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생태와 함께하는 길'
해운대~송정 바다 열림길
꼬불꼬불 바다 보고 듣는 길… 속도보다 미래에 무게 실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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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해남부선 폐선 구간(달맞이재 지나 청사포 방향 철로) 풍경.
오른쪽으로 탁 트인 바다가 나타난다.
귀로 파도 소리를 듣고, 눈으로 쪽빛 바다를 직접 볼 수 있다.
정대현 기자 |
흔히 우리는 사물과 내가 하나가 된다는 말로 물아일체(物我一體)라는 말을 사용한다.
한데, 그런 경험을 한다면 그건 행운이다.
'해운대~송정 바다 열림길'은 그걸 체감할 수 있다.
지난해 말 복선전철화 사업 때문에 폐쇄돼 지난 4월 시민에게 개방된 동해남부선 폐선,
이젠 해운대의 명물이 된 문탠로드, 그리고 갈맷길(삼포길)이 중간중간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길이다.
출발점을 해운대 미포오거리 아래 동해남부 폐선에서 잡으면 달맞이재(폐선 미니 터널)→폐선→달맞이 어울마당→김성종추리문학관→해월정사→비아트→갈맷길(삼포길)→구덕포→송정해수욕장→송정역으로 빠져나오는
8㎞ 남짓되는 구간이다.
■ 아쉬움-사라지는 기억들
해운대~송정 바다 열림길은 처음은 실망감으로 다가온다.
영화 '해운대' 속에서 물에 잠기는 건널목으로 나왔던 곳이 컬처로드의 출발점이지만 더 이상 철로는 없다.
건널목 철로는 아스팔트로 이미 채워져 있다.
'멈춤'이라는 철길 표지판조차 없애 버렸다.
실망은 낯익음이다.
너무도 자주 보아 왔기에. 건널목에 앞서 인근 바나나롱갤러리 앞 폐선 구간도 마찬가지.
사라진 철도 침목, 철로의 풍경은 너무도 휑하다.
도시재개발로 이름만 달리할 뿐 역사·문화 자산은 지금도 끊임없이 해체되고 있다.
여전히 부산의 기억들이 마구잡이로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동해남부선 폐선·문탠로드·갈맷길
자연스럽게 연결된 '힐링 코스'
추리문학관·해월정사 등 볼 것 풍부
체험공간·휴식장소 없어 아쉬움
동해남부선은 일제강점기에는 수탈의 길(동해남부선은 일제강점기인 1934년 개통됐다)이었다.
근대에 들어서는 동남쪽을 연결해 주는 소통의 길이었고, 시장을 오가는 길이었으며, 통근 열차의 길이었다.
추억을 간직한 길이요, 근대유산이다.
하지만, 그 기억을 너무도 쉽게 지워 버렸다.
함께 이번 길을 동행했던 김종세(나락한알 원장) 시리즈 자문위원의 얼굴엔 실망감이 가득했다.
"야만이다."
그의 입에서 나온 첫마디는 우리 사회가 지금 저지르고 있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이야기해 준다.
낡고 오래된 것, 그 자체로 가치가 있음을 왜 모른다 말인가?
■ 매력-자연과 하나됨을 느끼다
씁쓸함을 뒤로하고 폐선 철로를 걷는다.
하지만 5분을 걸었을까?
오른쪽으로 탁 트인 바다가 나타난다.
왼쪽으로는 문탠로드가 시작되는 지점이다.
자연이 나와 함께한다는 것, 그리고 자연을 이렇게 즐길 수도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 주는 최고의 구간이다.
귀로 파도 소리를 듣고, 눈으로 바다를 직접 본다.
주변으로는 달맞이길을 따라 수많은 갤러리들이 있기에 자연이 펼치는 아름다움과 더불어
예술가들이 펼치는 아름다움도 한없이 구경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요즘 흔히 하는 말로 '지친 영혼이 힐링(healing)할 수 있는 곳'이 이런 곳이 아닐까.
폐선 길을 따라 청사포까지 가기 전에 문탠로드로 살짝 빠지면,
수많은 갤러리들과 김성종추리문학관을 만나 볼 수 있다.
청사포로 내려서면, 성철 스님이 말년에 휴양차 머물며 수행하던 해월정사도 있다.
그 앞으로는 최근 생긴 비아트(B ART) 협동조합과 갤러리가 관람객의 발길을 붙잡는다.
해월정사에서 구덕포까지는, 갈맷길(삼포길)을 따라가면 2㎞ 남짓 된다.
산길이지만 길도 평평하고 넓다.
길 폭이 어른 키보다 넓어 걷기에 수월하다.
뿐만 아니다.
산속을 걸으며 다시 한 번 파도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쪽빛 바다도 숲 사이로 간지럽히듯 유혹한다.
컬처로드의 끝 지점인 송정역은 등록문화재 제302호로, 대한민국 근대문화자산이다.
동해남부선 철로 이설로 폐쇄된 송정역은 해운대구청과 한국철도공사 지원으로
지난 5월 1일부터 시민들의 문화공간(갤러리)으로 새롭게 탈바꿈했다.
이곳에선 공예품을 전시· 판매하면서, 도자기 체험 프로그램도 함께 진행하고 있다.
■ 과제-빠른 걸음만이 능사 아니다
폐선 길에 주목한다.
왜냐하면 이곳은 부산의 미래자산이기 때문이다.
최근 부산시는 동해남부선 폐선부지 활용(그린 레일웨이 조성사업)을 위해 시민계획단을 구성하고,
온라인 정책포럼, 시민대토론회, 라운드테이블을 개최하겠다고 했다.
환경훼손 논란 등으로 중단된 동해남부선 폐선 부지 활용사업을 재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하지만 시의 이런 움직임에 비해 시민단체는 결코 서두르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해운대 동해남부선 폐선부지 활용을 위한 시민모임'
조용호 공동대표는 "시민단체의 기본원칙은 서둘러 개발하는 것만큼은 무조건 막자라는 것"이라고 얘기했다. 좋은 활용 방안이 있으면 시행하는 게 좋겠지만, 미래 세대를 위해 남겨 두는 것도 괜찮다는 입장이다.
미국의 '하이라인파크'처럼 수십 년의 세월을 두고 고민해 나가도 될 것이라는 얘기다.
일각에서는 동해남부선 미포~송정 구간은 천연 자연이 수려하기에 걷는 길로 보존하되
문탠로드와 연결해 소통되게 하자는 의견도 있다.
또 송정 역사를 아이들을 위한 친수공간으로 하거나 철로 박물관,
기차를 이용한 '트레인 바'로 하자는 아이디어도 내놓고 있다.
'바다 열림길' 주변에는 먹거리가 비교적 풍부한 편이다.
문제는 다양한 체험공간이 없다는 것.
시리즈 구간을 안내했던 해운대구자원봉사센터 문희 사무국장은
"많은 사람들이 폐선 철로를 걷고 나면, 쉴 곳이 마땅찮다.
끝 지점인 송정역에서 버스킹 공연이 펼쳐져 자연스럽게 쉬고 머무는 공간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현재 송정동 청년회, 송정초등학교 학부모 단체가 연대해 송정역을 보존하고 가꾸는 작업도 진행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인다.
정달식 기자
공동기획 동아대 디자인환경대학 지역유산재생연구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