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시평 제235호 (2011년 1월 31일)
재일동포 축구선수 이충성
최영호 (영산대학교)
www.freechal.com/choiygho
어제 30일 (한국시간) 재일동포 이충성(李忠成) 선수의 깨끗한 발리슛은 일본 국가대표팀의 2011년 아시아컵 대회 우승을 결정지었다. 그는 공격수로서 호주와 겨룬 결승전에서 연장 후반 4분 극적인 1-0 결승골을 터뜨렸다. 오랫동안 출전 기회를 얻지 못하고 벤치에서 경기를 지켜보다가 연장 전반 마에다 료이치(前田遼一) 선수를 대신하여 그라운드에 투입된 그는 주어진 짧은 기회를 절묘하게 사용했다. 이로써 그는 한국과 일본 사이의 경계인(境界人) 선수가 느끼기 쉬운 핸디캡을 당당하게 실력으로 극복하고 단숨에 아시아 축구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1985년 12월 도쿄에서 재일동포 4세로 출생한 이충성은 초등학교 과정을 총련계 민족학교 東京朝鮮第九初級?校에서 마쳤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몸으로 하는 각종 스포츠에 흥미를 가지고 있었는데, 축구선수로 활약했던 부친 이철태(李鐵泰) 씨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축구에 남다른 소질을 보여 왔다. 어린이 축구 교실에서 축구를 배우다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요코가와(?河)전기 Junior Youth 팀 선수단에 들어간 것을 계기로 그는 축구 선수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 팀은 중학교 학생만을 대상으로 했지만 부친의 권유로 시험 삼아 선발대회에 참가한 것이 합격으로 이어져, 나이 어린 그는 덩치 큰 중학생들과 엉켜서 훈련을 받아야 했다.
2001년 집 부근의 다나시(田無)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Football Club Tokyo의 청소년 (18세 이하) 팀에서 그는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축구 훈련을 받았다. Club의 통상 훈련에 그치지 않고 그는 자신이 납득할 때까지 연습을 계속했다고 한다. 덕분에 그는 Club에서 일본의 전국체전에 3년 연속 선수로 기용되었으며 2002년 간토(關東) 지역 축구 리그에서 득점왕이 되었고 2003년에는 일본 전국 고교 축구 리그 시합인 ‘프린스 리그’에서 우수 선수로 뽑혔다. 그는 2004년 Club에서 프로로 데뷔했고, 2005년에는 가시와 레이솔(柏Reysol) 팀에, 2009년에는 J리그 산프레체 히로시마(Sanfrecce廣島) 팀에 합류하여 오늘날까지 프로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그는 풍부한 운동량으로 강하게 밀어붙이며 거칠게 돌진하는 타입으로 기민한 움직임과 넘치는 승부욕으로 골문을 두드리는 ‘세련되지 않은’ 선수로 정평이 나있다. 결과적으로 그의 ‘세련되지 않은’ 과감한 슛이 이번 아시아컵에서 일본에게 우승을 안겨주었고 그를 ‘영웅’으로 만든 것이다.
지난 60년대부터 80년대에 걸쳐 총련계 민족학교에서 축구 선수들을 집중 육성한 것은 오늘날 일본 사회는 물론 남북한에 걸쳐 재일동포 축구 선수들이 많이 배출되는 환경이 되었다. 재일동포 축구 평론가 신무광(?武宏)은 저서 『조국과 모국과 축구』(ランダムハウス講談社, 2010년)를 통하여, 정대세(鄭大世), 양용기(梁勇基), 이한재(李漢宰), 안영학(安英?), 박강조(朴康造), 정용대(鄭容臺), 이충성 등, 대표적인 재일동포 축구 선수들의 성장 과정과 아이덴티티 등을 소개하고 있다. 이 책에서 마지막으로 이충성이 소개된 것은 다른 선수들과는 일본 국적을 취득했다는 이유가 크다. 하지만 작가는 이충성의 일본 국적 선택에 대해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재일동포 선배 선수 김종성(金鐘成)의 말을 인용하여, “그는 국적이나 민족을 버린 것이 아니라 축구를 선택한 것”이라고 평가한다.
이충성 선수는 자신의 공식 블로그를 열고 일반인과 소통하고 있는데, 2010년 3월 28일의 기록을 통해 다음과 같이 이 책을 읽고 난 자신의 소감을 밝힌 바 있다. “자신이 태어나 죽을 때까지 함께 해 가야하는 ‘자이니치(在日)’이라는 단어. 그 단어가 제목 속에 들어가 있어서 매우 무거운 이미지를 느낀다. 왜냐면 거기에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과거와 미래를 향한 나의 ‘생각’이 이 책 안에 담겨있다. 이야기들을 정열과 혼으로 결합시켜 한 권의 책으로 묶어낸 저자에게 감사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그의 정열을 전하고 싶다” (http://ameblo.jp/lee-tadanari)
한국과 일본의 언론을 통해 널리 알려진 대로, 이충성은 지난 2004년 한국 청소년(19세 이하) 대표팀 후보로 발탁되어 파주 국가대표 트레이닝 센터에서 훈련을 받았지만 결국 대표로 선발되지 못했다. 또한 그가 한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지 못한 이유도 있어서 한국인 동료 선수들로부터 배척을 받기도 했다. 그가 잠시 경험한 한국 사회는 그에게 결코 관대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출전을 위한 일본 국가대표 선수 제의를 받자, 2006년 9월에 대한민국 국적에서 일본 국적으로 국적 변경을 신청했으며 이듬해 2월 일본정부로부터 귀화를 인정받았다.
귀화 신청을 위해 등록한 이름은 李忠成(Ri, Tadanari)이다. 그는 한 때 ‘오야마(大山) 다다나리’라는 통명을 사용한 일이 있지만, 李(Ri)씨로 귀화하면서 재일동포로서의 아이덴티티를 분명히 했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그는 자신이 재일동포 사회나 집안에서 불리는 대로 한국식 성명을 J리그에 등록하고 그렇게 호칭됨으로써 대외적으로 자신이 재일동포임을 분명히 알리고 있다. 다만 오늘날 그가 사용하고 있는 이름의 로마자 표기는 한국식 발음인 Lee, Chungseong이 아니라 한국식 일본식 발음이 섞인 재일동포의 발음 Lee, Chunson이다.
이충성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 이어 2011년 1월 카타르 아시아컵 대회에서 일본 국가대표로 출전했다. 지난 달 일본 국가대표로 확정되고 나서 12월 24일에 그는 자신의 블로그에 남다른 마음가짐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일본을 대표하여 싸우는 자랑스러움을 가슴에 하고, 여러분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저의 힘이 팀의 승리에 공헌할 수 있도록, 그리고 여러분에게 희망과 힘을 부여할 수 있도록 활약할 수 있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아시아컵 대회가 열리고 있던 지난 1월 22일, 그는 블로그를 통해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미숙한 한국어 때문에 잘못 전달 보도되었다고 하며 자신이 말하고 싶었던 것을 일본어와 한국어로 해명했다. 자신은 이제까지 한국과 일본 양쪽을 존중하며 존경한다는 신념을 저버린 적이 없고 자신에게 있어서 조국은 한국과 일본 모두라는 점. 지금은 일본대표로서 아시아 최고를 목표로 노력하고 있다는 점. 한국과 시합하게 되면 한국에 대한 존경하고 경의를 가지면서 한 사람의 축구 선수 이충성으로서 시합에 임하고 싶다는 점.
어제 1월 30일, 그는 결승골을 넣어 일본팀에 우승을 안기고 나서, 자신의 블로그에 ‘hero'라고 하는 제목의 글을 텅해 감격스러운 마음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일본은 이제 새벽 아침일까... 카타르는 밤중 4시입니다.
선수들 모두가 축배를 들고 방에 돌아갔지만 솔직히 저는 잠이 오지 않습니다.
저의 인생에서 최고의 한 페이지를 쌓게 된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언뜻 보면 화려한 시합에 출전하고 있는 스타팅 멤버 11명에게 초점을 맞추기 쉬운 우리들.
하지만 그간 1개월에 걸친 오랜 기간, 체험한 것을 여러분에게 전하고 싶다.
그것은 벤치에 있었기 때문에 비로소 알 수 있었던 것...
첫 시합 요르단전 이후 시합에 나갈 기회가 없는 가운데, 나를 포함한 벤치 선수들에 대한 팀 임원들의 자연스런 배려... 큰 용기와 모티베이션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있었기에 시합에 나가지 못하는 날에도 자신을 계속 믿고 매일 좌절하지 않고 축구를 향하여 몰두한 결과, 아시아 최고를 결정짓는 시합에서 결승점을 올릴 수 있었습니다.
팀 임원진 여러분의 힘이 저의 힘이 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런 가운데, 벤치에서 나갔습니다만, 박빙의 승부가 이어지면서 “내가 영웅(hero)이 되는 거다!”라고, 스스로 되뇌면서 끊임없이 자신을 믿고 속도를 냈습니다. “영웅이 되는 거다!” 라고...(중략)
최고의 멤버로 이번 대회에 임하고 제압했으며 결승 무대에 설수 있었음을 최고의 행복으로 여기고, 인생의 재산으로 삼아가겠습니다. 응원해 주신 여러분, 그리고 저를 항상 떠받쳐주신 아버지 어머니에게도 감사를 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실은 슛이었습니다...
2011년 아시아컵 일본 우승을 결정지은 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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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시평] 지난 호 자료는 한일민족문제학회 홈페이지 www.kjnation.org<한일관계시평> 또는 최영호 홈페이지 www.freechal.com/choiygho<한일시평>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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