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에서 나무를 키우고 나무를 돌보면서 여러가지를 느끼게 됩니다. 물론 나무는 심어 놓으면 나름 잘 자랍니다. 하지만 어린 묘목을 심을 경우 손 봐야할 것이 많습니다. 그냥 놔두어도 잘 자라는 경우도 있지만 어린 나무일 경우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가뭄에 말라죽는 경우도 흔하고 병해충때문에 성장이 제대로 안되는 경우도 흔합니다. 또한 심은 토양의 문제로 어느날 갑자기 고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항상 관심을 가지고 쳐다보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나무 가운데 특히 과수나무일 경우에는 초보 농부들이 키우기가 힘듭니다. 거름도 충분히 공급해야 하는 것은 물론 병해충을 제거하기 위해 약도 상당히 뿌려야 합니다.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때도 더욱 관심을 보여야 합니다. 저는 과일 나무를 채취하기 위해 과실나무를 화야산방에 심은 것은 아닙니다. 과실나무들이 가진 그 독특한 꽃과 그 향기가 좋아서였습니다. 자두나무 살구나무 복숭아나무 매실나무가 그렇습니다. 봄철 매실나무를 시작으로 자두나무 살구나무 복숭아 나무가 꽃을 피우면 정말 황홀합니다. 그 정도 꽃을 선사하면 그 과수나무들이 할 일은 모두 다 했다고 판단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꽃이 지고 나면 관심을 주지 않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과실을 획득하기 위해서였다면 그때부터 더욱 열성을 가지고 돌보아야지만 말입니다. 저는 과수나무는 그냥 놔두면 된다고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며칠전 우연히 과수나무들의 상태를 확인하고 나서 깜짝 놀랐습니다. 상상을 초월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자두나무입니다. 그야말로 닥지닥지 열매가 매달렸습니다. 상대적으로 큰 열매 주변으로 수많은 작은 열매가 달려 있습니다. 사실 이 자두나무는 상태가 좋지 않은 식물이었습니다. 몇년전부터 비실비실 약해보이더니 줄기에서 진물이 흘러내리기도 했습니다. 저는 그냥 성장통이거니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약한 상태에서 이렇게 많은 열매를 맺고 있었습니다. 자기 몸도 제대로 간수못하는 상태에서 자식만 엄청나게 많이 나아 길렀던 우리네 어머니가 갑자기 생각이 났습니다.
일제 강점기 이전부터 한국의 가정에서는 자식이 많은 것을 다복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물론 농경사회여서 자식이 많아야 일손이 느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해방이 되고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먹을 것을 너무도 구하기 힘든 나날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아이들은 임신이 됐습니다. 전쟁중에서도 자식들은 계속 태어난다는 말이 바로 그 말입니다. 전쟁이라는 스트레스때문에 더욱 임신이 늘어난다는 학설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들은 먹을 것이 없는데 어떻게 뱃속 아이가 잘 자라겠습니까. 그래도 어머니들은 산과 들에서 나는 이런 저런 나물들과 나무 열매 그리고 나무 껍질을 먹으면서 뱃속 자식을 길러냈습니다. 그래서 탄생한 사람들이 지금 70대 초 60대 중반입니다.
하지만 어머니가 약하거나 병들어 있는 경우는 더욱 슬픈 나날이었습니다. 자녀들을 많이 낳아 이제 더 이상 젖이 나오지 않는 상태에서도 임신은 이뤄졌습니다. 어머니들은 압니다. 뱃속 자식을 키울 몸 상태가 되는가 말입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피임약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유산을 시키기 위해 산부인과를 찾기도 힘들었습니다. 당시 사회통념상 일부러 유산을 시킨다는 것은 받아드리기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일부 어머니들은 스스로 굶어 아이를 지우려는 시도도 했습니다. 진한 간장을 마시거나 툇마루에서 떨어져 그 충격으로 유산을 시키려는 시도도 감행했습니다. 그러다가 유산이 되고 자칫 어머니도 생명이 위태로워지는 경우도 허다했습니다.
모진 짓을 다해도 없어지지 않고 살아 세상에 나온 아이들의 상태가 좋을 리가 있습니까. 최상의 조건에서도 힘든 것이 임산부들인데 인간으로서 차마 못할 일을 당하고 태어난 아이가 정상일 리 없지 않겠습니까. 어머니는 압니다. 그런 자식들이 바로 아픈 손가락이라는 것을 말이죠. 1920년 말에 태어난 우리네 고모 이모들도 아픈 손가락입니다. 일제 강점기에 여식이 무슨 공부냐며 남동생들을 위해 학업을 포기당한 바로 그 분들도 아픈 손가락입니다. 또한 일제에 의해 강제로 위안부로 끌려간 여성들도 대단히 아픈 손가락입니다. 숨길 수만 있다면 정말 숨기고 싶은 너무 아픈 손가락 아닙니까. 한국전쟁 직후 먹고 살기도 힘겨워 학업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지 못했던 가난했던 우리네 이웃들도 아픈 손가락들입니다.
저는 이 자두 나무 열매들을 보면서 마음이 매우 아팠습니다. 마치 한국의 일제 강점기 그리고 해방후 한국전쟁 그리고 그 이후 그 가난했던 시절이 생각나서 그러했습니다. 그리고 먹을 것도 가진 것도 없는 집에서 형 누나가 엄청 많을 속에서 잠 잘 때도 다리를 제대로 뻗지 못했던 그 시절이 생각나서 그랬습니다. 우리네 어머니들은 왜 그렇게 자식을 많이 낳았을까요. 무슨 영화를 누리겠다고 그 힘든 세월을 사셨을까요. 자식들 먹이겠다고 당신은 물로 배를 채우면서도 자식들의 입에 들어가는 밥을 흐뭇하게 바라본 그 어머니가 너무도 불쌍하고 가련하게 느껴집니다.
저는 화야산방에 있는 과수나무들의 열매를 대부분 따주었습니다. 거름도 주지 않으면서 무슨 과일입니까. 농약도 뿌리지 않고 무슨 과실입니까. 힘든 조건속에서도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그 열매를 키우면서 힘겹게 살아가는 과실수들이 너무 가여워졌습니다. 그 과실나무는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그동안 신경을 쓰지 못했던 것이 가슴 아파왔습니다. 아마도 올해 과수나무는 스스로 콘디션을 유지할 것입니다. 열매에 구애받지 않고 스스로의 몸을 챙길 것입니다. 그래야 나무의 상태도 온전하고 내년에 더욱 활기차게 꽃을 피울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아픈 손가락은 정말 너무 아픕니다.
2024년 5월 21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