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걷기 나들이를 다녀와서
우승순
오늘은 계절의 여왕 5월의 한가운데다.
기온이 30도까지 올라간다는 일기예보를 접하면서 땡볕에 덥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의외로 쾌청한 날씨였다. 기온은 높았지만 다행히 습도가 적당하여 그늘에 들어서면 시원함이 느껴졌고 간간이 불어오는 강바람은 기분마저 들뜨게 했다. 모임 시간인 10시쯤 공지천 ‘이디오피아 카페’ 부근의 작은 쉼터에 도착했더니 이미 대부분의 문우님들이 나와 계셨고 반갑게 조우하였다. 특히 망백(望百)에도 밝고 건강한 모습으로 참여하신 정갑녀 작가님과 김윤옥 작가님을 뵈오니 반가움과 함께 문학에 대한 열정에 고개가 숙여졌다. 삼삼오오 모여 회장님이 준비해온 녹색 취떡과 한상만 작가님의 검붉은 방울토마토를 간식으로 먹으며 그간의 안부로 정담을 나누었다. 잠시 후 단체 사진을 촬영하고 오늘의 트레킹코스인 의암호 수변 길을 향해 상쾌하게 출발하였다.
5월의 호수는 3월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3월의 호수가 뿌옇게 올라오는 수증기로 차가운 느낌이었다면 5월의 호수는 발이라도 담그고 싶을 만큼 시원하고 투명했다. 잔잔한 수면 위로는 5월의 태양이 눈부시게 반사되었고 물오리들은 자맥질이 한창이었다. 의암호 수변길이 더 특별하고 아름다운 것은 바다같이 넓은 호수와 더불어 손이 닿을 만큼 가깝게 우거진 숲이 있기 때문이다. 철따라 각양각색의 꽃이 피고 가을엔 단풍, 겨울엔 눈꽃으로 환상적인 풍경을 자아낸다. 수변 길로 이어진 식생은 내가 30여년을 산책하고 있는 우리 동네 애막골 뒷산과 비슷하다. 생강나무 꽃으로 시작해서 개나리, 진달래, 철쭉이 지나가면 아카시아 꽃이 향수처럼 다가온다. 군데군데 아카시아 꽃이 팝콘처럼 터졌고 달콤한 향이 은은히 번졌다.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아카시아의 정확한 이름은 ‘아카시’라고 한다. 아카시아나무는 900여 종이 넘는데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것은 북미가 원산지인 ‘아카시나무’라고 한다. 그러나 이미 아카시아란 말이 토착화되고 일반화되어 학술적인 표현 외엔 아카시아로 통용되고 있다. 3월의 걷기 나들이 색이 노랑이었다면 5월은 하양이다. 수변 길 양쪽 나뭇가지엔 하얀 아카시아 꽃이 흐드러지게 피었고 데크가 끝나는 길 가엔 앙증맞고 하얀 토끼풀 꽃이 지천이었다. 자세히 보니 토끼풀 꽃도 참 화려하다.
아카시아 향기를 맡으면 초등학교 시절이 떠오른다. 1960년대 후반 고향인 평창에서 초등학교를 다녔는데 시골집에서 읍내 학교까지 십리나 되는 길을 걸어서 등하교하였다. 학교 가는 길 중간쯤인 동구 밖엔 과수원이 있었고 울타리로 아카시아나무가 빼곡히 둘러져 있었다. 5월이 오면 그 길을 오갈 때 아카시아 꽃향기가 코를 찔렀다. 고등학교 때 춘천으로 유학을 왔는데 그 때쯤 ‘과수원길’이라는 노래 나왔다. 그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어쩜 그렇게 옛 고향에서의 풍경과 똑 같은 느낌이었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수없이 흥얼거렸던 그 노래의 마지막 소절을 오늘 또 읊조려 봤다. “♪아카시아꽃~ 하얗게 핀 먼 옛날의 과수원길~♬” 이 동요의 작곡가이신 김공선님은 강원도 고성에서 태어나 춘천사범학교를 나오셨는데 춘천교대에는 ‘과수원길’의 노래비가 있다. 아카시아 꽃향기에 젖어 추억 속을 헤매다보니 어느새 트레킹코스의 반환점인 삼악산케이블카 타는 곳에 도착하였다. 우리 일행은 잠시 쉬어가기로 하고 매점의 야외 의자에 앉아 가평 잣막걸리로 갈증을 해소했고 아이스크림으로 더위를 식혔다. 신입회원이신 박선애 문우님이 신고식으로 준비한 간식이었다. 한바탕 왁자지껄한 이야기꽃을 피우고난 후 발길을 돌려 점심약속 장소로 향했다. 3월에 방문했던 가성비 좋은 그 식당이었다. 휴대폰의 만보기를 보니 약 12,000보를 걸었다. 운동 후 밥맛은 언제나 꿀맛이다.
마음엔 나이가 따로 없다. 5월 걷기 나들이의 진정한 꽃은 구순(九旬)의 두 선배 문운님들이시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두 분의 열정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언제나 후배들을 따뜻하게 격려해주면서도 스스로에게는 엄격하시고 글쓰기에 나태해질까 배움을 게을리 하지 않으신다. 점심식사 후 헤어질 때 한분께서 내 손을 잡으며 “이제 그만 나와야 겠어”하신다. 왜 그러시냐고 여쭈었더니 “몸이 힘들어서 야외활동을 하려면 남의 도움을 받게 되니 미안해서......” 그 말씀을 들으며 서운한 마음과 함께 만감이 교차했다. “그런 생각은 절대 하지마세요. 참석해 주시는 것만으로도 후배들에게는 큰 힘이 됩니다”라고 말씀드렸지만 어쩐지 허전한 마음이 가시질 않았다. 평생 동안 경험했듯이 세월이란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무심하고, 무정하다. 언젠가는 나에게도 그런 시간이 찾아올 것이다. 가끔은 산다는 것이 환상이고 착시현상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한편, 또 다른 한분께서는 어떤 문우님이 “젊어 보이십니다”하는 인사말에 “글을 쓰니 안 늙더라”고 답하시는 것을 듣고는 글을 쓴다는 것이 큰 축복임을 다시 깨닫는 시간이 되었다. 글을 쓰면 내 안의 또 다른 ‘나’와 대화하면서 외로울 땐 벗이 되기도 하고 힘들 땐 위안을 얻기도 한다. 인생의 시간은 갈수록 가속도가 붙어 점점 더 빠르게 내 달리지만 글속에서는 시간을 역행하여 청춘으로 되돌릴 수도 있고 죽음마저도 객관화 할 수 있지 않은가. 두 분 대선배 문우님들이 툭 던진 말씀이 천둥처럼 다가온 하루였다. 돌아오는 차안에서는 ‘나이야 가라’라는 가요가 흘러나왔다. ♬“마음엔 나이가 없는 거란 걸~~ 오늘이 내 인생에서 가장 젊은 날~”♪♬ 아카시아 꽃이 흐드러지게 핀 5월의 걷기 나들이는 그렇게 마무리 되었다.
6월을 기다리며......
첫댓글 무엇하나 놓치지 않고 보고 느끼고 사색한것을 다 쓰셨네요 수필가다운 섬세함이 보인글입니다
잘 읽었어요
에티오피아 기념관 앞에서~~ 마무리 순간까지 그림처럼 그려놓으셨네요. 우 선생님 감사합니다. ^^
잠깐 걷기 나들이 하고도 수필 한 편을 쓰시는 우선생님 대단합니다. 마음엔 나이가 없다지만
사진 찍은 곳마다 키 큰 이들이 둘러서서 나는 아이처럼 ㅋㅋㅋㅋ
바짓단을 자꾸만 줄여 입어도 나이는 차곡차곡 싸여 올라가기만 하니 ~~~~~~~
새벽에 우선생님 글 발견하고 두서없이 썼지만 모두의 잠을 깨울까봐 날이 새기를 기다렸습니다.
우선생님과 한 교실에서 글 배우던 때가 천국이었음을 이제야 깨닫습니다.
이제 서서히 날이 밝아오네요. 조금만 더 참았다가 이 글 올리겠습니다.
이제 5시가 넘었으니 올리겠습니다. 모두들 오늘을 힘차게 열어가세요.
세 번째 걷기 모임에 동참해 보니 모두의 얼굴이 반가워 아이처럼 기뻤습니다.
짐을 줄인다면서 떡보따리를 내놓으시는 회장님 걷는 도중에 말벗이 되어 준 상만님
동순님은 나를 솟대 만드는 집까지 안내하고 맨 나중에 앞서 간 사람들을 좇아
뛰듯이 걸어가는 발걸음 어느 새 오셔서 자동차를 대기해 갑녀님과 함께 앉혀주신 대장님
고마운 분이 하도 많아 점점 부담이 되더군요.
나 아니면 동순님이 뛰어갈 리 없잖은가?
나 아니면 대장님이 차를 운전할 리 없잖을까
황고문님이 우리를 데리고 다닐 때는 그래도 조금 젊었었는지 잘도 따라 걸었는데.
이제는 영 아닌 것 같다. 옆 사람에게 부담을 준대서야 말이 안 되지
흡사 천주교 디모테오길 걷기에서 못 따라오거나 힘들어 하는 사람을 태우느라
계속 차가 움직여 주듯이 대장님의 얼굴에는 땀이 송글송글해 미안하기 짝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