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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마경훈목사의 설교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마경훈목사
잃어버린 도끼날을 찾으라./ 열왕기하 6:1-7
(설교자: 마경훈목사, 비전교회)
잃어버린 도끼날을 찾으라(열왕기하 6:1~7) -마경훈목사 - YouTube
요즘은 목사를 배출하기 위하여 신학교가 있는 것처럼 주전 800년경에는 선지학교가 여리고에 있었습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을 대표하던 선지자는 엘리사였습니다. 엘리사가 운영하는 선지학교가 크게 성장하였습니다. 선지생도들이 엘리사에게 와서 요단강에서 학교를 넓히자고 했습니다. 엘리사가 그렇게 하라고 했는데, 그때 한 생도가 “선생님도 함께 가시죠!”라고 해서 엘리사도 함께 가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요단강가에서 나무를 자르다가 일이 터졌습니다. 한 선지생도가 도끼를 물에 빠뜨린 것입니다. 그가 엘리사에게 외쳤습니다. “아아, 내 주여 이는 빌려온 것입니다.”, “어디에 빠졌느냐?” 그가 엘리사에게 도끼 빠진 곳을 알려주었습니다. 엘리사가 나뭇가지를 베어 물에 던졌습니다. 신기하게도 그 나뭇가지에 걸려서 도끼가 떠올랐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왜 성경에 이런 기적을 실어놓으셨을까요?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데 두 가지만 정리해 보겠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은 잃어버린 도끼 하나에도 기적을 베풀어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활에 자상하게 역사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작은 도끼 하나까지 찾게 하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십니다.
예전에 우리 교회에 나오던 집사님이 계셨습니다. 지금은 지방으로 내려가셨습니다. 그분이 교회에서 제자 훈련을 받았습니다. 제자훈련 중에 숙제가 있었습니다. 한 번은 생활 속에서 하나님께 기도하여 응답 받아오는 것이 숙제였습니다. 그분이 그 주간에 이런 체험을 했습니다. 회사를 출근하는데 아침에 어찌하다보니 지각하게 생겼습니다. 회사에서는 감사가 있어서 지각해서는 안 되는데 늦게 생겼습니다. 버스를 두 번 갈아타야 하는데 버스가 제대로 연결이 안 되면 지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버스가 바로 연결 되어서 지각하지 않게 해주세요?” 하나님께서 그분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그분이 갈아타야 할 정류장에 도착하기 전에 보니 저 앞 정류장에 자기가 타야 할 버스가 서있는 것입니다. 이 버스가 정류장에 들어가기 전에 그 버스는 출발할 것 같아 보였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버스가 출발하지 않고 마치 집사님을 기다리는 것처럼 정류장에 멈춰서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음에도 버스가 바로 연결이 되어서 지각하지 않고 여유 있게 회사에 들어갔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범사에 관심이 많으십니다. 우리가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범사에 간섭하시고 도와주십니다. 하나님은 잃어버린 도끼를 찾게 하신 것처럼 우리의 생활 속에서도 자상하게 역사하시는 분입니다.
둘째는 잃어버린 도끼날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은사와 능력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사건을 통해서 우리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은사와 능력에 대해서 메시지를 주시는 것입니다. 저는 기도 중에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몇 가지 메시지를 얻게 되었습니다.
1. 하나님께 은혜와 은사와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은사와 능력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도구입니다. 선지생도들이 도끼라는 도구를 가지고 나무를 했던 것처럼 우리는 은사와 능력을 가지고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일을 했던 사람들은 자신의 타고난 능력만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서 하나님의 일을 했습니다.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양을 치다가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하나님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셨고 모세에게 하나님의 능력을 부어주셨습니다. 모세에게 나타난 능력이 너무나 탁월했기 때문에 바로는 모세를 신 같이 생각했습니다. 출애굽기 7:1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볼지어다 내가 너를 바로에게 신 같이 되게 하였은즉 네 형 아론은 네 대언자가 되리니” 하나님이 모세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모세에게 얼마나 강력하게 나타났으면 바로가 모세를 신으로 생각했겠습니까? 바로가 ‘저건 사람의 능력이 아니다. 신의 능력이다.’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출애굽기 11:3입니다. “여호와께서 그 백성으로 애굽 사람의 은혜를 받게 하셨고 또 그 사람 모세는 애굽 땅에 있는 바로의 신하와 백성의 눈에 아주 위대하게 보였더라” 애굽 사람들은 모세를 아주 위대하게 봤습니다. 왜냐하면 모세를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은 신령한 집을 짓는 생활입니다. 베드로전서 2:5입니다.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여기서 산 돌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며 신령한 집으로 지어져 가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22에서도 동일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우리는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지어져 가는 존재들입니다. 아직 완성된 것은 아니고 완성을 향해서 계속해서 지어져 가는 존재들입니다. 우리가 신령한 집으로 지어져가는 것을 보여주는 그림자가 있습니다. 구약에서 성막 건축과 성전 건축입니다.
구약에서 성막을 지을 때 하나님은 사람들을 사용하셨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브살렐과 오홀리압이었습니다. 성막 건축을 시작할 때 하나님은 모세에게 브살렐과 오홀리압을 부르라고 하셨습니다. 모세는 그들을 세워서 성막을 건축하게 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에게 은혜와 은사와 능력을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출애굽기 36:1입니다. “브살렐과 오홀리압과 및 마음이 지혜로운 사람 곧 여호와께서 지혜와 총명을 부으사 성소에 쓸 모든 일을 할 줄 알게 하신 자들은 모두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할 것이니라” 브살렐과 오홀리압을 비롯한 성막을 세우는 사람들은 마음이 지혜로운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마음이 지혜로웠던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지혜와 총명을 부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와 은사와 능력을 받아서 성막에서 쓸 모든 것을 만들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의 본체이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신의 능력으로 사역하지 않으셨습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사역하셨습니다. 사도행전 10:38을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예수님은 이 세상에 계실 때에 두루 다니시며 사역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서는 예수님의 사역을 두 가지로 압축합니다. 하나는 선한 일을 행하셨고 또 하나는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이 사역의 원동력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은혜와 은사와 능력으로 사역하셨습니다. 누가복음 5:17입니다. “하루는 가르치실 때에 갈릴리의 각 마을과 유대와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새인과 율법교사들이 앉았는데 병을 고치는 주의 능력이 예수와 함께 하더라” 예수님께서 말씀을 가르치실 때에 병을 고치는 주의 능력이 함께 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에게 병을 고치는 능력을 부어주셨고 예수님은 그 은혜와 은사와 능력으로 사역하셨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은혜와 은사와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기왕이면 크게 받으면 더 좋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고 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산에서 나무를 하나씩 벤다고 가정합시다. 어떤 사람은 커터 칼을 가지고 나무를 자릅니다. 그 사람은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정글도를 가지고 나무를 벱니다. 커터 칼로 나무를 베는 것보다는 효과적이겠지만 굵은 나무를 베는 것은 무척 힘이 들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쇠도끼를 사용합니다. 이 사람은 커터 칼이나 정글도 보다는 훨씬 수월하게 나무를 벨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나무를 베는 기계를 사용합니다. 제가 인터넷에서 보니 나무 베는 기계가 있더군요. 놀라운 성능입니다. 기계가 나무 밑둥을 싹 자르더니 가지도치고 이동하기에 적당한 크기로 잘라주더군요. 영상한 번 보실래요
https://m.ppomppu.co.kr/new/bbs_view.php?id=humor&no=278926
제가 자주 여러분에게 강조하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사와 능력은 고린도전서 12장에 나오는 성령의 아홉 가지 은사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브살렐과 오홀리압은 손재주의 은사를 받았습니다. 삼손은 남다른 힘을 능력으로 받았습니다. 삼손에게 강력한 힘이 나타날 때에는 성령께서 강하게 역사하실 때였습니다. 나중에는 성령님께서 역사하지 않으시니 힘이 나타나지 않고 적들에게 잡혀서 두 눈이 뽑히는 불행을 겪었잖습니까. 다윗은 음악의 능력을 받아서 수금을 타면 귀신이 떠나는 일도 일어났습니다. 또 문학적인 능력을 받아서 그가 시를 쓰면 성경이 될 만큼 특별한 영감이 있었습니다.
신명기 8:18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가장 사모하는 것 중에 하나가 부자 되는 것입니다. 재물도 능력입니다. 돈이 다는 아니지만 돈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재물을 얻을 능력도 주십니다.
어제 모르는 분에게서 문자가 하나 왔습니다. 문자의 내용은 제가 몇 년 전에 설교 시간에 사용했던 동태장사 이야기 예화였습니다. 기억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들어보세요.
6.25전쟁 직후 울산에서 동태장사를 하며 살아가는 한 여집사님이 있었습니다. 그분은 동태 장사를 하면서도 마음에 간절한 소원이 있었습니다. “주님이시어! 죽기 전에 반듯한 성전 하나 봉헌하고 천국에 갈수 있게 해주소서!” 그렇게 10년 가까이 기도했는데 여전히 삶에 변화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동태를 이고 이 동네 저 동네 다니면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주님! 저의 꿈을 기억해주세요. 주님께서 살아 계심을 꼭 보여주세요.”
그러던 어느 날! 한 할머니 집 앞을 지나가는데 할머니가 그 집사님을 불렀습니다. 그 할머니가 골동품 상자에서 복주머니 하나를 꺼내 풀면서 말했습니다. “이 보따리는 오랫동안 모은 동전 보따리인데 ,이 보따리랑 동태 한 상자를 바꿔주실 수 있어요.” 그분은 평생 모은 동전 보따리라는 말에 감동이 되어서 그냥 동태 한 상자와 보따리를 바꾸어 주었습니다.
집사님이 집에 가서 그 복주머니를 풀어보자. 동전도 아닌 이상한 것이 하나 들어 있었습니다. 이상한 것이라 집사님은 목사님께 찾아가서 물어보았습니다. 목사님도 보니까 하도 이상하게 생긴지라 인사동 골동품 가게에 찾아가서 감정을 의뢰했습니다. 가게 주인이 한참을 뜯어 보더니 “값을 많이 쳐줄 테니 파세요.”라고 하더랍니다. “얼마 주겠소.!”, “10만원 주겠습니다.” 목사님은 가슴이 덜덜 떨렸습니다. 그 당시 10만 원이면 엄청난 금액이었기 때문입니다. 목사님이 대답했습니다. “내 물건이 아니고 감정만 하러 온 것이니까 팔수 없습니다.” 그러자 가게 주인이 다시 팔라고 조르면서 “100만원을 드리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목사님은 그게 엄청난 골동품임을 눈치 채고는 팔수 없다면서 가게 밖으로 나오자 가게주인이 붙잡으며 200만원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런 식으로 계속 백만 원씩 500만원까지 올라갔습니다. 그래도 목사님이 안 팔겠다고 하자 가게주인이 말했습니다. “이번이 마지막입니다. 600만원 주겠습니다. 안되면 그냥 갖고 가세요.” 그때 목사님은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느끼고 600만원에 팔았습니다.
목사님은 600만원을 들고 후들거리는 다리를 진정시키고 울산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그 집사님에게 600만원을 보여주자 집사님이 눈물을 펑펑 흘렸습니다. 그리고 예배당 건축헌금으로 300만원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원래 골동품을 가지고 있던 할머니께 고맙다며 100만원을 드렸습니다. 이제 200만원이 남았습니다.
집사님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주님! 이 돈으로 무엇을 할까요?” 며칠 동안 기도하는데, 어느 날 주님께서 울산바닷가에 있는 모래 자갈밭을 사라고 환상을 보여주셨습니다. 그 자갈 밭은 잡풀만 무성하고 나무라고는 한그루도 자라지 않는 곳이었습니다. 거저 주어도 안 갖는 땅인데 기도만 하면 그 자갈밭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 땅이 모두 5천 평인데 당시 평당 300원씩 해서 150만원을 주고 샀습니다.
그 분은 그 땅을 사고 난후 몇 년 동안 계속 기도했습니다. “주님! 저 땅을 어떻게 사용하실 건가요?” 어느 날, 집사님 집에 두 신사가 자가용을 타고 왔습니다. 그들은 집사님에게 모래 자갈밭을 팔라고 했습니다. 얼마 주겠냐고 물으니 1천만 원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집사님은 팔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며칠 후, 그들이 또 와서 1억을 줄테니 그 땅을 팔라고 했습니다. 집사님은 안 판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2억 원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집사님은 그래도 안 판다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그 땅을 29억 원에 팔았습니다. 그곳이 울산 현대자동차 정문 자리가 되었습니다.
그 집사님은 다시 교회에 2억 원 건축헌금을 하여 예배당을 잘 지어드렸습니다. 나머지 27억 원으로 무엇을 할까 하고 기도하다가 다시 땅을 샀는데, 몇 년 후에 그 땅에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는 바람에 그 집사님은 수천억 원대의 거부가 되었답니다.
하나님은 죽기 전에 예배당을 하나 짓게 해달라는 동태장사 집사님의 기도를 기적적으로 이루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꿈을 좋게 보시고 재물 얻을 능력을 강력하게 부어주신 것입니다.
물론 그렇게 거부가 되는 것은 보편적인사례는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의 영광을 위한 소중한 꿈을 가지고 기도하면 주님께서는 그 기도를 받으시고. 우리의 생각하는 것이나 구하는 것보다 더욱 넘치게 주실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이제 돈을 붙잡고 돈에 연연해서 살지 말고 주님이 주신 비전을 붙잡고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비전은 무엇입니까? 남들보다 큰 집에 사는 것입니까? 남들보다 높아지는 것입니까? 그런 것은 내려놓으시고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을 받으십시오. 그리고 그 비전에 합당한 은혜와 은사와 능력을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은혜와 은사와 능력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2.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와 은사와 능력을 잃어버리지 말라.
선지생도 한 사람이 나무를 벨 때에 쇠도끼가 물에 떨어졌습니다. 그 도끼는 빌려온 것인데 그는 그 도끼를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이 주신 은혜와 은사와 능력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많습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주신 은혜와 은사와 능력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나옵니다. 성경에 나오는 세 명의 예를 그들의 특징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①인간적인 생각을 따르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하나님으로부터 후손과 메시야와 땅에 대한 약속을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았을 때의 나이가 75세였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해서 갈 바를 알지 못했으나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가나안 땅으로 이주하였습니다. 그리고 10년의 세월이 흘러 아브라함의 나이가 85세가 되었으나 자녀가 생기지 않았습니다. 그의 아내 사라는 생리가 끊어졌고 자식을 낳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결국 그들은 인간적인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 당시 흔히들 했던 방법으로 첩을 두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사라의 여종 하갈을 취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나이 86세에 하갈을 통해서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그 일로 아브라함은 영적인 침체에 빠지게 됩니다. 그리고 13년간이나 하나님과의 교제가 단절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방법이 아닌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을 사용하다가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통이 끊어진 것입니다. 우리가 주의해야 할 점이 이것입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계산으로는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수 없습니다. 인간적인 생각을 붙잡았다가는 하나님의 은혜와 은사와 능력이 끊어질 수 있습니다.
②색욕을 따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삼손에게는 특별한 능력을 주셨습니다. 육체적인 힘입니다. 삼손은 그 힘을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사용해야 했는데, 그는 하나님이 주신 힘으로 오직 색욕만을 추구했습니다. 결국 그는 하나님의 영이 떠나는 불행을 겪게 되었으며 적들에게 잡혀서 두 눈이 뽑히고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우리 시대에 주의해야 할 것이 색욕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5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이 색욕을 따르지 말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주님을 모르는 사람들 중에는 색욕을 따라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특히 이 시대는 성적인 자극이 많은 시대입니다. TV, 인터넷, 스마트폰 등 성적인 유해물이 넘치는 시대입니다. 하와가 선악과를 바라볼 때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해서 그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선악과를 먹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보는 것을 주의해야 합니다. 마귀는 성적인 자극을 주는 유해물들을 이곳저곳에 뿌려놓았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차단하지 않으면 더럽고 추한 많은 것들이 우리 눈을 통해서 우리 안에 들어올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영안을 어둡게 만들고, 하나님이 주신 은혜와 은사와 능력을 잃어버리게 만들 것입니다. 보인다고 클릭하면 안 됩니다. 늘 주님의 보호를 위해서 기도하고 성적인 유혹을 이겨내기를 축복합니다.
예전에 능력 있게 사역을 하던 목사님이 있었습니다. 설교도 잘했고 능력도 뛰어났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했고 은사와 능력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장래가 기대가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이성의 유혹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색욕에 굴복했습니다. 결국 그는 아내와 이혼하고, 사역은 내려놓았습니다. 지금은 무슨 장사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는 색욕을 따르다가 하나님의 은혜와 은사와 능력을 잃어버렸습니다. 안타깝습니다.
③욕심을 따르는 것입니다. 사울이 망한 이유 중에 하나는 욕심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말렉과의 전쟁을 명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울에게 아말렉의 모든 것을 멸하라고 명하셨습니다. 사울은 어떻게 했습니까? 멸해야 할 것 중에서 좋은 양과 소를 남겨두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제사하기 위함이라고 말했지만 사실은 욕심에 이끌린 것입니다.
모든 죄의 근본이 욕심입니다. 루시퍼는 천사였으나 자리의 욕심 때문에 타락하여 마귀가 되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욕심내다가 저주를 받았습니다. 다윗은 남의 여자를 욕심내다가 치욕을 겪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돈에 욕심을 내다가 즉사했습니다. 사울 왕은 물질의 욕심 때문에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습니다.
성경은 야고보서 1:15에서는 이런 경고를 합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욕심 때문에 죄를 범하게 되고 그 결과 사망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은혜와 은사와 능력을 잃어버리지 않으려면 세 가지를 주의해야 합니다. 첫째는 인간적인 생각을 따르는 것입니다. 반드시 하나님의 인도를 받기를 바랍니다. 둘째는 색욕을 따르는 것입니다. 보는 대로 클릭하지 마시고 자기와 싸워 승리하십시오. 셋째, 욕심을 죽이십시오. 자족하기를 배우시기 바랍니다.
3. 잃어버린 은혜와 은사와 능력을 되찾으라.
도끼를 물에 떨어뜨린 사람이 엘리사에게 외쳤습니다. “아아, 내 주여 이것은 빌려온 것입니다.” 엘리사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어디 빠졌느냐?” 그가 엘리사에게 도끼가 빠진 곳을 알려주니, 엘리사가 나뭇가지를 베어 물에 던졌습니다. 그랬더니 신기하게도 도끼가 떠올랐고 그는 잃어버린 도끼를 찾았습니다.
우리 중에 하나님의 은혜와 은사와 능력을 잃어버린 사람이 있다면 도끼를 잃어버린 사람이 도끼를 되찾았던 것처럼 되찾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도끼날이 없는 도끼자루처럼 무능한 상태가 되고 맙니다. 날이 없는 도끼자루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마찬가지로 은혜와 은사와 능력을 잃어버린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됩니다.
요한계시록 2장에는 예수님께서 에베소 교회에 보내는 편지가 나옵니다. 그 교회가 받은 책망 중에 하나는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5입니다.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이 말씀에 보면 회복되지 않으면 촛대를 옮기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촛대를 옮기시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기본적으로 세 가지 일이 일어납니다. 첫째는 영적인 어둠가운데 빠집니다. 촛대는 불을 켜서 빛을 내는데 촛대를 옮기면 빛이 사라지는 것이죠. 둘째는 영광이 사라집니다. 빛은 영광입니다. 그런데 빛이 사라지니 영광도 사라지죠. 셋째는 사명을 잃어버립니다. 우리는 세상의 빛의 사명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서 빛이 사라지면 어떻게 그 사명을 다하겠습니까? 여러분! 회복 되어야 합니다. 잃어버린 하나님의 은혜와 은사와 능력을 다시 찾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 개인에게 빛이 사라집니다. 영광도 사라집니다. 사명도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살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잃어버린 하나님의 은혜와 은사와 능력을 되찾을 수 있을까요? 요한계시록 2:5에 답이 나옵니다. 다시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3가지를 말씀하셨습니다. 첫째,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를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왜 하나님의 은혜와 은사와 능력을 잃어버렸는지를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묵상을 통해서 원인을 발견하십시오. 둘째,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하나님의 은혜와 은사와 능력을 잃어버린 것이 잘못된 것임을 인정하고 자백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셋째, 회개의 연장선상인데요. 구체적으로 행동하십시오. 처음 행위를 회복하세요. 하나님의 은혜와 은사와 능력이 충만했을 때 하던 대로 돌아가세요. 그때는 기도했는데 지금은 기도를 쉬고 있다면 그때처럼 기도해야 합니다. 그때는 중심을 다하며 열정적이었는데 지금은 형식적이라면 그때처럼 중심을 드리고 열정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때는 기쁨으로 주의 일을 감당했었는데 지금은 억지로 하고 있다면 그때처럼 자원하므로 즐거움으로 주의 일을 해야 합니다. 그때는 열심히 예배드리고, 기도회에도 참석하고, 하나님의 일에 헌신했는데, 지금은 예배를 등한히 하고, 모임에 불참하고, 하나님의 일을 가볍게 여기고 있다면 다시 그때로 돌아가야 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그때의 은혜와 은사와 능력을 회복해야 하겠습니까? 먼저 무너진 제단을 수축하십시오. 예배의 제단, 기도의 제단, 헌신의 제단을 수축하십시오. 그래야 영적인 어둠에서 빠져나올 수 있습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영광이 머무를 것입니다. 그래야 사명을 회복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설교는 “잃어버린 도끼날을 찾으라.”라는 제목으로 세 가지 메시지를 나눴습니다.
1. 하나님께 은혜와 은사와 능력을 받아서 하나님의 일을 하라. 은혜와 은사와 능력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도구입니다. 자신의 타고난 능력만으로 살지 마시고 은혜를 받으시고 은사를 받으시고 능력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2.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와 은사와 능력을 잃어버리지 말라. 도끼를 잃어버리듯이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은사와 능력을 잃어버리는 원인 세 가지를 말씀드렸습니다. 인간적인 생각을 따르는 것입니다. 색욕을 따르는 것입니다. 욕심을 따르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를 주의하십시오.
3. 잃어버린 은혜와 은사와 능력을 되찾으라.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시고 회개하시고 처음 행위를 회복하시기 축복합니다.
첫댓글 감사
"도끼의 교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