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언어에 흥미를 느낀 것은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보면서부터 시작되었다. 고등학교 수업을 들으며 영단어를 단순 암기하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수많은 영단어들을 암기해도 시험이 끝나고 사용할 일이 없어지면 금세 잊어버린다. 단어와 그에 따라오는 의미만 외우면 기억에 오래 남지 않는데, 어떻게 공부해야 단어를 잊어버리지 않고 잘 활용할 수 있을까? 계속 영단어를 주시하다 보니 익숙한 단어가 낯설게 느껴졌다. 철자가 길어서 외우기 어려운 단어 하나를 음절 여러 개로 토막내보기도 하고 단어 속에 다른 단어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그러자 단어가 여러 종류로 나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여러 단어가 조합된 단어, 뜻이 비슷해 알아보니 단어 하나가 다른 하나의 어원인 단어, 불규칙하게 모양이 바뀌는 단어... 여태껏 단어를 통째로 기계처럼 외우기만 하다 보니 철자가 적어 외우기 쉬운 단어, 아니면 외우기 어려운 단어로 구분했지만, 그것의 어원과 유래를 찾으며 공부하자 하나하나가 너무 흥미롭고 새롭게 느껴졌다. 더 이상 나에게 영단어는 귀찮지만 암기해야 하는 몇 백개의 철자가 아니었다. 하나씩 뜯어 들여다보고 깊이 공부하고 싶은 짧은 이야기가 된 것이다.
이미 익숙해진 것을 낯설게 보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낯섦을 새로 느끼기 위해 기존 관점에서 탈피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내다 보면 어느새 익숙해져 잊고 있는 것들이 참 많다. 내가 원래 영어를 즐겼던 것처럼 영단어를 즐겁게 공부하기 시작했다는 사실도 잊고 지냈지만, 이번 과제를 통해 예전 기억을 떠올려보고 또다시 낯설게 여겨볼 기회를 얻게 된 것 같아 기뻤다. 익숙한 것을 낯설게 봄으로써 많은 것을 돌아보고 배웠다. 내게 낯설음이라는 단어가 공포, 불안이 아니라 기쁨과 새로움이라는 감정과 가까운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인 것 같다. 앞으로도 종종 낯설음을 이용하여 모르고 지나친 것을 꺼내보고, 새롭게 배우고, 흥미를 느껴 더 알아가고 싶다.
첫댓글 어학을 전공하게 된 이유가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보는 철학함을 통한 것이었다니 반갑군요. 외워야 한다고 생각해서 외우려고만 들면, 단어가 가진 의미와 가치에 대해서, 그리고 구조에 대해서 알 도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것에 관심을 가지고 자세히 살펴봄으로써 전공을 정하는 데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이지요. 이렇게 익숙해서 아무렇지도 않게 여겼던 것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면, 그것에 대한 다양한 생각들을 이어서 할 수 있고, 그것의 의미와 가치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캘리그라프에 자주 등장하는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너도 그렇다."라고 하는 재발견이 이루어지는 것이지요. 모쪼록 앞으로 전공만이 아니라, 함께 하는 사람들과 사건들, 사물들에도 관심을 가지고 자세히 보면 좋겠습니다.