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의 탄생』, 『시민의 탄생』에 이은
송호근 교수의 탄생 3부작 완결판 『국민의 탄생』 출간
근대 한국인은 어떻게 출현했는가
20세기 한국인의 기원을 밝히는 사회학적 탐구
정치와 경제, 사회를 넘나드는 넓은 안목과 정치한 분석으로 한국 사회의 현안과 주요 쟁점을 짚어 온 사회학자 송호근 교수의 신작 『국민의 탄생-식민지 공론장의 구조 변동』이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이 책은 『인민의 탄생』, 『시민의 탄생』에 이은 송호근 교수의 탄생 시리즈 3부작의 마지막 권이다.
한국에서 근대적 개인, 근대 사회 그리고 근대 국가는 과연 태동했는가?
혹독한 식민 통치 아래에서 시민은 어떻게 국가의 주체로 거듭났는가?
이 책은 이러한 질문을 바탕으로, 19세기 후반 더 이상 기존 체제에 안주하지 않고 주체 의식과 함께 존재론적 자각을 하며 등장한 조선의 인민이 근대적 개인, 시민을 거쳐 국가의 주체인 국민으로 태어나는 과정을 추적한다.
저자는 이 3부작을 통해 미시적, 목적론적 연구를 추구하는 기존 학계의 경향에서 벗어나 ‘거시 구조의 전환’에 주목하며 ‘공론장’ 분석을 통해 조선의 근대와 그 전개 양상을 총체적으로 조망한다. 그리고 한국인과 한국 사회의 기원을 밝히는 이 과정에서 근대 이후 오늘날까지 격동하는 한국 사회가 나아갈 길을 모색하고자 한다.
출판사 서평
◆ 억압의 천개에 덮인 공론장의 밑바닥에 국민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음이 깔리다
이 연구는 식민지 답사 기록이다.
1905년부터 14년 동안 공포 정치 아래에서 숨죽여 간직한 민족의식, 일제의 문명화에 동원돼 근대 문물을 모방하고 그것의 민족적 정체성을 의문시했던 역투(逆透)의 체험, 문예ㆍ종교ㆍ사회 운동 공론장에서 배양한 시민적 도덕과 공덕, 그리고 공개인(公個人) 의식이 ‘기회의 창구’를 통해 발현하는 일련의 과정을 추적한 것이다.
일본 제국주의는 광기를 띤 야만적 일탈의 시기였다.
이로 인해 조선의 근대는 갑작스럽게 차단될 위기에 처하고 개인과 사회는 동굴 속에 갇혔다. 그 암흑 공간에서 ‘국민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음은 잘 들리지 않았다. 흔적은 도처에 산재했으나 그것을 일관된 논리나 경로로 해석하기 어려웠다.
왜 국민인가?
국민이 아니고는 일제 통치로부터 벗어난 독립 국가를 말할 수 없으므로 국민의 존재는 필수적이다. 그런데 시민 사회에 어떤 정치적 목적과 비전이 만들어져 타 국과의 경쟁 주체로서 정치적 공동체가 형성되어야 국민 국가로 가는 길이 열린다.
도처에 깜빡거리는 신호음을 하나의 커다란 방송(放送)으로 확증하기 위해 저자는 『인민의 탄생』과 『시민의 탄생』에서 사용한 ‘공론장의 구조 분석’을 이 연구에도 적용했다. 식민지에도 공론장은 존재한다. ‘억압의 천개(天蓋)’에 덮인 숨 막히는 공론장의 밑바닥에 국민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음들이 깔려 있었던 것이다.
◆ 고종의 서거로 군주와 국가가 분리되고 시민이 국가의 주체인 국민으로 호명되다
1919년 3ㆍ1 운동은 ‘국민의 탄생’을 확증하는 대사건이었다.
당시 평민들에게는 ‘조선’이 ‘대한’보다, ‘인민과 민족’이 ‘시민과 국민’보다 더 익숙했다. 그런데 ‘인민’이 ‘시민’으로 진화한 징후 는 뚜렷했고, ‘민족’의식 내부에 단일 국가를 향한 정치적 형체가 무성하게 자라나 ‘국민’의 자격 요건을 갖춰 가고 있었다.
국내외적으로 여러 조건들이 무르익었는데, 고종의 서거는 군주와 국가를 분리시킨 상징적 사건이었다. 현실 국가는 무너졌지만 시민들의 마음속에는 조선이라는 정신 국가, 역사체로서의 국가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군주를 잃은 ‘고아 의식’은 주체 의식으로 변했다. 국가와 시민이 일체가 된 순간 국외 망명지로부터 국가의 주체로서 유실되는 국가를 붙잡아 회생시키라는 메시지가 날아들었다. 국민 국가로의 행진 호각이 맹렬하게 불렸다.
그러나 1910년대 공론장은 ‘결빙과 암흑의 공론장’이었다. 민간지는 폐간됐고 잡지도 민족의식과 계몽 지식을 전파하는 매체는 허가받지 못했다. 1910년대 총독부의 식민 통치는 역사상 유례없이 폭력적 억압적이었다.
◆ 문예 공론장, 종교 공론장과 사회 공론장을 통해 정치 공동체로서의 국민의 모습을 드러내다
그러나 영원한 억압은 불가능하다.
쇠우리 저변에서 매체(문예) 공론장과 종교 공론장이라는 두 개의 인클레이브(enclave)가 형성되고 있었다.
글을 해독할 능력을 지닌 문해 인민(文解人民), 일제의 문명화 사업 와중에서 시민으로 진화해 갔던 ‘각성 인민’들은 신문 기사에서 그들의 통치 의도를 읽어 냈다. 십전 소설, 육전 소설의 애독자들이었던 평민들은 풍문과 소문을 맞춰 보면서 기사의 배경을 읽는 행렬에 동참했다. 이 들은 이광수의 『무정』에 이르러 근대 의식의 공간으로 진입했다. 근대 교육을 받은 학생층이 급증했고, 1세대 노동자군이 형성되고 있었다.
문예 공론장이 사회 저변에서 확산되는 무형의 실체였다면 종교 공론장은 교리, 조직, 신자를 갖춘 유형의 존재였다. 종교는 일제 억압의 손길이 내부까지 미치지 않는 전형적인 인클레이브였다. 그들은 억압을 향한 분노를 신심(信心)으로 씻었고, 그 영역에 소국(小國)을 건설해 갔다.
교리 학습과 함께 문자를 터득했고, 독자적인 행동 양식과 사고방식을 모색했으며, 신심 공동체의 연결망을 통해 그 자원을 유통시켰다. 천도교든 기독교든 신도들은 시민적 요건을 갖춰 나갔다. 그것은 도덕과 양심, 시민 사회의 덕목을 전파하는 ‘시민 종교’였다.
문예 공론장에 형성된 익명의 시민들, 종교 공론장의 공동체적 시민들, 그리고 국내 비밀 결사 단체에게 해외 망명지발(發) 메시지가 빈번하게 수신됐다. ‘사회 운동 공론장’은 ‘문예 공론장’ 과 ‘종교 공론장’에 국민 의식을 불러일으킨 기폭제였다.
그것은 ‘시민과 민족’이 느슨하게 결합 된 의식 공간을 하나의 정치 공동체로 묶어 주었다. 국민은 그렇게 존재를 드러냈다. 이 연구에 서 ‘환상형 공화 네트워크’로 명명한 해외 독립운동 조직의 개척사는 근현대 세계 식민사에서 찾을 수 없는 감동적인 민족 스토리다.
3월 1일 이후 3년간 선포된 선언서, 통고문, 호소문은 미국, 일본, 프랑스를 비롯해 전 세계에 타전됐다. 그 문건들은 20세기 세계 평화와 약소민족의 자립이 인류 문명의 발전에 가장 중요한 가치임을 확인시킨 세계사적 기록이었다.
‘국민의 탄생’은 1919년 4월 11일 상해 임시 정부의 헌법에 의해 ‘대한민국 국민’으로 공식 규정되었다. 국민의 탄생은 그렇게 출범 경적을 울렸다.
◆ 극단적 경쟁과 균열로 갈가리 찢긴 사회
대화, 토론, 합의에 기반 한 ‘공론장’을 회복해야 할 때
저자 송호근 교수는 근대 한국인의 기원을 밝히는 연구인 ‘탄생 3부작’에서 하버마스가 부르주아 계급의 상승과 근대 국가의 건설 과정을 설명하는 데 적용한 공론장의 분석적 유용성을 통시적으로 확장하여 조선의 전반적 역사 변동의 추동력을 캐는 거시적 분석틀로 삼았다. 특히 『국민의 탄생』은 1910년대 한국인들의 삶의 양태를 공론장 분석을 통해 재구성했다.
하버마스는 공론장을 국가와 시민 사회를 매개하는, 여론이 형성되고 결집되는 영역이라 정의한다.
그에 따르면 근대 민주주의는 국가와 사회, 개인 간 갈등이 이 공론장에서 진행되는 토론과 그에 따른 합의를 통해 해결되는 정치 체제이며 이런 점에서 공론장은 민주주의의 핵심적 거점이다. 유신 정치와 광주 사태, 민주화, 압축적 경제 성장, 외환 위기 등 격동의 세월을 거친 한국 사회는 고령화와 최저 출산율, 높은 자살률, 빠른 속도로 진행 중인 양극화 현상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수많은 쟁점들이 한꺼번에 쏟아지고 뒤엉키는 현실 가운데 이를 해결하기 위한 공론 형성 과정이 차단된 채 우리 사회는 갈가리 찢기고 있다. 대화와 합의를 바탕으로 한 의사소통이 이루어지는 공론장과 그것에 의해 인민, 시민 그리고 국민의 출현 과정을 살펴보는 것은, 오늘날 극단적 경쟁과 갈등으로 소통이 불가능해진 한국 사회에 유효한 시사를 던진다
첫댓글 누군가 지금 우리 사회를 유럽 중세 비슷하다고 하더군요. IMF 이후 급속하게 추진된 정규직 비정규직으로 구분되는 노동자 계급의 계층 분리, 관료사회의 팽창, 자본소득자들, 자영업자들, 끼리끼리 성을 쌓고 중세시대 비스무리 되었다고. 제주도에서 비정규직으로 3년 일하면서 확실히 느낀 노동자 사이들의 신분차이와 그로 인한 임금차별, 은근히 풍겨오는 인간성 자체에 대한 멸시 같은 것들은 뭔가 괴랄스러운 체험이었어요.
그런 경험을 하셨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