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관들과 모든 백성이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에게 이르되 이 사람이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말하였으니 죽일 만한 이유가 없느니라 26:16
예레미야의 예언을 듣고 그래도 히스기야왕의 돌이킴을 생각하며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감사합니다.
‘여호와를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매’ 이것이면 되는 것을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선지자들을 죽이려 하는 그들의 완악한 모습을 봅니다.
’ 하나님은 나의 빛‘ 멋진 뜻을 가진 무명의 선지자 우리야의 죽음을 봅니다.
예레미야와 같은 예언을 하고 왕의 칼에 죽임을 당한 우리야.
하나님의 뜻을 선포한 그의 용기와 신앙이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작은 일을 겪으면서 옳은 일을 옳다고 하는 자들이 많지 않은 것을 경험했습니다. 감정과 친분에 얽혀 초점을 흐리게 하는 모습을 몇 주간 겪고 나니 이 무명의 선지자가 얼마나 용감한 것인지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두려워하며 돌이키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생각합니다.
나의 생각과 감정을 하나님의 말씀 아래 놓는 이 시간이 참 감사합니다.
그들이 듣고 혹시 각각 그 악한 길에서 돌아오리라 그리하면 내가 그들의 악행 으로 말미암아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려 하던 뜻을 돌이키리라 (3절)
돌아오면 돌이키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언제든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만 하면 그동안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결정했 던 재앙도 돌이키시겠다는 하나님의 사랑이 느껴집니다.
하지만 자신이 처해있는 절박한 상황에도 도무지 돌아서지 못하는 어리석음이 안타깝습니다.
수많은 죄 가운데도, 모두가 가는 길이 아니여도 하나님의 말씀이 가리키는 곳을 향해 갈 수 있는 믿음의 용기가 제게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이사를 하는 날 입니다.
여러 가지가 준비되지 못한 가운데 하는 이사라 매우 번잡하지만 하루의 시작을 하나님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늘 갈팡질팡하는 삶이지만 조금씩 조금씩 하나님 말씀을 알아가고, 순종하는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너는 성전 뜰에 서서 유다의 여러 성에서 경배하러 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내가 명령한 모든 것을 한 마디도 빼놓지 말고 그대로 선포하라. 어쩌면 그들이 듣고 악한 길에서 돌아설지도 모른다. 만일 그들이 그렇게 하면 내가 그들의 악한 행위에 대하여 재앙을 내리기로 한 나의 뜻을 돌이킬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랑하시는데 왜 재앙을 내리실까, 사랑하시는데 왜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하게 두시지 않을까... 어느 정도는 하나님 마음을 이해하지만 완전히는 아닙니다. 사랑하는데 그들을 고통당하게 하시고, 온갖 수모를 당해 무너져버리는 그들을 보십니다.
몇 년 전부터 저는 전혀 상상하지도 못했던 육신의 어려움으로 고통당하면서 하나님이 나에게 왜 이러실까, 나를 사랑하신다면 내가 계획했던 대로 가게 하셔야 하지 않을까 여러 생각으로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내 계획대로 가는 그 과정이 그 시간들이 너무나도 고통스러웠습니다. 외롭고 어렵고 불안했고 웃음을 잃었고 무능력한 제 자신을 미워하고, 급기야는 어릴 적 상처들이 생각나서 가족들을 원망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하나님께서 그 상황에서 저를 멈추게 해 주신 것 같습니다. 더 이상 고통 속에 저 자신을 밀어 넣지 않게 저를 꺼내주신 것 같습니다. 치료과정이 많이 힘들었고 또 언제 아플지 모르지만, 지금은 마음이 편합니다. 큰소리로 깔깔대며 웃고, 무엇보다도 가족에 대한 원망이 사라졌습니다. 행복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소소한 감사함을 느낍니다.
하나님은 제가 행복하길 원하셨기에 저에게 육체의 고난을 주신 거 같습니다. 그런데 그 고난은 제가 감당할만한 고난입니다. 그리고 고난을 이겨내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붙드심을 경험했습니다. 실수하시지 않는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요 며칠 감기로 고생하며 몸도 마음도 약해졌었는데, 예레미야 말씀과 여러분들의 나눔을 읽으며 하나님의 은혜를 느끼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반복되어 나오는 ‘여호와의 성전에서‘의 말씀이 인상적입니다.
하나님께선 예레미야를 성전에서 자신의 말씀을 한 마디로 감하지 말고 전하라 하십니다. 성전에 올라와 예배드릴 정도면 열심히 있기에 혹시라도 그들 중에 한 명이라도 돌이키지 않을까라는 기대가 있으셨던 것 같습니다.
안식일과 절기를 지키며, 하나님을 예배하러 오는 열심히 많은 예배자들을 향해 그들은 배반자요 악한자이며 회개해야 될 사람들이라 말씀하십니다.
누구보다 경건하다고 자부하는 그들에게 하셨던 말씀이, 제게도 하시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패역하고 목이 곧아 예배드린다고 하지만, 진정으로 하나님의 예배를 사모하며 드리는 예배가 아닌 형식적일 때가 많은 제 모습을 회개드립니다.
하나님께선 그들에게 돌이키라 말씀하셨지만, 성전이 허물어질 거라는 말씀에만 집중하며 자신이 듣기 싫은 말씀에 성을 내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축복을 원하며 잘 퇴거라는 평안의 말씀만 듣고 싶어 하는 제 모습은 아닌지 묵상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창조주 되시고 저는 그저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잊게 되면 신앙의 오류에 빠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창조된 나의 목적을 잊어버리지 않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에 나의 마음이 있고, 그 뜻을 따라 오늘도 제가 있어야 할 예배자의 자리에 서 있길 원합니다.
14 보라 나는 너희 손에 있으니 너희 의견에 좋은 대로, 옳은 대로 하려니와
예레미야의 믿음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 백성들이 듣기에 안 좋을 이야기를,
자신의 목숨이 위험해질 수도 있는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하였습니다.
이는 자신의 생명을 그들이 아닌 하나님께 온전히 맡겼기에,
어떤 결과가 일어난다 하더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뜻임을 믿었기에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나라도 가능할까? 내 목숨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 더 중요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선뜻 답할 수 없었습니다.
아직 저의 믿음 새싹에 불과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직 너무나도 연약하여 밟으면 밟히고 불면 꺾일 수 있는 연약한 존재이지만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와 그의 백성들의 마음을 만지시고 이끄셨듯이 나의 마음, 나의 믿음 또한 더 성숙해질 수 있도록 만지시며 성장케 하심을 믿습니다.
온전한 믿음으로 그 어떤 하나님의 말씀도 전할 수 있었던 예레미야의 담대함과, 하나님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 경외하는 믿음을 닮기 원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말씀을 전하는 예레미야가 맡겨진 사명에 순종해서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전할 말씀을 전하는 모습을 생각해 보니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레미아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전했고 유다민족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그들에게 꼭 필요한 말을 목숨을 걸고 했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그들의 강퍅한 마음을 볼 때, 눈빛이 변하거나, 나를 무시한다고 느낄 때 내가 해야 할 말을 대충 전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예레미야같이 나를 보내신 분이 하나님이시고 내가 전하지 않으면 그들에게 다가올 재앙을 생각하며 그들의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담대하게 전하게 하옵소서.
교인들의 믿지 않는 가족들과 우리 시댁식구들을 향해 오늘 주신 예레미야 같은 마음으로 그들을 먼저 품고 기도할 때 그들의 영혼을 주님의 마음으로 사랑하는 마음을 부어주시기를 원합니다.
죄악 가운데 있던 제가 돌이키도록 성령님 찾아오시고 은혜를 입은 것처럼 아직 믿지 않는 가족들과 기도하고 있는 교인들의 가족들에게 성령님 찾아가 주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