은 흑인의 권리쟁취를 위한 과격한 욕구 분출이었다. 이때 흑인의 자긍심을 고취하기 위해 새로이 등장한 용어가 바로 소울이었다. 대부분의 흑인들은 그들의 반인종차별 투쟁과 소울이라는 말을 동격시 했다. 당시 동시다발적으로 팝계에 출현한 James Brown, Ray Charles, Wilson Pickett, Aretha Franklin, 그리고 Otis Redding이 대표적인 소울가수들이었다. 소울이라는 이름으로 그들은 흑인민중의 절대적 지지를 받았다.

1965년 발표된 [Otis Blue]는 이 같은 흑인의 권리신장 요구와 소울 발현의 촉매제 역할을 했다. Otis Redding의 음악과 이 앨범은 따라서 1960년대 후반의 소울 열기와 분리해서는 생각할 수 없다. 그의 자작곡인 'Respect'과 'Change Gonna Come'는 그 같은 소울의 경향을 대표한다. 거기에는 이전엔 찾아볼 수 없던 흑인의 자부심과 자신감이 배어있다.
특히 'Respect'은 'lady soul'의 칭호를 얻은 Aretha Franklin이 불러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더욱 유명해졌는데, 1960년대의 소울 음악과 흑인민권운동 물결을 상징하는 노래가 되었다. 소울의 걸작들이 총망라되어 있다는 평을 듣는 이 음반은 대중적으로도 성공해 네 개의 히트 싱글이 쏟아져 나왔다.
'Respect' 외에도 'Shake', 'I Can't Get No Satisfaction', 'I've Been Loving You Too Long'이 잇따라 히트했고, 앨범 수록곡 중 우리나라에서는 당연히 'I've Been Loving You Too Long'이 사랑을 받았다. Otis Redding 보컬의 짙은 호소력과 끌어당기는 듯한 분의기가 압권인 이 노래는 그 특유의 스타일인 소울 발라드 때문에 발라드 취향이 강한 국내 팬들의 줄기찬 애청곡이 되었다.

이후 Rolling Stones와 Aretha Franklin 등 여러 아티스트들이 그의 노래들을 리메이크하여 히트시켰고, 작곡가로서도 활동하여 새로운 종류의 리듬 앤드블루스 선율을 선 보였으며, 1967년 'Monterey Pop Festival'에서 히피음악에서 소울뮤직으로 변신하여 새로운 인기를 끌었다.
1967년 'Carla Thomas'와 듀엣으로 'Tramp'을 불러 소울 뿐 아니라 백인 팝 팬들에게도 큰 인기를 끌며 수많은 아티스트들과 함께 투어에 오르며 슈퍼스타로서의 명성을 떨치게 되지만 순회공연 도중인 1967년 12월 10일 출연을 위해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위스콘신 주 매디슨으로 향했는데, 매디슨 부근의 모노나 호수에 추락하여 스물여섯 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Otis Redding을 비롯한 네 명의 밴드 멤버 전원이 사망하면서 스물여섯 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하게 되었지만 그의 레코드는 이듬해 1968년 1월부터 크게 히트하여, 2월에는 전 미국 히트 차트 1위가 되고 밀리언셀러를 기록했다.
그의 좋은 반주자이기도 한 기타리스트 'Steve Cropper'와 합작한 명곡 '(Sittin' On) The Dock Of The Bay'(1968)가 인기순위 1위에 올랐다. 이밖에도 1968년 한 해 동안 'The Happy Song (Dum Dum)', 'Amen', 'Papa's Got A Brand New Bag'이 계속해서 인기순위에 올랐다.
그리고 1968년도 제11회 그래미 어워드 최우수 남성보컬 퍼포먼스상과 최우수 R&B 노래상을 수상했고, 1989년 Rock and Roll Hall of Fame(로큰롤 명예의 전당) 'performers(공연자)' 부문에 올랐으며, 1998년 제40회 그래미 어워드 명예의 전당과 작곡가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






1964[Pain In My Heart]-03. Stand By Me



1965[Otis Blue:Otis Redding Sings Soul]-09. Rock Me Baby



1967[Live In Europe]-03. I've Been Loving You Too Long



Otis Redding & Carla Thomas-1967[King & Queen]-01. Knock On Wood



1968[In Person At The Whisky A Go Go]-10. Respect



1969[Love Man]-02. (Your Love Has Lifting Me) Higher and Higher



1970[Tell The Truth]-11. Little Time



Otis Redding & The Jimi Hendrix Experience-1970[Historic Performances Recorded At The Monterey International Pop Festival]-12. (I Can't Get No) Satisfaction



1992[Remember Me]-16. (Sitting On) The Dock Of The Bay (take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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