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많은 증인들이 우리를 구름처럼 에워싸고 있으니, 우리도 온갖 짐과 그토록
쉽게 달라붙는 죄를 벗어 버리고, 우리가 달려야 할 길을 꾸준히 달려갑시다." (1)
히브리서 12장 1~3절은 주 예수님을 바라보고 인내하며 달리는 신앙의 경주에 대해
말하고, 12장 4~13절은 훈육의 의의와 유익 그리고 훈육받는 성도의 분발을 촉구하는
내용이다.
'이렇게 많은 증인들이 우리를 구름처럼 에워싸고 있으니'
본문을 좀 더 정확하게 직역하면, '우리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이렇게 많은 증인들의
구름을 가지고 있다'가 된다.
신약의 성도들은 시련가운데서 믿음의 경주를 하지만, 수천 수만의 옛 선조들로
이루어진 관중들의 응원과 격려를 받으며 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즉 신약의 성도들은 구약 성경을 통해 이미 따라야 할 신앙의 모범을 풍부하게 가지고
있으며, 또한 천국에서 응원하고 격려해 주는 후원자들도 많이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본문에서 '이렇게 많은'으로 번역된 '토수톤'(tosuton)은 '이렇게 많은', '큰'을
뜻하며 '구름처럼'으로 번역된 '네포스'(nephos)를 수식한다.
새 성경에서 부사적 의미로 번역된 '네포스'는 명사 목적격 단수로서 '구름을'
이라는 의미이다.
'네포스'는 단 하나의 구름을 의미하는 '네펠레'(nephelle)와 달리 온 하늘을 빽빽하게
가리우는 구름(밀운)을 가리킨다.
'증인들의 구름'은 경주가 펼쳐지고 있는 거대한 원형 경기장의 스탠드를 가득 메우고
있는 꽉 들어찬 관중에 대한 비유적 표현이며, 그들은 신앙의 경주를 하고 있는
성도들에게 열렬한 응원을 보내주고 있다.
여기서 '증인들'로 번역된 '마르튀론'(martyron)은 원형 '마르튀스'
(martys)의 소유격 복수이며, '마르튀스'는 '증거', '증인' 그리고 '순교', '순교자'라는
뜻을 나타낸다.
'순교', '순교자'를 뜻하는 영어 단어 'martyr'가 이 단어에서 유래하였다.
'순교자'란 죽음을 무릅쓰고 증거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며, '마르튀스'(martys)
가 전달하는 '증인'의 의미가 바로 이것이다.
초대 교회 당시에는 물론이고 오늘의 세상에서도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충성스런 증인들은 종종 고통을 당하고 박해를 받는다.
이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어두운 세상은 빛이신 그리스도를 거부하고 미워하게 마련인데, 그것은 성도들이 바로
그 빛이신 그리스도에게 속하여 있기 때문이다(요한15,18~20).
따라서 세상은 성도들을 대적하는 것이고, 그 증거를 히브리서 11장 34~37절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믿음의 옛 선조들이 당한 세상의 핍박과 환난을 생각하면서 확신과 담대함을
가지고서 싸움에 임해야 한다.
그들이 참아낸 것은 우리도 참아낼 수 있고, 그들이 극복한 문제들을 우리들도 극복할 수
있으며, 그들의 승리는 우리의 승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신약의 성도들이 달리고 있는 경기장의 관중석에는 이러한 사실을 확인시켜 주며,
이미 자신들이 경주한 그 코스를 달리고 있는 우리를 향해 격려와 조언, 응원을
보내주는 수많은 증인들이 있는 것이다.
'우리도 온갖 짐과 그토록 쉽게 달라붙는 죄를 벗어 버리고'
경기장에서 경주를 하는 선수들이 거추장스러운 옷을 벗어버리듯이 신앙의 경주를
하는 성도들도 신앙 생활에 방해되고 불필요한 것들을 모두 벗어버려야 할 것을
권면하는 부분이다.
여기서 '벗어 버리고'로 번역된 '아포테메노이'(apothemenoi)의 원형 '아포티테미'
(apotithemi)는 분리, 이탈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아포'(apo)와 '두다', '놓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동사 '티테미'(tithemi)의 합성어로서 '낡은 옷을 벗어버리다'
라는 기본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아포테메노이'는 요청적 명령을 나타내는 분사형이므로, 이것은 '벗어버리자',
'던져 버리자'등의 의미를 지닌다.
고대 그리스 지역에서는 운동 경기가 매우 성행하였고,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경주자들은 옷을 다 벗고 달렸다.
오늘날 학교 체육관을 의미하는 단어 'gymnasium'은 원래 고대 그리스 세계에서
운동 선수들의 옷을 다 벗은 모습을 나타냈던 단어 '귐노스'(gymnos)에서
유래하였다. 그래서 당시 경기장에는 여자들의 출입이 제한되었다. 아무튼 남보다 더
빠르려면 입는 옷의 무게를 가능한 줄여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한편 벗어버려야 할 것이 본절에서 두 가지로 지적되고 있다.
첫째는 '온갖 짐'이다.
'짐'으로 번역된 '옹콘'(ongkon)의 원형 '옹코스'(ongkos)는 '짐', '방해물', '부피가
있는 덩어리', '무거운 것'등을 뜻한다.
짊어지고 있는 짐이 많을수록 빨리 달리기란 더 어렵다. 앞을 막는 장애물이 많은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신앙 경주를 잘하고자 하는 성도는 모든 방해 요소를 철저히 제거해야 한다.
어떤 사람은 '옹코스'(ongkos)를 경주자가 몸에 걸치면 배의 돛처럼 바람을 끌어 모아
속력을 내는 데 지장을 줄 뿐 아니라 경주자를 쉽게 지치도록 만드는 겉옷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또 어떤 사람은 경주자의 지나치게 많이 나가는 체중으로 보기도 한다.
어떻든 신앙의 경주를 하는 성도가 빨리 벗어버려야 할 '옹코스'에는 의심이라든지,
교만, 나태 등이 포함된다.
하느님의 말씀과 그분의 신실성을 의심하는 자들은 전진하고 진보하는 신앙인이 될 수
없다.
또한 교만의 짐을 지고 있는 자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하찮은 것으로 여기기 때문에
그 말씀을 통해 이루어야 할 성화(聖化; sanctification)를 이루지 못한다.
또한 나태의 장애물을 치워버리지 못하는 자들은 그 신앙의 활력을 잃게 되며 침체에
빠지고 결국 퇴보하게 된다.
신앙의 경주에 방해가 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단호히 제거해 버리는 결단이 필요하다.
썩어가는 부위나 암세포를 제거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태롭게 되는 것처럼, 신앙의
달리기를 방해하는 요소들은 단호히 제거하지 않으면 얼마가지 않아 주저앉을 수 밖에
없다(마태5,29.30).
둘째는 '그토록 쉽게 달라붙는 죄'이다.
'그토록 쉽게 달라붙는'으로 번역된 '유페리스타톤'(euperistaton)은 '잘', '좋게'를
뜻하는 부사 '유'(eu)와 '주위에 놓다'를 뜻하는 동사 '페리이스테미'(periistemi)의
합성어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쉽사리 함정에 빠뜨리는', '유혹하는'등을 의미한다.
따라서 '그토록 쉽게 달라붙는 죄'란 '쉽사리 함정에 빠뜨리는 죄'를 말한다.
그리고 본절의 '죄'로 번역된 '하마르티안'(hamartian)은 '죄'로 일컬어지는
일체의 것들을 모두 포함하는 것이 아니라 '쉽사리 함정에 빠뜨리는 것'으로 한정된다.
형용사인 '유페리스타톤'이 관사 '텐'(ten)을 취하여 한정적인 용법으로 쓰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것은 모든 죄가 아니라 어떤 특정한 형태의 죄를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어떤 이는 이 죄를 '불신앙'으로 보기도 한다. 믿음의 반대인 불신앙은 신속하게 우리의
발을 휘감는 것이 사실이다. 신학적으로도 이것이 모든 죄의 기초이다(요한16,2~9).
밤중에 밀림에서 모닥불 주위를 배회하는 야수의 무리가 경계심을 늦추고 있는 사람에게
달려들려 하는 장면을 연상하면, '그토록 쉽게 달라붙는 죄'를 알아들을 수 있겠다.
히브리서 저자가 말하는 이 죄가 항상 우리의 주변을 어슬렁거리면서 공격할 기회를
노리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따라서 이와 같은 것들은 지체없이 벗어버려야
한다.
의심이라든지 교만, 게으름 같은 장애물들 신속히 벗어버리고, 불신앙의 요소들을
부단히 경계하여 우리의 발목을 못잡도록 하는 지혜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