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깍. 작고 조그만 열쇠가 자물쇠 안으로 들어가 제 몸집보다 크고 두터운 문을 연다. 열쇠는 누군가의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닫힌 문 너머의 세상을 열기 위해 존재한다. 내가 어렸을 적 할아버지는 열쇠 가게를 운영했다. 할아버지는 18살 때부터 어깨너머로 기술을 배워 열쇠수리공을 평생 직업으로 삼아왔다. 세 평 남짓한 할아버지의 열쇠가게에는 언제나 쇠 냄새가 잔뜩 배어 있었다. 가게의 한쪽 벽면을 가득 메운 열쇠와 자물쇠, 제작 기계, 드릴, 용접기 등이 내뿜는 냄새였다. 할아버지의 손과 옷에서도 같은 냄새가 났다. 쇳덩이 냄새는 늘 할아버지의 따스한 품을 연상시켰다. 오랜 시간 열쇠를 만지며 살아온 그 손은 지문이 닳고 닳아 희미해졌지만 언제나 따뜻한 온기를 품고 있었다. 너나 할 것 없이 열쇠를 가지고 다녔던 시절, 손때로 누렇게 윤색된 열쇠는 분명 무언가 모를 든든함을 전해주는 존재였다. 그렇기에 어린 내 눈에는 수많은 열쇠를 가진 할아버지가 엄청난 부자처럼 보였다. 우리 동네 전봇대나 담벼락에는 어김없이 '열쇠 복사, 출장수리'라는 문구와 함께 할아버지의 가게 번호가 적힌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할아버지는 손기술이 정밀하고 감각이 뛰어나 수시로 사람들이 찾아왔다. 주로 열쇠를 복사하거나 새로 사려는 사람들이었다. 손님이 복사할 열쇠를 건네면 할아버지는 조금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연신 쇳덩이를 깎고 다듬었다. 마지막으로 쇠 부스러기가 남지 않도록 사포질을 해서 표면을 얇고 평평하게 만들면 밋밋한 쇳덩어리가 할아버지의 손끝에서 정교한 열쇠로 재탄생했다. 할아버지가 만드는 열쇠는 막힌 것들을 열고 통하는 열쇠였다. 출장을 와달라는 전화가 걸려 오면 할아버지는 철물통을 자전거에 싣고 한달음에 달려갔다. 굳게 잠긴 문 앞에서 할아버지는 손끝으로 느껴지는 미세한 감각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잠시 후 딸깍 하고, 구멍에서 겉돌던 도구가 자물쇠와 맞물려 넘어가는 소리가 경쾌하게 들려오면 육중한 철문이 마법처럼 스르륵 열렸다. 나는 그 순간이 너무 신기하고 좋아 할아버지가 출장을 갈 때면 항상 자전거 뒷자리에 앉아 따라다녔다. 딸깍하며 문이 열릴 때는 마치 오랫동안 풀지 못했던 수학 문제를 푼 짜릿한 순간 같기도 했고, 심하게 다툰 친구와 극적으로 화해하는 기쁜 순간 같기도 했다. 출장을 가보면 녹슨 자물쇠 구멍이 애를 먹이는 경우도 있고, 열쇠가 자물쇠 안에서 부러져 밖으로 나오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문이 열리지 않아 집주인을 답답하게 만들던 자물쇠도, 제 아무리 굳건했던 철대문도 할아버지의 손길 몇 번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너그럽게 제 품을 열었다. 그토록 손기술이 좋았던 할아버지에게도 도무지 열기 힘든 문이 있었다. 그건 사춘기에 접어든 손자의 마음이었다. 청소년이 되고 사춘기가 찾아오면서 뾰족하고 날카로운 것들이 내 속에서 자라났다. 치기에 휩싸인 나는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부모님을 향해 마음을 꽉 닫아버렸다. 할아버지는 그런 내 마음의 문을 조심히 두드리고 내가 스스로 문을 열고 나오도록 이끌어주었다. 대학 졸업 후에는 꿈을 향해 달려가던 내 앞에 먹구름이 드리웠고 내 인생을 환하게 열어줄 열쇠는 어디에도 없는 것만 같은 불안에 휩싸여 휘청거렸다. 그때 할아버지는 "절망하지 마라. 종종 열쇠 꾸러미의 마지막 열쇠가 자물쇠를 연다"라고 하셨다. 어떤 일이든 열쇠가 아직 남아 있다면 희망을 버려서는 안 된다는 걸 할아버지로부터 배운 나는 좌절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해 내 인생의 문에 맞는 열쇠를 찾을 수 있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내 앞에 놓인 문이 크고 무거울수록 단단한 열쇠가 필요했다. 맞지 않는 열쇠를 넣은 듯 일이 풀리지 않고 삶이 삐걱거릴 때면 나는 할아버지의 열쇠가게로 향했다. 할아버지는 그런 내게 행복의 열쇠는 저마다 모양이 다르고, 모든 자물쇠에 통용되는 만능열쇠는 없기에 내가 가진 열쇠에 만족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늘 말씀하셨다. 내가 단단해지고 여무는 사이, 할아버지의 열쇠가게는 변화를 맞이했다. 전자 도어록이 등장하면서 열쇠 수요가 줄고 가게를 찾는 사람들의 발길도 점점 뜸해졌다. 할아버지는 열쇠를 만드는 일이 시대와 맞지 않는 일처럼 느껴진다고 푸념하면서도 여전히 열쇠를 찾는 사람들을 위해 부지런히 움직이셨다. 어디든 전자 도어록이 달려 번호만 누르면 집에 들어갈 수 있는 시대가 되었지만, 내게는 열쇠를 만드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언제나 멋져 보였다. 할아버지는 힘닿는 날까지 열쇠를 만들고 싶다고 하셨다. 나 역시 할아버지가 아흔을 넘기셔서도 열쇠 만드는 모습을 상상했다. 하지만 40년 넘게 자물쇠를 열어왔던 할아버지의 인생길에 반갑지 않은 손님이 찾아왔다. 어느 날부터 갑자기 물건을 수시로 잊어버리고 길을 잃곤 했던 할아버지. 이 낯선 행동들은 모두 불청객의 전조증상이었다. 치매 진단을 받으신 할아버지는 마치 어딘가에 갇힌 것처럼 원래의 모습을 찾지 못하셨다. 분명 기억의 방안에서 문을 잠근 것도 아니고 밖에서 자물쇠를 채운 것도 아닌데, 할아버지의 기억에는 열쇠를 찾기 힘든 자물쇠가 달리고 말았다. 하는 수 없이 할아버지는 열쇠가게의 문을 닫았다. 하지만 언젠가 다시 쓸 일이 있다고 생각하셨던 걸까. 열쇠가게에 있던 열쇠와 기계들을 창고에 차곡차곡 쌓아 놓으시는 할아버지의 뒷모습은 애잔했다. 할아버지의 일상은 녹슨 자물쇠처럼 덜컹거렸다. 온화했던 성격은 점점 과격해졌고, 섬세했던 손짓은 한없이 무뎌졌다. 이따금 기억이 온전할 때면 창고에 들어가 녹슨 열쇠를 만지작거리는 할아버지의 눈망울은 텅 비어 있었다. 할아버지가 기억을 잃는다는 것도 슬픈 일이었지만, 더 슬픈 건 평생 만져온 열쇠를 내려놓는 것이었다. 할아버지가 평생의 보람으로 삼으셨던 열쇠 만드는 일을 더 이상 할 수 없다는 사실에 슬픔의 크기는 더욱 커졌다. 어디에나 통하는 만능열쇠는 없지만 그 어떤 자물쇠라 하더라도 반드시 열수 있는 열쇠는 존재한다. 다만 오래된 자물쇠일수록 그 자물쇠를 열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할아버지에게 기억의 문을 열고 나올 수 있는 열쇠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할아버지가 사춘기를 겪던 손자의 꽁꽁 닫힌 마음의 문을 열어주었듯이 나도 할아버지의 기억의 문을 열어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결국 그 열쇠는 찾지 못했다. 할아버지는 기억의 문을 열지 못한 채 긴 이별을 고하셨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창고를 정리하는데, 눈길이 머무는 곳마다 세월의 흔적이 깊이 새겨진 열쇠와 자물쇠들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창고 가득 스며있는 쇠 냄새에는 할아버지를 향한 그리움이 깊게 배었다.
할아버지는 곁에 없지만 내 가슴속에 남겨주신 열쇠까지 사라진 건 아니었다. 나는 할아버지가 남겨주신 가슴속 열쇠가 녹슬지 않도록 수시로 꺼내본다. 할아버지가 생을 다하는 날까지 열쇠를 손에서 놓지 않으셨듯이 나 역시 할아버지가 남겨주신 삶의 열쇠를 놓지 않고 살아갈 것을 다짐한다. 최양수
로봇이 우리와 똑같이 감정과 사고력을 갖게 되고
우리보다 수백 배 똑똑해질 거라고요? 그렇다 해도 같아질 수는 없습니다. 인내하는 능력은 사람의 전유물이니까요.
사랑하는 이를 위해, 가치 있는 내일을 위해
참고 견디는 힘.
이 힘을 잃지 않는 한,
미래에도 세상을 움직이는 주체는 여전히 인간일 것입니다.
-월간 샘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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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반갑습니다
초록상록수 님 !
고운 멘트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
후텁지근한 장맛철
건강한 여름나기로
활기찬 나날들보내세요
~^^
좋은글 감사 합니다
안녕하세요
동트는아침 님 !
다녀가신 고운 흔적
감사합니다 ~
건강하시고 근심걱정 없는
편안한 여름나기되시길
소망합니다
~^^
안녕 하세요....망실봉님
좋은 글 담아 주셔서 고맙습니다..
늘 행복하시고 즐거운 나날들 보내세요
오늘도 수고 많으셨어요
반갑습니다
핑크하트 님 !
고운 걸음으로 멘트
주셔서 감사합니다 ~
후텁지근한 장맛철
잘 극복하시어,,
건강하고 활기찬
여름나기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